오래 전 하버드 대학의 신학대학장을 지냈던 로널드 티먼 교수가 파면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이유는 로널드 티먼 교수의 컴퓨터에 수 백 장의 음란 사진이 발견 된 것입니다. 그 문제가 일파만파가 되어 결국 파면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도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면 언제든 유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탐심으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육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
우리가 싸워야 할 육신의 세력은 아말렉 족속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족속으로 대단히 호전적인 족속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이 약해질 때 공격해온 족속입니다(신 25:17-18).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말렉을 쳐서 기념하라는 것입니다(출 17:13-14). 이 말씀에 중요한 영적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는 육신(사단)의 세력인 아말렉은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이미 사단의 세력을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15) 하나님의 승리하심이 바로 ‘여호와 닛시’입니다. 우리의 육신(아말렉)의 싸움은 하나님이 싸우셔서 우리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가 ‘나의 여호와 닛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이기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르비딤은 ‘쉬는 곳’이라는 뜻으로 신 광야에서 시내 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이곳은 물이 있고 오아시스인 편안한 휴식이 있는 곳입니다. 아말렉은 꼭 이런 때 공격을 합니다. 이것이 아말렉의 특징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잘 된다고 생각할 때 언제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삶이 안정되고,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조심하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해야 합니다(출 17:8-9). 본문의 모세는 참으로 대단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르비딤에서 아말렉이 공격하자 사람들에게 아말렉과 싸우라고 하며 자신은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산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곳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모든 하나님의 만남은 산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좀 특이 합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기도 하고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웁니다. 그런데 이 싸움의 승패는 싸우는 여호수아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출 17:11) 이 말씀이 주는 영적 의미는 우리 육신의 싸움은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을 의존하는 기도에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승리합니다. 중요한 영적 진리는 우리 육신의 세력은 기도가 유지될 때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존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의 승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본문의 모세는 팔을 올리는 것이 힘들어 그의 손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 모세를 앉히고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줍니다.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은 승리합니다(출 17:12). ‘여호와 닛시’가 일어난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나 자신도 잘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하고, 구역이 중요하며, 남전도회, 여전도회가 중요합니다. 서로를 돕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는 친구 네 사람이 들것에 들려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만일 혼자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많아 지붕을 뚫고 주님 앞에 나갑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신앙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막 2:5).
And...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부의 침략을 당해 어려움에 빠질 때는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셨고 평안해지면 그들은 또 죄를 짓고 하나님은 징계하시고, 회개하고, 징계하고, 회개의 반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도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 슬그머니 자신이 주인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용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적어도 문제가 있을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대부분 일이 잘된다고 할 때 마치 자신이 잘 해서 잘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젠 다 되었어....이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동안은 계속 싸워야 합니다. 아멜렉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을 합니다. 그러므로 늘 긴장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늘 기도함으로 주님이 우리를 통해 싸우시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승리에 도취되어 작은 아이성 정도는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승리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싸우다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조그만 힘도 없습니다. 오직 승리는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이 싸워주셔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늘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주님이 일하시도록 합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나를 내려놓는 것, 그것이 승리의 관건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승리의 시작입니다. 여호와 닛시의 축복을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