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 (일) 찰영.
가나아트홀 옥상입니다. 옥상에도 조각작품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Marc Quinn, 마크 퀸 / Myth(Fortune) 행운의 여신, 브론즈에 페인트, 225 x 240 x 290cm, 2007.
옥상에서 본 풍경입니다.
북한산과 평창동도 보여요.
문 신 / 무제, 260 x 90 x 306cm, 스테인레스 스틸, 1991년.
우측 옥상에 보이는 남여도 조각 작품입니다.
위에서 본 야외무대.
남녀가 길게 누워 있는 조각작품입니다. 여자의 상반신만 서 있네요.
와불 생각이 났었습니다.
최종태 / 작품명 무제, 크기 104 x 49 x 158cm, 재질 브론즈.
2층과
1층에 있는 조각 작품.
의자도 조각작품입니다.
좌측이 야외 무대예요.
야외 무대.
가나아트 홀을 나와 이어령의 영인문학관으로 가는 길입니다.
길가에 있는 집들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더군요. 반려견과 함께 올 수 있는 카페도 있습니다.
좌측이 가나아트 홀입니다.
이 길에서부터 이어령의 영인문학관으로 가는 길이 이어령길로 명명되었네요. 우측에 '이어령길'이란 이정표가 있습니다.
길가 풍경.
KiMi(키미) 갤러리 카페입니다.
1층은 갤러리이고 2층은 갤러리와 카페를 겸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작품.
안으로 들어와서 밖을 본 모습입니다.
1층에는 전시실이 두 곳에 있습니다. 조각 작품의 뒷 공간이 좌측 전시실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고요. 계단 옆에 또 한 곳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이성민 / Horse, 2012년, 25 x 40 x 80cm.
말로가 작업하는 캐릭터는 부정교합이라는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광고, 사진 등에 쓰이는 미디어가
사적인 이상상(理想像)에서 포장된 전제적 이미지의 일반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내비친다.
부정교합을 가진 캐릭터는 외형적인 다름이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라 여기고 밝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Forward, Acrylic on canvas, 80 x 100cm, 2022.
좌) The Wall, Acrylic on canvas, 162 x 112cm, 2022.
Beast of Burden, Acrylic on canvas, 80 x 100cm, 2022
2층으로 올랐습니다.
이 공간을 두고 좌우에 방이 있습니다.
좌측의 방입니다. 전망이 상당히 좋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시켰어요,
설탕도 달라고 했죠.
주방입니다.
뷰(View)가 정말 끝내줘요.
왼쪽방에서 본 실내.
오른쪽 방에는 이기훈 작가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이기훈은 미디어 속 흔히 접할 수 있는 애니매이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예수, 성모, 혹은 군인과 같은 오브제로
작품을 구성한다. 각 오브제는 은유적 의미를 내포하는데 예를 들어,
미키마우스와 같은 애니매이션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착각과 왜곡을
예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천사와 같은 종교적인 오브제는 이중적인 기준을 상징한다.
언어는 우리가 속한 모든 환경과 경험을 재빨리 분류할 수 있는 일종의 정보 검색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에 학습된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는 은유적 감각은
개인이 습득한 언어습관을 통해 기억의 착각과 왜곡을 발생시키고, 현재를 재구성한다.
작가는 작품에 '언어, 착각, 현재'라는 간극에 오브제를 채워넣어 '사실에 가장 가까운 착각'으로 재현한다.
백남준(1932~2006).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했으며,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까지 더해져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며,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하여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레이저 기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가운데 1990년대 중반 뇌졸증이 발병했다.
하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할 때까지 백남준은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그는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아주 특별하고 진정한 천재이자 선견지명이 있는 미래학자"로 평가 받으며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서 우리 곁에 숨쉬고 있다.
백남준 / 세기말 인간, 혼합재료, 98 x 62 x 30cm, 1992년.
백남준 / 세기말 인간, 혼합재료, 98 x 62 x 30cm, 1992년.
테라스.
유리액자.
영인문학관입니다. 이어령 선생이 사셨던 집인데, 문학관 문을 열지 않았네요.
이어령 길(명예도로명 지정일 2022년 9월 23일)
'이어령 길'(법정 도로명 평창30길)은 평창20길에서 가나아트센터 윗쪽 평창 32길에 이르는 700m 되는 구간으로
능소 이어령의 자택과 그의 부인 강인숙과 함께 설립한 영인문학관을 지나는 도로를 칭한다.
이어령은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포함한 백여 권의 저서를 통해 한국, 한국인과 문화의 본질을 탐구하였던 대한민국의
대표 석학이자 지성인으로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문화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이곳(평창30길 81)은 1974년 주택이 하나도 없던 산언덕에 외딴집을 지은 후 이어령이 48년간 가족과 함께 살며 수많은 명저를
집필한 창작의 산실이었고, 게오르규, 루이제린저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을 포함한 수많은 문인, 예술가, 학자. 출판인들이
방문하였던 문화예술과 지성의 사랑방이었다. 서울 종로구는 이어령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끼친 문학적 문화적 영향과 올림픽에 대한
공로, 장관으로서의 업적 등을 기려 2022년 이 도로를 '이어령 길'로 지정하였다.
영춘화가 피어 있는 풍경
금년 4월 중에 개관한다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건물.
불광역 먹자골목에서 늦은 점심으로 먹은 삼겹살. 1인분에 15,000원
첫댓글 조각작품들이 시선을 끄네요.
간접적인 눈팅으로 뽀샤샤 눈호강 합니다.
예전에 평창동 투어할때 영인문학관은 들어가 봤어요. 입장료가 꽤 비쌌던 기억, 그시절에 5천원 했던거 같음..ㅎ
지금은 이어령씨도 돌아가시고, 도로명도 얻고..,
인물들도 세월앞에 장사 없어요...
우리는 부지런히 다니시는 바위솔님 덕분에
부자된 기분입니다.
감사해요. ^^
덕수궁 전시회 관람덕분에 문 신 / 무제
가 친근해졌습니다
모든 작품 방구석관람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가나아트홀 옥상의...
첫 올리신 것 때문에 또 걸리는 것 아닌가..이크~~ ㅋㅋ
놀래게 되네요.
검색 허용체크는 꼭 풀어주셔요...
명품길, 명품작, 고급 카페, 품격 식사...ㅎ
모두가 차원이 달라보이는 풍경들...
감상 잘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