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학사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아쇼카 왕과 스투파에 대한 중국 기록을 살펴보았지요. 이번 글에서는 중국 기록에 나오는 석가모니에 대해서도 써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시작해보도록 하지요.
아쇼카에 대한 여담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그의 정식 명칭은 아쇼카 황제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마우리아 제국의 경우 최초로 남부 아시아를 통일한 나라의 위상도 있었고 명칭도 황제에 해당하는 삼라트라는 명칭을 썼으니까요. 삼라트는 산스크리트어로 황제를 뜻하는 단어인데, 인도 문화권의 황제 칭호입니다.
여기서 군주(君主)에 대한 인도식 명칭을 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쓰이는 명칭이 바로 라자이지요. 라자는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인도 문화의 영향이 클 적에 쓰고는 했습니다. 한편 마하라자는 위의 라자보다는 높은 의미이며 대왕급으로 쓰이던 칭호지요.
'라자'와 '마하라자' 둘 다 왕을 의미하지만 '라자'는 '번왕(藩王)' 즉 제후왕 정도의 의미이고, '마하라자'는 '대왕' 정도의 차이입니다. 한국사 특히 가야사에 비유한다면 라자에 해당하는 왕들은 가야 6왕들 중 금관가야 이외의 나머지 5가야이고, 마하라자는 금관가야의 수로왕에 해당한다 하겠지요. 원전에서도 수로왕과 나머지 5가야 왕들은 명백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뛰게 될 것이다(則是迎大王歡喜踴躍之也). (중략)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돌아가서 다섯 가야의 주군이 되니(餘五人各歸為五伽耶主),…(후략).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 「제2 기이(紀異第二) 가락국기(駕洛國記)」 |
여기에서의 대왕은 당연히 금관가야의 수로왕입니다. 나머지 5가야도 임금이라 하지만 ‘주군’이라 해서 다소 낮춰서 부르고 있지요. 마하라자와 라자의 차이가 대략 이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마하라자만으로도 전체 인도 군주의 위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은 바가 있었지요. 그래서 나온 훗날 나온 명칭들이 바로 삼라트와 마하라자디라자(왕중왕)입니다.
삼라트는 인도 출신 3종교에서 황제를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아마도 브라만교(훗날의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에서 쓰였던 모양이고요. 마우리아 제국은 크게 영토를 확장하였거나 아예 남부 아시아를 통일하다시피 했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한편 마하라자디라자(왕중왕)라는 호칭은 마우리아 제국 이후의 굽타 왕조 시절부터 사용했지요.
이 호칭의 사용은 왕의 신격화를 위해 화신 개념이 있는 힌두교가 정립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불교가 성행했던 마우리아 제국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었던 호칭이지요. 굳이 비슷한 호칭이라면 삼랏 차크라바르틴(전륜성왕) 정도가 있습니다. 바퀴(차크라)를 굴리는(바르트) 황제라는 뜻이지요. 여담으로 인도에는 이를 어원으로 하는 '차크라보르티' 성씨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전륜성왕의 화신(化身)으로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저 유명한 아쇼카 황제입니다. 아쇼카 황제(기원전 304년~기원전 232년)는 제1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손자이지요, 인도에서 손꼽는 위대한 황제 중의 하나입니다. 아쇼카 황제는 수많은 군사 정복 뒤에 오늘날의 인도 대부분을 지배하였지요.
아쇼카 시대의 마우리아 제국은 그저 인도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남부 아시아 상당 부분을 포괄하고 있지요. 제국 영토는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서쪽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 동쪽으로는 인도의 아삼 주, 남쪽으로는 미소레 주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일단 아쇼카 황제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지요.
여기서 지난번 글 쓸 때 약속드린 대로 붓다에 대해 설명한 중국 역사 기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지요. 원전을 살펴보겠습니다.
형체를 헤아려서 비록 쇠퇴하더라도 참된 실체[혹은 법체 眞體]는 바뀌지(옮기지) 아니하며, 단지 시절마다 묘감(妙感: 현묘한 감응)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뵙지를 못하는 것뿐이다. 이는 부처가 태어났더라도 실제로 태어난(살아 있어도 실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멸도했더라도 실제로 멸도한(멸해도 실로 멸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밝히는 것이다). 불(佛: 부처)이 이윽고 세상을 떠나자 향나무로 시신을 불살랐다. 영골(靈骨: 유골)을 가루처럼 잘게 부스러뜨리니, 크고 작은 낱알과도 같았는데, 이것을 쳐도 무너지지 않고, 태워도 또한 타지 않아, 어떤 경우에는 밝고 환하며(혹은 빛나고 밝은) 신비한 영험이 있어, 서역(혹은 외국)의 말로 이것을 사리라 이른다(말한다). 『위서(魏書)』 권114(卷一百一十四) 「석로 지10 제20(釋老志十第二十)/석(釋)」, P.3028. |
석은 물론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줄임말입니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다보니 정작 스투파에 대한 이야기가 적었군요. 제한된 지면이나마 그 이야기를 하고 매듭짓겠습니다. 스투파 또는 솔도파(率堵婆)는 위쪽이 뾰족한 불탑이지요. 앞글의 원전에서 탑묘라고 했던 바로 그런 형태의 건물입니다.
앞의 원전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석가모니의 사후(死後), 그의 사리(舍利)를 둘러싸고 분배(分配) 싸움이 있었다고 설화(說話)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리는 사리 용기(舍利容器)에 봉납(奉納)되고 묘분(墓墳)이 축조되었는데 그 묘분을 스투파(stupa)라 하지요. 이것이 소위 탑파(塔婆), 탑의 기원입니다. 앞의 원전에서 이미 살펴본 바입니다.
석가모니가 가르친 다르마(法)의 실천은 그의 사후 얼마 안 가 조사숭배라는 타력본원의 신앙형태로 변했습니다. 그 바람에 불교미술이 조형 활동의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단어들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조사(祖師)는 어떤 학파를 처음 세운 사람 혹은 한 종파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펼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요.
흔히 성현이라 일컫는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조사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타력본원(他力本願)은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하려고 세운 발원에 기대어 성불하는 일을 말하지요. 자기 힘이 아니라 공덕을 쌓은 선배 혹은 조사에 의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