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보내고
전선자 / 아이리스
봄!봄!봄이다. 보라는 것인가? 본다는 것인가?
봄은 볼거리가 많은 계절, 하늘하늘 핀 벚꽃에 취해 한 보름쯤 즐거웠다.
설천도 가보고, 대차리도 가보고, 부남, 무풍, 안성, 무주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여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인식이 잘 안 되었다. 왜일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날은 3월인데도 날씨가 쾌청했다.
아침 일찍 한 통의 집전화를 받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흐느끼는 목소리 저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웬일이야?”고 물었다.
76세, 건강 상태 양호, 거의 날마다 밤에 한 시간 정도의 걷기운동을 하는 그녀,
하늘이 노랗고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2020년 2월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면서 그해 2월 말레이시아 여행이 취소되었다.
2023년, 올해에 들어 이제 모든 것이 국제적으로도 좀 느슨해져서 여행계획을 세워 3월 13일 출국했다가 18일 새벽에 돌아왔다. 그녀가 빠진 여행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저곳 궁금하여 전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전화했는데 둘째 아들이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웬일인지 물었더니 지난 16일, 엄마가 몸이 갑자기 편찮으셔서 대전00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단다. 의식은 있어서 ‘대화가 가능하다’ 했다. “다행이구나” 하고 “면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중환자실이기 때문에 면회가 규제되어 있단다. 일반병동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수시로 아들과 통화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 무주사람이면 누구나 아실 ‘무주약국(김종남 약사님)’부인 김경화 여사님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대전여상을 졸업, 한국조폐공사에 다니다가 무주 김종남 약사님과 결혼하게 되어 일가족을 이루며 53년째 살고 계셨다. 무주약국은 1963년에 개업한 후 올해가 딱 60년이 되는 해라고 하셨다. 무주군민의 건강을 위하여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약국을 지킨 사명감이 투철한 분이시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꾸려가기에 노력하지만 밤 근무는 그렇게 쉬운 일만이 아니다, 오로지 무주군민의 건강에 보탬이 되도록 여는 것이다. 무주의료원에서는 밤 10시까지 응급환자를 위한 처방전을 내보내는데 무주 읍내 ‘무주약국’ 외에는 문 여는 약국이 없다. 약사님께서는 의무감을 가지고 문을 열어 놓으신다고 했다. 이제 약사님의 연세 88세, 컴퓨터에도 약하시고 기억력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 뒷바라지 하느라고 이번 여행에 여사님이 동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 한참 여행 중이던 16일에 저혈압으로 그만 그렇게 되었다니 함께 여행 갔으면 그 일을 피할 수 있었으려나? 싶기도 하고 가슴 저리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입원 후 2~3일은 의식도 있고 말도 할 수 있었다는데 의사와 면담하면서 의식을 잃었다는 것, 그 후 깨어나지 못하고 22일 아침 8시경에 영면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아는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
그녀는 현모양처였다. 오로지 약사님의 의식주 생활에 불편함 없이 내조하였고 아들 둘, 딸(미스 전북 선을 거처 미스코리아 출전 향토미인상 수상) 하나를 잘 키워 부러울것 없었는데 약사님이 그러하듯 단지 자유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녀가 너무 착하여 많은 주변 분들을 음으로 양으로 내색 없이 많이 도와주었다는 것이고, ‘그런 착한 사람이 왜 그리 일찍 가야 하는가? 이 100세 시대에’ 얘기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무주의료원 장례예식장에서 사흘간 머물다가 잠깐 그녀가 살았던 약국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가 얼마나 서글펐을까를 생각하니 또 내 가슴이 요동쳤다. 세종화장장에서 한 시간 반쯤 지체한 후 가루가 된 시신 함을 모시고 무주를 향해 와서 ‘무주 추모의 집’에 안치했다.
친구의 시신은 불타고 있는데 한쪽에서 산 사람은 먹어야 하고, 따뜻이 입어야 하고, 말하며 웃어야 하는 요상한 아이러니를 느끼며 현실에 입각,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것은 신의 영역임을 절실히 깨달았고, 역시 슬픔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에 명상으로 다스려야 할 부분임을 알았다.
봄이다. 꽃 사랑하기를 님 사랑하는 만큼인 그대여! 이 아름다운 꽃길만 걷기를, 하냥 누비기를 바라며 가신 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첫댓글 친한 친구를 갑작스레 떠나 보내야 했던 경험을 잘 표현하셨습니다. 그 장소에 저도 있는 듯 가슴이 먹먹합니다. 남을 도우며 착하게 살았던 사람이 그렇게 급하게 떠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것은 우리로서는 납득이 안되는 정말 신의 영역이겠지요.
흐드러진 봄꽃을 보면서 당연히 좋으련만 왜 그러실까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분 때문이셨군요. 감히 선생님께서 느끼셨을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100세 시대에 너무 짧아 안타깝습니다. 꽃길을 걸어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잠드셨을 것 입니다. ♧♧
소중한 친구가 떠나신 봄이라 여느 봄과 다릅니다.
온갖 꽃이 만발해도 친구가 없는 상실감은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선생님 마음 추스르시고, 다가 올 계절을 또 만끽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계절이 가고 또 오는 것처럼 선생님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시길 기도 드립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친구를 잃은 아이리스님을 생각했습니다. 봄은 한창 꽃 잔치를 벌이는 계절에 그렇게 착하고 친하셨던 친구를 잃은 아이리스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봄꽃처럼 마음도 고운 그 친구는 아마 천국에서 할 일이 생겨 부르신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짧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요. 많이 허전하시겠지만 이겨내시고 힘을내어 살아가시기를 빌어봅니다.
라이락 님! 들국화 님! 목련화 님! 접시꽃 님! 수수꽃다리 님! 아네모네 님!
위로의 답글 올려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빨리 마음 추스러 정신 차려볼게요.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파 요즘 독감에 걸려 앓아누운 지 일주일이 지나도 잘 낫지 않네요.
올해는 운이 많이 나쁜가 봅니다. 이런 해는 바짝 늙더라고요. 조심하면서 살겠습니다.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몸조심 하시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