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보나벤뚜라의 부탁으로 성서형제회 50주년 자료정리를위해서
서울에 머문적이 있었다
사실 한달간 있을 예정이었지만 코로나가 확산되는 바람에 거의 일주일만에
자료뭉치를 들고 대구로 되돌아갔다
이를정리하면서 초기자료를 읽어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초대 봉사자들의 헌신을 어느정도 알수가 있었다
전국에 수많은 팀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아니지요..
제가 본격적으로 참여한 지난 15년간을 되돌아보아도 답보상태나아니면
퇴보상태인 성서형제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왜 성서형제회는 퇴보한것인가?
저는 적어도 말할수가 있는데 전국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있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성서형제회가 헌장과 교본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헌장에서 말하는 아나윔정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라는 것 정도였다
저는 그이전에 서울교구에 있었을때에 특히 1990년대에 희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아나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것이다
희년은 구약의 안식일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인데
안실은 그냥 쉬셨다는 의미로 들려지지만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라는 것은 자신뿐민 아니라 모든것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부리는 종이나 아니면 그들이 경작하는 토자도 다 쉬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경작하는 토지에서 수확물이 있다면 그날에 수확되는
모든 산출물은 토지주인이 갖는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가난한이들의
몫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단지 가난한 이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일도 포함되지만
모든이들에게 대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년에 3번 전국모임을 갖고 이로 인해서 적지 않는
비용과 노력이 소모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서 일부분의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되는데요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아나윔정신이고 안실일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도 따지지 못할정도인
성서형제회의 헌장에서 성서인 말씀에 대한 연구나 보급을 한적이
있었느냐 입니다
성서형제회교본은 지난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저는 서울교구와 수원교구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교구에서 성서못자리와 청년성서모임
그리고 수원교구에서의 여정 프로그램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원곡성당에서 어느해인가 신부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그분은 대단히 유명하신 분이셨는데 그분은 미사때에 복음서를 읽는데
그는 성서를 보고 읽는것이 아니라 암송하시는 것이었다
분명히 중저음의 목소리도 사람을 이끌기도 하셨다
특히 그분은 원곡성당의 재개발일로 특히 오랫동안 머무시면서 헌신하셨다
그분 원곡성당 성서형제회에도 관심을 가지고 원곡성당에서 하는
회합에도 참여하시고 행사때에 재정적인 지원도 해주셨다
우리는 늘 교구에서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교구에서 단체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고 저도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가졌다
제가 2004년도 10월쯤 안산 원곡동성당에 교적을 옮기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가 처음 본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나서 신부님꼐 인사드렸다
신부님은 먼저 말씀하셨다 '형제님 성가대 할수 있나요?'라고 하셨는데
제가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자 그 다음에 '레지오는 하실수가 있지요..'하시는 바람에
구역모임에서 마난 이웃을 통해 레지오를 하게 되었다
저는 안산에 이사온지 몇년간은 대단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내는 장사하고 저는 계약직으로 안산시청산하 단체에서 이했다
소득이 분명했지만 낮은 급여로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저는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대단지 아파트에 서는 이웃의 고통도 매한가지였다
재개발이란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평소에 잘 살던 주택을 부수하고 그보다 더 편리한 아파트단지를 지어서
편리하게 살게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적지않는 비용을 감수했던 것이고
적지않는 사람들이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저도 집주인이 어느날 자신이 산다고 하면서 집을 비워달라고 하셨다
그때에 안산에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였고
새로 이사갈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고심중에 잘 아던 부동산중게업자의 도움을 받기로 하여서
마침 딱 한집이 나왔다고 했다
계약을 위해서 그집을 혼자서 가서 보았다
너무 놀라웠다 그집은 무당이 살고 있었던 집이었다
아주 간혹 무당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제가 살기위한 집을 보러
내부를 자세히 본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저는 이사실을 아내에게 말하기는 정말 싫었지만
이집으로 이사하는 것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저는 살집을 볼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화장실과 세면대 그리고 욕조가 딸린지를
보는데 아주불편한 집이었다 세면대와 욕조는 아에 없었던 것이다
추운날인 겨울을 지내야 하기에 제가 세수를 할때마다 물을 따로
끓여서 준비해야 하는 아내의 고충이 심했나 봅니다
성당을 깃점으로 위 아랫동안에 이어지는 골목안은 작은 연립단지로
꾁 채워져있었다 그런 샐활면에서 어려운시기였지만
신앙적으로는 아주 평온한 시기였는데 그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을 특히
교우들을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만날수기 있었던 것이었다
제가 대단지 아파트에 살때 그 단지 즉 4개의 큰단지주위는
온통 골목안의 연립이었던 것이었다
서울 시흥동에 살때도 성당앞에 있는 큰길을 깃점으로 기차역쪽으로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었고 성당쪽으로는 약간 언덕길로 단독과 연립이 있는 골목이 있었다
성당뒤로는 낮은 언덕과 산으로 이어져서 삼성산과 관악산으로 갈수가 있었다
50년전의 성서형제회의 기록을 보면 아주 헌신적인 봉사자의 자취를 볼수가
있다는 것인데 이들이 전국적으로 만든 여러팀들이 아주 순식간 사라진것은
이런 헌신적인 모습이 어떤 이유이었든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는 구약에서 유대왕조가 솔로몬의 화려한 왕조도 분열되어서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은 풍요로 남유대는 성전을 지켰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가이다
북쪽의 단에서 남쪽의 브엘세바로 이르는 땅이었다고 한다
북쪽이 헤르몬에 산에 내려온 물줄기는 갈릴리아 호수를 채울정도로
풍부한 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쪽은 거의 사막지역이나 산악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풍요로움은 북이스라엘에서 이방신인 농업의 신을 '바알을
섬기게되어서 하느님의 분노를 싸서 주위족속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하였다고 한다
남북으로 갈라진 유대인들중에서 북쪽에 사는 10개지파사람들이
성전순례를 위해서 남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는데
북이스라엘왕국은 이를 막기 위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2군데에 배치하여
경재하였는데 이 또한 하느님으로 받드는 바알신인 것이었다
우리가 성서형제회로서 그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것은
봉사자들이 성서형제회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초기 성서형제회정신과는
동떨어진 일이기 떄문이라 여겨집니다
왜 우리가 성서형제회를 하는지?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남기조차 어려울것이라 여겨집니다
처음 이글을 작성하려고 할때에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할려고 하여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이런 우리의 자세가 헌신적이지 않을떄에는 어느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데로 매번 하는 것이 코이노이나팀회합과 전구구월례회의라는 것인데
지금 가능한 것중에 하나는 전국월례회의에서 다루뤄야 하는 의제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점차 쇄퇴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빠지지 않고 월례회의를 열고 있지만 그내용이 전혀 알수가 없는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믈론 이를 위해서 비대면으로 하기에
효과적인 회의진행이 어렵다는 것인데
그이전에 월례회의 활성화되었을떄에는 회의장소에 토의하기이전에
미리 개별적으로 전화를 통해서 물밑조정을 하였기에 회의에 효과적인
결과를 맺을수가 있었던 것인데 이것마저 제대로 이루워지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교구단위나 지구단위로 운영해야 하는것을
전국단위로 하는 것은 다들 교구승인단체로서는 전주교구뿐이어서라고
여기지만 사실 교구나 지구를 전체를 통솔할 구심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원교구에서 수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코이노니아가 한꺼번에
해체된것이 다들 수원교구의 거룩한 독서모임떄문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사실상 거룩한 독서가 성서형제회 코이노니아팀 회합의 대체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이들 모임이 형성되어서 그쪽으로 변환되더라도
성서형제회의 위축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은 기존봉사자로 유지하려고 하고
새로운 봉사자의 양성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지는 모르지만 몇개 코이노니아팀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거의 한팀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지금 시흥동팀이나 수원정자동이나 천안에서 정신부님이 만드셨다는 팀이
과연 기존팀과의 연계가 얼마나 이루워지고 있는지
과연 그들도 성서형제회정신으로 코이노니아팀운영이 가능한지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형제회에 헌신하는 만큼 달라지고 발전할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생사전에 하는 9일기도에 대한 안내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달전부터 분위기가 가열되는 지난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겨우 배포되지 않는 소식지 파일을 통해서 간신히 그 내용을 알정도라는
것이고 소식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소식이라는 것은
에쿠아도르의 소식뿐이고 국내의 소식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져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