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몸은 물거품과 같고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나니, 만약 진실한
경계가 아니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김사의는 고경의 추천으로 바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의 정식 이름은 통도사사립중학교였다. 고경은 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 그러니 고경은 절집의 은사요, 공부하는 데 뒷바라지하는 학부형이요,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인 셈이었다.
고경의 뒷바라지는 남달랐다. 시골 마을 아이들이 공납금을 내지 못하여 쩔쩔맬 때도 김사의는 그런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무명바지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닐 때도 김사의는 대구나 부산에서 사온 고급 운동화에 반듯한 학생복을 입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누더기 보따리로 책을 싸들고 학교를 오갈 때도 김사의는 부잣집 자녀처럼 책가방을 멋들어지게 들고 다녔다.
그러나 고경은 김사의에게 예의를 가르칠 때는 엄했다. 김사의가 불단에 올려진 홍시를 먹거나 먼저 들어온 행자와 양보하지 않고 다툴 때는 용서하지 않았다. 급한 성격의 고경은 불벼락을 내렸다.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 뺨을 올려붙였다.
심하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김사의는 계곡으로 나가 흐느껴 울었다. 몰래 울고 나서는 계곡물에 얼굴을 씻고 슬그머니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부처님, 외할아버지 스님에게 돌아가게 해주세요.”
“이놈아, 네놈까지 부처님께 무얼 해달라고 하느냐. 허구헌날 부처님께 무얼 해달라고 빌어대니 부처님도 힘드시겠다. 쯧쯧.”
기도하던 노스님이 염불을 멈추고 혀를 차며 김사의에게 꾸중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미소를 지어 김사의에게 그러겠다고 약속을 해주는 것도 같았다. 실제로 김사의는 야단맞을 짓을 해놓고 고경이 무서워 내원사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내원사에는 추금이 안거를 마치고 해인사로 가버리고 없었다. 그 바람에 김사의는 식은땀을 흘리며 밤길을 걸어 통도사로 돌아와 고경에게 또 다시 벌을 서야 했다. 벌은 적멸보궁으로 올라가 108배 참회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기껏 도망쳐 봐야 손오공처럼 고경의 손바닥 안이었다.
고경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지나쳤음을 알고는 차츰 방법을 바꾸었다. 김사의의 생일이 되자, 공양주에게 아침에는 찰밥을 짓게 하고 점심에는 칼국수를 만들게 하였다. 속가에서 받아본 이후 처음으로 대하는 생일상에 김사의는 무섭기만 한 고경에게 마음을 열었다. 김사의는 이런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의지할 분은 오직 고경 큰스님뿐이다. 그러니 고경 큰스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의 스승이다.’
고경도 김사의가 겉돌지 않고 친자식처럼 다가오니 산내암자에서 내려온 젊은 스님들을 만나면 어느 새 김사의를 자랑하곤 했다.
“일타에게는 남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지요. 첫째는 돈을 모르는 것이고, 둘째는 몸이 무쇠같이 탄탄한 것이고, 셋째는 부모님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스님 될 팔자가 아니겠소.”
고경은 김사의가 장차 불가의 대들보가 될 것이라고 점지했음인지 자랑을 마다하지 않았다. 깐깐하고 꼼꼼하여 누구라도 좀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고경의 성품으로 볼 때 김사의에 대한 고경의 기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통도사에서 김사의가 생활한지 1년이 막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김사의가 학교에서 오니 막내외삼촌 진우(震宇)가 고경에게 큰절을 하고 있었다. 진우는 김사의가 속가에서 가장 좋아했던 외삼촌이었으므로 김사의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으로 유학을 가 공주읍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수재 김용명(金容明; 진우의 속명)이었다. 그러던 그가 승려가 된 동기는 우연한 사고를 당하고 난 뒤였다. 대학 졸업을 하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다 개울로 추락하고 만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나던 행인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3일 만에 의식을 되찾긴 했지만 짧은 인생 앞에 부귀영화도 뜬구름 같다는 허망한 생각이 들어 괴로워했다. 부귀영화를 찾아 일본 땅에서 헤매는 자신이 어리석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병실 머리맡에는 『불교성전』이 놓여 있었고, 처음 펼친 페이지에는 홍법대사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게송이 보였다.
‘부귀영화도 헛된 것이라면 무상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만 찾으면 행복할 것이 아닌가.’
김용명은 병실에서 출가를 결심했다. 이미 출가하여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큰형님 법안에게 편지를 썼다. 스승으로 모실 만한 분을 소개해달라는 편지였다. 그러자 법안은 학구적이고 탐구심이 강한 동생의 성품을 참고하여 문자를 버리는 선승보다는 대강백인 고경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하라고 답신을 보냈다.
1933년, 김용명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귀국선을 타고 국내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통도사를 찾아가 고경의 허락을 받아 제자가 되었는데, 그때 받은 법명이 진우였던 것이다.
고경은 김사의가 방으로 들어와 앉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의 집안에서 내 제자가 벌써 둘이나 되었구나.”
“외삼촌도 큰스님의 제자라면서요. 그런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들르지 않은 거예요.”
“사의야. 저기 백련암, 극락암 선방에서 살았단다. 백련암에서는 운봉스님을 조실로 모셨고, 극락암에서는 경봉스님을 조실로 모셨지.”
그러자 고경이 지난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 듯 눈을 지그시 감더니 말했다.
“진우수좌는 머리가 좋은 수재야. 경을 봤더라면 지금쯤 대강백이 됐을 것이야. 헌데 사미승 때부터 참선을 하고 싶어 내 곁을 도망쳤지. 걸망 매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잘 치는 것을 보면 진우수좌는 천상 수좌감이야.”
참선에 관심이 많은 진우를 고경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조건을 하나 걸고 선방으로 보내기로 했는데, 그 조건이란 머리 좋은 진우에게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천수경』을 하루 만에 외워 바치면 선방에 보내주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진우는 밤잠을 줄여 『천수경』을 하루 만에 외운 뒤 고경 앞에 꿇어앉았다.
“스님, 다 외웠습니다.”
“어디 한 번 외워 보거라.”
진우는 고경 앞에서 단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앵무새처럼 줄줄 외웠다. 그러나 고경은 틀렸다고 도리질을 했다.
“그것은 외운 것이 아니다. 앵무새와 다를 바 없구나.”
“스님, 다 외우지 않았습니까.”
“한 뜸의 깨달음도 없이 외운 것을 가지고 어찌 다 외웠다고 하느냐. 『천수경』을 외웠으면 마음에 계합되는 바가 있을 터이니 그것을 일러보아라.”
진우가 허둥대며 대답을 못하자, 고경은 또 다른 숙제를 내주었다. 이번에는 『금강경』을 외워 오라고 했다. 진우는 『금강경』을 또 밤을 새워 외웠다. 그러나 바로 고경에게 외워 바치지 않고 3일 동안 부처님 진신사리 사리탑으로 나아가 탑돌이를 하면서 마음에 울림이 생겨 눈물이 날 때까지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한 진우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고경은 이윽고 허락을 했다.
“백련암 선방 조실스님에게 부탁했다. 조실스님은 운봉스님이 어서 가 삼배를 올리고 방부를 들이거라. 나는 네가 먹을 양식을 사미승 편에 부치겠다.”
그 길로 진우는 선객이 되어 안거 때가 되면 선방으로만 돌았다. 초견성(初見性)까지 꼭 5년이 걸렸다. 지난봄 지리산 금대암 선방에서 동안거 용맹정진 중에 봄바람과 봄비를 상관하지 않는 ‘뿌리 없는 나무(無根樹)’를 보았던 것이다. 봄바람과 봄비는 번뇌와 망상이 들끓는 현상계(現象界)일 터인즉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 ‘뿌리 없는 나무’ 즉 절대의 경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고경은 제자 진우의 오도송, 즉 깨달음의 노래를 편지로 받아본 바 있으므로 진우를 의심하지 않고 선객으로 인정했다.
“지리산 금대암이라고 했겠다. 백장암과 더불어 지리산의 2대 명당이자 선방이지. 견성한 것은 명당의 덕도 본 것이야. 다시 한 번 게송을 외워볼 수 있겠나.”
진우는 찻잔을 놓더니 조금은 쑥스러운 듯 고경을 바로 보지 못하고 빠르게 외웠다. 어찌나 번개처럼 외우던지 김사의는 한 구절도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의 일이 한 조각일 뿐이니
메아리 없는 골짜기 뿌리 없는 나무일세
그림자 없는 나무 끝에 스스로 핀 꽃은
봄바람과 봄비도 상관하지 않는다네.
平生事業一段子
無響谷中無根樹
無影樹頭花自發
不關春風不干雨
“운봉스님께서는 뭐라 하시던가.”
“월내 묘관음사에서 자상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옳거니! 그 편지를 볼 수 있겠나.”
그러자 진우는 바랑 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고경에게 내밀었다. 김사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마치 귀한 보물을 대하듯 ‘옳지, 옳거니!’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고경의 태도와 예를 다 갖추어 스승을 대하는 진우의 모습에서 자신도 외삼촌과 같은 선객이 되어야지 하고 막연한 다짐을 했다. 고경은 한문으로 된 편지를 고개를 주억거리며 막힘이 없이 읽어내려 갔다.
〈보내온 편지를 자세히 보니, 너의 신심이 어떠하며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대강 알겠다. 신심과 공부의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 삿됨과 삿되지 아니함, 공부가 병든 것과 병들지 않는 것, 광명 가운데 빛이 없는 것과 소리 가운데 소리가 없는 도리에 대해서는 그만 두자. 오직 하나, 너의 편지 가운데 ‘탁마코저 함이라’고 한 것을 꼬집어 말하자면 네 스스로에게 필히 견성을 하였다는 마음이 있음이로다.〉
고경은 금세 운봉이 진우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뜻을 간파했다. 운봉의 편지는 깨달았다는 상에 집착하고 있는 진우를 점잖게 타이르고 있었다. 운봉은 진우가 ‘견성하였다는 마음이 있음’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경은 다시 편지에 빠져들듯이 읽기 시작했다.
〈진실로 견성을 하였다면 네가 매일매일 참구하는 공안의 뜻을 확연히 투득(透得)하였을 것이니, 그 공안의 뜻을 분명히 말해 보아라. 내가 너를 증명해 주리라. 만일 공안을 투득하지 못하였으면 편지에 적어 보냈던 여러 가지 문구들이 모두 망상에 불과한 것이니, 다시 딴 생각 하지 말고 또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짓지 말고, 여전히 이전처럼 본래 참구했던 공안을 힘을 다해 의심할지어다.〉
진우에게 하는 말은 죽비를 내려치는 것과 같았다. 백척간두에서 다시 진일보하라는 깨침의 죽비의 소리였다.
〈공부하는 사람 대부분은 처음에는 진실하게 공부하는 듯하다가, 마침내 식심(識心)이 잠시 휴식을 하는 시절에 이르게 되면, 맑고 고요했던 식심이 변하여 견성을 한 듯한 뜬생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 경계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의 속으로부터 법을 안 듯한 날카로운 기운이 이글이글 일어나면서, 견성한 것 같은 어떠한 문구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용맹스런 기세가 등등한 듯하나니, 이와 같은 증세는 모두 마구니의 힘이요 진실한 경계가 아니니라.
몸은 물거품과 같고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나니, 만약 진실한 경계가 아니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진중하고 또 진중할지어다.〉
김사의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통도사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가슴속에 감동이 물결치듯 일렁거렸다. 내용이 무언지는 모르나 스승과 제자 간에 보물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부러웠던 것이다. 김사의는 다리를 건너 안양암을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자장동천까지 올라갔다.
김사의는 솔숲 그늘에 앉아 땀을 들였다가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담그기도 했다. 방학 중이므로 아무 암자에서나 자고 내려가도 고경은 꾸중을 하지 않았다. 암자 스님들도 김사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경이 통도사 산내암자를 다니면서 자랑을 많이 한 덕분에 사미승 일타는 어느 암자를 가더라도 모르는 스님이 없었다. 〈계속〉
첫댓글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살라하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라하네!.
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