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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23. 03. 12(일)
□ 곳 : 「복곡[복골]주차장」~381.5m(‘준․희’) 봉우리~순천바위~666.4m 봉우리~금산(681m-‘푯돌’)~「보리암 주차장」
□ 벚꽃산악회
□ 참여 : 모두 44명
□ 날씨 : 흐리고 소나기를 동반한 비 조금 내림, 바람 세게 불었다.
□ 길 : 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3. 03. 12(일) 10:52~15:10(4시간 18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10:52 「복곡」[「복골」주차장 나섬
○ 11:35(?) 381.5m(-‘준․희’)
○ 12:30~12:55 점심. 천둥, 번개
○ 13:14 시멘트 산길[임도]
○ 13:15 |― 갈림길, 여기서 오른쪽 산으로 올라섬.
○ 14:06 순천바위, ※ 비가 많이 내려 그냥 지나친다.
○ 14:14 666.4m(‘지도’?) 봉우리, 산불초소
○ 14:34 안테나 있는 곳
○ 14:38 산길[임도]
○ 14:43 금산 ․ 보리암 갈림길.
○ 14:50~14:55 금산(681m-‘푯돌’ ․ 705m-‘국제’)
○ 15:00 (다시) 금산 ․ 보리암 갈림길.
○ 15:10 「보리암 주차장」, 산행 끝냄.
복골[복곡] 저수지
얼레지
노각나무
노각나무 껍질
순처나위 옆
금산 봉수대
보리암 위에서 내려다 본 상주해수욕장
상사바위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3. 3. 12(일) 06:55쯤 인제대 역을 떠난 버스는 안개가 많이 끼고, 우중충한 날씨를 무릅쓰고 통영 사량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통영시 도삼면 「가오치 여객선 터미널」를 향해 달렸다.
창원을 지나서였을까 산행대장께서 여객 선사에 미리 확인해 본 결과 “09:00(?) 출항 예정 배는 출항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고, 11:00 출항 배도 출항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항만청 등에서 출항 허가가 나오면 출항을 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출항 허가가 난다고 해도 우리가 산행을 마친 뒤에 돌아올 때, 오후에 강풍으로 배가 사량도를 출항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하는 수 없이 사량도에서 하룻밤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가오치 항」에 가서 몇 십 분을 기다렸으나 해양경찰로부터 출항 허가가 나지 않아 우리는 변경된 산행지로 가기로 하고 항구를 떠났다.
대장께서는 사량도에서 발이 묶이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남해 금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하고자 한다면서 대원들 의견을 물었다. 남해 금산과 창선도 대방산, 고성 연화산 따위를 두고 즉석 거수투표를 한 결과 결국 남해 금산으로 급히 산행지를 변경하였다.
버스가 삼천포 ․ 창선대교를 지나 창선다리에 닿기 전 나는 차창 왼쪽 지족 ․ 창선 해협에 설치된 죽방렴(竹防濂)에 대해 몇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죽방렴은 “좁은 바다 물목에 대나무로 만든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일. 또는 그 그물”(‘표준국어대사전’)을 일컫는 말로,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와 창선 사이에는 죽방렴이 여럿 있다. 이곳은 바닷물이 빠르고 거세게 흘러간다. 이 좁은 바다에 들어온 물고기는 다른 바다에서와는 달리 거센 물결에 적응하느라 운동을 많이 하고, 그래서 살이 탄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탄력이 있는 멸치가 죽방렴에 걸려들어 잡히면 곧바로 삶아 말려 포장하면 최상품 멸치가 되어 서울 등 대도시 백화점에 바로 납품된다고 한다. 서민이 맛볼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한다.
버스가「복곡[복골] 주차장」에 닿고 얼마 뒤 길 나설 채비를 한 다음 주차장을 나섰다.(10:52)
조금 가파른 오르막 시멘트 길을 따라 6분쯤 올라가다가 오른쪽 편백 숲이 있는 산으로 들어섰다.(10:58)
금산 일대 편백, 삼나무 숲은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동원히야 편백과 삼나무를 심어 숲이 울창했다. 1960년대까지 땔감이 부족했을 때 목재로 쓰기에 적합한 편백 따위를 남벌하였다. 그 때 귀중한 산림자원이 많이 없어졌다. 건축용 등 재목으로 훌륭하게 쓸 나무를 무참히 베어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있는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베어낸 나무가 퍼뜨린 후손인 셈이다.
산으로 들어서서 37분쯤 뒤 381.5m(-‘준․희’) 봉우리에 닿았다. 이 작은 봉우리에는 삼각점이 있었다. 성급한(?) 진달래가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렸고, 새앙나무[생강나무]는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초(莎草)로 추정되는 풀은 엷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고, 노루발, 얼레지 따위도 눈에 띄었다.
12:15분쯤 되었을 때 먼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으레 그렇듯 천둥은 멀리서 들리다가 점점 가까이로 옮아오게 되어 있다. 원래 천둥 번개가 치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그 소나기는 대개는 10~20분 안에 그친다.
한바탕 소나기를 뿌리겠구나 하고 계속 걸었다. 천둥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점점 가까이 들렸다. 다른 대원들 몇 사람은 비 내리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몇 걸음 더 가다가 소나기 쏟아지기 전에 밥을 먹자며 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바람이 조금 덜 부는 곳을 찾아 점심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천둥 번개 잦고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음식이 비와 비빔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생뚱맞게도 언젠가 백두대간 길, 황사가 아주 심한 날 황사와 점심밥을 섞은 ‘즉석 황사 비빔밥’을 먹었던 이야기를 했다.
산에 다니면서 비를 맞은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점심밥을 먹고 길을 나서(12:55) 19분쯤 뒤 시멘트 산길[임도]에 닿았다.(13:14)
이 길은 이동면 신전리 금평마을 「복곡」[「복골」]과 삼동면 봉화리 내산마을을 잇는 길이다. 이 시멘트 길을 1분쯤 따라 가다가 오른쪽 산으로 접어들었다.(13:15)얼마 전 이 산에 불이 났는지 나무는 없고 산딸기나무가 옷에 걸리적거렸다. 비옷이 산딸기나무에 걸려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기울기 40도 이상쯤 되어 보이는 오르막에서 대원들 걸음 속도가 느려지며 산중 교통체증(?)이 일어났다. 추월선이 없어 묵묵히 앞 사람 꽁무니만 보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통체증(?)은 「순천바위」에 닿기까지(14:06) 이어졌다.
시멘트 길에서 「순천바위」에 닿기까지(14:06) 거의 51분쯤 걸렸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순천바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4년 전 앵강 님과 (상주) 금산 주차장~금산~666.4m 봉우리~순천바위~앵강고개 구간을 걸었을 때 「순천바위」에 올라가 내산 마을과 삼천포, 여수 돌산도, 앵강만, 강진만 따위를 시원스레 내려다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추억만 떠올리며 지나쳤다.
「순천바위」에서 8분쯤 뒤 666.4m 봉우리 옆을 지났다.(14:14) 이 봉우리는 (노량) 산성산~대국산~망운산~송등산~납산~앵강고개~666.4m 봉우리~(미조) 망운산으로 이어지는 「남해지맥」길에서 금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미조) 망운산 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그때 초소를 지키던 사람과 제법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이다.
이 봉우리에서 36분쯤 뒤 금산(681m-‘푯돌’)에 닿았다.(14:50) 4년 전에 왔을 때는 금산 높이를 705m로 적어 놓았는데, 이 벤에 보았더니 그 높이가 줄어들어 있었다. 아마 4년 전 기록이 잘못 된 것인가? 일부 지도는 705m로 표기한 것도 있다.
5분쯤 뒤 금산을 되돌아 내려서(14:55) 5분쯤 뒤 보리암 ․ 금산 갈림길에 닿았다.(15:00) 오리온 대장께서 보리암으로 가지 말고 바로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보리암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나 때문에 다른 대원들이 기다릴까 봐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 갈림길에서 10분쯤 뒤 「보리암 주차장」에 닿아(15:10) 사실상 산행을 마쳤다.
날씨가 좋았으면 상주해수욕장 쪽 「금산 주차장」이나 이동면 양아리 두모 마을 쪽으로 내려갔을 것이었으나 궂은 날씨에 남은 일정을 포기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산행지를 바꾼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량도 지리산을 갔더라면 세찬 바람과 비에 혹시 안전사고라도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산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내려왔다고 해도 사량도에서 여객선이 출항하지 못해 발이 묶였을 수도 있었으니까...
인생길에서 예기치 않은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런 돌발 상황에선 옳은 판단을 빠르게 내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금산 38경」 아름다운 바위와 상주 앞바다, 앵강만, 강진만, 창선도, 여수 돌산도, 서포 김만중이 유배 생활을 했던 노섬[노도], 설흘산, 납산, 망운산 등 남해에 있는 유명한 산들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못다 한 구경은 다음 어느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고 나면 한편으로는 허무하고 허전한 생각도 들 때도 있다. 모자람이 있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인생살이에서 활력소가 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는 귀찮은 일이었지만 뭇 생명들에게는 심술궂은(?)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생명을 지탱하고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꽃샘바람은 성급한 꽃들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것을 조금 지체시키고, 먼저 핀 꽃들은 더 야무지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조금 더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가지 못한 사량도 지리산과 칠현산은 다음 날씨 좋은 어느날 가보면 될 것이다.
“날은 언제라도 있으므로...”
봄비에 흠뻑 젖은 산행, 대원들 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어려운 결단을 하고 대원들을 무사히 이끌어준 대장님과 집행부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복곡 주차장」옆, 국립공원 관리실 직원이 추위에 떨었던 우리 대원들에게 사무실을 개방하여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우리 대원들에게 그만큼 큰 선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직원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그 직원은 우리를 맞은 일이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무실이 사람들로 붐비자 그 직원은 당항한 듯 우리에게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조금 소란스럽고 환경을 더럽혔나 보았다. 그 직원에게 미안하며, 그가 우리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벗어나 산에 가면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이것저것 생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 좋다.
꼭 등산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자유분방한 생각은 정한 곳 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넘나든다.
1. ‘복골’[복곡]과 ‘병아리’[뱅어]
‘복곡’은 원래 ‘복골’이라 불렀는데 한자를 좋아하는 행정 관청 같은 곳에서 굳이 ‘골’을 뜻하는 ‘곡(谷)’ 자를 써서 부르게 된 것으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골’은 골이 깊고 편백 등 나무가 울창하여 물이 풍부했다. 1960년대 후반기쯤 ‘복곡[복골] 저수지가 생겨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기 전에는 ‘복골’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신전 모래 벌 어귀에서는 이맘때쯤이면 뱅어가 많이 잡혔다. 이 지방에서는 뱅어를 ‘병아리’라고 불렀다.
뱅어는 어부가 아니어도 일반인들도 가서 많이 잡았다. 잡는 것이 아니라 대바구니 같은 것을 냇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받쳐놓기만 하면 뱅어가 대바구니 안에 들어와서 잡았다. 잡은 뱅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 초장에 찍어 먹어도 좋았고, 쑥국에 넣어 끓여 먹기도 했다. ‘병아리’는 몸이 뱃속이 들여다 보일만큼 투명하고 흰색이었다.
그렇게 흔하던 뱅어[병아리]는 ‘복곡[복골]저수지’가 생기고 나서는 거의 없어졌다. ‘복골저수지’에 물을 가두는 바람에 복골 골짜기에서 바닷가 쪽으로 흘러드는 냇물이 줄어들어 뱅어[병아리]가 회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마치 낙동강에 하굿둑이 생기고 나서 재첩이나 ‘꼬시래기’라는 고기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 현상일 것으로 생각한다.
‘꼬시래기’는 1970년대~1980년대 초 낙동강에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직장인들이 퇴근 후 소주 한잔에 ‘꼬시래기’ 회를 곁들여 회포를 달래기도 했던 귀중하고 쫄깃쫄깃 맛있었던 생선이다.
세상일이란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이른바 윈윈 게임(win-win game)만 있으면 좋겠지만,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도 있는 것을 어쩌랴...
「복골 저수지」와 낙동강 하굿둑 축조 같은 사업이나 시책, 정책을 시행할 때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 고민하는 지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2. 천둥 번개, 비바람.
산에 다니면서 눈비, 황사, 미세 먼지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일이 많았다.
이번 천둥 번개와 비바람은 아주 약한(?) 편에 속한다.
아주 큼지막한 일을 떠올린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해 10월 중순쯤 백두대간 길 이화령~하늘재 구간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어오는데 마패봉[마역봉]을 지날 무렵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10월에 무슨 천둥 번개지” 하고 생각했다. 우리와는 상관없겠지 하고 걸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천둥소리가 다가 오고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하더니 조령3관문에 이르자 천둥 번개가 요란하고 비가 많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조령3관문에 의지하여 비를 피하면서 아침밥을 먹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야속하게도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천둥 번개와 장대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놀란 나머지 대원들 대부분이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조령1관문으로 내려갔다.
나는 미련하게도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는 곧 그친다”는 법칙 아닌 법칙을 믿는 편이다. 그때도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행한 한 여성을 꼬드겨(?) 신선암봉~조령산~이화령으로 걷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었고, 하마터면 귀중한 여성 한분까지도 사고를 당할 뻔한 모험 아닌 모험을 강행했다.
07:00쯤 조령3관문을 나서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사람 발길에 오목하게 팬 대간 길이 도랑으로 변했다. 천둥 번개는 천지가 진동할 듯이 요란했고 번갯불이 발아래 마구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나도 와락 겁이 났다. 이러다가 밀려내는 오는 냇물로 변한 빗물에 떠내려가거나, 낙뢰로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걱정보다는 동행한 여성 한 분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그러나 이왕 엎지른 물, 미련한 곰처럼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었다. 내가 가는 길에 ‘후퇴란 없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자위를 하면서 ...
신선암봉과 신선암봉~조령산 구간은 험한 바위가 있고, 어느 곳은 몇십 미터가 넘는 수직 바위에 걸어둔 바위 줄을 타고 올라야 하는 곳이 더러 있는 곳이다.
날씨가 좋지도 않았고 억수같이 쏟아지던 소나기에 땅도 바위도 우리 몸도 모두 젖은 상태에서 그 길을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그 구간은 몇 번을 다녀봤다는 자신감(?), 아니 만용으로 위험한 상황에 정면으로 맞섰으니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0여분을 천둥 번개를 무릅쓰고 걸었을까? 다행히 비는 그쳤다. 그러나 미끄러운 바윗길을 타고 신선암봉에도 올랐고, 비에 젖은 바위와 밧줄에 매달려 온몸으로 버둥대면서 드디어 조령산에 닿았다.
여성 한 분과 내가 조령산에서 한참을 쉬고 있었다. 조령3관문에서 비가 그친 뒤에 나섰던 대원 서너 명이 20여분 쯤 뒤에 조령산을 올라왔다.
아무 지혜도, 힘도 없었던 나를 믿고 용기를 잃지 않고 나를 따라 길을 나섰던 여성.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천둥 번개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던 그 여성. 그는 그때도 그랬지만 그 뒤에도 그 일로 나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지금도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객기 부렸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런 엉뚱한 모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블로그 폐쇄의 아픔
내가 관리하던 다음(daum) 블로그가 daum 회사 (경비 절감?) 방침에 따라 2022년 9월 말(?) 폐쇄되었다. 다른 모든 그 회사 블로그와 함께...
9월 30일 이전에 티스토리(tystory)로 갈아탔으면 힘들이지 않고, 그 자료를 온전히 옮겨올 수 있었다. 그런데 게으른 나는 블로그 전환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블로그 자료를 옮겨오지 못했다.
중요한 기록은 아닐지라도(?) 그 불르그에는 수십 년 산행 기록, 나들이, 나무와 꽃 따위가 수록되어 있었다. 내게는 아주 귀중한 자료였다. 그 숱한 자료를 쌓기 까지 내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흘린 땀방울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과정에서 쏟아 부은 경비만 해도 수천만 원이 넘었을 것이다.
돈 보다는 내 흔적, 기록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다행히 자료 상당 부분을 내려 받아(download) 보관 중에 있다.
「티스토리(tystory)」에 블로그를 개설하려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들은 “「000 블로그」로 갈아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 제안을 받아들여「000 블로그」를 엊그제 개설하였다. 그러나 다음(daum) 블로그에 있던 자료를 아직 하나도 옮겨 싣지는 못하고 있다. 그 자료를 새 블로그에 일일이 다시 실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아직도 뜸만 들이고 있다.
블로그가 폐쇄되지 않았더라면 필요한 자료를 금방 찾아볼 수 있고, 필요한 사람들도 열람할 수 있을 터인데...
시대 변화에 빨리빨리 적응하지 못했고 또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적응할 시간을 놓쳐 내 스스로 블러들인[자초한] 불편과 아쉬움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옮겨 실을 계획이다.
4. 금산, 사량도 지리산 자료
※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이전에 벚꽃산악회 「개인 산행 후기」란에 올린 자료를 올립
△ 금산 산행(2019. 2. 17. 일) : 2019. 3. 7. 게재
△ 사량도 지리산 산행(2019. 6. 16. 일) : 2019. 6. 19. 게재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감태나무,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두릅나뭇과 갈래 : 두릅나무[참두릅, 총목(楤木)]
○ 때죽나뭇과 갈래 : 때죽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광나무,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쥐똥나무
○ 소나뭇과 갈래 : 곰솔[왕솔나무, 해송, 흑송], 소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소사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산벚나무, 수리딸기, 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 차나뭇과 갈래 : 노각나무[금수목], 사스레피나무
○ 참나뭇과 갈래 : 밤나무, 상수리나무[참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노간주나무, 편백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협죽도과 갈래 : 마삭줄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떨기나무
○ 백합과 갈래 : 청미래덩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난초과 갈래 : 보춘화[춘란(春蘭)]
○ 노루발과 갈래 : 노루발
○ 백합과 갈래 : 얼레지[가재무릇]
○ 볏과 갈래 : 사초(?)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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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늦게 귀가하여 휴식 중 귀한 글을 읽습니다.
그 날의 여정이 고스란히 있어
벌써 소중한 추억으로 회상합니다.
귀한 개인의 사료들은
삶의 일부이거나 전부일 것인데
저 또한 많이 아쉽네요.
그나마 내려받을 수 있었던 부분은 다행이고요.
몰랐던 일,
매사 무심히 넘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이 부끄러워집니다.ㅋ
그래도
꽃이 피지 않으면 식물을 구분하지 못했던 까막눈이
한걸음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학습속도가 성큼성큼이면 좋겠지만~~^^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
어쩐 일인지 사진이 흑백 사진처럼 시커멓게 나와 아쉽습니다.
다음 동행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은 사진 남기도록 해 보겠습니다.
같은 산이라도 어떤 때 누구와 같이 걸었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흥이 확연히 다름을 느낍니다.
다음에서 티스토리로 갈아타라고 권고하는 지침을 무시한 대가가 큽니다.
별 중요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내 일상을 돌아봅니다.
몸에 밴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요,.
언젠가 제법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 든 사람들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뜻을 밝혔는데 그 뒤 10여 년이 흘러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어느 벗이 30년 이상을 한 가지 업무에만 종사하여 그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보겠다고 작정했는데
그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구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추억 창고에 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고맙습니다.
@한길(박종래) 저 또한 어젯밤 늦게까지
사진 정리하며 밀린 일기 썼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기 몰아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길님의 엮어질 이야기 기다립니다.
@란선 일을 게을리 하면 체계라도 바로 세우면 효율이 오를건데,
체계도 뒤죽박죽이라 질서가 없고 산만하기만 한 일상이 우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또 변명거리를 준비하지요. '무질서 속의 질서'라며...
한길선배님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금산정상에 올라인정하고, 예정된 코스인 금산주차장으로 내려가지 말고,복곡2주차장(보리암 주차장)으로 가시라고전달했는데~ ㅠㅠ
선배님에게 제가 잘못전달한것 같아 죄송합니다!!
모두 보리암까지가서 안개낀 남해바다와 운무가득한 보리암의 절경을 감상했습니다 ~
앵강선배님의 닉네임의 비밀도 알려주시고,비바람속에서도 산우님들 멋진암릉포즈사진과 봄꽃사진 까지 그리고 옛날대간길 이야기 까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다시뵐때까지 건강하세요 ~
대장님! 아닙니다. 내가 해석을 잘못 했던 것입니다. 보리암이야 여러 번 가는 곳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보리암 주지 스님이 아는 분이라 보리암에 가서 이틀인가 숙식하며 이광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읽은 소설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보련 자매를 주인공으로 불교의 인연, 윤회 사상을 바탕에 깔고,
욕지도 앞 연화도를 비롯한 섬도 나옵니다.
그때 소설에 나를 대비시켜 보고 공감한 기억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 서점에 가면 무정, 흙 등 이광수 소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광수가 친일 작가란 것을 뒤늦게 알고는 다시는 이광수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이광수의 글 쓰는 기법에 많이 놀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보리암은 아직도 내 맘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글을 보면 이런 기록이 어떻게 가능한지 세밀함과 박식함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인데
그 기록이 날라갔다면 너무 안타깝겠습니다.
기록을 통해서 추억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어 다녀온 후기는 대충 적어놓고 있는 정도로만 남겨놓는 저로서는 산행도감같은 기록을 보니 놀랍습니다. 살아있는 기록은 잘 정리가 되길 바랍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안산즐산하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행복하시고예~~^-^
벚꽃산악회를 빛내고 계시는 작가님!
내가 끼적거리는 것은 아무 알맹이도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 이라고 할까요?.
실속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쓸데없는 내 넋두리가 세상을-좁디좁은 세상이지만-
혼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잃을뻔한 기록은 차츰 복원할 계획입니다.
고맙습니다.
@한길(박종래) 저야말로 제 느낌대로 설익은 글이나마 대충 써놓을 뿐입니다. 함께한 친구들과 공유하면 느낌이 좀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울 것 같아 작은 모티브 하나 던져놓는 것이지예.
한길님의 깊이와 박식함에 머리를 숙입니다.
기록을 복원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들장미 겸손의 말씀입니다.
맛깔스러운 글귀와 같이한 분들과 어울려 다양한 모습을 담으시는 모습과
부지런히 여러 곳을 다니면서 기록을 남기는 모습이 좋습니다.
제가 뭘 읽은 건가요? 산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또 해박하게 거침없이 써 내려 가실 수 있다니.. 그 내공이 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녹아들었을지 느끼거 남음이 있네요.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산에 갔으면 그 산에 관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흰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좋게 평가해 주셔서 우선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일부이겠지만 한길님의 지나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중속 신선봉 조령산길 우찌그런 무모한도전을. ㅎㅎ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요?
유난히 산 욕심이 많다 보니 저지르는 무모함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무뎌졌지만, 전에는 어느 곳을 가던지
산등성(이)만 보면 언제 저곳을 걸어볼까 하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는 욕심을 부릴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한 산을 가면 그 옆에 있는 봉우리 몇 개는 더 가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습니다.
특히 그 봉우리가 독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을 때는 더욱 그랬고요.
때로는 무리해서 실제로 걸어보기도 하고, 욕심만 부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일도 많았습니다.
산악회에 따라 가면 그 산악회 계획에 발맞춰 줘야 하는 일 때문에.성이 차지 않은 일도 많았고....
고맙습니다..
한길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후기를 읽어내려가다가 깜밖 잠들어 새벽에야 다 읽었습니다 ^^
저도 회초리같은 나무가지에 많이 얻어맡고 준비부족했던 나자신을 탓하고^
비바람치는 운무속을
발밑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래도 오래만에 뵙는 반가운'님들과 함께라서 즐거웠습니다
사량도~또 가입시다~
언제나 좋은글 멋진 후기
감사드립니다~^^
저도 오랜만에 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운영위원 답게 아침에 사량도 배편 사정을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전화하시고...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안개 끼고 내리는 비는 봄을 재촉하는 단비이고, 그것이 뭇 생명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라
마음을 살짝 바꿔 기쁘게 받아 들이고 싶습니다.
사진을 많이 담지 못해 미안합니다.
궂은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못 가본 사랑도 칠현산을 걷고 있을려나?
그 시간 궁금하고 함께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남해 금산으로 방향을 틀었군요
그것도 세찬 비바람과 짙은 운무속에서도
제일 힘든 들머리를 택하였으니
그 산행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합니다
그토록 산 욕심많은 지우가 순천바위의
절경을 옆으로 비켜 갔다니 상황판단 되네요
그래도 산행기를 읽다보니 내 마음의 고향
앵강고개와 앵강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선하게 들어옵니다
4년전 둘이 함께 걸었던 그 길들의 자국들이
뚜렷하게 보이기도 하였고요
어려울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 했는데
힘든 산행 함께 하지못해 미안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앵강 님 인기가 많아 많은 대원들께서 "왜 앵강 님은 불참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안개가 걷혔으면 '앵강' 님 애칭의 비밀(?)을 풀어줄 '앵강만' 아름다운 절경을
대원들께서 구경했을 터인데
'앵강만' 진면목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움이 컸습니다.
4년 전 순천바위 지나 '앵강고개' 쪽으로 내려오면서 내리막이 거꾸로 걸으면 힘이 좀 들겠다 생각했는데
- 그 전에 남해지맥 걸을 때 올라가 본 길이었지만-
이번에 올라간 길이 내려올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같이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또 가야 할 산이 많이 있으니 다음 산행지를 기다립니다.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늘안산즐산 하시고 더멋진 산행길에서 뵙겠습니다..즐거운 한주 시작하십시요💯
비 오는 날이고 사진 찍는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 사진이 제 마음에도 차지 않았으니
김해미르 님께서는 더욱 아쉬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 같이하는 기회가 있으면 더 나은 사진 남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