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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 연지당(硯池堂)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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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칠판 스크랩 동·서양의 아름다운조화, 최승효가옥/양림동 둘레길
세심정 추천 0 조회 420 13.09.26 07: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최승효 가옥 

광주 양림동 둘레길 탐방에서 안 가면 후회되는 곳이 여러곳이 있지만,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곳이 여러곳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광주시 민속자료 1호인 이장우 가옥과 2호인 최승효 가옥이다.

이장우 가옥은 일요일에만 개방되지 않고, 평일과 주말에는 쪽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관람하고 나오면 되지만, 최승효 가옥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기에 아주 특별하게 개방되는 날 외에는 그 속살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장우 가옥을 지나 골목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여름꽃 능소화가 빨간벽돌담에 핀 집이 있는데, 그 문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막다른 집이 바로 최승효 가옥이다.

최승효 가옥은 이장우 가옥과 필적할 만한 고택으로 독립운동가 최상현이 1920년 건축했으며, 무등산의 절경과 양림산의 경사지를

이용하여 지은 집으로 독립운동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자 1968년 광주 MBC 창립자 최승효가 인수하였으며 1999년 최승효 씨가

작고 한 뒤 방치되다가 최승효 씨의 3남 최인준(65) 화백이 10여 년간의 노력으로 지금은 옛모습을 다시 찾고 더 발전된 모습이 됐다.

 

 

최승효 가옥은 관리를 하는 3남 최인준 화백이 가옥안에 살지않기에 항상 문이 닫혀있다.

대문앞에 서니 안에서 개가 너무 짖어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 겉만 바라보고 나왔다.

이장우 가옥을 첫 방문 때 못 봐 서운했었는데 광주를 대표하는 최승효 고택도 못 보고 돌아서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두런거리는 목소리와 개짓는 소리에 옆집에 살며 최승효 가옥을 관리하는

최승효씨의 셋째 아들 최인준 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집 보러 왔어요? 이거 구경하기 힘든 집인데, 허허허... 오늘 날 잘 잡았어요^^..

마침 작업실에 일 보러가는데, 따라 오세요.."

'오매 이거 왠 횡재랑가..'

 

이장우 가옥과는 다르게 담장도 높고 꽉 막혀 그 모습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우리한테 짖어댄 최승효 가옥의 개한테 고맙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솟을 대문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문간방도 있고,

 

 

오른쪽으로는 안내 사무실도 있어

많은 행사가 최승효 가옥에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펼쳐진 광경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기존의 한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화강암으로 사방 바닥을 둘렀으며, 궁궐이나 절에서 보는 원형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색이었다.

또한  6개의 계단을 차례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어 크기에 압도 되었고,

일반적인 한옥이 검정 기와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유약을 바른 강진 옹기기와로 지붕을 올린 것이 특색이었다.

 

부지가 꽤 커 보여 여쭤보니 대지만 3,000여 평이라고 한다.

한옥의 사면으로는 정원과 연못, 작업실, 무대 등이 있는데, 초록 잔디와 멋진 소나무들과 잘 어우러진

산책로가 곳곳으로 연결되었고 새소리에 머리속까지 청명해 졌다.

 

 

최승효 가옥은 정면8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이장우 가옥이 전통한옥에 일본식을 약간 가미했다면

최승효 가옥은 전통한옥에서 개화기 한옥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제대로 볼 수 있어 고건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잦다고 한다.

양림산 자락의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하여 반 지하를 만들었고, 언덕과 암벽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로 연못을 만들어 운치를 더했다.

일반적인 주택의 ?향이 정남향인것에 비하면 최승효 가옥은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게끔 정동향을 한 것도 특색이었다.

 

 

 

반지하실도 보여 전통한옥과는 완전 다르다.

실용적인 면에서는 개화기의 전통가옥이 훨씬 나아 보인다.

 

 

본채 뒤로 돌아가 본다.

 

 

양림산 암벽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를 모아 정원의 연못으로 흘러보내 물고기를 키운다.

실내는 8월의 한 가운데에 있음에도 전혀 폭염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늘하다. 천연 냉장고가 따로 없다.

가옥주변에서 딴 과일로 최 화백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각종 과실주가  한 가득 있어 주인장의 술 저장고를 겸하고 있다.

 

 

사방팔방을 막아선 문을 다 들어 올려놓으니

앞뒤로 뻥 뚫려 바람이 솔솔 통한다.

정동향에다 한 일(一)자 고택으로 뒤쪽에도 마루를 두었으며 미닫이 창문으로 서쪽의 빛을 차단했다고 한다.

 

 

 

뒤 뜰에는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와인잔과 와인이 있어 금새라도 앉아 파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안방에서는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을 따뜻한 느낌이 풀풀 난다.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는 안방에도 예외없다.

최인준 화백은 서양화가이지만 전통에도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여기도 방금까지 손님들하고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을 물 그릇이 있어

금새라도 대화를 다시 나눌 것 같다.

 

 

최승효 가옥을 처음 지은 최상현은 집을 지을때 부터 대청마루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 다락방을 두어

독립운동가들을 숨겼다고 하며 그는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고 빈민구제에도 힘썼다고 한다.

위로 보이는 것이 다락방이며 우측 위로는 미닫이 문으로 인해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막기위한 별도의 창이 있다.

 

 

잔디도 말끔하게 깎여있어 관리가 아주 잘되어 있다.

어느것 하나 허투로 놓여있는 것이 없다.

 

 

최인준 씨는 현대미술작가로 9월 전시를 이곳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제5회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와 더불어

최승효 가옥을 함께 공개할 예정이라 현재 조경 및 관리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곳은 야외 음악당 비슷한 무대로 이곳에서 음악회도 연다고 한다.

건너에 보이는 건물은 최인준 화백의 작품을 전시한 곳으로 작업실을 겸한다.

 

 

 

뒷뜰에서 바라본 최승효 가옥.

옛날 처음 지어졌을 때는 이 앞으로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후기까지 광주천은 두갈레로 갈려 지금 최승효가옥이 있는 앞으로 지나갔다고 한다. 문을 열면 아마도 당시 부르던 양림천이

있었을 것이고 뒤로는 양림산이 있으며, 멀리는 무등산이 훤하게 조망되었으니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명당자리임은 분명하다.

지금은 오래된 한옥과 빌딩숲에 포위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 옛 영화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제 본 이장우 가옥이 영화<위험한 상견례>의 촬영지였다면 최승효 가옥도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다.

머지 않아 멋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승효 가옥 뒤편 우측으로 보이는 축대위에는 광주영상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최승효씨의 세째 아들 최원준 화백은 특별히 9월에 공개할 작품을 미리 보여주었는데,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옥을 보고

작업실에서 최 화백의 현대미술품을 보고 있자니 100년의 시공간을 초월한 곳에 있는듯한 묘한 감정도 들었다.

전시실 바깥에도 최화백의 설치미술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 문 하나를 두고 100년의 시간이 교차한다.

최인준 화백의 위트있는 설정이다.

 

 

정중앙에 자이당(自怡堂)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자이당은 추사 김정희의 스승이기도 한 중국의 담계 옹방강이 역관 출신으로 소금 장사로 장안 제일의 갑부가 된 김한태(自怡堂 金漢泰 : 1750~?)에게 써준 편액으로 자유에 대한 그리움과 곧은 정절을 나타낸 말로 자이당을 호로 사용하는 인물이 많아다.

 

자이당 뒤로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편액이 걸려있는데, 오랫동안 맑은 바람이 부는 곳이란 뜻으로 백세는 '영원'을 뜻하고 청풍은 군자의 절개를 뜻하니 백세청풍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굳은 절개를 뜻 한다고...

 

 

 

 

최화백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게서 사사하면서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공부한 설치미술가이다. 

백남준 선생과 같이 1995년 제 1회 광주비엔날레 작품 전시를 위해 광주에 왔다가 부친의 유산이자 광주의 자랑거리 고택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으며, 함께 온 외국인들에게 광주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마땅히 보여줄 것이 없었다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고 한다.

오랜 미국생활을 통해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난 뒤 13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광주로 귀향한 최화백은 폐가가 되다시피 한 최승효 가옥에서 상주하면서 잡풀을 뜯고 대청의 묵은 때를 벗겨내며 딱 1년만 관리하자고 한 것이 차츰차츰 변모해 가는 집을 보고 욕심이 나서 한 해 더 하고 한 해 더 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문이 잠겨있던 것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공사로 인해 그랬으며 앞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시작으로 광주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전통가옥을 공개한다고 하니 나중에 양림동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멋진 가옥을 보는 행운이 따를 것이다.

 

양림동 둘레길 이야기 

1.광주양림동 둘레길, 그 보석같은 공간들

2.광주가 낳은 세계적 음악가 정율성

3.110년 역사의 양림교회와 <각시탈>촬영지 오웬기념각

4.커피맛에 놀라고 가격에 더 놀랐다./어비슨카페

5.영화<위험한 상견례>촬영지.이장우 가옥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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