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 봄 나들이 -
친구 여식의 결혼식이 있어 사당역에서 모인 동창생들이 버스를 이용해 함께 서천으로 향했다.
평소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서천이건만 상춘객들의 봄 나들이 탓인지 서해대교를 앞두고부터 정체가 극심해지더니 네비게이션에는 점점 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혼주가 된 친구에게 제대로 된 축하를 해주고싶었기에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져만갔다.
서해대교를 지나서부터 차량에 속도가 붙자 초조해진 마음이 사라지고 그제서야 차창밖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과 자식의 결혼은 한 세대를 구분짓는 분기점이기에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이 떠오른다.
그 상념속에서 제법 어른스러워진 내 모습을 발견하지만 친구들의 투박하고 구수한 사투리에 마음은 이내 학창시절 청순했던 소년으로 돌아간다.
예식장에는 자식들이 시집장가를 갈 생각을 하지않아서 고민이다던 친구가 혼주가 되어 우리를 반겨준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로 위로와 축하인사를 전했다.
예식을 마치고 기왕에 서천에 왔으니 친구들과 추억하나 남기고싶다는 마음이들었다.
서천은 낮익은 듯 하지만 낮선도시다.
얼른 생각나는 곳이 마량항과 동백숲 그리고 신성리갈대밭뿐이었다.
이미 동백꽃은 졌을 것이고 마량향은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면 배들이 항구에 정박한채로 한산할 것 같아 신성리 갈대밭으로 친구들을 안내했다.
신성리 갈대밭을 가는 와중에 버스운전기사님의 실수로 몇 번을 잘못 길을 들어서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덕분에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원망의 틈이 생기지를 않았다.
신성리 갈대밭 전망대에 오르니 금강하구의 장쾌한 풍경속에 너른 갈대밭이 안겨있었다.
고향에도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에는 어김없이 갈대밭이 있었기에 자칫 감흥이 없겠다 싶어 이곳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드라마 추노,자이언트가 촬영된 곳이라고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은 실마리같은 단초였지만 그 설명만으로도 친구들은 수많은 수다를 쏟아내며 깔깔웃음을 웃어댔다.
5월 중순쯤이면 갈대는 푸룻푸룻한 새순을 피워올릴 것이다.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갈대는 갈색 대나무라는 뜻의 지금 모습도 아름다웠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파도처럼 갈대숲이 일렁인다.
거대한 갈대 바다였다.
일렁이는 바다는 바람의 노래를 들려줬다.
색을 잃은 갈대는 바람에 흔들렸지만 그 춤사위는 또렷하고 선명했다.
지금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신성리 갈대숲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친구녀석이 옛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쫀드기와 아폴로과자를 사서 손에 들려준다.
또 한 친구는 여자친구의 손에 인근에서 채집한 식물을 키워보라며 봉지를 전해주고있었다.
날씨가 좋아 노을지는 갈대밭을 마주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흰머리 성성한 친구들의 장난끼어린 모습과 다정다감함이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주었다.
서울로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호천 친구가 손을 펴보이더니 왜 엄지가 다른 손가락과 달리 떨어져있고 작은 줄 아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엄지는 자식이고 검지,중지,약지,새끼손가락은 부모와 형제 자매들이란다.
엄지는 늘 따로 놀려고 하지만 가족들은 안아주고 품어주는 것처럼 네 손가락이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가 갈듯말듯한 얘기였지만 그 친구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우리 가족들이 하나인 것처럼 친구들도 하나라는 거 아니야"
그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거"
그래 그거다.
인생에서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서천여행
#8회동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