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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에 취하고 연실에게 취하고
일 시 : 2013년 9월 25일 - 26일
장 소 :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산 일원
9월 중순에 이르러 시기를 적절히 조율하면 환상적인 꽃무릇이 피어 오르는 현장을 대면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집 베란다에 피어오른 몇송이의 꽃무릇을 살펴보면서 '지금쯤은 용천사에 삼분지 일의 꽃무릇이 피어 올랐겠구만......' 하면서 시기를 조율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온 길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량의 꽃무릇이 피어오른다는 함평군 해보면의 용천사와, 영광군 불갑면의 불갑사는 함평천지의 제왕인 불갑산이라는 한 몸을 근간으로 살아가면서 그 붉은 빛으로 한창 농염하게 피어올라 초가을의 서해바다를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그 불갑산 정상에서 오늘은 하룻밤 야영을 할 것이다......
- 월야 들판에서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을 바라보며, 오늘은 그 꼭대기에서 하룻밤 야영하리라 다짐을 굳힌다 -
- 먼저 용천사의 꽃무릇에 안기기로 한다 -
저번 주에 답사를 다녀왔다는 다천님의 블로그 소식과, 용천사를 들러보고 꽃무릇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오원장의 사진을 접하면서, 적절한 만개의 시기를 조율하다가 우리집 꽃무릇이 지기 시작하자, 아이코~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떠나온 길이었는데......, 아뿔사! 용천사의 꽃은 삼분지 일이, 불갑사의 꽃무릇은 이분지 일이 벌써 지고만 끝물의 현장이었음을 목격하고는 참으로 발을 동동 굴리는 안타까움만 생겼다. 용천사보다 불갑사가 더 북쪽에 위치한지라 그쪽의 꽃이 먼저 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대수랴? 찬란하게 피어 오르는 꽃무릇의 붉은 화염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필자에게 속삭여 준다. 그것은 무어랄까? 젊음의 붉은 피와 같다고나 할까? 잘 익은 붉은 사과의 빛이래도 결코 따라오지 못할 그 붉다 못해 시뻘거티 시뻘건 적화赤花의 바다를 노닐던 감흥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노라고 이 자리를 빌어 감히 고백해 본다.
이 감동을 느껴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쉽게도 이제 내년 9월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제13회 영광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2013년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애틋한 그리움! 사랑으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열렸으니, 그때가 바로 꽃무릇의 절정 시기로 가늠해 보면 거의 틀림이 없겠다. 그러므로 내년 9월에 영광군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제14회 꽃무릇 축제 공지가 떠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날짜에 맞추어 찾아가면 화사하게 만개한 꽃무릇밭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다천선생과 오원장은 필자보다 한 수 위의 탐화探花 고수임에는 거의 틀림이 없으리라 싶다.
그러나...... 그 고수분들도 필자처럼 불갑산 정상에 올라 텐트를 치고 온 밤을 지새우며 꽃무릇의 붉은 향연을 한껏 껴안는 뱃심은 과연 없으시리니, 이제 그로 위안을 삼으리라 싶다.
그러니, 이제는 행장을 꾸려, 떠나자꾸나! 불갑산으로......
- 다행스럽게도 만개한 꽃무릇이 반가히 맞이해 주었다 -
- 붉다 못해 핏빛이다 -
- 녹과 적의 조화는 무릇 활기를 북돋워 주는 자양분이라 싶다 -
꽃 무 릇
어느 날 문득, 고개 내민 당신!
누가 보고자퍼 두리번 두리번 온 산을 태우시는가
잎과 꽃이여 그리워 말으시라 한 뿌리면 되었다
님 찾는 그대도 설타 말으시라 어차피, 한 몸들이다
- 권 소 향
- 피안을 노니는 다람쥐를 보아라 -
- 용천사의 초가을은 청량했다 -
용천사 (龍泉寺)
위치 :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415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출처: 함평군 홈페이지
- 군더더기 없는 그 색감이 황홀하다 -
- 계곡의 사이드를 점령한 붉은 망또의 로마군 퍼레이드 -
- 원컨데, 가장 빛나는 보배로만 남으소서 -
용천사의꽃무릇은 그 시기만 잘 조율하면, 정말 황홀한 자태에 매료되어 모두들 넋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 내 장담한다. 근년에 이르러 경향 각지의 말소리가 찬란하게 용천사를 에워싸고 있으니, 그래서일까? 촌새악시같은 수줍음으로 홍조를 띠었던 시골스런 절간이 이제는 제법 황후의 품격을 뽐내고 있다. 로마황제 앞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수많은 붉은 망또의 로마군처럼...... 그 도열함의 행열이 가히 압권이다.
이는 붉음이 갖는 미학일 것이다. 붉음의 늦가을 미학의 완성지는 과연 어디일까? 그곳은 11월에 찬란하게 단풍꽃을 피우는 고창 문수사의 애기단풍 천연기념물 숲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 붉은 단풍의 퍼레이드를 끝으로 겨울의 첫눈이 내리고 가을은 내년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제 바삐 서두르며 신께서 채색해 주시는 화려함의 극치! 완성의 미학! 붉음의 끝! 단이와 풍이가 펼쳐가는 가을을 끝없이 보듬으련다
신이시여! 원컨데, 오늘 밤의 연실봉 야영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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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란 무엇인가 - 함평 구봉사와 영광 내산서원
함평 용천사에서 꽃무릇의 군무를 실컷 만끽한 후에 불갑사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원래 계획은 불갑사에 차를 파킹하고서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에 올라 하룻밤 야영을 한 뒤에 구수재와 모악산을 거쳐 용천사로 하산하는 산행을 계획했다가 이를 철회하기로 한다. 용천사와 불갑사는 서로 다른 군의 경계를 갖고 있어서, 택시를 이용하여 차량을 회수하려면 불편함이 예상되기 때문에, 먼저 용천사를 본 연 후에 불갑사로 건너가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용천사를 뒤로하고 함평군의 경계를 넘어설 즈음에 구한말의 애국지사 김철 선생의 향기가 살아있는 구봉사를 지나치게 되어 애써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곳에는 함평군이 의욕적으로 복원한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건물도 있으니 금상첨화라 싶어 참배하기로 작정을 해본다. 그게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특권 아니겠는가? 가고 싶으면 가고, 보고 싶으면 보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무느곤 어디에 거침이 있으랴! - 이곳이 바로 아름다운 우리의 국혼이 살아있는 현장이다 - - 안중군 장군의 동상이 매우 숭엄하시다 - -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 - 김구 선생 흉상 - - 김구 선생의 집무실 - - 김철선생의 묘 - - 아래 자료 출처는 함평군홈페이지 - 일강 김철 선생은 1886년 10월 15일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고 경성법률전수학교를 거쳐 일본명치대학 법학과를 1915년 졸업하셨습니다. 귀국하여 집안의 소작인들에게 농토를 나누어주고 노속들을 방면하신 후 고향에 은거하던 선생께 조선총독부에서 일제통치에 협력해 달라는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단호히 뿌리치시고 1917년 조선광복을 위하여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 구봉사 -
- 우리는 흩날리는 태극기 앞에서 과연 무슨 선서를 할 수 있겠는가? -
- 맑은 꽃처럼 향기로운 조국애를 모두들 키워 보시라 -
- 불갑사 초입에 있는 강항선생의 내산서원도 들러 보기로 했다 -
내산서원 (지방 기념물 제 28호)
불갑사를 조금 벗어나면 수은 강항선생(1567~1618)을 배향한 사우인 내산서원이 있고 강감회요 원판인 장판각이 보관되어 있다.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넓게 펼쳐진 하늘을 감상하는 것도 내산서원이 주는 또 하나의 여유이다.
출처: 영광군 홈페이지
-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셨던 분의 향기가 살아있는 곳, 내산서원 -
- 담장에 도열한 꽃무릇이 오늘의 꽃잔치를 또한 예상시켜 주었다 -
- 입구의 연지 -
- 핏빛으로 타오르는 조국의 앞날이여 장대하게 펼쳐 지시거라 -
상해임시정부 건물은 신설된 곳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깨끗해 보였다. 아마도 그 당시의 재정 형편으로 보아 김구선생이 주석하였던 당시에는 그렇게 풍족한 살림살이 형편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전시되어 있는 정갈한 가구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이승만대통령이 떠오른다. 세기의 풍운아! 이승만선생은 한말에 박영효 중심의 내각정부를 획책했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사서 5년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미국에서 지내게 된다. 선생의 전기를 읽어 보면, 선생이 장악한 미국 전역의 한인회의 재정은 워낙 탄탄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해임시정부의 주요한 재원 조달 창구가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은 영향으로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피선되기에 이르른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김구선생께서 당연히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되어야 했으나, 그때의 형편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권金權 앞에서 이미 임시정부의 향방은 그 갈길이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본군 장교를 서슴없이 주살하였던 기개로움의 상징! 김구선생의 항일정신은 가히 모범이 될만 하였음에도 말이다.
필자는 모든 이유를 들어서라도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행위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 생각한다. 중세시절의 십자군이 종교의 존엄성을 빙자하여 무슬림을 무참하게 죽이는 만행을 계속하였고, 그 앙금이 남아있던 무슬림 또한 성스러운 순교의 성전을 빙자하여 9.11 테러를 일으켜 무고한 미국시민 수천명을 폭사시켰던 행위는 모두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종교의 모든 윤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이중성의 변증법을 정당화 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번 묻고자 한다. 임진왜란 때의 수많은 만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일본군 장수가 전리품으로 가져갔다는 수천개의 베어진 코가 들었던 항아리를 상기해 보자. 일본군이 조선을 정벌하고자 나섰을 때, 그 방해세력의 핵심혼불이었던 수만명의 동학농민군을 학살했던 그 만행은 과연 어찌 규명할 것인가. 동경대지진을 빙자하여 수만명의 민간 조선인을 살륙하였던 일본인의 만행 또한 면죄받을 수 있겠는가? 황군의 신분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들과 징용으로 끌려갔던 수십만의 조선인들이 몰사 당하였던 그 비극 앞에서 과연 일본의 양심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정신대는 또 어떻고?
끝이 없었던 왜적의 만행은 혹은 왜구로 혹은 왜군으로 등장하면서, 근 이천년 동안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반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가 더욱더 부국강병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남과 북이 하나로 뭉쳐지는 진정한 한 핏줄의 나라가 될 때에 이르르면! 과연 주변국들이 부르르 몸을 떨며 긴장하게 되는 날이 아니올 것인가 말이다. 세계 8위라는 남한의 금권金權과, 북한의 막강한 군권軍權이 진정한 통일로써 합쳐지는 날! 우리 민족은 세계 열강의 대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진정한 자주, 자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믿는다.
김구 선생은 자주독립의 본보기로 일본군 장교 한 명을 주살하였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장군이 한 명의 일본인 수상을 저격하였다.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수명의 일본군 장군을 주살하였다.
앞의 두 실례를 비교해 보면서 그대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가 주살하였던 일본인의 수와 우리가 당했던 조선인의 수가 같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역사는 승자가 만드는 미회된 승전보의 기록일뿐이다. 그러므로 강해져야만 더 억울한 일을 후손들이 결코 안 당하게 된다.
과연 조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신념으로 삼아야 할 맹세는 과연 무엇이던가?
겨레를 위해서라면, 타인을 마음대로 죽여도 과연 되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결코 안된다고 했던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되새긴다. 그래서 이율배반적인 고민의 깊이가 쌓여 간다. 그러기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해결책을 정립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희망사항이라면, 오늘날에도 안중근 장군이나 이봉창 의사나 강항 선생 같은 분들이 더욱 더 많이 나오시어서, 보다 더 거시적인 세계관을 후학들에게 비쳐 주셨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강한 민족이기를 바라는 마음앞에서 이미 종교적 신념은 그 힘을 잃기 시작한다. 어쩔 수가 없다. 십자군이 괴롭히던 강자의 입장이었다면, 무슬림은 저항하며 울분을 토해내던 약자의 입장이었다. 그래 그 약자들도 제 할말을 다하는 미래가 되기를 바래 본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의 양립이요 양존이 아닐까?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종교는 결코 진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독재종교인 까닭이다.
동족끼리 서로 헐뜯으면서, 동생이 배고프다는데도 모른체만 하는 이 좁쌀 같은 우리의 단견들 또한 배달겨레가 해야 할 짓!인가 되묻고 싶어 진다.
어떤 대답이 듣고 싶냐고? 만일 일본이나 중국이 무조건적으로 쳐들어와 우리의 국토를 유린할 때에, 남과 북이 동시 단결하여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대동단결하여 적을 물리치는 저력!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나아갈 수순은 어찌 되어야 하는가. 모두들 경건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야만 한다. 일본군이나 중국군 혹은 또다른 외국군대에게 이 강토가 또다시 노리개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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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의 바다를 보고, 또 무슨 생각이 일어나랴
이런저런 상념을 뒤로하고 드디어 불갑사 초입에 도착했다. 싱그런 잔디가 길게 펼쳐진 주차장 부근에 서서 절로 가는 진입로를 바라보자니, 불타는 꽃무릇의 자태가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장관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시끄럽게 오고가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바라보자니 새로운 갈등이 불현 듯 일어난다. 문제는 필자가 짊어지고 가야할 박배낭의 모습 때문이다. 하이킹이나 트레킹을 다닐 때 사용하는 경량급 배낭과는 너무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량급인 60리터 박배낭은 가히 관광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솔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가히 청승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이도 있으니, 영낙없는 노숙자 모드다. 아이구~
- 용천사 가기 전에 금계리에서 바라본 불갑산 정상 연실봉의 모습 (이곳에서 오르는 것이 가장 단거리 코스로 알려져 있다) -
- 길 곳곳이 꽃무릇 밭으로 변했다 -
- 다행히 불갑사까지 올라가 차를 주차시킬 수 있어서 박배낭 관광신세는 면하게 되었다 -
- 단정하고 맑은 불갑사제 -
- 오늘의 산행 계획 ---> 불갑사제-삼거리-해불암-연실봉 정상(야영)-부처바위-구수재-삼거리-불갑사 (원점회귀 코스) -
- 여기서 해불암까지는 가파른 경사의 등산로라 꽤나 버겁다 -
- 힘겹게 해불암에 도착했다 -
- 요사채 -
- 해불암은 서해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그리 명칭 지어졌나 보다 -
불갑사에 차를 파킹하고서 떠나온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필자는 요즘 완도 상황봉과 불갑산을 다니면서 남도의 낮은 산들이 결코 만만치가 않음을 또다시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이번 8월달에 1,500미터급인 강원도의 오대산 비로봉에 오르고, 그 다음날은 우리나라에서도 세번째로 높다는 1,700미터급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으나, 500고지와 700고지밖에 안되었던 이번 9월의 산행 또한 만만치가 않았음을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은 해발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은 혹여 아닐까. 그리고 그대의 신체가 서서히 녹슬어 가는 것도 중대한 원인은 되리라 싶다. 맞다! 사실 고백하건데, 지금 아니면 영영 산을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조급함 때문에 부쩍 열을 내서 더욱더 열심히 산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마도 첫째의 이유일 게다. 두 다리 성성할 때 원껏 조국의 산하를 껴안으리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서원을 세우고서...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랐던 해불암 가는 길은 동백골이라는 명칭답게 숲이 짙었으며, 길을 걷는 내내 시들은 꽃대를 보여주는 꽃무릇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그 신비로움을 더해 주었다.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꽃무릇 자생지라고 칭할만 했다.
그렇게 해불암에 오르니 일망무제로 서해안이 확 트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다. 호남의 4대 기도터라는 해불암의 명성답게 고요하고 아늑한 혈맥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아늑함을 벗삼아 며칠 쉬어가고 싶은 충동도 불현듯 일어난다. 그러나 녹음이 짙어진 까닭에 그 장쾌함이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느낌 또한 들었다. 아마도 이쪽 왼편 노루목으로 중계소가 생긴 때문에 콘크리트 길이 뻥 뚫리면서 그 기운이 많이 쇠퇴하게 된 연유 때문이리라 싶다. 아무튼 느낌은 느낌이니까...... 그리고 그 느낌을 필자는 매우 존중하니까.
- 또다시 정상에 이르는 깔딱고개를 오른다 -
- 중간에 노루목 가는 길을 만났는데, 비박지로 딱 좋아 보인다 -
- 드디어 정상 초입인 108계단에 도착했다 -
- 그리고 오후 늦게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516m)에 올랐다 -
- 정말로 끝내주는 조망을 갖춘 곳이다 -
- 함평천지가 딱! 펼쳐지고 -
- 고창 방면 방장산 라인과 뒤로 희미한 입암산의 모습 -
- 카메라를 자동으로 맞추어 바위에 얹어 놓고 인증 샷! -
- 어느덧 해는 늬엿늬엿 서해안에 걸리고 -
- 서둘러 막영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
- 텐트 구축 후 바라보았던 환상적인 서해낙조 -
- 햇님! 내일 오실 때에는 미소 좀 길어 오세요, 네? -
- 모든 이에게 펑펑 나누어줄 양만큼만 욕심내고 싶어요 -
- 제 것은 바라지도 않는답니다. 햇님! 꼭요...... -
- 이제 햇님에게 기구를 들려 보냈으므로, 밤을 지낼 궁리를 해 본다 -
- 차 한 잔, 명상 한 그릇, 그러나 상념은 밀가루 한 포대처럼 무겁기만 하다 -
- 그래서 삶을 고苦라 칭하지 않으시던가 -
- 내 고苦는 내가 안고 가드래도, 이웃들 고苦는 모두 소멸시켜 드렸으면...... - ( 그렇게 기구를 드리는 밤의 퍼레이드가 꿈과 함께 길게길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불암을 이별하고서 마지막 깔딱고개를 오르니, 정상으로 가는 108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백팔번뇌를 소진시키고 오르시라는 염원으로 만든 계단인 듯 싶어 이제 다 왔다는 쟁취감으로 마음이 뿌듯해 온다. 오늘의 낮은 산행도 만만치가 않게 되었으니 예로부터 낮은데로 임하시라던 그 경구가 맞겠다 싶어진다. 그렇게 불갑산 연실봉은 맑고 밝은 조망을 선물하면서 필자에게 또다른 감동을 전해 주고 있었다. 오기를 잘했다 싶다.
맞아! 이 맛에 산에 오르는게야.
아름다운 조망에 한참 넋을 빼고 이 경치 저 경치 잘 감상하다가, 문득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는 심정으로 서둘러 텐트를 친다. 블랙 다이아몬드사의 하이라이트 텐트는 경량급(1.5kg 미만)인데다가 자립형이라 네 개의 귀에 폴대만 걸치면 자립이 되기 때문에 설치가 간편하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그렇게 팩을 박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암릉에도 칠 수 있는 공격형 장비로 선별되며, 습에 강하고 결로 또한 투습시키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해 준다면 다음날 아침 뽀송뽀송한 상태로 텐트를 다시 거둘 수가 있으니, 참으로 장점이 많은 텐트라 싶다.
텐트를 서둘러 치고 나서 모든 장비를 텐트 안에 세팅하고 나니 이내 낙조가 서해바다에 걸리기 시작한다. 어제 내린 비로 과연 낙조를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다만 기우에 불과하였다 싶게 서해안의 낙조는 환상적이었다. 필자가 굳이 정상에 올라 하룻밤을 야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낙조와 일출을 동시에 관람하는 큰 기쁨 때문이라 싶다. 그리고 다시 떠 오르시는 햇님에게 기구 드리는 여러가지의 서원 때문이기도 한 것이 또한 중요한 이유라 싶다.
그러니 애써 힘을 들여 산 정상에 오르는 이들은 그 정성에 걸맞게 제발 서원 하나쯤은 가슴에 담고서 산을 오르시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그 서원이 나쁘지 않은 범주의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필자는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권해 본다.
아무튼 기나긴, 그리고 깊고깊은 별밤의 고요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새로운 일출을 맞이하는 그 기쁨이라니...... 마약 같은 중독성을 지닌 이 맛에 길들여지면 세상잡사가 모두 부질없어만 보여지게 된다. 날마다 온갖 음식으로 비위를 맞추며 호의호식 시켜주던 이 몸뚱이도 언젠가는 숨 한 번 멈춤에 진하게 나를 배신할 터인데, 아서라! 그보다 더 큰 정성을 기울일 새로운 몸뚱이나 새로운 욕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숨 한 번 멈춤에 이 세상잡사가 모두 끝나고 말 판국인데...... 그러기에 바람직한 서원 하나라도 이 무한한 우주의 여백 한 켠에 새겨 두고 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그대는 아시는가? 그대의 DNA가 세세생생 살아가면서 태산을 이루게 될 그 날에, 그대의 서원 한가지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우주에서 큰 결실을 맺으며 찬란하게 빛나오르게 된다는 그 사실을...... 아시는가?
......
정녕, 이해하기 어려우신가?
- 긴밤을 지내고 나니, 무등산 왼켠으로 다시 일출이 시작되었다 -
- 햇님이 내어 주시는 미소 보따리가 한량없는 빛만큼이나 크게 안겨 온다 -
- 그러니, 이제 되었다 -
- 모두에게 나누어만 주리라 -
- 나누어 주었던 그 미소, 꼭 되돌아 오실 것이다 -
- 에따, 여기 있소...... 모두들 가져 가시오! -
- 서해바다는 그 수량을 분간 못할만큼 가져 가셨으니...... -
- 이만하면 그대, 큰 소원 치루어 냈다! -
- 상단 오른쪽 산이 원불교의 성지가 있는 구수산의 모습 -
- 저곳! 저수지 옆 불갑사의 주지셨던 30년 전의 수산스님이 문득 떠오른다 -
- 30여년 전, 저기 영광삼거리검문소부터 무려 시오리 비포장길을 걸어 스님을 뵙기 위해 오르던 길이었다 -
- 수산스님! 지금은 어디에 계시어요? -
- 제가 기구를 드렸던 그 미소를 지금 나누어 주고 계신다고요? -
- 삼인산과 병풍산에도 미소가 한가득 빛처럼 펼쳐지는구나 -
- 모두모두 얼굴을 펴고 미소만 띠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
- 서해바다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고운 미소만을 드리시겠단다 -
- 이제,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밝은 미소와 맑은 평화를 얻어 가시게 되었다 -
- 그러니, 이제 당신께서 또다른 분에게 이 미소를 나누어 주실 일만 남았다 -
- 그 미소! 알찬 공양이 되어 그대에게 다시 보답하게 될 것이다 -
- 저기 불갑사의 주지를 역임하셨던 수산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 -
- 그러니, 이제 임무를 완수하고서 평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
- 백패커Backpacker들이시어! 저기 떠있는 월출산의 참 기운을 보아라 -
- 백패커Backpacker들이시어! 산에 깃드시거든 한가지씩은 꼭 서원을 세우고 오르시거라 -
- 그래야 그대의 땀흘려 수고한 보람이 저 서해바다처럼 창창하게 담기지 않겠는가! -
- 이제 텐트를 말리우고, 다시 길을 떠나자! -
- 그리고 정상에서의 이 서원을 항상 가슴에 여미자꾸나 -
- 덧없는 삶 속에서 그런 보람찬 서원 몇 점쯤은 챙겨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 실루엣처럼 계시는 무등산이시어, 소년시절의 저를 기억하소서 -
- 인간세에서 마무리하고 가야할 일이 앞으로 조금은 더 많아지게 해 주소서 -
- 심드렁한 저를 더욱 더 채찍질해 주소서 -
- 무슨 거창한 서원이 그리도 많으신가? 이제는 말도 덮고... 하산하자꾸나 -
- 내 인생의 더깨를 짊어진 저 박배낭이 어쩐지 조금은 더 친밀해 보인다 -
- 이제 나, 가고 없더라도 결코 잎을 그리워하지 말지어다 -
- 그리고 잎, 다시 나오거든, 결코 꽃을 그리워 하지 말지어다 -
- 모두가 덧없는 세상사 아니던가! 말이다 -
- 그러니, 항상 초심의 자세로 겸허히 자신을 낮추자꾸나 -
- 그렇게 불갑사로 나려오려니, 이곳에서 뵈었던 수산 스님이 또다시 절실히 그리워진다 -
불갑사 (佛甲寺)
대웅전 (보물 제830호): 겹처마인 팔작지붕으로 된 다포계(多包系)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자랑하고 있으며 3가지 특색있는 것은 관솔문·삼신불좌상·지붕위의 스투파다.
만세루: 대웅전앞 중심축선상에 있는 중층형루. 대개는 누하진입을 하는 문루인 경우가 많은데 유일하게 화엄사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가 낮은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 하절기에 강학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범종루: 지옥중생의 고통을 그치게 하고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의미의 대범종을 모신 2층 누각 건물로서, 전면은 낮은 중층형이고 후면은 고루를 이루는 특이한 형식을 띄고 있다.
해불암: 해불암은 전일암, 불영대, 수도암, 오진암과 더불어 불갑사 5대 암자 가운데 하나이며, 그 주변경치가 뛰어나고 옛부터 호남지역 참선도량의 4성지로 일컬어졌다.
출처: 영광군 홈페이지
- 대웅전의 부처께서는 대웅이가 참배 오는 것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 그러면 저 해불암의 관음보살이 백의만 걸친 이유를 너는 진정 안다는 거냐? -
- 허허, 알지요. 차별화된 자비로움의 깊은 서원 때문, 아닐까요? -
- 가운데 보이는 세심정이라는 저 수곽에서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 난다 - (두 곳 다 중수를 마친 것 같은데 오른편 백운당 건물이 수산스님의 거처요, 왼쪽의 요사채가 공옥진 여사께서 머물던 곳이며, 그때 수곽은 요사채 끝에 위치했던 듯 싶다)
<아래는 수산 스님을 뵈었던 내용인데, 필자의 블로그에서 따온 글입니다>
바로 가기 ---> 明耕茶談 11회 철쭉음(躑囑吟) - 도반의 향기는 풀향기보다 진하더라
쾌활요가원 원장, 하늘빛명상원 원장, 하나로한의원 원장, 모 방송국 보도국장이 오늘 만남의 주인공들 면면이다. 음대교수 한 분이 아름다운 생음악을 들려 주시는데, 멀리에서 강의 중이신지라 오늘은 못 내려 오시었다. 모두 나름대로 깊은 경지의 수련을 하시던 분들이라 오고가는 이야기 중에서 얻어듣고 깨우치는 법문이 많아 참, 감사 드린다. 우리는 틱낫한 스님, 법정 스님, 서옹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옹스님 후에 백양사 방장 어른을 지내신 수산 스님에 대한 기억이 떠 올라 도반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30여년 전) 필자는 외국에서 돌아와 한창 기세 좋게 운수행각을 벌이던 객기의 시절이었다. 친구 두 명(오늘 참석한 분)과 함께 영광 불갑사의 주지로 계시던 수산 스님을 만나뵈러 떠난 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때를 퍼시절(하도 술에 대취하던 시절이라 그렇게 부른다)이라 하듯이,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불갑사 초입의 주막에서 술판을 벌였다. 어찌,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술에 취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젊은 피가 너무 뜨거워서 그랬을게다. 주막에서 대취한 필자는 거나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먼저 불갑사에 올라갔다. 해름녘에 가까운 때였지만, 매서운 무더위의 뒤끝인지라 매우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스님! 大雄이 왔습니다!"
"예! 날이 매우 덥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 목물 좀 해 주거라."
수산 스님은 마루에 앉아 계시다가, 술에 취한 불손한 젊은이를 마치 오래된 상좌 대하듯이 익숙하게 받아 주시었다. 요사채 건너편에는 행랑채 식으로 된 건물이 한 채 있었지 싶은데, 그쪽 한 켠에 세면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필자는 거침없는 스님의 행보에 주춤하면서도, 일면 당당하게 수곽으로 따라가서 수산 스님의 목물을 해 드렸다.
"그놈 참, 시원하게 잘도 해 주네. 어째? 아예, 중노릇 한번 해 볼래?"
그 말을 듣던 필자는 그만 바가지를 든 손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인가印可의 경지가 왔다갔다 하는 법거량의 중요한 순간에 그만 필자는 실기失機의 위기를 느꼈던 것이다.
대웅大雄이라는 이름 때문에 스님은 대번에 알아봤고, 직언직득直言直得인데 하처구불何處求佛이랴 싶었던 것이 필자의 취정醉酊이었다면 답이 될까? 직솔한 말씀에 즉각 얻은 것이 있는데, 어디서 부처를 또 구하랴?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이셨던 수산 스님
바가지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필자는 그 길로 하산을 하고 말았다. 내려가는 도중에 술에 대취한 친구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연유도 묻지 않고 서로 지나쳤다.
아마도 친구들은 필자가 술 한 잔 더 하려고 절의 입구에 있는 주막으로 내려 가는 줄 알았을테고, 필자는 영광검문소 삼거리까지 지리한 비포장길을 서둘러 내려가서, 바로 택시를 불러 타고서는 광주의 집으로 허둥지둥 도망쳐 오고 말았다. 친구들은 그날 불갑사의 요사채에서 유숙하게 되었다는데, 옆방에 소리공양 수도차 와 계시던 당대의 명창 공옥진 여사를 만나게 되어 참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일화가 어찌 오늘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백양사에서 설법하시던 서옹 스님이 마지막에 큰소리로 길게 '할(喝)!'하시던 모습이 문득 떠올라 정녕...... 그랬을게다.
"아마도, 그때 내가 수산 스님의 제자로 눌러 앉았으면, 큰공부를 이루었을게야. 하하하! 그런데 그때 왜 바가지를 놓고서 허겁지겁 속세로 내려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도대체 헤아릴 수가 없단 말이야! 아마도 속세에 대하여 향유하고 싶었던 집념이 더 강해서 그랬을 게야......"
친구들은 그 때를 떠올리는 듯 회상의 깊은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니 직언직득直言直得은 무서운 경계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뒤로 필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여유를 조금 더 가지게 되었다. 모두 큰스님의 자비라 싶어...... 지금도 삼배를 올린다......
새삼 인연이라는 것이 현생과 다음 생으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그렇듯, 수산 스님과의 만남은 현생의 인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효봉 스님 제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인연도 몇번 있었는데, 언제 한번 또 이야기를 펼쳐 보겠다.
- 정성으로 목물 드리던 손결이 이제 거칠어지며 늙어만 가는데 -
- 스님...... 지금은 어디에 상주하고 계시는지요?-
- 말라만 가는 이 꽃무릇처럼 우리네 인생도 왜 이울어야만 하는 걸까요? -
그리워 하는 까닭
꽃무릇이 서로 그리워 하는게 비단, 잎과 꽃뿐이겠어요
한 뿌리서 나고 자랐는데 무슨 그리워할 명분이 또 있겠어요 그렇찮아요?
그리워 하는 까닭은 잎과 꽃이 아니라 육신과 정신! 아니겠어요?
육신 지고 나면 정신, 홀로 비상하는 이유 깨달을테니까요
- 權 小 鄕
- 오고감이 자유로운 자! 그대를 수행자!라 부르리라 -
- 풀잎과 꽃무릇잎을 구별하지 못하는 우매한 자! 그대야말로 진정 깨달은 자! -
- 각자覺子는 깜짝 놀래서 담벼락에 숨어 들었구나 -
- 그대가 그 뜻을 얻어냈다면, 그대는 이미 존각자尊覺子 -
- 그도 무시한다면 망연자실자...... 줄여서 망자亡者! -
-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데 있어서 무슨 품격을 거론한다는 말이냐! -
- 망자亡者 가고 나면 무엇을 더 그리워할까? -
- 더는 그리워하지 말아라, 꽃무릇이여 -
- 싯뻘겋게 각혈하는 너를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제 이별하겠다 -
- 그러니 이제 그 담벼락에서 나와 자유로워지거라 -
- 연실이도 이제 대웅이를 그만 놓아 주거라 -
- 모두들 정신으로 남은 망자 마저 떠나 보내고, 그대도 그대의 길로 이울지어다 -
- 낙조의 빛이 눈망울에 맺히니, 과연 어디에 이슬이 숨어들까 -
- 불갑산 꼭대기에서 기구드렸던 서원이시어, 이제는 세상 가득 퍼지시거라 -
필자는 어렸을 적인 중학교 때, 주말만 되면 무등산에 들어가 쇄인봉과 약사암 아래에 텐트를 치고서 야영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때가 종종 있었다. 그곳에서 세계명작을 모두 완독해 냈고 종교, 철학 서적들도 꽤나 많이 애독을 했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필자만의 공부법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일에 산만큼 좋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금 나이 지긋한 이순耳順에 이르러서도 필자만의 쉼터를 산 속에다 꾸며두고 있으며, 필자만의 우주 또한 마음 속에 짓고 사는 까닭도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백패커Backpacker 후학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그대, 정녕! 어찌하여 산에 깃드시는가? 맛있는 것 요리해 먹고,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악을 쓰려면 시정잡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운타운Downtown이 더 적격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또는 가난한 이웃의 주림을 채우게 해 주시라고...... 혹은 그대의 순진했던 영혼을 되찾기 위해서......
그런 맑은 서원 한 가지쯤은 세우고서 산에 오르신다면, 그대와 함께 세상은 또한 얼마나 아름답게 변해 갈 것인가. 그대의 서원! 한방울이 모여서 시냇물을 이루고, 마침내는 강물이 되어 찬란한 바다에 이르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신가?
- 2013년 9월 29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참고 사항 - 꽃무릇이 만개하는 순서>
- 보통은 6, 7개의 봉오리로 맺혔다가 하나씩 꽃을 티우기 시작한다 -
- 4개의 봉오리에 꽃을 티우는 중이다 -
- 여섯개의 곷봉오리가 모두 꽃으로 활짝 피어 올라야만, 비로소 꽃무릇이 완성되어 만개의 초가을을 노래한다 -
- 언제까지 그대를 껴안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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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은 아래 링크된 블로그에 더 있습니다. http://blog.daum.net/valeriano
< 무단 사용시, 그 출처를 꼭 명기 바랍니다 >
註 : 돋움체-필자 글(녹색), 인용 글(검은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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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To Heart / Ernesto C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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