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3 - 안동 권정생 동화나라 좋은 동화는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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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2. 11:12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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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정생 동화나라
좋은 동화는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
아이를 키우며 동화책 《강아지똥》을 한 번쯤 읽어준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혹은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을 보았거나…. 보잘것없는 강아지똥 한 무더기도 다 쓸모가 있다고, 세상 무엇이든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동화다.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은 이미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선생이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각박한 이 세상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어주고 있다. 선생의 채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던 집과 종지기를 하던 교회, 그리고 지난여름 문을 연 권정생 동화나라를 찾았다.
《강아지똥》의 작가 고 권정생 선생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남긴 유산
폐교된 초등학교를 고쳐 지은 권정생 동화나라는 일종의 문학관으로 권정생 선생에 관한 기록과 주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선생은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노동 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 가난했던 어머니 사이에 난 5남2녀 가운데 여섯째였다.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 귀국한 뒤 한국전쟁을 차례로 겪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느꼈다. 가난과 전쟁으로 가족은 뿔뿔이 헤어지고, 제대로 먹고 치료받지 못해 전신결핵을 앓아 시한부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그냥 죽는 것이 억울했던 청년 권정생은 좋은 책 한 권 남기고자 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강아지똥》이었다.
아픈 몸을 견디며 쓴 《강아지똥》이 아동문학상에 당선되자 삶의 의미를 얻어 계속 집필을 이어갔다. 하지만 평생 건강을 회복하지 못해 늘 병고에 시달렸으며, 그런 몸으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강아지똥》 외에 가난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강인한 몽실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몽실언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돌아가시던 해 초반까지 월간지에 연재해 작고한 후에야 단행본으로 출간된 《랑랑별 때때롱》, 산불 속에서 새끼들을 지켜낸 까투리의 모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엄마 까투리》 등이 있으며, 그밖에 《황소아저씨》, 《오소리네 집 꽃밭》,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한티재 하늘》 등 숱한 작품을 남겼다.
권정생 선생의 일생과 작품을 볼 수 있는 권정생 동화나라 | 전시장 내부의 선생이 살던 방 풍경 |
2007년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선생이 남긴 통장의 잔액이 10억 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평생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며 생활한 탓에 동네 사람들은 선생을 그저 가난한 글쟁이로만 생각했다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고 또 아끼던 선생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지구촌의 가난하고 헐벗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글을 읽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산과 앞으로 나올 인세도 모두 북한, 아프리카, 중동의 아이들을 위해 쓸 것을 당부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던 것.
전시장을 보면 눈에 띄는 유품이 있다. 쓰고 버린 비료 포대를 접어 나뭇가지를 끼워 만든 부채, 전기가 없던 시절 마요네즈 유리병에 심지를 넣어 만든 램프를 통해 근검절약했던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조탑동에 있는 선생의 집 방안 풍경을 재현해놓았다. 내부 물건은 모두 유품들인데 얼핏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책장과 앉은뱅이책상이 가구의 전부이고, 한 사람 누우면 꼭 맞을 정도로 작은 방이다. 선생이 직접 쓴 “좋은 동화 한 권은 백 번 설교보다 낫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선생 관련 영상물을 보는 관람객
주요 작품들이 걸린 원기둥 앞으로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의 주요 장면과 선생 관련 내용이 담긴 영상물을 보여준다. 짧지만 선생의 일생과 사상을 알 수 있다.
1층 현관에서 밖으로 나가면 데크로 된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보이는 마을이 소설 《몽실언니》의 몽실이가 살던 동네의 배경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강아지똥, 엄마 까투리, 몽실언니 조형물이 있어 기념사진 찍기에 좋다.
선생이 살던 집과 교회 종탑
동화나라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과 종지기 생활을 했던 일직교회가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병을 앓던 그가 교회 문간방에 들어간 것은 1968년이었다. 매일 새벽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교회 일을 도우며 밤이면 글을 썼다. 그해 동시 <강아지똥>을 썼는데 만족스럽지 않아 다음해 동화로 고쳐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에 응모해 당선됐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무더운 문간방이지만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썼다. 선생이 머물던 문간방과 종탑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습이 살짝 바뀌었지만 당시 느낌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작지만 따스한 느낌이 감도는 권정생 선생의 집 | 종이에 적은 이름을 문패 대신 붙여두었다. |
교회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빌배산 아래 선생이 살던 집이 있다. 대문도, 담도, 문패도 없이 뒤편 빌뱅이 언덕을 병풍 삼고 나무 두어 그루를 담장 삼은 작은 흙집이다. 흙집 안에 방 한 칸과 부엌, 마당 한구석에 화장실과 개집이 전부다. 약 26㎡(8평)짜리 이 작은 집은 동네 청년들이 선생을 위해 지어준 것으로 1983년부터 돌아가시던 해까지 선생이 계속 살던 곳이다.
“따뜻하고, 조용하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생각에 젖을 수 있어 참 좋다”고 이오덕 선생에게 편지를 썼다. 비록 마을 가장 외진 곳에 낮은 지붕을 이고 웅크리듯 있지만 “작가는 모름지기 외로워야 한다”던 선생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모두가 하찮게 여기는 강아지 똥에조차 따스한 관심을 주었던 권정생 선생. 그의 너른 사랑이 스며 있는 책 한 권, 글 한 구절을 곁에 두면 이 겨울이 그리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동 권정생 동화나라 - 좋은 동화는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 (한국관광공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한국관광공사, 김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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