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열린 사회로의 출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마을의 부녀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에서 비판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이라곤 통제와 규제,그리고 부정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도자라고 하는 무당의 독단과 횡포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며,설사 그가 효율적인 조직운영에 관한 철두철미한 신념을 가진 현자(賢者)라 할지라도 인간의 자유를 향한 애타는 갈증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므로 그 조직은 닫혀 있는 것이다.
칼 포퍼에 의하면
닫힌 사회는 불변의 규칙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하며 열린 사회는 이성과 자유,그리고 타인에 대한 박애의 신념에 의존해 판단한다고 한다.
규범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그것이 못마땅하다면 개선시키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고 말한다.이러한 인간의 이성적이고 역동적인 힘이 발현될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해버리는 것이 바로 ‘닫힌 사회’며,이것은 전체론(holism) 역사 법칙론(historical law) 유토피아주의(utopianism)가 결합된 ‘역사주의’를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한다.
○‘닫힌 사회’의 논리들
전체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과학적으로 구명이 불가능한 대상이므로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놓고 이를 통제하고 개조하려는 것은 도구도 없이 집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점에서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집착한 플라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 책 초판이 나온 1945년,전 지구에 창궐하던 마르크스주의의 취약성에 대하여 예리한 분석을 했다.
또한 그는 역사에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한 개인의 의지나 노력과는 별 상관없이 정반합(正反合)의 원리에 따라 흘러간다고 본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을 신랄히 비판한다.이러한 필연적 역사관은 인간의 이성을 왜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시들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종속적인 인간을 양성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모든 역사를 통과하는 하나의 법칙은 존재할 수 없으며,현재에 대한 판단과 대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합리적 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포퍼는 이처럼 열린 사회의 뿌리를 인간의 이성에 두고 있다.
이것과 관련지어 그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경계한다.유토피아는 사회의 장기적 청사진이므로 이를 실천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가 필요하고,그것은 곧 독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또한 최초의 설계자들에게는 이상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이상적인 사회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으므로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부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린 ‘열린사회’에 살고있나
포퍼의 주장에 따라 우리가 속한 사회를 둘러보자.대통령의 한 마디 사장의 한 마디는 곧 법이요,바로 행동강령이 되어야 하며,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지키지 않는 규칙과 규제는 아직도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여전히 기득권자들에게만 유리한 전통이 강조되고 있으며,권력에 대한 비판은 곧 고립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의심할 바 없이 지구라는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고 있다.세계 구석구석까지 자본과 문화가 넘나들고,사람들은 뒤섞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더이상 거대 사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영웅은 존재하지 않으며,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문화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그래서 개인은 이전의 세대보다 더 불안해지고,때로 원인도 모르는 불행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사회변화의 전모를 읽을 수 있는 대가(大家)가 있어 우리의 앞길에 빛을 비춰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이 지구가 거대한 하나의 사회로 통합되면서 지식의 양은 한 인간을 더욱 초라한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문명사회에서 집단적인 공동사회는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서구사회에서는 이미 가족의 해체가 진행 중이다.그리하여 남은 것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한 개인뿐이다.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주체들은 더이상 집단의 강령이나 준칙을 거부하며,최대한의 자유를 향유하길 바란다.
이러한 변화는 얼핏 보기에 포퍼의 바람대로 ‘열린 사회’가 되어 가는 징후인 듯 보이나 그렇다고 그의 희망이 다 이뤄진 것은 아니다.몇가지 부수적인 전제조건이 해결돼야 하는데,늘 그렇듯 사실은 이것들이 바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본질에 해당한다.
‘개인은 독자적인 판단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고,사회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이뤄나가야 하며,모든 판단은 ‘이성과 자유 및 타인에 대한 박애의 신념’에 의존해야 한다는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비로소 열린 사회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불행히도 이 사소한(?) 조건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나와 있지 않다.‘점진적’이란 것의 범주는 무엇이며,무엇부터 점진적이어야 하는가.또한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이성적인 존재이기에 역사는 늘 살육과 압제로 얼룩져 온 것일까’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열린 사회’의 힘은 어디서
이것은 어쩌면 포퍼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일지 모른다.그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고,이제는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포퍼가 열린 사회의 조건으로 인간의 이성과 자유 추구를 강조했다면,우리는 어떻게 각 개인이 이성적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나가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아니면 인간만이 지닌 고귀한 이성의 힘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급선무인가.포퍼가 말한 대로 ‘내가 틀리고 네가 옳을지도 모르며,노력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회를 이룩해 나가기 위한 주체는 누구인가.누구에게나 자유가 중요하다면,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이성(理性)에서 나오고,그것은 개개인에 귀속된 것이므로 결국 열린 사회는 바로 ‘나’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