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아모 3,1-12; 마태 8,23-27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2024.7.2.
오늘 독서는 아모스가 예언자로서 활약하게 된 동기와 이유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가 받은 예언자 성소의 근본 동기는 하느님의. 자비 덕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도 불구하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벌하시기는 하지만, 그 벌 조차도 더 타락하지 않도록 말리려는 일종의 예방조치이고, 더 나아가서는 다시 하느님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는 일종의 치료조치라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이 예언자로 나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받은 아모스는 자신의 성소에 대해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먹이가 없는데도, 사자가 숲속에서 으르렁거리겠느냐? 잡은 것이 없는데도, 힘센 사자가 굴속에서 소리를 지르겠느냐?”(아모 3,4) 이런 이치와 마찬가지로,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아모 3,8ㄴ)는 것입니다. 이만큼 아모스의 신앙 감각은 살아 있었습니다. 동족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된 위기 속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지혜를 하느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서 동족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이건 대신이건 궁정 예언자들이건 또는 백성이건 간에 그 대상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고 용감하게 예언을 했습니다. 다마스쿠스에 살건, 가자에 살건, 티로에 살건, 에돔에 살건, 암몬에 살건, 모압에 살건, 유다에 살건, 특히 이스라엘과 사마리아에 살건 간에,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아모 1,3-15; 2-3장 참조) 그의 말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지니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음향기기의 성능과 품질은 가능한 한 원음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예언자가 전해 주는 예언의 진실성과 미래 실현가능성 역시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위험과 박해를 무릅쓰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모스의 예언은 여느 예언자들과 비교해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비록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를 재배하던 농부로서 평신도 출신이지만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전하라고 재촉하시기 때문에 예언자로 나섰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아모 7,14 참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비록 그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의 권세가들은 그를 무시했고 그가 전한 예언도 듣지 않았지만(아모 7,10-16 참조), 백성 가운데에는 그의 예언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길 뿐만 아니라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도 남긴 각성된 민중 즉, 아나빔(anawim, 가난하지만 경건한 이들)이 있어서 그의 예언서가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언서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예언서가 후대에 전해졌다는 그 사실 자체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죽게 된 제자들이 예수님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큰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그 배에 타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신 덕분입니다. 그분과 한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투철한 사람을 알고 지내거나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있으면 지도층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이나 배가 뒤집힐뻔한 큰 풍랑과 같은 위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이 알려줍니다. 그래서 독실하게 믿는 사람과 잘 알고 지내고, 더구나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있을 수 있는 비결이 열쇠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이 있었으며, 오늘날 교회시대에는 성인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이들의 뜻을 새기고 또 새겨서 전해 주는 교도권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예언자입니다. 이들이 전해 주는 예언, 즉 메시지를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위기는 닥쳐옵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또한 한국교회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교황이 일부러 우리나라를 찾아와서 충고와 고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험은 우리 사회 상류층이나 우리 교회의 제도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교황의 메시지 역시 사회 지도층과 교회 교도권에만 보낸 것이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보냈던 것입니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신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영적인 메시지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제대로,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이런 메시지를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에서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당장의 위기만 모면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성품과 습관이 그런 사람들, 즉 현대의 예언자들이 신뢰할 만해야 합니다. 이는 리더십이 아니라 이와는 구분되는 일종의 팔로우어십(followership)입니다. 얄팍한 처세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리더십 돌풍을 일으킨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내서 유명해졌던 스티븐 코비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였습니다.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서로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신앙에 관한 저자의 신념이 철두철미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음을 깨닫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정입니다. 인간 이성과 감성의 능력은 이러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라야 극대화될 수 있지요. 여기서 여러 가지 삶의 위기를 예방하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지혜라는 관점으로 바꾸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리더십과 팔로우어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서로 통합니다. 둘 다 인간관계의 문제이고 그 핵심은 상호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지혜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Be proactive!)"는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자기 탓 없이도 숱한 위험에 떨어지지만 물려받은 신앙 덕분에 어느 한 순간도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에 떨어질 때마다 극적으로 기회로 역전시켰듯이(창세 39,3.21; 41,16,38; 45,7-8; 50,20), 이 지혜는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나 자신을 알고 계시고 따라서 내가 처한 위험에 있어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이미 마련해 놓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두 번째 지혜는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Begin with the end in mind!)"는 것입니다. 항상 처음에 품었던 목표를 명심해서 시작하고 추진하라는 뜻입니다. 관뚜껑에 못이 박힌 후에 세상 사람들이 내뱉을 평판을 예상해서 처신하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평판보다 더 엄정한 최후의 심판을 분명하게 예고하셨습니다(마태 25,31-46).
세 번째 지혜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Put first things first!)"는 것입니다. 급한 일부터 하려 들 것이 아니라 사실은 중요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평소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온 세상을 얻어도 자기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는 말씀과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네 번째 지혜는 "쌍방에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추구하라(Think win-win!)"는 것입니다. 그 어떤 궁지에 몰려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3의 해결책은 반드시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이걸 찾으라는 겁니다. “박해를 당할지라도 성령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알려주신다.”(마르 13,11)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지혜는 "먼저 이해하고나서 그 다음에 이해시켜라(Seek first to understand, then to be understood!)"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스티븐 코비는 '심리적 공기'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상대방이 숨쉴 수 있는 심리적 상황을 조성해 주어야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치입니다. 먼저 들어보고 수긍할 수 있는 점부터 말해주면 이해시키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들이 당신에게 올가미를 놓아 궁지에 몰려고 작정하고나서 까칠한 논쟁을 걸어오면, 먼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마태 12,3; 루카 6,9; 14,3 참조)
여섯 번째 지혜는 "시너지 효과를 내라(Synergize!)"는 것입니다. 혼자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서는 평소에 잘 관리한 인간관계를 활용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영리한 집사’(루카 16,1-8 참조)를 칭찬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불의한 처신으로 쫓겨날 뻔 했지만 주인의 고객들을 잘 관리하여 오히려 주인의 덕망을 높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지혜는 "끊임없이 쇄신하라(Sharpen the Saw!)"는 것입니다. 마치 커다란 나무를 벌목해야 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톱날을 날카롭게 갈아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몸과 마음과 혼을 쓰기도 하지만, 충전하기도 해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몸으로 일하기도 해야 하지만 운동도 해야 골고루 근육을 준비시킬 수 있고, 머리를 활용하여 신경도 써야 하지만 독서도 해서 다른 이들의 지혜도 배워야 하며, 혼의 나침반을 하느님께 맞추어 놓고 인생길을 걷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도와 피정으로 쉬면서 영과 소통하기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으라거나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마태 24,44; 25,13 참조).
교우 여러분!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위험에서 빠져나오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기회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예언자들이 전해 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