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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산책로 정동길. 그러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광장과는 다른 샛길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곳.
◆ 걸을수록 매력 있는 거리
세계의 수많은 광장과 마찬가지로 방사형의 도로가 잘 발달해 있는 서울광장은 해마다 봄이 되면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거리 공연장이다. 지나가다가 자주 들러도 다행히 지겹지 않고, 의외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5월의 서울광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서울광장 나들이를 이것으로 끝내고 마는 것은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반쯤 읽다
팽개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광장 바깥으로 한 걸음만 걸어 나가면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산책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걷고 싶은 거리 1호' 자리를 내주지 않은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산책로 정동길이다.
덕수궁 대한문 옆 골목부터 서대문 앞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책로는 번잡한 서울광장과는 사뭇 다른 샛길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곳이다.
봄에는 싱그러운 신록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일부러 쓸지 않은 단풍이, 겨울에는 융단처럼 희고 탐스러운 눈이 구불구불한
거리에 수북이 쌓인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거주지였던 정동이 이처럼 이국적인 산책로로 바뀐 것은 벌써 100여 년 전의 일. 20세기 초 개항과 함께
정동에 신문물의 상징 같은 서양 공관과 예배당, 학당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이곳에 이색적인 도심의 샛길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정동길에는 옛날 대법원과 가정법원을 개조한 서울시립미술관과 1897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본떠 만든 전통예술 전용극장 정동극장, 100년 전통의 배재학당 동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로마네스크양식의 성공회성당,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어수선한 정치 상황을 피해 고종 황제가 피신을 떠났던 구 러시아 공관 등,
개화기 도시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근대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 최병훈 목공예 작가가 화강암과 벚나무 등 자연을 소재로
만든 19개의 매끈한 아트 벤치와 울창한 가로수들이 정동길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준다.
대한민국이 걷기 열풍에 휘말리기 전부터 서울 사람들이 발가락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낸 서울 정동길.
이 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유럽에서 제일 숲이 많은 도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도 결코 부럽지 않다.
그들의 산책길에는 나무만 울창하지만, 우리의 산책길에는 나무와 더불어 '역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가는길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에서 하차해 덕수궁 방면 2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정동길이 이어진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정동극장과 배재학당 동관, 구 러시아 공관까지 정동길의 유적들을 꼼꼼히 둘러보며 산책한다.
정동길을 모두 훑어봤다면 내친김에 길 건너 서울역사박물관까지 둘러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광진교 리버뷰 8번가
◆ 한강 다리 위에서 낭만을
이처럼 파리의 인도교를 따라 낭만적인 걷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한강의 크고 넓은 풍모가 원망스러워지는 것도 사실.
파리의 센 강은 보통 걸어가기 알맞게 아담한 폭을 자랑하지만, 우리나라의 한강은 걸어가려면 족히 30분은 잡아야 할 만큼
크고 넓게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강에는 오랫동안 걷기 좋은 다리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걸을 수 있는 다리가 거의 없던 한강에 걷기 좋은 다리가 생겼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광나루 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다리 '광진교'다.
한강대교와 더불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 중 하나였던 광진교가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은 것은 1994년의 일.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03년 11월, 역사적인 다리 광진교가 환골탈태해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새롭게 세워진 광진교에는 한강 다리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자전거 전용도로와 한강 전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돌출 전망대가 생겼다.
다리 중간에 벤치도 있고, 심지어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볼일이 급하지 않더라도 이곳 화장실만큼은 이용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한강변을 향해 나있는 창문의 전망이 호텔 전망대 못지않게 근사하기 때문.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다보면 한강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게 된다.
경치 좋은 아차산 자락과 현대적인 워커힐 호텔, 횃불 문양의 올림픽대교까지, 파리 에펠탑이 부럽지
않은 절경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2003년 다시 완공된 광진교. 한강전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교각하부전망대
리버뷰8번가는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도 있다.
최근 이곳에는 '리버뷰 8번가'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3개뿐인 멋진 교각 하부전망대도 마련됐다.
드라마 '아이리스'(2009)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곳은, 아기자기한 생활예술품 전시장과 작은 공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곳 모두 마룻바닥이 투명한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발밑으로 한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강화유리라 해도 이곳 마루를 두 발로 걷는 기분은 스릴이 넘치다 못해 아찔하다.
유리 바닥 위를 걷다보면 금세 한강아래로 고꾸라질 것처럼 발목의 힘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이런 아찔한 공연장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다채로운 재즈, 클래식 공연이 펼쳐진다. 한강 다리 아래서 한강을 바라보며 듣는 음악은 기대보다 훨씬 근사하다.
한강의 푸른 물결 사이로 해질녘 금빛 태양이 찬란하게 부서져 내린다.
유럽의 걷기 좋은 다리들에 반해 작은 강이 최고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한강의 걷기 좋은 다리는 새로운
반전의 역사를 선포해준다.
한강은 작고 아담해서가 아니라 크고 넓기 때문에 훨씬 볼 게 많은 곳.
그 역사적인 현장이 바로 천호동 '광진교'다.
가는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에서 광진청소년회관을 끼고 우회전한 후 100m정도 걸으면 바로 광진교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리버뷰 8번가까지는 약 500m. 지하철 5,8호선 천호역 2번 출구에서 300m직진한 후 한국투자증권을 끼고 좌회전을
해도 광진교 진입이 가능하다. 자동차로 간다면 광나루 한강공원에 차를 주차(소형차 기준 1시간 1,600원)한 후 광진교를
둘러보는 것이 편하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광진교 진입이 가능한 자전거 도로가 있다.
이곳에서 리버뷰 8번가까지는 걸어서 15분가량.
북촌 한옥마을길
북촌 사람들은 현대화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서울의 금쪽같은 한옥마을을 이어가고 있다.
◆한옥 정취 살아있는 북촌한옥마을
한국의 북촌한옥마을도 이와 비슷한 수모를 견뎌낸 끝에 비로소 서울 최고의 관광지로 재정비된 역사적인 곳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대부분의 한옥이 헐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서양식 집들이 매끈하게 들어섰지만,
다행히 북촌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빨리 동참하지 않고 서울의 금쪽같은 한옥마을을 지켜냈다.
조선시대 상류층의 주거지로 시작해 1930년대 서울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정체성을 바꿔나간 북촌한옥마을.
말은 많이 들었지만 서울 사람 중에 북촌이 어디인지, 입구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유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촌이 어디 있는지 헛갈린다면, 안국동 현대건설사옥이나 중앙고등학교를 북촌의 표지판으로 삼을 만하다.
현대건설사옥과 북촌 문화센터 사이 큰 길을 따라 중앙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계동길에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예쁘고 아담한 카페, 옛날 정취 가득한 목욕탕과 분식점, 문구점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이 바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 북촌의 초입. 입구를 제대로 찾았다면 이것으로 북촌 여행 준비는 모두 끝났다.
마음에 드는 한옥을 지표 삼아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면 북촌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관람할 수 있다.
좀 더 세심하게 북촌을 감상하고 싶다면 취향에 맞게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의 근대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은 문화유산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도보 코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제격. 둘 이상의 친구를 모아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문화유산에 정통한 해설사가 북촌을 함께
거닐며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들려준다.
북촌 도보여행은 1, 2코스 모두 운현궁에서 시작하며 1코스는 한국불교미술박물관과 가회동 민화공방, 자수공방,
매듭공방, 한옥체험관 등
주로 북촌의 왼쪽 길을 더듬고, 2코스는 서울무형문화재교육전시장과 옻칠공방, 가회동 한옥촌, 장신구박물관 등 주로
북촌의 오른쪽 길을 더듬는다.
이 길을 느릿느릿 걷는 데 약 3시간이 소요된다.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며 다니는 것이 조금 거북하다면 북촌의 5개 박물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끊어 혼자 이곳저곳 훑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북촌에 있는 작은 박물관들은 우리 전통문화를 옆에서 생생하게 곁눈질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 매듭 짜기,
자수 놓기, 옻칠하기 등 큰 박물관에선 도저히 해보기 어려운 아기자기한 전통문화체험을 직접 해볼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촌 8경을 자유롭게 유람하며 제 카메라에 북촌 풍경을 꼼꼼히 담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이 될 만하다.
북촌한옥마을이 지정한 북촌 8경은 창덕궁이 내다보이는 돌담길과 가회동 11번지, 31번지 일대, 삼청동 돌 계단길 등.
이곳에 서서 한옥 정취를 즐기면 왜 21세기 북촌한옥마을이 서울 최고의 명승지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현대화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이렇게 옛것 그대로 남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나간 도시의 마천루 사이에서, 오직 이곳만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아늑한
우리 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현대건설 사옥을 오른편에 두고 좌회전. 중앙고등학교 방면으로 올라가면 계동,
가회동 일대의 한옥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지선버스 7025번, 간선버스 109, 151, 162, 171, 172, 272, 601, 공항버스 602-1도 이용가능하다.
양화진 외국인묘원
◆한강변에서 고이 잠든 사람들
서울 중심가에도 외국인 전용 묘지가 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에 세워진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선교사묘원이 바로 그곳.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 합정 아파트 방면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회색빛 교회 입구가 나온다.
작고 조용한 정문으로 들어와 선교기념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의외로 넓은 풀밭이 한가롭게 펼쳐진다.
이곳에는 비석이 삐죽삐죽 400여개나 솟아 있다.
비석 안에는 비교적 눈에 익은 외국인의 이름이 영어나 한글로 적혀 있다.
대부분은 오래전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들이거나 독립운동가, 교육자들이다.
양화진에 처음 몸을 눕힌 사람은 조선 최초의 의료원 광혜원의 2대 원장이었던 J.W. 헤론. 그는
마침 조선은 영국과 '통상지역 안에 외국인 묘지를 무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였고,
미국 공사와 유족들은 삼복더위에 시신을 제물포 외인 묘지로 옮기기보다 사대문 가까이에 모시기를 원했다.
고종이 그들 뜻을 받아들여 양화진에 외국인전용 묘원 부지를 마련하고 1890년 7월 28일 헤론의 시신을 안장했다.
양화진 외인 묘지의 시작이다.
이후 양화진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묻혔다.
고종의 외교 밀사로 헤이그에 파견됐던 외국인 독립운동가 헐버트 박사부터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한국 선교의 개척자로 꼽히는 언더우드와 그 가족들,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파원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가 억울한 민중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 위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한국이름은 배설)에
이르기까지.
양화진 외인 묘지의 비문을 들여다보면, 낯선 타지에서 그들이 겪었던 고독과 외로움, 결기 같은 것들이 시간의
역사를 뛰어넘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헐버트 박사의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한다." 비록 외모는 한국인과 많이 달랐지만 끝까지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살고자 했던 이들의 가슴 절절한 유언이 박혀 있는 곳.
낯선 이국땅에서 열정과 청춘을 모두 소진했던 이들은, 오늘도 당산철교와 강변북로 사이, 시끄러운 도로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 한강 저편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뜨겁게 가슴을 울린다.
가는길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에서 하차해 7번 출구로 나오면 합정 아파트 입구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어가 보자.
오른쪽이 바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이다.
묘지를 돌아본 후 양화진공원과 천주교 순교의 역사가 살아있는 절두산 성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길상사 가는길
길상사가 자리 잡은 성북동은, 크게 관심 받지는 못하지만 알고 보면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가득 안고 있다.
1400㎞에 달하는 긴 순례길은 없지만 세속적인 가치를 좇으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길들이 길상사를 향해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다.
길상사는 바로 그 성북동의 고갯마루에 있는 '사연 많은 사찰'이다.
원래 이곳은 밤 문화를 주도하는 고급 요정으로 유명했으나 법정 스님의 저서에 감명받은 김영한 보살이 자신이
소유한 대원각의 대지 7000여 평과 건물 40여 동을 불교의 수행도량으로 써달라고 기증의 뜻을 비치면서 대원각의
대대적인 환골탈태가 시작됐다.
처음 법정 스님이 대원각 기증 제안을 받았던 것은 1987년의 일. 하지만 법정 스님은 "평생 주지 노릇은 해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주지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며 한사코 김영한 보살의 제안을 거절했다.
훗날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이끌며 시민운동에 앞장선 법정 스님이 대원각 시주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모임의
근본 도량을 만드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 8년의 기다림, 네 차례의 사양 끝에 전한 긍정의 답변이었다.
길상사는 사찰로 치면 아직 엄마 젖도 떼지 못한 유년기의 절에 가깝다. 오래된 절에서 풍기는 시간의 냄새 대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한결 충만하게 흘러나온다. 열정은 다치기 쉽고 위험하다는 말은 다행히 길상사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법정 스님이 입적한 후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이곳은 여전히 동요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법문을 읽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기쁨이나 슬픔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의 무소유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인하게 서려 있다.
아름다운 침묵, 텅 빈 충만이 고요하게 흐르는 사찰이다.
버리는 자는 진정한 평온을 얻게 되는 것일까. 사찰을 맴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무소유의 평온이 흐른다.
발끝의 힘을 빼고 모두 날아갈 듯 걷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순례길을 걷는 묘미. 멀어도 힘겨워도, 무언가를 버리러 떠나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신명나는 일이다.
◆ 함께 걷기 좋은 성북동 순례길
한성대입구 역(차로 5분, 걸어서 15분)→ 길상사(걸어서 15분)→ 시 '성북동 비둘기'가 태어난 비둘기길(걸어서 20분)→
작가 이태준 선생의 집을 개조해 만든 전통 찻집 수연산방(걸어서 10분)→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기거하며 원고를 썼던
심우장(버스로 5분)→ 한성대입구 역
가는길
길상사로 가는 여정의 시작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역 6번 출구다.
이곳으로 나와 1111, 2112번 마을버스를 타고 홍익 중고등학교 앞에서 하차. 목욕탕 골목으로 들어와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길상사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갈림길마다 길상사 안내 표지가 잘 마련되어 있으니 헷갈릴 염려는 거의 없다.
동대문 새벽시장길
동대문 새벽시장은 최첨단 백화점에 가깝다.
늦은 밤 동대문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마련이다.
밀리오레, 두타, 헬로apm, 케레스타 등의 쇼핑몰 입구에선 매일 밤 댄스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건물 옥상 전광판에선
레이저빔보다 강력한 조명이 밤새 흘러나온다.
특히 장관은 조명 아래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장충동과 청계천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 거리에선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픈 젊은이들이 경쾌한 댄스음악을 벗
삼아 삼삼오오 걸어 다니고, 한쪽 거리에선 옷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큰 봉투를 서너 개씩 손에 쥐고
부지런히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다.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의 풍경이다.
동대문시장의 진가는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 찻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제일평화시장, 누존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도매시장은 옷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곳답게
치열한 생활의 열기로 들끓는다. 길거리 좌판에선 지갑·신발·가방 등 갖가지 패션 소품을 파는 사람들이 목청이
쉬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콘서트장처럼 정신없는 거리 상점을 훑어본 뒤 대낮보다 환한 조명으로 치장한 건물에 들어서면 동대문 새벽시장
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매 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친 시장 분위기를 이겨내고 미로 같은 상점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정도 구경을 마쳤다면 이제 야식을 섭렵할 차례. 동대문 새벽시장의 대표적인 명물 음식은 비빔국수와 납작만두를
비롯한 각종 길거리 음식들이다.
제일평화시장 구관 지하 매점(게이트 4번으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은 특히 동대문 최고의 맛집으로 꼽히는 곳.
2.5평 작은 평수에 고작 테이블 3개가 전부지만 하룻밤 손님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다.
예약 후 1~2시간씩 기다리지 않으면 매콤한 비빔국수를 맛보기 어렵다.
제일평화시장 근처 노점에서 파는 음식들도 빼놓을 수 없는 새벽시장의 명물이다. 찹쌀로 얇게 빚어 눌러놓은
만두에 잘게 썬 양배추와 소스를 버무린 납작만두, 각종 야채와 해산물, 고기를 라이스페이퍼에 야물게 싼 월남쌈,
푸짐한 돼지고기에 야채를 잔뜩 얹은 수제 햄버거 등이 피곤에 전 시장 사람들의 배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동대문 새벽시장은 2010년 3월부터 새벽시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영업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덕분에 평일 오전 10시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일요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 30분까지 동대문 새벽시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이곳은 한두 시간으로는 도저히 구경하기 어려운 넓은 별천지 같은 곳. 새벽을 모두 헌납하겠다는
각오로 찾아가야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 4,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하차 후 1번 출구로 나오면 청계천로와 장충동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복합쇼핑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중 동대문운동장 방면, 제일평화시장을 중심으로 도매상가를 둘러보자.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6번 출구에서도 동대문 새벽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자료협조 ㅣ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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