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캐슬린 에릭슨, 청림출판
영혼의 화가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다. 그는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극적인 삶을 살면서 강렬한 작품을 남겼다.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세계를 탁월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전개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반 고흐를 천재나 광인 또는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신앙을 버린 화가로 보는 일반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영적인 삶’이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신앙과 회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결정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반 고흐가 남긴 수많은 편지들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종교적인 믿음이 그의 일생을 매우 깊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편지는 성경 구절과 기도, 전도사 시절 이야기, 전통적 종교 사상과 근대적 사상을 두고 가족들과 논쟁을 벌여가며 갈등했던 내용, 반 고흐 예술의 기초를 이루는 종교적 개념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연구를 시작하고 보니 반 고흐의 삶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에서 그의 종교적 관심사는 별로 종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었다”고 말한다(28쪽)
저자에 따르면, 화가로서 반 고흐의 삶은 신앙생활을 했던 과거의 삶과 일치했다. 반 고흐는 특별히 두 권의 책을 손 가까이 두고 매일 읽었다. 하나는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고, 다른 하나는 존 버니언(1628-1688)이 쓴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이었다. “반 고흐에게는 <천로역정>과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안내자와 같은 책이었다. 그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지상의 삶은 시련과 고뇌로 가득 차 있으며, 천상의 예루살렘(Heavenly Jerusalem)에서 하나님과 재결합하는 궁극적인 영광을 위해 위험을 뚫고 함정을 피해 나아가는 일종의 여행길이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다”(88-89쪽).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녹아 있는 사상을 전적으로 수용했고 편지에서도 몇 번이나 그 책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반 고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자기 삶에 미친 영향을 동생 테오에게 설명하면서 ‘숭고한 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89쪽).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오는 종교적 금욕주의를 서슴없이 받아들였고 스스로에게 일체의 육체적 쾌락이나 안락을 허용하지 않았다.
“반 고흐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했고, 가진 것을 모두 내주었으며, 성 프란체스코 수사처럼 극심한 가난을 견디며 살았다. 금욕적인 생활과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헌신성 때문에 그는 석탄 캐는 광부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제도권 교회로 부터는 극단적인 반감을 샀다.”(33쪽).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거의 성자(聖者) 같은 삶을 산 반 고흐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