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서 가졌던 입견지에서 대전 견지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입견지는 15명이 넘는 대 성황을 이루었는데 일 순배 쯤 돌고 얼굴에 취기가 올라올 즈음하여 자연스럽게 주말 견지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3일 연휴도 있고 하니 15일 출발해서 1박 2일로 하는 방안이 제기됐고 사이버준님의 대전 아파트가 현재 비어있으므로 거기를 거처로 내어주겠다고 해 여러 사람이 동참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막상 약속된 날자가 다가오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모임을 주선하는 사람이 없어 엊그제 회원자격을 얻은 내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볼 겸 여울과 견지에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돼서 이번 대전권 번출이 이루어졌다.
우리의 번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견지터 상보를 안내해 주신 양반 권영대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보조댐을 둘러보시고 일부러 지수리 까지 다녀오셔서 현지 상황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집과정에 학생회원이 같이 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사고의 위험도 있고 주로 어른들이 모이는 장소여서 정중히 거절했다. 나도 철모르는 고삼짜리 아들이 있는 입장에서 부모와 동행하는 경우도 아닌데 미성년자를 그런 자리에 함께 데리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니 많이 상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시기님은 댁에서 곧바로 출발하셨고 벽오동님과 하늘구름님은 나와 함께 우리 집에서 만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연휴의 시작이어서 15일 도로는 조금 막히는 편이었지만 10시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오후 한시 반경에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톨게이트에는 최프로님이 우리의 길안내를 위하여 일부러 나와 주셨다. 모두들 보통 정성이 아니다. 아무리 삭막한 인터넷 세상이라지만 시골 사랑방에서 농익어가는 막걸리마냥 걸쭉한 인정미가 마음 깊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최프로님의 안내를 받아 거처문제(아파트 키 수령)를 해결한 후 보조댐으로 향했다. 보조댐은 모든 수문을 개방하여 물이 불어나 우리가 들어설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도저히 낚시를 드리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보우트 타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음과 물살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거시기님이 다른 포인트를 찾아가자며 일어섰고 우리는 모두 따라 나섰지만 평상시 눈불개 밭이라던 장소는 물이 넘쳐 도저히 낚시를 드리울 형편이 못되었다. 어디에고 우리가 들어설만한 곳은 없었다.
보조댐으로 흘러드는 도랑 저만치 눈불개가 유유자적하자 그걸 잡는다며 하늘구름과 벽오동이 씨름을 벌이는 사이 나는 다리 밑에서 피라미라도 건질 요량으로 낚싯줄을 드리웠지만 물 흐름이 전혀 없다보니 바늘을 흘릴 수 없다. 장마 속에 쏟아진 햇살은 우리를 땀범벅이 되도록 만들었다.
저녁에 대전 식구들도 온다는데 매운탕을 제대로 끓이려면 피라미 몇 수라도 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발길을 돌려 보조댐 아래로 흘러드는 작은 개천에 가기로 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어서 비교적 물도 깨끗했다.
낚시를 드리우자 곧바로 갈견이가 올랐다. 이어서 한 마리 더 올렸는데 내 밑에서 낚시를 드리운 하늘구름과 벽오동 덕인지 이후에는 아예 입질이 없다. 하지만 벽오동과 하늘구름이 잡아 올린 피라미가 30수 가까이 되어 매운탕 거리로 삼을 만 했다. 벌써 날이 어둑해 와 시간을 보니 저녁 8시다.
둔산동 아파트에 도착해 매운탕을 끓이는데 대전 식구가 많이 올 것을 예상해 냄비에 물을 너무 많이 부었더니 피라미가 동동동 헤엄을 치는 수준이다. 마눌이 정성스레 준비해 준 매운탕 양념과 라면을 넣고 함께 삶아 내었다. 매운탕 맛이 영 불안했지만 남자가 하는 음식솜씨가 다 그런 것 아니냐며 소주잔과 더불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속속 대전 식구들이 들어서시는데 최프로님이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다른 한 손은 귀여운 아들 손을 잡은 채 들어섰다. 조나단님과 덕이님이 시원한 수박을 한 통씩 들고 들어섰고 양반 선배님은 중국 명주를, 개털선배님은 와인을 한 병 들고 오셔서 축복의 장을 만들었다.
사실 낯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무슨 할말이 그리 많겠는가! 그런데 견지인이 모이는 자리에는 견지 이야기가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군대이야기 보다도 길어지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엊그제 회원가입 한데다가 견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도 없으므로 귀동냥만 하는 입장이지만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다양한 삶을 만나 즐겁다. 새벽 두 시 반경에 술잔을 내려놓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부지런한 하늘구름의 기상나팔을 시발로 대충 짐을 정리한 후 제 2 라운드 견지 여정에 올랐다. 서울에는 폭우가 내려 난리가 난 모양이지만 대전은 아직 구름만 있을 뿐이다. 보조댐 상황은 어제와 같이 오늘 아침도 엉망이다. 그냥 서울로 올라가려니 어제 저녁에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덕이님 왈 대전 사람들은 견지 가는 것을 무슨 산보 나가듯 한다고 했다. 조나단님은 한 술 더 떠 직장, 집, 차 안에 늘 덕이를 상비하고 있다가 길가다가도 가끔 물에 들어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우리는 벼르고 별러서야 마련하는 자리니만큼 보조댐 상황이 어렵다고 그냥 돌아설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제 양반 선배님 제안도 있고 해서 우리는 지수리로 발길을 돌렸다.
지수리에 도착하니 9시 가까이 되었다. 몇 사람이 먼저 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서울과는 영 딴판으로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은 있으되 해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오히려 견지하기에는 딱 좋다. 아침으로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입수하자는 제안에 하늘구름이 고개를 젓는다. 한마디로 밥보다는 견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벽오동은 어제의 과음으로 오로지 잠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하늘구름과 둘이 나란히 서서 낚싯줄을 흘렸다. 넣자마다 끄리 새끼가 올라온다. 이어서 피라미 갈견이 따위가 올라오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피라미에 지친 하늘구름이 큰 놈을 한번 건져볼 요량으로 자리를 옮기며 시도를 해 보았지만 큰 놈들은 영리해 장마철 큰물에 대피하고 있는지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으나마 끄리가 걸려들면서 손맛의 무게를 더했다. 아홉시에 입수해서 그렇게 피라미를 잡으며 오후 3시까지 무려 6시간을 아침, 점심 모두 굶은 채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매 따라 여울물이 점점 불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강물은 갑자기 불어난다는 이야기가 생각 나 우선 차부터 빼는 게 좋겠다 싶어 차를 강둑으로 올려놓고 매운탕 거리를 다듬었다. 거의 마무리가 되는 시점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른 차에 올라 그 때부터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치고 빠지기 식 탈출이 시작되었다.
비가 억수같이 몰아치고 있었으므로 잘못하면 고속도로 진입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워낙 심한 폭우이다 보니 벌써 도로 곳곳에 물이 차 있다. 옥천 IC에 올라 우선 마눌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7시경이면 도착될 것 같으니 매운탕 끓일 준비를 해 달라고 했다.
폭우도 쏟아지고 길도 막히고 했지만 7시 10분경에 서울에 도착해 짐을 정리한 후 하늘구름, 벽오동과 함께 우리 집에 들어가 저녁을 같이 먹었다. 따끈한 매운탕에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 사람들 저녁 먹고 가다가 졸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워낙 심한 피로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비 오는 이틀 동안 다른 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지만 나는 견지를 즐기면서 정말 행복한 연휴를 보낸 것 같다.
아직 난 대물을 향한 커다란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비록 피라미를 낚아도 산과 강과 더불어 한데 어우러져 한 시름 흘려보내는 그 순간이 정말 좋다. 회사에서 내가 해결해야할 골치 아픈 과제들을 흘려보낸 자리가 시퍼렇다. 모든 견지인의 가슴에 담긴 힘들고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느라 그렇게 강물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나 보다.
첫댓글 아정말 드라마의 한장면을 연상케합니다 글도아주실감나게 잘올리셨구요 오래토록 기억에남을것갔습니다 .........
성씨가 저와 같군요. 저는 낚시 조자를 씁니다. ㅋㅋㅋㅋ 농담입니다. 본은 한양입니다. 조행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추억만드셧네요. 항상 대전분들이 부럼네요.잘읽고 갑니다.
산동네만 사시지 마시고 큰 밭에도 내려오세요
견지에대한 정열만큼 조행기의 감칠맛도 대단합니다. 선배님! 낚시를 하다보면 밥을 거르기가 다반사입니다.ㅎㅎㅎ 도박을 끊게 하려면 낚시를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이겠지요!. 이것저것 다해봐도 낚시만큼 나를 잊게 만들고 머리를 비워주는 취미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선배님 말씀처럼 그래서 강물이 시퍼런가 봅니다. 견지꾼들 힘들고 아픈 맘을 쓸어내리느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차안에서 최프로님 이야기 많이 했습니다. 거시기, 아까 쪽지 나눈 것 절대로 너무 자주 바르지 마세요. 너무 자주 바르면 부작용 생깁니다. 4일 정도 지나서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한번 더 바르세요.
토요일날 먹은 청국장집 꿀 맛이였슴니다..다음엔 어케 거시기혀야 할텐데..ㅋㅋ
벽선배님! 담에 꼭 대전에 또 오세요! 그땐 꼭 거시기허죠! 근데 우리 거시기를 거시기님이 아시려나!!ㅎㅎ
어느 조행기보다 뜻깊은 글이네요!! 아침,점심 굶어가면서 견지하는 마음... 이해가 갑니다!! 좋음 추억이 되실듯합니다!!
아시는 분만 아시겠죠? 황작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
마치 제가 그 자리에 같이 한 것 마냥 기분이 우쭐해 집니다. 하나의 공통분모인 견지를 통해 이렇듯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견지인들의 기쁨 중 하나 겠지요. 잘 보았습니다.
아까 답글을 달았는데 어디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지니 하나를 보고도 열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견지에의 굳은 의지!!!! 좋습니다. 날씨탓에 견지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로 정황이 없어 많이 소홀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날씨가 심란하고 연락도 없어 바쁘게 올라갔나보다 했는데 지수리에서 쫄쫄 굶고 있었다니...하이고 불쌍들 하셔라.ㅜㅜ 전화나 해볼껄.. 있는줄 알았으면 김밥이라도 챙겨서 달려갔을텐데...지송함다. 그래도 만나서 한 잔 하면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좋은 기회 다시 한 번 갖기를 희망하며...^*^
너무 감사했습니다. 날씨는 물론 현지답사까지 너무 상세하게 상보를 보내주셔서 즐거운 견지를 하고 갈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 아니었으면 보조댐만 보고는 지수리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지수리에 도착하니 1~2시간 내에 비가 쏟아져 내릴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왕 왔으니 비오기 전에 스침이라도 해보고 비가 내리면 밥을 먹자고 했던것인데 예상보다 비가 늦게 내리고 말았습니다. ~~ ㅎㅎ
선배님!! 전 그날 굶어 죽는줄 알았씀니다..ㅎㅎ잠자는사람 새벽에 깨워서 차에싣고는(뒷자석에서 취침) 길안내하라고 깨우고 아침도 안먹구 물에들어가서 나오질 안씀니다 차 뒤져서 과자부스러기 오징어포로 허기때우고 두분하여튼 못 말림니다..ㅋㅋ
멀리서 오셨는데 손님접대도 제데로 못하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겉보기에도 술 좋아하시는 것 같았는데 술대접이 소홀해 미안합니다. 마침 정육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삼겹살을 구하지 못해 안주거리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대전 물정이 어둡다보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어요. 나는 같잖은 매운탕 끓인다고 정신 없었구요. 다음에 구름과 계곡선배님하고 다시 만나 입견지 제대로 한번 하시죠.
jonadan님 눈볼게 우글우글 거리는곳 나두 한번만 델꼬가줘여..
다음날 손맛을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 제대로된 조행을 기대해 봅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선배님 아니었으면 매운탕도 꽝일뻔 했습니다. 그나마 피라미 터라도 가르쳐주시는 바람에 강물에 목욕하듯 피라미라도 몇마리 띄우지 않았습니까? 여러모로 도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선배님 밤늦게 올라가셨는데.걱정했씀니다.
갈겨니 한수면 그동안의 손떨림에서 벗어날수 있으려나~~~~허허
첫 날은 갈겨니 두수 했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새끼 끄리 부터 쉬리까지 100수는 한 것 같습니다. 지금 수전증으로 고생중입니다.
혼자다니면 약속때문에 무리한 조행을 떠날일도 없지만, 그런 악조건속에서 겪게되는 추억거리도 없는것 같습니다. ^^ 다음 출조는 분명히 대박이실거라 예감합니다.^^
모처럼 민심수습기간인데 밤늦게까지 함께해줘서 고마웠씀니다..
폭풍 전야의 고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스침질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큰 물고기만 대박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작지만 풍요로와서 정말 괜찮았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하며 견지인의 대들보 역할에 충실하신 덕이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의 마지막 글귀가 정말 명언이 아닐수 없습니다, 제가 여과를 즐기고 취미를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다시한번 되세겨봅니다.......[[아직 난 대물을 향한 커다란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비록 피라미를 낚아도 산과 강과 더불어 한데 어우러져 한 시름 흘려보내는 그 순간이 정말 좋다. 회사에서 내가 해결해야할 골치 아픈 과제들을 흘려보낸 자리가 시퍼렇다. 모든 견지인의 가슴에 담긴 힘들고 아픈 마음을 쓸어내리느라 그렇게 강물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나 보다]]
조행기지만 의미없이 낚시 이야기만 하면 재미 없잖아요. 자연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의미있게 읽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굼벵이 선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내용의 일기장을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다음번엔 저도 함께 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지금도 일기를 씁니다. 아침 5시 30분이면 기상해서 한시간 10분 정도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일기체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고기도 빈속으로 몰려 댕기다가 견지인을 기다려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급반 어른들도 동심 그 자체네요 ㅋㅋ 조행기 즐감합니다. 시퍼런 강물에 다리를 풀고 싶습니다
인생은 어느날 문득 예상치도 않았던 대물이 물려주는 즐거움이 있어 살만 한 것 아닌가요? 굶주린 물고기를 기대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