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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오랑중령 추모사업추진위원으로 모십니다.
■ 참여기간 : 12월 12일까지 1,212인을 모시며 계좌입금 및 인적사항이
확인될 수 있도록 연락바랍니다.
■ 참여방법 : 희망자는 추진위원 성금 1만원을 아래의 계좌로 입금하신 후
인적사항 (성명, 전화번호, 메일주소, 입금액)을 전자우편
yongky_kr@hanmail.net으로 꼭 통보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 880601-01-119544 (예금주:김용환)
*농 협 : 217033-51-004243 (예금주:김용환)
12. 12반란의 참 군인! 故 김오랑 중령 추모사업회
추모사업추진단장 : 김용환(010-8420-9641)
추진위원 : 김준철(010-7273-3519)
(물결님)故 김 오 랑 중령 추모식을 기다리며
12.12 쿠데타를 기억하십니까?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을 위해서라면 국가의 사직이며 민족의 안위 따위야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전두환과 추종 정치군인들의 반역, 헌정이 유린당하고 역사가 배반의 피에 조롱당하며 거꾸러져야 했던 그해 1979년, 12.12 쿠데타를 기억하십니까?
참군인 故 김오랑중령을 기억하십니까?
이미 하루 전부터 자신에게 닥쳐올 피의 잔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장반역도들의 무차별 총기난사에 맞서 국가와 민족과 직속상관을 위해 결연히 참군인의 길을 걸어간 그리운 그 이름 故 김오랑중령을 기억하십니까?
12.12 쿠데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소령이 떠나고, 통탄할 비극으로 눈마저 실명한 채 오열하던 신혼의 사랑하던 아내도 의문의 죽음으로 떠나고, 부모 형제들과 그가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직속상관 정병주특전사령관마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채 한을 안고 그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정의가 불의에 짓밟혔던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불의가 호의호식 할 때, 정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마땅한 역사적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수여합니다.
우연한 죽음이 아닙니다. 다시는 이런 반역의 음모가 발호치 않도록 온 몸으로 산화한 장렬한 희생이었습니다. 국가와 군이 나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최고훈장 추서를 통해 명예회복과 추상같은 교훈으로 새겼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해 수치와 분노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만 갑니다. 이에 온 국민의 이름으로 가장 큰 훈장을 수여하고자 합니다. 금년 12월 12일 28주기 추모식과 함께 김오랑추모사업회는 앞으로 김오랑중령에게 국민 모두의 애절한 사랑을 녹여 참군인평화상을 훈장과 함께 수여할 예정입니다.
김오랑추모사업추진위원에 동참해 주십시오.
추모사업회에서는 상징적으로 1212명 추진위원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명예로운 참 군인이 있습니다. 그 명예가 뒤늦게나마 빛남으로써 몇몇 정치군인들의 추악한 발자취로 땅에 떨어졌던 대한민국 국군의 자긍심을 다시 세우고, 미래 후배군인들의 표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
(박무님)김오랑중령은 누구인가?
육사 25기였던 김오랑 중령은 79년 정병주 특정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다. 동기생 중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 중령은 일찌감치 비서실장직에 오르면서 장래가 촉망됐던 군인이었다. 그는 신군부에 의해 12.12 사태에 가담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끝까지 뿌리치며 상관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살신상관 보호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고 있다. 79년 12월 13일 새벽 0시 15분께. 중무장을 한 군인 10여명이 성남에 위치한 특전사령관실로 쳐들어 왔다. 맨 앞에서 인솔하는 사람은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의 지시를 받은 3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 김 소령 육사 선배였던 박 중령은 김 소령과는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절친했던 사이였다. 박 중령은 사령관실로 통하는 비서실에 도착한 후 부하들에게 "갈겨"라며 명령을 한 후 출입문에 집중 사격을 가했다. 문고리가 떨어져 나가자 출입문이 열렸다. 김 소령은 권총으로 응사를 하면서 사령관실 안쪽에 있는 내실 쪽으로 밀려났다. 그곳에서 소지하고 있던 실탄을 모두 쏘며 저항했다.
그러나 반란군의 집중 총격을 받은 김 소령은 배, 허벅지, 등에 M16 실탄 6발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정 소장은 왼쪽 팔에 총상을 당했다. 김 소령은 반란군으로부터 직속상관이 체포되는 것을 막으려 끝까지 항전하다 수적으로 우세한 반란군에 사살당한 것이다. 신군부 총탄에 맞아 사망한 김 소령은 부대 뒷산에 묻혔다가 80년 2월 육사 25기 동기들의 항의와 노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김 중령의 장조카 김영진씨는 그날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삼촌의 죽음 이후 온 집안이 풍비박산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81년에는 비명에 간 막내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김 중령의어머니가 눈도 감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고 82년에는 조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한 삼촌마저세상을 떠났다. 91년에는 충격 때문에 실명한 김 중령의 부인도 자신의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졌다(타살의혹) 김영진씨는 숨진 삼촌이 90년에 중령으로 추서됐지만 최소한의 명예회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
(들녁소리님)故 김오랑 중령 추모 유감
이미 28년 전 1979년 12월 12일은 그 사건이 긍정 적이던 부정적이던 격동의 민족사에서 잊을 수 없는 큰 획을 큰 사건이었음을 부정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1979년 10. 26. 사태로 18년간 유지되어 오던 박 정희 군사 독재정권이 종결되고 이른바 서울의 봄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 하는 가운데 이러한 인류사적 기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반동적 사건이 이른바 신군부에 의해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면서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해서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자신을 산화한 김 오랑 중령의 애국적인 행위를 보면서 뜻 있는 인사들은 식민지 노예사회의 사대 매판이 지배 하는 전면적 절망 상태에서나마 일루의 희망을 발견 하게 되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추모식은 12.12. 오후 2시에 동작동 국립묘지 동편 29번 묘역 한구석에 자리한 “육군 중령 김 오랑의 묘”앞에서 조촐하게 진행 될 예정이다. 추모식은 일산의 김용환(추모사업 회장)의 집전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난해 추모식에는 제주로 고인의 조카 되신다는 김 영진(51세)씨와 그분의 자제되는 김 명주군(24세)이 분향재배 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고인의 군 선배 되신다는 김 광해(바른사회만들기운동본부 대표 총재)님과 박 흥식(부정부패추방실천 시민회 상임 대표)님의 헌화에 이어서 평화재향군인회(광주 3. 부산 2. 경기4) 회원들의 헌화로 간단히 끝이 났었다.
허나 올해는 더욱 조용하게 치루어 질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부패와 당파세상이 대선이라는 진흙탕 잔치에 정신이 없는 상황에 그 누가 이 초라한 정의를 기억하려 하겠는가?
28년이라! 그 기간은 김오랑을 향한 기억의 가는 끈을 놓지 않았던 동지에게는 어둠과 고통의 세월이 였고, 애써 침묵하고 외면하였던 양심들은 개인의 영달과 안위만을 쫓았던 소인배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12. 12사태와 지난 28년의 기억이 찬란한 영광으로 기억하고 보상받는 이가 있으니 오장육부가 뒤틀리지 않을 수 없다.
강 재구 소령이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터지는 수류탄을 온몸으로 감싸고 살신성인 한 것이나 김 오랑 중령이 부대의 모든 간부들이 반란세력화 되었을 때, 상급자인 특전사령관(정병주)을 위하여 반란세력에 기꺼히 목숨을 내던진 것은 창군 이래 대한민국 국군의 양대 귀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강 재구 소령의 살신성인은 단순히 인도주의적 발상이었다 한다면 김 오랑 중령의 충성심은 단순히 상관만을 엄호한 것을 지나 국가체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본연의 군인정신의 발로로 보다 차원 높은 것으로 이해된다 할 것이다.
창군 이래 군부 내의 하극상 사건이 4,000 여건이 넘어서 군부의 지도 이념이 위험 수위를 이미 넘었고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져 공교육이 무너져 가고 있는 마당에 수구보수 세력은 전시작전권 환수 자체까지를 본능적으로 반대하고 뉴 라이트임을 자처하는 분들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합리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어이없는 현실에 어리둥절하고 만다.
독재자는 이미 갔고 절차상 민주주의는 상당히 진전 되었음에도 독제가 남긴 체제는 그대로 엄존하면서 이사회 구석구석을 구태의연하게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고 이에 종사해온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조소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사회풍조에서 또 다시 절망 하게 된다.
2007. 11. 26
첫댓글 김오랑추모사업회는 www.gopcorea.co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5. 18의 길목이 12.12였습니다. 그 길목에서 방관하여 길을 열어준 우리 모드는 무죄인가?
민처협회원님들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놈들,육군참모총장 상관을 체포하고 같은 군인을 살해하고 최대통령을 협박한 나쁜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