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다시 찾아간 바빌론 - F.스코트 피츠제랄드
눈을 떠보니 맑은 가을날이었다.
축구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날씨였다.
어제의 우울은 깨끗이 사라졌고,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에게도 호감이 갔다.
점심 때 그는 르 그랑 호텔의 식당에서 오노리어와 마주앉아 있었다.
샴페인이 딸린 저녁 식사나,
낮 2시부터 시작하여 희미하게 흐린 황혼 무렵에야 끝나는
긴 주식에 대한 화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곳은 그곳뿐이었다.
"자, 야채는 어때? 야채도 좀 먹어야지."
"네, 먹겠어요."
"시금치, 캐비지, 당근, 그리고 콩이 있는데?"
"캐비지를 먹겠어요."
"두 가지를 같이 먹는 게 어때?"
"점심엔 대개 한 가지만 먹어요."
급사는 유별나게 어린이를 좋아하는 척하고 있었다.
"참 귀여운 따님이시군요. 말하는 것도 꼭 프랑스 소녀 같군요."
"디저트는? 좀 있다가 할까?"
급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오노리어는 무엇을 기대하는 듯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뭘 하나요?"
"첫째는 상 토노레 가의 장난감 가게에 가서 네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사주마.
그 다음 암피일좌의 보드빌 연극을 구경하러 가자."
오노리어는 망설였다.
"보드빌은 좋지만 장난감 가게는 싫어요."
"왜지?"
"아빠가 이 인형을 가져왔잖아."
오노리어는 인형을 갖고 왔다.
"이것 말고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우린 이제 부자가 아니잖아요."
"그거야 옛날에도 부자가 아니었지. 허나 오늘은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사주마."
"그럼 좋아요"
하고 오노리어는 체념한 듯이 동의했다.
오노리어에게 엄마와 프랑스인 유모가 있었을 때는,
그는 엄격함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그러워지려고 짐짓 애쓰고 있었다.
그는 딸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엄마 노릇을 겸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딸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무었이든 다알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당신하고 가까이 지내고 싶습니다."
하고 그는 정중히 말했다.
"우선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프라그의 찰리J. 웨일즈라고 합니다."
"참, 아빠도!"
오노리어의 목소리가 웃음으로 변했다.
"당신 이름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고 그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자 오노리어도 얼른 자기의 배역을 맡았다.
"오노리어 웨일즈라고 합니다. 파리 팔라틴느입니다."
"기혼이십니까, 미혼이십니까?"
"아니,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미혼입니다."
그는 인형을 가리켰다.
"하지만, 부인에겐 어린애가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오노리어는 자기 애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싫었는지
인형을 가슴에다 꼭 갖다대고는 재빨리 생각해서 말했다.
"네, 전에 결혼했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남편은 죽었습니다."
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어린애 이름은 뭐라고 하지요?"
"시몬느입니다. 학교서 제일 친한 친구의 이름을 땄어요."
"그래, 네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니 참으로 기쁘다."
"이번 달에는 3등 했어요"
하고 오노리어는 자랑하며 말했다.
"엘시는..." 엘시는 오노리어의 사촌이었다.
"겨우 18등이고 리처드는 맨 꼴찌예요."
"넌 리처드와 엘시를 좋아하지, 안 그래?"
"그럼 좋아해요. 리처드는 정말 좋아요. 엘시도 싫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