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5]고려사람 ‘염경애’와 나의 모교母校 사랑
잠이 잘 오지 않는 늦은 밤, YOUTUBE처럼 좋은 친구가 어디 있을까? 유튜브에는 정말 없는 게 없는 것같다. ‘인강(인터넷 강의)’이라는 게 학생들에게 인기라더니, 이제 우리같은 ‘초로初老인생’들에게는 생활필수품처럼 끼고 살아야 하는 게 유튜브가 아닐까 싶다. 하도 공부할 것이 많아(도올 특강, 백낙청 공부길 등) 머리가 지근거릴 때도 많다. 그럴 땐 ‘짤’ 몇 개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그런데, 며칠 전 <KBS 역사스페셜-염경애 묘지명>이라는 99년 방영된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보았다. 진행자가 꼴도 보기 싫은 유인촌이었지만, 내용이 하도 흥미로워 끝까지 보며 여러 가지로 놀랐다.
지금껏 발굴된 고려시대 묘지명이 220여개라 한다. 묘지명은 망자亡者의 이름이나 가계, 행적 등을 글로 써 망자의 묘에 넣는 돌판을 이른다. 그중에 하나, 어느 여성의 묘지석에 대해 알게 됐는데, 여러 가지로 너무 인상적이었다. 47세(1146년)에 병으로 숨진 아내에 대해 남편(최루백)이 아내의 이름(염경애)을 밝히며 직접 쓴 것도 이색적이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을 마지막 구절에서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 감정이입이 될 정도로 울림이 있었다.
“병이 들어 그대가 세상을 떠나니 나의 한이 어떠하겠는가? 믿음으로써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겠노라. 아직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하는 일이 애석하다. 아들 딸이 있어 날아가는 기러기떼와 같으니 훗날 창성할 것이다” 아내와 함께 죽지 못하는 것은 6남매 아이들이 훗날 창성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묘지명으로나마 그 여성의 이름이 밝혀져 다행한 일이다(고려를 통틀어 모두 다섯 명으로, 두 개의 묘비명에 확인됐다. 경애의 동생은 정애貞愛, 딸의 이름은 귀강貴姜과 순강順姜, 친정어머니는 심지의沈志義. 조선시대에도 이름이 알려진 여성은 많지 않다. 난설헌은 허초희이고, 다산 정약용의 부인이름은 홍혜완이다. 사임당 이름이 신인선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무 근거가 없이 지어낸 이름인 것같다). 더구나 ‘경애瓊愛’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이름이지 않은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4남 2녀 자녀들의 이름이었다. 최단인崔端仁, 단의端義, 단례端禮, 단지端智, 귀강(여), 순강(여). 아니, 그 당시에도 ‘인의예지’가 사람이 갖춰져야 할 네 가지 덕목임을 깨닫고, 네 아들 이름에 한 자씩 붙였다는 게 자못 신기했다. 더구나 항열行列인 가운데 이름도 맹자孟子의 ‘사단지심四端之心(측은지심 인지단, 수오지심 의지단, 사양지심 예지단, 시비지심 지지단)’의 ‘실마리 단端’자이지 않은가. 고려 인종과 의종 연간인 1130-1140년대인데, 그때에도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우리의 유학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70년대 후반 모교 영어영문학과(76학번)에 우리보다 서너 살 많은 화교 출신 형의 이름이 생각났다. 언배의焉培義. 부모님이 수원에서 중국집을 크게 경영했는데, 자기는 둘째아들이라며 5형제 이름이 가운데 이름 배培자에 끝이름을 인,의,예,지,신이라고 차례로 지었다고 했다. 배인, 배의, 배례, 배지, 배신. 어쩌면 그렇게 아들만 다섯을 낳으리라고 생각하고 지은 것일까, 딸이었어도 그렇게 지었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또한 모교의 건학이념과 교시校是가 동시에 떠올랐다. 대한민국에 400여개의 대학이 있다지만, 건학이념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인 대학이 어디 있던가? 교시 ‘인의예지’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기본 덕목. 어질고(仁), 의롭고(義), 예의바르고(禮), 지혜로워야(智) 하거늘, 그러지 못한 인간망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믿을 신’을 더한 인의예지신을 일컬어, 다섯 가지 떳떳한 도리인 ‘오상五常’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기치인만 해도 그렇다. 자기를 끊임없는 수양으로 닦아,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과 같은 뜻이 아닌가. 나는 모교를 다니면서 늘 건학이념과 교시가 자랑스러웠다. 더구나 개교開校가 아닌 건학建學이라니? 올해로 건학 625년, 우리 입학한 해가 건학 578년이었으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겠는가. 600년이 넘은 대학이 전세계에 과연 몇 개나 될까?
또한 인의예지하면 떠오르는 게 한양도성의 사대문四大門 이름이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대문 이름을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소지문(북대문, 현재의 숙정문)의 ‘인의예지’에 보신각(조선 후기 작명)의 ‘신’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 」 에도 ‘어질고 의롭고 예절이 있고 믿음이 있음은 사람이 지닐 5가지 도리이니, 임금된 사람은 마땅히 정돈해 꾸며야 할 바이다(仁義禮智信 五常之道 王者所當修飾也)’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조선의 임금은 백성들에게 이 오상을 교화敎化시키려고 궁궐의 정문 이름에 모두 ‘교화 화化’자를 붙였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의 정문弘化門, 경희궁의 정문興化門, 덕수궁의 정문 인화문仁化門(지금은 사라졌지만)이 그렇지 않은가. 우매한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임금이 첫번째로 해야 할 미션이었던 것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朝鮮 500년의 로열 아카데미, 왕립대학교, 성균관成均館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은 모교 성균관대학교. 우리나라 지폐의 주인공들을 보자.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모교의 영원한 이사장이며, 5천원권의 이퇴계 선생은 총장을 세 번 역임했다. 1천원권의 이율곡 선생은 학생이었으며, 5만원권의 신사임당은 당연히 학부모이지 않은가. 한 나라의 지폐 4종의 주인공들이 모두 특정 대학의 인물들과 관계가 깊은 것만 보아도 모교가‘오래된 미래의 대학’이 분명하다. 묘지명에 쓰여진 어느 고려 여인의 네 아들 이름을 보고, 뜬금없이 모교 생각이 나 이 신새벽 졸문을 쓰다.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
부기: 고려 여인 염경애의 남편 최루백崔婁伯은 『고려사』「효우열전」에도 나오는 아주 독특한 문인이다. 최루백이 15살 때 수원 향리鄕吏였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이자, 아버지 원수를 갚고자 도끼로 호랑이를 때려 죽였다는 고려의 '공인된 효자'이다. 조선조 『삼강행실도』에 <루백포호婁伯捕虎>라는 그림까지 실려 있어, 우리에게 무한한 교훈을 준다. 이름까지 예쁜 아내 경애가 죽자, 같이 죽지 못해 미안해 하고 슬퍼하던 최루백은 곧바로 재혼하였고, 그후 50여년을 더 살며 벼슬이 정4품 한림학사翰林學士까지 올랐다한다. 출생연도는 모르나 사망연도를 보면 100세를 족히 넘긴 듯하니, 고려조 최고령 기록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