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Ⅰ』
- ▣모네▣대 피터 브뤼겔▣최초 여인상▣안중식▣쿠르베▣보치오니▣칸딘스키▣달리▣티에폴로▣카로▣쇠라▣카날레토▣카스파 프리드리히▣몬드리안▣푸생▣밀레비치▣고흐▣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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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 미술여행Ⅰ』 https://blog.naver.com/ohyh45/222422454248
①모네-인상:일출,②대 피터 브레겔-눈속의사냥꾼,③최초의 여인상,④안중식-백악춘효, ⑤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
⑥보치오니-도시가 일어나다,⑦칸딘스키-즉흥, ⑧달리-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⑨티에폴로-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⑩앤소니 카로-어떤 이른아침, ⑪노트르담대성당,⑫조르주 쇠라-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⑬카날레토-베니스 풍경,
⑭카스파 프리드리히-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 ⑮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6푸생-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17.미레비치-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 18.고흐-옥수수밭과 삼나무 19.뒤상-샘
『박일호의 미술여행Ⅱ』 https://blog.naver.com/ohyh45/222423766389
20.잭슨 폴록-가을리듬, 21.로버트 라우션버그-모노그램, 22.라파엘로-아테네 학당, 23.리처드 해밀턴-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24.산디 셔먼-무제(메릴린), 25.얀 반 아이크-지오반비
아르놀피니 부부의 혼인 서약, 26.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27.폴 고갱-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28.윌리엄 호가스-난잡한 술자리, 29. 라모스 왕 무덤 벽화, 30.콘스탄틴 브랑쿠시-뮤즈
31.도널드 저드-무제, 32.로댕-지옥문, 33.바넷 뉴먼-영웅적 숭고를 향하여, 34.피사로-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35.로베르 들로네-블레리오에 대한 경배, 36.조지프 코수스-하나 그리고 세 의자, 37.프란츠 마르크-작은 노란 말들,
38.조슈아 레이놀즈-비극의 뮤즈로 분장한 시돈즈 부인,
『박일호의 미술여행Ⅲ』 https://blog.naver.com/ohyh45/222424929912
39.존 밀레이-오필리어, 40.엘 그레코-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41.폴 세잔-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42.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이수스 전투, 43.외젠 들라크루아-사르다나팔로스의 죽음,
44.토머스 게인즈버러-시장으로 가는 마차, 45.오귀스트 르누아르-물랭 드 라 갈레트, 46.헨리 무어-누워 있는 여인상,
47.리처드 세라-9개의 고무벨트와 네온, 49.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성 마태의 소명, 50.모리스 드니-녹색 나무가있는풍경,
51.파블로 피카소-뮤즈, 52.바실리 칸딘스키-전투, 53.조르조네-태풍, 54.클로드 모네-파랑과 보라의 조화를 이룬 수련들,
55.에두아르 마네-풀밭 위의 점심식사, 56.조반니 볼로냐-사비니 여인의 강탈,
1.모네, ‘인상: 일출’ - 희망을 품으며···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르아브르, 아침 안개에 덮인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반짝이는 바다 한가운데 노를 저어 어딘가로 바삐 가는 한 척의 배가 있고, 붉게 물든 하늘과 그에 화답하는 듯한 수면 위의 붉은 그림자가 짝을 이룬다.
모네, ‘인상: 일출’
클로드 모네는 활기차게 깨어나는 이 아침의 장면을 거칠고 생략된 붓 자국으로 나타냈다. 구체적인 풍경이나 건물의 모습보다 해가 뜰 때의 시각적 인상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윤곽선과 형태감이 사라져서 멀리 보이는 바닷가 풍경이나 건물은 흔적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며,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색 간의 조화와 뉘앙스만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초의 인상주의 그림이며 인상주의란 명칭을 탄생시킨 작품으로 여겨지는 모네의 ‘인상: 일출’이다.
인상주의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19세기 말의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탄생한 예술사조였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그리고 생명과학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 변화에 주목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지만, 증기기관의 발명과 기계화로 인한 1차 산업혁명도 당시 사람의 생각과 감각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사람들이 직접 부딪치는 생활환경에 편안함과 여유를 갖게 해 주었고,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유행이나 생활환경도 빠르게 변해 나갔다.
인상주의자들이 시각적 인상을 위해서 그림의 주제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그 후의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미술가들은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그리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 윤곽선과 형태감에 매달렸던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창작방법으로 향하면서 미술의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2019년 새해의 첫 주말 아침이다. 모네의 ‘인상: 일출’ 그림을 보면서 모네와 인상주의에 의해서 새로운 미술의 길이 열린 것처럼 우리들의 새로운 한 해를 구상해 보면 어떨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모네의 『인상 : 일출 』-희망을 품으며·· / 세계일보, 2019. 1. 4.
2.대 피터 브뤼겔의 『눈속의 사냥꾼』 -설경이 그리운 1월
탁 트인 설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언덕 위에는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서는 사람이 있고, 그 옆의 사람은 농사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언덕 아래 있는 집 지붕 위도 눈으로 하얗게 덮였고, 꽁꽁 언 호수 위 에서 사람들이 낚시와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 옆 눈덮인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 멀리 보이는 산으로 향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가 마치 우리의 시선을 이끌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은 ‘사냥꾼의 귀가’로도 불리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대(大) 피터 브뤼겔의 겨울 풍경화이다. 아들도 같은 이름의 화가였기에 아버지 이름에는 대(大) 자를, 아들 이름에는 소(小) 자를 붙인다.
대 피터 브뤼겔 ‘눈속의 사냥꾼’
서양의 근대는 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됐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인간 중심의 세계에 관심을 두면서 문화예술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이뤘다면, 종교는 종교개혁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제도와 의식보다 인간 개인의 신앙생활을 강조한 점에서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정신을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과 신교와 구교의 분리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신교 교회가 교회 안의 회화나 조각을 우상숭배로 금지했기에 신교권 국가 미술가들은 가장 큰 수입원인 교회의 미술작품이란 일거리를 잃게 됐다. 신교 교회가 반대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해야만 했고, 그중 하나가 풍속화였다.
브뤼겔은 구교권 국가의 장식적인 미술과 달리 일상적인 풍경을 그려 관심을 끌었다. 표현 방식에서도 브뤼겔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물을 크고 또렷하게 나타냈고, 멀리 보이는 산과 마을을 작고 흐릿하게 나타냈다. 브뤼겔의 풍속화를 시작으로 북유럽에서 초상화, 풍경화, 삽화 등 다양한 미술작품이 펼쳐졌다.
미세먼지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눈이라도 내려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면 답답함이 덜하려나. 설경이 그리운 1월 아침 브뤼겔의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2.대 피터 브뤼겔 ‘눈속의 사냥꾼’ -설경이 그리운 1월·· / 세계일보, 2019. 1. 18.
3.풍요의 소망 담은 인류 최초의 여인상
다시 시작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 설을 보내고 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복귀했다. 1월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지만, 그동안 소원했던 친지나 형제와의 반갑고 따뜻한 만남과 재충전을 거친 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음을 다지고 있다.
미술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인류 최초의 여인상이라고 말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사진)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발견됐고, 기원전 20000년쯤 작품으로 추정되는 9.7㎝의 아주 작은 여인상이다.
뚱뚱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이 여인상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얼굴 형태도 구분이 없고, 손발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가슴과 배 부분만이 계란 형태로 부풀려 강조될 뿐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이나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풍요와 다산으로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믿음과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동굴 벽화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였다. 동굴 속 들소 그림이 현실의 들소와 똑같은 힘을 갖는다고 보았고, 들소 그림을 향해 돌과 창을 던지면서 위협적인 야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했으며, 사냥에 나갔을 때 그 동물이 쉽게 굴복하기를 빌었다. 이렇게 원시시대 사람은 현실 세계와 미술작품의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연속된 것으로 보았다.
이미지가 현실의 대상과 똑같은 힘을 갖는다는 생각은 지금 우리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 누군가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날카로운 바늘로 찌른다고 상상해 볼 때, 대부분의 사람이 섬뜩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진 속 이미지가 현실의 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무언지 모를 믿음에 이끌려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가 아직도 이미지를 현실의 대체물로 생각하는 원시적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달된 지적인 능력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지만, 원시시대 사람은 그 믿음에 보다 강하게 매달렸으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그런 믿음과 바람을 담아서 표현했다.
새로운 시작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잘되리라는 믿음일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믿음이 중요한 것은 예술이나 일상생활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믿음과 바람의 간절함이 미술작품의 표현으로 나타났듯이 우리의 새로운 시작도 믿음과 바람에서 출발해 보자. 믿는 만큼 현실의 힘도 나타나지 않을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3.풍요의 소망 담은 인류 최초의 여인상 / 세계일보, 2019. 2. 8.
4.안중식의 『백악춘효』 - 망국의 비애감
안중식 ‘백악춘효’
심전 안중식은 조선시대 마지막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1910년대 우리 전통화단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이다. ‘백악춘효’는 그가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지 5년 후인 1915년에 그린 그림이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는 백악산(지금의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아래로 이른 아침의 안개가 경복궁 위를 덮고 있고, 궁궐이 숲 속에 파묻힌 모습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이 굳게 닫혀 있으며, 지금 서울의 중심부 역할을 하는 활기찬 광장은 텅 빈 채로 적막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힘을 잃은 해태 상만이 그 광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안중식이 나라 잃은 슬픔을 비감에 찬 구도와 섬세한 필치로 풀어 놓아 그림 안의 모든 것이 망국의 한을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그림의 다른 측면도 담았는데, 미점준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북악산의 명암과 입체감을 묘사했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북악산, 경복궁과 숲, 광화문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원근관계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관념적 형식 위주의 전통 산수화와 달리 전통적 방식과 실경의 조화를 시도한 근대적 경향의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안중식은 현실에 대한 시대의식이 반영된 우리 미술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그림과 후학 양성으로 망국의 한을 달랬던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이 1920년대 이후 우리 미술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곧 3·1절이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우리 조상들이 만세를 외쳤던 그날이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일본은 대중문화와 경제적인 면에서 가까운 이웃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풀리지 않는 마음의 앙금이 있는 나라이다.
최근 몇몇 사건이 우리를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겠지만 3월 한 달만큼 우리 조상의 아팠던 마음도 되새겨 보아야겠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4.안중식 『백악춘효』 - 망국의 비애감 / 세계일보, 2019. 2. 22.
5.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1849~1850) - 중립적인 시각
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 1849~1850,oil on canvas,315 X663 cm, 파리, 오르세미술관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사실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인 구스타브 쿠르베가 남긴 말이다.
그는 작품의 창작이란 감정이나 상상력을 통한 미화보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객관적으로 나타내려 했으며, 지식인이나 귀족을 대상으로 했던 추상적인 미의 이념보다 구체적인 현실의 묘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그의 작품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쿠르베는 자신의 예술에 관한 입장을 압축적으로 나타냈다. 화면 왼쪽에는 상인, 창녀, 노동자, 거리의 악사, 평범한 여인 등 당시 하층민의 모습을 나타냈다.
반대편 화면 오른쪽에는 이들을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시 상류층을 그렸는데, 보들레르 같은 지식인과 샹플뢰리, 브뤼아스 같은 비평가와 화상들이 있다.
이것으로 산업혁명 이후 사회적·경제적으로 양분된 계층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려 했다. 화면 중앙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쿠르베가 보이는데, 자기 그림이 양분된 사회계층의 중간적 위치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한다는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자신의 모습 옆에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벌거벗은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을 암시하는 자연풍경과 누드 여인을 그려 넣어 이 그림의 중립적인 시각을 강조했다.
어느 시대든 어느 사회든 대립과 갈등은 있었다. 원인도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의견 차이, 사회 문화적 취향의 차이 등 다양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느냐에 따라 그 시대나 사회가 발전하기도 하고 침체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 우리도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다.
문제는 이 갈등을 공존과 조화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중립적 시각의 중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끼리끼리 문화가 극복되고, 갈등을 넘어 보다 발전된 미래로 향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5.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1849~1850) - 중립적인 시각 / 세계일보, 2019. 3. 8.
6.움베르토 보치오니 『도시가 일어나다』 - 역동의 미래주의
움베르토 보치오니 ‘도시가 일어나다’
미래란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힘들고 어두웠던 과거를 뒤로한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고, 새로운 일을 펼쳐 나간다는 각오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미술에서도 미래란 명칭을 붙인 미래주의라는 예술사조가 있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술, 문학, 연극, 음악 등에 걸쳐 나타났고, 특히 미술에서는 기계문명 시대에 적합한 양식을 시도했다.
미래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움베르토 보치오니는 새로운 시대의 미술이 기계나 자동차의 활력적인 힘이나 속도, 그리고 역동적인 운동성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주관적인 표현이나 전통적인 공간구성법을 피하고,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았다.
그는 ‘도시가 일어나다’라는 작품에서 새로운 도시 건설로 부산하게 들떠 있는 밀라노의 활기찬 느낌을 나타냈다. 원경의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광경은 색선의 분할주의 방식을 사용해서 나타냈다.
중경에는 근육질의 흰색 붉은색 말들이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꿈틀거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소용돌이 꼴의 색선이 아주 빠르게 뒤섞이고 겹쳐 흐르는 것처럼 나타내서 도시의 활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소용돌이 꼴의 색선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손을 뻗치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하는 사람의 모습을 전경에 나타냈다.
새로운 도시의 활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라는 소재를 결합해서 활기참과 역동성으로 가득한 도시의 미래를 표현한 작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먼지의 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도시의 활기참이 미세먼지 안에 갇힌 느낌이라서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러던 중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내리고, 파란 하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사이로 산수유 꽃이 노랗게 빛을 발하고, 초록색 새싹이 돋아나는 나무의 모습을 보니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을 실감하게 한다. 이번 주말에도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고 싶고, 미래를 여는 힘찬 이야기만 들리기를 기대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6.움베르토 보치오니 『도시가 일어나다』 - 역동의 미래주의 / 세계일보, 2019. 3. 22.
7.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봄을 시샘하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있다. 캠퍼스에 꽃이 만발하고, 제법 모양을 갖춘 녹색 나뭇잎이 자리를 잡는다. 생명력이 넘치는 4월의 자연 앞에서 우리 삶의 활기참을 생각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삶의 활기참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특정한 장면 중 하나를 택해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서 뒤엉켜 소리 지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에서 삶의 활기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운동장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모든 장면을 보고 난 후, 사람의 옷과 형태 그리고 움직임의 동선과 분위기 자체를 선, 형태, 색채의 리듬과 움직임으로 나타내려고 할 수도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 ‘즉흥’은 세 번째 방법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채로운 선과 색채가 뒤엉키고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화면 전체에서 활기참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생명력 넘치는 삶의 모든 장면을 보편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칸딘스키는 예술이란 삶의 특정한 순간이 아닌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모습을 나타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미술이 구상미술보다 더 보편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삶 속의 한 장면만을 묘사하는 구상미술과는 달리 삶의 모든 장면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또 칸딘스키는 삶의 리듬감과 생명력이 이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감정으로 느껴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에 바탕을 둔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은 감정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따뜻한 추상’으로도 불린다.
대통령 앞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얘기하던 중 울음을 터뜨린 청년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지금 서로 너무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변함없이 항상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자연을 보고 느끼며,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7.바실리 칸딘스키 『즉흥』 -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 / 세계일보, 2019. 4. 5.
8.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 다름이 수용되는 건강한 사회
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예술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까. 1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초현실주의에 답이 있다. 전쟁 후 거리에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이 즐비했다. 전쟁 후유증과 전사자로 인한 가족 파괴나 상실감도 극에 달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초현실’ 세계를 제시하려고 했다. 초현실주의자는 일상적 논리나 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난 곳에서 찾으려 했다. 우연한 사건이나 행동, 꿈의 세계 같이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에 주목했다.
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에는 두 가지 측면이 담겨 있다. 달리는 전쟁 후 피폐해진 현실을 모든 물체가 병균에 의해 부패되고 일그러진 것처럼 표현했다. 산 아래에 일그러진 여러 형상을 그려 넣어 현실 파괴적인 이미지를 나타냈다.
탁자 형태의 해변 위에 놓인 끊어진 끈과 천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기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유럽 사회를 전쟁으로 이끌어간 어처구니없는 이기심과 그로 인해 파괴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달리는 상상력을 발동시켜 흥미를 자아내는 이중적 이미지도 만들었다.
해변에 있는 거대한 과일 접시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과일 접시의 크기와 형태도 기괴하지만, 그것이 사람 얼굴의 환영처럼 보이게 한 이중적 이미지라서 더욱 의아하게 한다. 오른쪽 산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산의 능선을 따라가 보면, 개의 귀와 눈과 코의 형태가 나타난다. 구름 위에 떠있는 산의 구름다리는 개의 목줄이 된다.
이처럼 달리는 현실의 이미지 위에 환상적 이미지를 중첩시켜 이중적 의미로 읽히는 그림을 제작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방법으로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요즘 같으면 신문 보기가 두렵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는 사회 같아서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 넘쳐난다. 하나의 이미지가 두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와 다름이 수용되는 다양성의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8.살바도르 달리의 『해변에 나타난 얼굴의 환영』 - 다름이 수용되는 건강한 사회 / 세계일보, 2019. 4. 19.
9.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 착잡한 마음 씻어줄 월계관 주인공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태양과 이성의 신이며 궁술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이 작은 활을 가지고 노는 사랑의 신 큐피드에게 모욕을 주자 큐비드가 보복을 위해 두 개의 화살을 빼어 들었다. 하나는 이 화살에 맞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게 하는 황금 화살이고, 다른 하나는 납 화살로 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큐비드가 황금화살은 아폴론을 향해서 쏘았고, 납 화살은 물의 요정 다프네를 향해 쏘았다. 그러자 아폴론이 사랑에 눈 멀어 이성을 잃고 다프네를 정신없이 쫓아간다.
죽기보다도 싫은 다프네가 도망가면서 그의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우스에게 도움을 청하자, 페네우스가 그를 월계수 나무로 변하게 해주고 있다. 한쪽 다리는 이미 월계수나무 줄기가 됐고, 손가락에서는 잎이 솟아 나오고 있다. 다프네 아래에는 페네우스가 있고, 그 뒤에는 아폴론을 사랑에 빠지게 한 큐피드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로코코 화가인 티에폴로의 작품으로 다프네가 월계수 나무로 변하는 순간의 모습을 담았다. 하늘의 파란색이 선명하면서도 화려한 인상을 만들고, 아폴론과 다프네의 동작이나 비대칭적인 구도와 불균형적 형태들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빛의 묘사를 통한 밝은 대기 효과와 다채로운 색상을 통한 은은하면서 화사한 분위기가 우리를 그림 안으로 빨아들인다. 아폴론은 어떠했을까. 쫓아갔으나 이미 월계수 나무로 변한 다프네를 발견한 아폴론은 상심에 젖는다.
그리고 한탄하면서 자신이 못다 이룬 사랑을 월계수 나무가 대신하고 항상 푸른 모습으로 자신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연유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나 운동경기 승리자의 머리에는 월계관이 씌워지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정치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동물국회라고까지 말할까. 이번 주말에는 야구장에나 가야겠다. 함성과 박수 소리가 쏟아지는 그곳에는 불편하고 착잡한 우리 마음을 씻어 줄 월계관의 주인공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9.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 - 착잡한 마음 씻어줄 월계관 주인공은 / 세계일보, 2019. 5. 3.
10.앤소니 카로의 『어떤 이른아침』 - 관계와 균형의 미학
이 작품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이른 아침’이란 제목을 보고 그 내용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앤소니 카로가 서로 다른 물체의 형태를 살리고, 용접과 결합의 방법으로 만든 추상조각이다.
조각가 헨리 무어 밑에서 조수로 작업을 시작했던 카로는 처음에는 진흙으로 만든 인물상을 주로 제작했다. 1950년대 후반 이후 강철판 같은 재료를 용접해 구성하는 추상 조각을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향했다.
이 작품에서 카로는 관계와 균형을 강조했다. 수직적이며 수평적인 구조로 작품 안의 큰 틀을 만들고, 관계와 균형을 채워 넣었다. 왼쪽의 사각형 철판, 작품 전체를 가로 지르는 긴 철봉, 그 사이 H 형태의 물체, 그리고 비스듬히 세워진 철사 등이 서로 다른 각도로 만나면서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카로는 그것들이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힘과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게 했고, 그 위에 빨간색을 칠해 작품 전체의 조화와 통일성도 만들어냈다. 빨간색을 보고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카로가 더 강조한 것은 작품 안의 관계와 균형이다.
앤소니 카로의 ‘어떤 이른아침’.
또 다른 관계도 있다. 카로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인체조각과 달리 바닥과 작품을 매개하는 받침대가 없다. 인체조각의 받침대는 작품과 관람자의 거리를 설정하고, 작품으로써 인간의 신체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신체를 구분한다.
카로는 받침대를 없애고 작품을 바닥에 내려놓아 조각이 관람자에게 주었던 거리감을 없애려 했다. 작품 안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여 눈만이 아니라 신체를 통한 체험을 유도하고,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일체감도 만들어냈다.
우리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반가운 만남도 있고 화합도 있지만 갈등과 마찰도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의 절반을 넘기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의 모든 관계는 건강한지. 카로의 작품처럼 서로 멀어 보이는 모습에서 출발하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되물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0.앤소니 카로의 『어떤 이른아침』 - 관계와 균형의 미학 / 세계일보, 2019. 5. 17.
11.노트르담 대성당. - 망가진 노트르담 대성당의 교훈
많은 사람이 유럽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 파리이고, 그곳에서 반드시 한번 보고 오는 건축물이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그 성당이 지난 4월 화재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충격과 슬픔에 잠겼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3세기 교회 건축물로, 그 시대의 사회적·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세 후기에 도시가 발생하고 상업 및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현실주의적이며 감각적인 사고가 나타났다.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종교적인 장엄함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가 선호됐으며, 복잡한 양식이나 문양이 사용되기도 했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불신이 사라져 가면서 인간이지만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결합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성당 이름에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노트르담’이란 명칭이 붙게 된 이유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전 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대조를 이룬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피사 대성당은 육중한 돌벽과 돌기둥과 작은 창문이 특징이다. 마치 전투를 위한 요새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이 교회를 악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고딕 양식은 가느다란 기둥이나 철을 사용해서 넓어진 벽에 창문을 만들고, 그 위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사람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는 오색영롱한 빛을 통해 종교적인 신비감을 느끼고, 교회를 안식과 환희를 얻는 천상의 도시로 생각하게 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 맞추어 5년 내에 복원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우려의 의견도 나온다. 현대적인 계획안과 전통적 모습을 살리는 계획안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고, 파리 특유의 색이 된 크림색의 석회암을 구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어찌 됐든 옛날 모습이나 과거의 정신과 종교적 의미를 다시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한번 망가지면, 원래 모습은 물론 그 안의 정신성마저 흔들린다는 교훈을 생각하게 한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1.노트르담 대성당. - 망가진 노트르담 대성당의 교훈 / 세계일보, 2019. 5. 31.
12.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예술이든 현실이든 해답은 여러 가지
888년 인상주의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 선언’이 있었다. 쇠라는 인상주의의 색채 효과를 이어갔지만 과학적인 근거로 그림을 그리려 했다. 대표적 인상주의자인 모네의 색채분할법이 본능적으로 이뤄진다고 보고, 색채 분할이 과학적 이론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색조나 색의 대비와 보색 관계를 정밀하게 검토해서 나타내고, 채색에서도 색 점의 크기나 비중, 색으로 인한 구도상의 질서까지 고려하려 했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면, 형태에서 윤곽이 드러나고 거리감을 나타내는 구성도 볼 수 있다. 쇠라가 색 점을 계산적이며 조직적으로 사용해 형태감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전경 오른쪽의 여인과 남자에서 시작해 왼쪽의 반쯤 누운 남자가 있는 그룹을 거치고, 파라솔을 들고 앉은 여인과 소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지그재그식 구성으로 거리감도 만들어냈다. 그 구성이 계속 이어지며 강가의 인물과 멀리 수평선으로까지 시선을 이끌면서 화면 전체에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신인상주의가 나타났던 당시에는 과학적 낙관주의가 유행했다. 화학에서 원소주기율표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물질의 구성단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쇠라는 이런 과학적 업적에 고무돼 관찰된 장면을 단위 요소로 구성하는 그림의 공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색 점의 크기나 색채 사용법을 계산하고, 색조 조절로 형태와 거리감을 나타내는 시도를 통해서였다.
과연 쇠라의 그림이 공식처럼 효과를 발휘했을까. 만일 그랬으면, 더 이상의 새로운 그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쇠라와 다른 방법의 수많은 그림이 나타나고 있다. 쇠라의 그림이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냈지만, 미술의 공식이며 해답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세상일도 그럴 것 같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럿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나만 옳다는 주장만이 보일 때 생긴다. 그럴수록 자기를 접고 주변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2.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예술이든 현실이든 해답은 여러 가지 / 세계일보, 2019. 6. 14.
13.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베니스 풍경』 - 베니스에서 만나는 미술세계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베니스 풍경’
맑은 하늘 사이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푸른 바다 위에 배가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피서 철이 다가오는 이때쯤이면 그리워지는 광경이 ‘베니스 풍경’ 안에 담겨 있다. 이 그림은 안토니오 카날레토가 베니스의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린 것으로 ‘베두타’라고 불린다.
이탈리아어로 ‘전망’ ‘조망’을 뜻하는 용어인 베두타는 18세기경 귀족들의 여행 기념품으로 팔기 위해 그려진 풍경화이다. 도시 풍경이 아름다운 베니스에서 그려지기 시작했고, 풍경을 지형학적으로도 알아 볼 수 있게 세밀하게 나타냈다.
카날레토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종전의 풍경화처럼 인위적 규칙으로 다듬고 꾸미기보다 직접 체험한 풍경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타냈다.
바다 주변 건물은 지금의 베니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곤돌라가 서서히 물을 가르며 어디론가 떠나가고, 멀리 보이는 배가 곧 도착할 듯 배 위의 사람이 무척 분주해 보인다. 부둣가에 걸터앉은 이는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고 있다. 모두가 세밀하게 표현돼 마치 여행 기념품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공간 구성도 종전의 방식과 다르게 했다. 전체 풍경을 하나의 시점으로 모으는 원근법적 방식이 아니라 한 폭의 띠처럼 풍경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게 나타냈다. 넓고 탁 트인 하늘과 대기층이 그림의 반 이상을 차지해 시원한 느낌을 주고, 전경의 부두와 중경의 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꽉 짜인 화면 구성을 이루었다.
지금은 베니스에 이렇게 팔기 위한 그림은 없고, 대신 세계인이 주목하는 미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올해로 57회를 맞이했고,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이다.
이 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문제, 전쟁과 난민, 젠더와 인종의 문제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룬 전 세계 작가들의 예술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예술이 사회를 직접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문제의식을 던지고 공감을 자아낼 수는 있다. 유럽여행 계획이 있다면, 베니스에 들러 미술작품의 문제의식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2.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예술이든 현실이든 해답은 여러 가지 / 세계일보, 2019. 6. 28.
13.앤디 워홀 『캠벨 스프 깡통』(1962) - 대중문화의 힘
앤디 워홀 『캠벨 스프 깡통』,1962,oil on canvas,183 X254 cm.개인소장
대중사회의 특징은 모든 사람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똑같은 참여 기회를 갖는 것이다. 문화나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엘리트들이 문화를 독점하는 대신 대중사회에 걸맞은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문화형식이 힘을 발휘한다.
196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팝아트가 등장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 후 팝아트에 의해 순수미술과 대중문화라는 구분이 무너졌고,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이 일어났다.
‘캠벨 수프 깡통’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이 당시 대중문화의 현장인 뉴욕에서 발표해서 관심을 끈 작품이다. 워홀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프 깡통 포장지 디자인을 그대로 유화로 옮겨 그려서 자기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그것도 미술이냐는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워홀은 개의치 않았고, 진부하고 평범한 것을 소재로 계속 사용했고, 순수미술 이면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도전장을 들이밀었다. 똑같은 상품, 똑같은 옷, 똑같은 음식 등이 반복되는 지루한 동일성에 둘러싸인 대량생산사회를 풍자한다는 의도도 있었다.
워홀은 새로운 미술의 방향도 제시했다.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점에서다. 새롭게 이미지를 창조해서 보게 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이미지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때까지 순수미술에서 제외돼온 만화, 포스터, 상품광고 등의 대중문화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과 7일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방탄소년단(BTS)의 오사카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가뜩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심각한 지금이라 그 소식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틀간 10만명이 넘는 팬이 모여 떼창을 부르면서 일본 하늘에 K팝의 흔들리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한다.
대중문화가 정치와 경제의 벽을 허물고 사람을 감동시켰고, 워홀이 1960년대 미술계에 불러일으킨 변화 못지않은 쾌거를 이뤘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3.앤디 워홀 『캠벨 스프 깡통』(1962) - 대중문화의 힘 / 세계일보, 2019. 7. 12.
14,카스파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 - 자연에서 삶의 의지 고양을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는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바닷가에 수도사가 외로이 서있고, 그 앞으로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위협적인 자연 앞에서 수도사는 인간이 그저 작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는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한계를 느끼지만 대자연의 무한함에 대한 동경과 외경심도 갖게 된다는 것을 표현했다. 예술적 숭고미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미술작품에서 자연이 드러내는 가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화사하고 평온한 자연풍경을 보면서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낄 때 그때의 가치는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친 파도에 휩싸인 망망대해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산 앞에서도 만족감을 느낀다.
대자연을 처음 대할 때는 위협적이며 무시무시한 힘과 크기로 인해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생명감과 삶의 의지의 고양을 느낀다. 그럴 때 처음의 공포 감정이 찬탄과 경이로움과 감동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자연의 또 다른 가치가 숭고다.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
낭만주의는 예술을 과학처럼 이성적 활동으로 만들려고 규칙을 강조한 고전주의에 반발했다.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 방식의 차이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예술에서 이성적 규칙보다 감정을 강조한 들라크루아 식 주정적 낭만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프리드리히 식이었다.
프리드리히 풍경화처럼 대자연의 세계를 통해 예술이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하고 암시한다는 주지적 낭만주의다.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휴가철이 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산과 바다로 향해 떠난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이다.
자연을 대하면서 치유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허한 시간을 가져 보자. 대자연의 숭고가 주는 진정한 가치는 우리 삶의 의지의 고양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4,카스파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카푸친 수도사』 - 자연에서 삶의 의지 고양을 / 세계일보, 2019. 7. 26.
15.피터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밝고 경쾌한 그림과 함께
피터르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피터르 몬드리안은 기하학적 화면구성의 추상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처음엔 자연을 대상으로 상징적이고 표현적인 그림을 그렸다. 선과 색이 뒤엉킨 황홀하고 유동적인 분위기의 그림으로 자연의 신비스런 힘과 기운을 나타내려 했다. 그 후 그는 화면을 점차 침착하게 가라앉히고, 계획적으로 분석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십자무늬 구성 방법을 창안했다.
십자무늬의 가로와 세로 길이나 색의 농담을 조절하면서 물질과 공허, 차 있음과 비어 있음,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의 관계로 자연의 법칙성을 암시했다. 색채도 검정색과 흰색의 구성이나 삼원색을 넘지 않게 제한했고,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형태만 사용하는 절제된 화면으로 자연의 질서와 비례, 변화 속의 리듬을 나타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몬드리안이 십자무늬 방식을 도시의 이미지에 적용한 작품이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한 후 뉴욕의 한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본 뉴욕 시가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렸다. 거리가 바둑판 모양처럼 구획되고,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노란색 택시와 거리 불빛이 활기찬 뉴욕을 연상케 한다.
그는 이 활기찬 도시 분위기가 미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란 곡을 작품 제목으로 붙여 또 다른 자연으로서 도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몬드리안의 주된 경향이 큰 면 분할의 단순한 구성으로 무겁고 엄숙한 느낌을 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이 그림의 작은 면 분할과 알록달록한 색채가 밝고 경쾌하고 빠르다는 느낌을 준다.
물러갈 것 같던 장마가 지루하게 심술을 부리고 있다. 날은 무덥고 축축한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 비가 그치면 청량감 있는 자연을 보러 떠나야겠다.
밝고 경쾌한 기분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나.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때를 회상하면서 무더위와 힘든 상황을 잊으려 하면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이 오겠지 기대하면서.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5.피터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밝고 경쾌한 그림과 함께 / 세계일보, 2019. 8. 2.
16.니콜라 푸생의 『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 감성과 이성의 조화
감성적 경향의 바로크 미술이 전 유럽을 풍미했을 때, 유독 프랑스는 이성적 규범이나 균형을 강조하는 고전주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 루이 14세 시대의 안정된 분위기가 있었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고, 이성을 강조하는 데카르트의 합리론 철학이 탄생한 나라라는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고전주의도 바로크라는 시대적 흐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예술가의 정열이나 감성적 요소 같은 바로크적 특성을 반영하되 절제되고 균형 잡힌 형식 속에서 나타내려 했다.
니콜라 푸생 '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니콜라 푸생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은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할 당시 여자가 적었기에 벌어진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로물루스가 자손이 많아야 나라가 번창한다는 생각에서 이웃 사비니 마을 사람을 초청한 후, 로마 병사가 사비니 여인을 약탈하는 장면이다.
그림 안에는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내용이 가득하다. 반항하는 여인, 우는 아이, 넋을 잃은 노파 등이 있고, 불균형적인 형태와 자세가 감성적 느낌을 더욱 부추긴다.
그림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감성적 측면을 중화시키는 이성적인 규범도 발견된다. 여기저기 여인을 감아서 올리는 로마 병사의 자세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됐고, 왼쪽 위에 서 있는 인물을 정점으로 한 큰 삼각형 구도 속에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작은 삼각형 구도가 포함됐다. 차분한 갈색의 색조 변화로 화면을 구성해 격정적인 장면을 균형 잡힌 형식과 절제된 표현으로 나타내려 했음이 역력하다.
이웃나라 일본과의 관계가 심각하다. 정치에서 시작돼 경제와 문화에 걸쳐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이란 나라는 잘 지내야 하는 이웃이기도 하지만, 꼭 이겨야만 하는 상대라는 공감대가 국민 사이에 가득하다. 우리와 과거부터 많은 일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감정적으로 들끓고 있지만 그들을 이기기 위한 구체적이며, 이성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푸생의 작품을 보면서 떠올려 본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6.니콜라 푸생의 『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 감성과 이성의 조화 / 세계일보, 2019. 8. 16.
17.말레비치의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
피터르 몬드리안과 바실리 칸딘스키가 추상미술의 길을 열어 놓은 후, 1920년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사조와 방법이야 어떻든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에 사로잡혔다. 이들은 그림에서 대상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리고, 정신만을 통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으로 그림 자체를 이루려 했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그림이 추상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자연과 세계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을 바탕으로 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경향의 대표적 화가로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있었다.
말레비치의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
말레비치는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으로 대상을 완전히 지워버린 극단적인 추상을 실현하려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추상적인 색으로 흰색을 칠하고,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사각형을 선택해서 ‘흰 사각형’을 만들어 새로운 추상 개념을 제시했다.
자신의 이런 작품 경향을 절대주의라고 했는데, 자연으로부터 어떤 대상도 가져오지 않았고 가져다가 변형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단지 그림 자체의 공간 배분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그것이 진정한 예술적 창조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을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사실주의 그림뿐만 아니라 광고 포스터나 상품 포장지, 그 밖의 단순한 기하학적 디자인에서도 미적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것은 미술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미적 즐거움을 주는 영역을 그만큼 넓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말레비치는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고 미적 즐거움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말레비치 그림을 보면서 고요한 침묵과 사색에 잠기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정의를 외치고 공정사회를 부르짖던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말보다 침묵이 필요하고 행동보다 생각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림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교훈적일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걸 게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7.말레비치의 ‘흰 배경 위의 흰 사각형’16.니콜라 푸생의 『샤비니 여인들의 약탈』 - 감성과 이성의 조화 / 세계일보, 2019. 8. 30.
18.고흐의 『옥수수밭과 삼나무』 - 평온하고 풍요로운 가을이었으면
고흐의 '옥수수밭과 삼나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위 옥수수 밭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삼나무는 바람이 힘에 겨운 듯 조금씩 흔들리고, 먹구름이 꿈틀대며 맑은 하늘을 시샘하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을 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고흐의 그림인데, 그가 자연 풍경 안에 자기 내면의 감정을 담아서 표현했다.
고흐는 신교국인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가족 대부분이 성직자였기에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는 19세기 말 과학문명의 발달이 종교나 도덕 같은 정신문화를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려 했고, 그곳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겪는 고통과 번뇌와 갈등도 솔직하게 나타내려 했다. 그의 작품의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한 선과 화려하지만 거친 붓 자국의 색들은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고흐는 한때 고갱과 만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헤어진 후 정신적인 고뇌가 깊어졌고, 급기야 자기 귀를 자르는 신경증적 상태를 보여 생 레미의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다. 이 그림은 그때 그린 작품 중 하나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삼나무로 그가 평생 추구했던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번뇌의 감정은 옥수수 밭, 주변의 나무, 삼나무 등의 소용돌이치는 거친 붓 자국과 구불구불한 선에 담았다.
태양의 밝은 빛이 비치고 있지만, 마음의 고통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자신의 격앙된 마음 상태를 구름의 어두운 색채로 나타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눈으로 본 자연이기보다 감정과 심리상태를 담은 자연이다.
이른 추석이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물질만능주의가 빚어내는 허탈함이야 고흐가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연의 풍성함과 함께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가위에 본 보름달처럼 삶의 풍요롭고 평온함을 기대해 보면서 9월을 마무리하고 싶다.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8.고흐의 『옥수수밭과 삼나무』 - 평온하고 풍요로운 가을이었으면 / 세계일보, 2019. 9. 20.
19.마르셀 뒤샹의 『샘』 - 10월은 마무리를 향한 시작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 소변기를 ‘샘’이란 제목을 붙여 뉴욕의 한 화랑의 전시회에 보냈다. 물론 전시가 거부됐고, 그 이유는 예술가의 표현행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뒤샹은 자신이 선택했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결정했으며, 제목을 붙여 전시장으로 보낸 행위만으로도 예술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술계에선 작품의 창작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가의 손에 의해서 물리적인 제작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뒤샹의 말처럼 예술가가 선택해서,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옮기는 행위만으로도 창작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였다. 모든 예술가들이 물리적인 제작을 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이젠 됐다’라고 생각하고, 물리적인 제작행위를 멈춘다. 그때까지 제작한 대상을 미술작품으로 내놓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 뒤샹의 말을 적용해 본다면, 예술가가 어느 시점의 대상을 선택하고 작품으로 결정하는 것이 물리적인 제작 행위보다 작품창작에서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마르셀 뒤샹의 ‘샘’
다다이즘이라는 반(反)예술 운동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부정하는 실험적 미술의 수준을 넘어 미술자체까지도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지금까지 예술을 지배한 모든 주의, 주장, 미학을 배제한 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예술적 가치 창조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뒤샹의 시도가 기성품을 재료로 사용한다든가, 예술가의 행위 자체를 작품 구성요소로 강조하는 경향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미술의 풍성하고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나 복잡한 상황에 부딪칠 때 지난 일을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도 4분의 1만 남겨 놓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연초에 마음먹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다시 각오를 다지게 된다.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새로운 미술을 향한 뒤샹의 시도가 풍성한 결과를 만들어냈듯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새로운 마음을 가져 보자.
[출처] : 박일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미학 : <박일호의 미술여행> - 19.마르셀 뒤샹의 『샘』 - 10월은 마무리를 향한 시작 / 세계일보, 2019. 10. 4.
[출처] 『미술여행 Ⅰ』 - ▣모네▣대 피터 브뤼겔▣최초 여인상▣안중식▣쿠르베▣보치오니▣칸딘스키▣달리▣티에폴로▣카로▣쇠라▣카날레토▣카스파 프리드리히▣몬드리안▣푸생▣밀레비치▣고흐▣뒤상|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