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나 웃기길래 미즈키가 저렇게 웃는 것일까? 미즈키를 보니 더 보고 싶어졌다. 왠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아 시계를 봤는데...
"야!! 유현준!!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줄 알아?! 벌써 1시간이 지났다고!! 얼른 나와! 안 나오면 문 부셔 버린다!!"
"네가 진짜로 부실 수 있을 것 같아! 헹 웃기지도 않아!"
"정녕 내가 못 부실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한번 두고 보자고 그럼 무엇으로 부실까...?"
"알았어! 알았어! 나가! 나간다고!!"
"그럼 어서 나와"
진작에 나올 것 이지... 현준 녀석은 아주 느리게 문고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뭐가 저렇게 느린거야! 문이 내 손가락 두 개 정도 들어 갈 정도로 열렸을 때 난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문고리를 잡고 문을 확 열었다.
"야!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 오면 어떡해!!"
"네 녀석이 너무나 느리니까 그렇지 그건 그렇고 너...푸하하하하하"
"야! 웃지 마! 그러면 너야 말로 남장이 어올리는...줄...아...........냐..."
내가 갑자기 문을 여는 바람의 현준은 문에 머리를 박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장을 한 녀석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그런대로 말이 나왔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너무 웃겨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숙여진 고개를 현준 녀석이 들며 날 바라보았다. 순간 녀석의 눈이 풀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하지만 웃느냐고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너...정말....웃기다. 네가 여장이 그렇게 잘 어올리는 줄 몰랐어 그 동안 그런 미모를 어떻게 숨기고 있었니! 현순아?"
"현순이?! 그렇게 부르지 마! 이건 신의 저주가 틀림 없어!!"
"신의 저주? 아니지 그건 신의 축복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 어올린다. 앞으로 여장하고 다녀 그리고 그 모습으로 면접도 보고 그 모습으로 면접 본다면 아마 100% 붙을 껄?"
"...됐어! 그딴 말 꺼내지도 마!! 너의 사촌들에게 꽃다발만 전달해 주기만 해봐! 내가 당장 이 딴 것은 벗어 버릴 테니까!!"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와 하얀 피부 그리고 귀여움을 강조 하는 옷! 남자들이 보호해주고 싶은 귀여운 소녀! 그게 바로 눈 앞에 현준 녀석의 모습이었다.
정말 잘 어올려서 안 어올리다고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어올린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그건 그렇고 너도 꽤 어올린다? 너 의외로 차가운 분위기가 어올린다. 난 전혀 안 어올릴 줄 알았는데..."
"......"
"둘이 정말 잘 어올린다. 이 참에 사귀지 그래?"
"뭐! 미즈키! 너 정말 너무 한 거 아냐! 이딴 녀석이랑 사귀라니!!"
순간 미즈키가 분위기를 바꿔 주었다. 내 표정을 확 알아차린 거다. 다행이도 현준 녀석은 못 알아차린 것 같지만...
"맞아! 이 딴 여자랑 사귀라니...!"
"뭐야?! 아무튼 지금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가자"
"별이는 어쩌고? 아마 그 아이 집에서 너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거기다가 오늘 유치원 쉬는 날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냥 갈거야?"
"미즈키 그럼 네가 데리고 와 아! 그리고 별의 집에 가면 치마 있어 내가 어제 샀거든? 그러니까 별 그 옷 입히고 같이 와 최소한 점심 전까지는 와야 한다? 꽃다발은 내 방에 있으니까 저 녀석에게 들게 하고 그럼 나 먼저 간다."
"응"
미즈키의 대답만 듣고 난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저 녀석이 할 말은 뻔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 녀석의 목소리는 커서 문 밖에까지 다 들린다. 그러니 안에서 들을 필요가 없다.
"내가 짐꾼이냐!! 왜 항상 나만 시켜!!!"
거봐라 다 들리지... 괜히 쓸데 없는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니까... 자 그럼 가보실까나...
52.
"...뭐야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미즈키의 눈빛이 현준은 싫었다. 지난번 자신이 은이의 정혼자라고 했을 때 바로 그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야!"
"혹시나해서 물어 보는 건데 너 은이를 좋아해? 아니 사랑해?"
"뭐?! 말도 안돼! 내가 눈이 삐었냐! 그런 여자를 좋아 하게!!"
"...흐음 그래?"
'...뭐야 왜 저런 눈빛을 하는 거야...무섭게...'
그렇게 말하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미즈키는 현준을 봤다. 항상 미즈키는 은이 없을 때 저런 눈빛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정혼자라고 방에서 단 둘이 얘기를 나누웠을 때 그녀는 자신을 차갑게 쏘아 보았다. 그 눈빛은 은과 있을 때 하고는 360도 달랐다.
"하지만 네가 부정하고 있는 거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은이에게 쓸데 없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걱정마!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아예 좋아 하지도 않아!"
"그 마음이 계속 가면 좋을텐데..."
"뭐?"
"아냐 아무것도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우리도 움직여야 할텐데 어서 가자"
"됐어 난 지윤이를 데리러 갈 거야 이은의 말대로 점심 전까지 학교에서 만나자고!"
"그래...그럼 나 먼저 간다. 열쇠는 바구니 안에 있어"
쾅-
미즈키는 그 말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현준은 미즈키가 문을 닫는 동시에 바닥의 누웠다. 불편한 가발... 아까의 현준이라면 불편을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다.
"...말도 안돼...자꾸 그 날 부터 신경이 쓰이잖아..."
내가 그 날 카나 미즈키에게 이은의 정혼자가 자신이라는 말을 들은 날 화가 났던 것은 소꼽친구인 나와 지윤이를 속여서 그게 섭섭하고 화가 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냐... 그 날 부터 평소와 다르게 늘 놀려됐던 그 아이가 이상하게 보이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이러다가 정말로 카나 미즈키 말대로 내가 이은을 좋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은은 이상하다. 요즘들어 느끼는 거지만 은이의 주변 사람들은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카나 미즈키만 해도 그랬다. 단순히 놀러 왔다고는 하지만 왠지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장난으로 나와 지윤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남장을 하고 남자 친구라고 한 것도 분명 장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꼭 그것은 이은과의 가까운 사이를 방.해. 하려는 것 같았다.
방해라고? 그래 장난치고는 심한 감이 있다. 그럼 카나 미즈키는 왜 나와 지윤이에게서 이은을 떼어 놓으려는 걸까?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요즘들어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것 같다. 찾을 수 없는 빛을...
"......"
어쩌면 난 이 모습 그대로 있지 못 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백수로 있는 유현준의 모습이었는데... 맨날 이은과 싸우고 그것을 한지윤이 말려주면 우린 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 좋게 노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왠지 처음부터 우리가 거짓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은과 한지윤 역시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면 우리의 관계가 끊어 질까봐 그냥 숨기고 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우리는 그냥 이은 한지윤 유현준일 뿐이다. 그냥 그럴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숨기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일 것이다. 우리의 작은 평화를 깨드릴까봐... 두려워하는 불안한 마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난 언제까지 이 어둠속을 헤매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 빛을 찾는 것일까...
띵동-
[누구세요?]
"가정교사 이은 친구 카나 미즈키라고 합니다."
[네 기다리세요.]
끼익-
문이 열렸고 미즈키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안에는 별이 창문 밖을 하염없이 내다 보고 있었다. 그 만큼 은을 좋아 한다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그것이 가끔씩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아직은 그리 심한 것 같지는 않아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다.
"별아"
아마 그러는 이유는 그녀의 머리속에는 어차피 어린애일 뿐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누나?"
"은이 기다리는 거야?"
"응 근데 엄마가 안와 누나는 왜 왔어?"
"별이한테 은이의 말을 전해 주려고 왔지"
그렇게 웃으면서 그녀가 대답하자 별은 그 말을 들으려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습에 미즈키는 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입을 열었다.
"지금 은이가 남학교에 갔어 꽃다발 전해 주러"
"남학교?"
"응 근데 남장을 하고 갔어"
"왜?"
"생각보다 너희 엄마는 위험하거든..."
"위험?"
아마 왜 위험한지 몰라서 되묻는 걸 것이다. 별은 모르겠지만 은은 충분히 위험하고도 남았다. 월 가문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그런데 은은 월 가문에서도 최고의 위치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가주와 맞먹는 위치에 있다. 그것은 생각만해도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는 자리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월 가문에서 살인이 일어 나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얼굴이 드러 나지 않은 은이라고 해도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남장을 시킨 거겠지... 그 사촌 둘 주위에는 월 가문의 사람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거기다가 블랙스타가 아직 남아 있다. 분명 그들은 월 가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것 이다. 그리고 현재로써 제일 쉽게 납치할 수 있는 사촌 그 둘을 감시하고 있을 것 이다.
아마 다호는 그 둘에게 은을 지켜달라고 축하 메세지를 가장한 카드를 보냈을 것 이다. 자신이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남들 이목에 최대한 뛰지 않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제 2의 후계자라는 위치가 그만큼 튀는 자리이니깐 말이다.
"그래 위험. 별이는 모르겠지만 너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별이도 알아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
"그래?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엄마를 안전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별이가 여장을 해야 해 은이한테 들었는데 별이 예쁜 옷 많다면서?"
"응! 많아 엄마가 어제 사줬어"
"좋아 별아 그럼 우리 예쁘게 입고 엄마한테 가자"
"응!"
그러면서 미즈키와 별은 손을 잡고 별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집사하고 유모는 멍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야...도련님이 저렇게 외부인에게 상냥하신 것은..."
"살다살다 이런 일은 처음 보는군. 할아범 난 조금만 쉬겠네...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나 심했나봐..."
"그러도록 하게나"
둘이 거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방에서 미즈키와 별은 즐겁게 웃으면서 옷을 갈아 입을 뿐이었다.
"와 이거 정말 예쁘다."
토끼 십자수 열쇠고리 너무나 예쁘다. 생각해보면 난 정말 토기 매니아 인 것 같다. 토끼 저금통의 토끼 인형의 토끼 쿠션에...
"사시겠어요?"
"네 그리고 저 옆에 있는 것도 같이요."
"네 3000원 입니다."
이것을 보고 있으니 몇 일 전에 이현이 나에게 사줬던 것이 생각난다. 아마 선물은 그게 두 번째였지? 근데 난 선물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사는 김에 같이 샀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선물을 살지도 모르니 이 때 사둬야하지 않겠어? 역시 나는 머리가 좋다니까 음하하...
"이봐"
"네?"
맘껏 내 생각에 취해 속으로 웃고 있는데 누군가가 날 불렀다. 힉! 이 학교 선생님? 아무리 봐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저런 회초리를 들고 있겠는가? 저 호랑이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학생주임 선생님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계셨던 학생 주임 선생님도 딱 저런 눈빛이셨으니까...
"처음 보는 녀석 같은데 몇 학년 몇 반이지?"
53.
몇 학년 몇 반? 그래 내가 학교 다닐 떄는 3학년 6반이었지... 하지만 그건 6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라고!! 이제 20대 중반인 나에게 지금 몇 학년 몇 반이 있을리가 없잖아...!!
이걸 어쩌지? 만약 변장해서 잠입했다는 사실을 이 선생님 앞에서 말하게 된다면... 난 아마 곧바로 쫓겨나게 될텐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휴... 통할리가 없지만 일단 그렇게 말해봐야겠다. 이대로 오해만 받고 쫓겨 나는 것 보단 무엇 하나 해보고 쫓겨 나는 것이 훨씬 나니까...
"전 전학생이거든요."
"전학생? 하지만 요 며칠 전학 온 학생은 없었는데?"
"먼저 학교 탐방왔어요."
"그래?"
"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흐음...우리 학교는 꽤 좋은 곳이란다. 마음껏 둘러 보렴 보아하니 외국에서 왔나 보구나?"
"네...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유학을 갔다가 3일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 왔어요."
일본에 간 적은 있다. 그러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도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이지... 내 말에 그 선생님은 이제 나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풀으신 모양이다. 더 이상 나에게 무섭게 눈을 번뜩이시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휴. 다행이다.
"역시...흠 마침 축제 때이니 편하게 둘러보렴. 이왕이면 내가 같이 돌아 다니면서 설명해 주곤 싶지만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변장하고 오는 다른 학생들 때문에 그러질 못 하겠구나"
"학생주임 선생님! 저기 여고 애들이 들어왔다는데요?"
"당장가지요. 그럼 잘 둘러 보게나"
"네"
선생님은 무섭게 질주하며 어느 젊은 남 선생과 금방 사라지셨다. 휴.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특히나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변장' 그 부분에서... 일단 속아 넘겼으니 다행이다.
저렇게 선생님들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미즈키랑 현준 녀석은 들어 올 수 있을까? 미즈키야 걱정이 별로 되지는 않다만 현준 녀석이 걱정이네 뭐 그 녀석은 들어 오든 말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서도...
턱-
"누나?"
"깜짝이야! 어? 너희들 이 학교였어?"
"네 근데 누나는 왜 그런 차림하고 오셨어요?"
"아... 이 차림?"
"네"
"사촌들에게 꽃다발 전해 주려고..."
어이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 나도 그 쯤은 안다. 하지만 진실인 것을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 나도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다음 부터 이런 일 다호님이 시키신다면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일러 버리겠어! 다호님이 어떤 처벌을 당하던 말이지! 이건 도저히 못 할 짓이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꽃다발 전해 주려고 그런다면 그냥 평소처럼 하고 와도 됐어! 그렇게 남장을 하고 우리 학교 학생으로 위장...읍!!"
"그런 것은 얘기 하지 않아도 알아"
"읍!! 읍!!...으읍!!"
"손 좀 떼어 달라는 것 같은 데요? 이제 누나 떼어줘요."
"그러지 뭐"
앞치마 녀석의 말에 아줌마 녀석의 손을 떼어 주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자조한 일이라고... 그러길래 누가 내가 여기 변장해서 왔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알릴 뻔 하래?
"어쨌거나 그 사촌 이름이 뭐야? 우리가 전해 주지 뭐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나도 너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네요! 내가 전해 줄거야! 그리고 아직 꽃다발은 도착하지 않았어"
"뭐?"
"친구가 가지고 오기로 되어 있거든 근데 그 친구는 아직 안 왔어 그래서 그 동안 학교 좀 둘러 보려고"
내 말에 아줌마 녀석은 완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솔직히 너 같으면 이런 차림으로 돌아 다니고 싶냐? 벌써 나이가 몇 인데 교복을 입고 싶겠냐고... 꽃다발이 있었으면 난 당장 주고 집에 갔었어 내 나이 되보라지... 물론 교복이 그립다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지... 하지만 난 전혀 아냐
학교 다닐 때 교복이 얼마나 싫었다고! 지금도 교복입고 학교 가라고 하면 질려 그런 내가 지금 남자 교복을 입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그럼 저희랑 같이 구경하실래요? 저희랑 구경하면 길 잃어 버리시지도 않고 재미있는 거 많이 구경하실 수 있으실텐데..."
"정말 그래도 되니?"
"네. 너도 괜찮지 태야?"
"...할 수 없지 뭐..."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같이 학교를 둘러 보게 되었다. 이 녀석들 제정신인 것 같아 보이지 않아 인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여자 교복을 입고 다녔다면 여자 아이들의 질투의 뭔 일을 당할 것 같은 정도로 이 녀석들은 인기가 많았다.
여자 아이들이 대부분 이 녀석들에게 안녕을 했는데 이 촐싹이 앞치마 녀석은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는 반면 이 아줌마 녀석은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한 여자 아이들을 말 한 마디 안 하고 쫓아 버렸다.
거참 저렇게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됐을지 세삼 궁금해지네... 물론 완전 상극인 나와 유현준도 오랫동안 친구를 유치하고 있지만 말이지... 생각해보니 진짜 오래됐네 유치원 때부터 그 녀석이랑 친구가 됐는데...
정말 나와 그 녀석은 어떻게 친구 사이를 유지한 걸까? 하루가 멀라하고 싸우는데... 그에 반면 이 녀석들은 전혀 싸우지 않는다. 이 녀석들을 별로 보지 않아서 싸우는 모습을 못 본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전혀 싸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저 아줌마 녀석 앞치마 녀석을 챙겨 준단 말이지 전혀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쓸 것 같지 않은데... 친구여서 특별하게 신경써주는 건가? 세삼스럽게 저 녀석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 은이 아냐?"
"한빛 오빠? 오빠가 왜 여기에 있어요?"
"응 사촌 동생이 하도 구경하라고 해서 말야 그렇지 태현아?"
"그래! 그래서 너 때문에 서류 처리 하는 도중에 끌려 나왔지!!"
"그렇게 너무 화내지 마"
"너 같으면 화내지 않게 생겼냔 말이다!! 아무튼 얼른 가자고!! 안 가면 나 혼자 갈거야!"
"은이도 만났는데 좀 더 놀다 가면 안돼? 그리고 나 혼자서는 외로워...훌쩍 사유도 같이 안 왔는데...."
그래 저런 사이여야 정상이지 상극인데 싸우지 않으면 좀 이상한게 아니겠어? 근데 저 두 사람은 뭔가...
"나 이거 사줘"
"알았어"
저렇게 사달라면 사주니... 물론 태현 선배도 한빛 오빠가 조르면 어쩔 수 없이 승낙하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면 저 두 사람도 사이가 의외로 좋단 말이지...
"알았어! 같이 있어주면 될 것 아냐!!"
"아싸!! 은아 우리 같이 다니자!! 히히"
연기였던 것 같다. 놀라운 한빛 오빠의 연기 실력... 태현 선배의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저 일행이 있는데요?"
"그럼 같이 다니면 되지 뭐...안녕 난 이한빛이야 여기는 내 사촌 한태현이고 그럼 같이 다니자...!!"
앞치마 녀석이 자기 소개를 하려는 찰나 한빛 오빠가 그 말을 잘라 버리고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아줌마 녀석이 그런 한빛 오빠를 쏘아 보자 태현 선배가 그런 아줌마 녀석을 쏘아 보았다. 아줌마 녀석 곧 그 눈빛을 거두웠다. 역시나 태현 선배가 무서운 거겠지... 하지만 태현 선배의 눈빛은 이현 보다는 아니라고...
"은아!! 헉헉...헉..."
"지윤아"
"야! 한지윤 같이 가!!"
"유현준..."
"우리도 있다고...미안 너무 늦었지? 별이 분장 시키느냐고..."
곧 지윤이와 유현준 그리고 미즈키와 별이 도착했다. 별!! 정말 예쁘다. 너 정말 남자 맞기는 한 거니? 다시 한번 생각하는 거지만 별은 정말 예쁘다.
"엄마 나 예뻐?"
"응 별이 진짜 예뻐 근데 여기서는 엄마라고 부르면 안돼 부르려면 형아 라고 불러 알았지?"
"응 형아"
"좋아 별아"
그렇게 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앞치마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아줌마 녀석과 같이 대화를 나누더니 곧 지윤이를 향해 다가갔다. 한빛 오빠와 태현 선배와 미즈키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지윤이는 앞치마 녀석이 자기에게 다가오자 놀란 듯 했다.
앞치마 녀석은 지윤이가 당황하던 말던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윤이는 그 녀석의 그 진지한 눈빛이 무서웠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왜 그러세요?"
"찾아 다녔습니다. 은월님"
그 말을 하며 앞치마 녀석은 지윤이에게 무릎을 꿇었다.
"!!!!!!"
54.
"...바보같기는..."
남자 아이가 무릎을 꿇으며 말을 끝내자 마자 미즈키가 뱉은 말이었다. 아무도 그 말을 듣지는 못 했다. 귀여운 남자 아이 다음으로 좀 차가워 보이는 남자 아이가 지윤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저...왜 이러세요. 전 은월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씀해도 소용 없습니다. 은월님"
"......"
모두의 시선이 거기로 쏠려 있을 때 미즈키가 일본어로 나에게 말했다.
[어서 나가자 꽃다발 같은 거 전해 주지 않아도 돼 우리 역시 원래 꽃다발 전해 주러 온 것은 아니니까 원래 부터 제 2의 후계자가 너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잖아...그러니까 어서 나가자]
[...응...]
[서두르자]
[...응...]
모든 시선은 지윤이에게 향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살금살금 걸어 교문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다. 그리고 한빛 오빠를 포함해 다른 이들은 모두 나와 미즈키 쪽으로 서 있었다.
만약 이들이 마주보는 쪽에 있었다면 금방 들켰을 테지만 다행이도 같은 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다.
앞치마 녀석과 아줌마 녀석을 빼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빠져 나가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우리 둘은 이제 왠만큼 떨어진 거리에 달려도 되겠다 생각해 달리기로 했다.
"어딜 가시려는 것입니까?"
그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된 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
"...산...화..."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순간 자연스럽게 이름을 말하게 되었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야? 미국에 있어야 되잖아... 어째서 산화가 여기에 있는 거지?!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로군요. 근데 어딜 가시려고 했던 것입니까?"
"......"
"당신이 본 그대로다."
대답하지 않는 나를 대신에 미즈키가 산화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미즈키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산화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알면서 묻지 마 너에게 대답 같은 것은 하기 싫으니까..."
"미즈키 그만해. 산화 한가지 묻겠습니다."
흥분하고 있는 미즈키를 살짝 제지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마 미즈키는 산화를 치고 말 것 이다. 얼른 가야 해...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대답하겠습니다."
"어째서 여기에 당신이 있는 것이죠?"
"그것은 은월님께서 잘 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럼 다음에 뵈죠. 가자 미즈키"
"이미 계신 곳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더 이상 도망가실 수 있는 곳도 없습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어서 돌아 오십시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돌아 가지 않아... 절대로 돌아 가지 않아... 아니 돌아 못 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미즈키와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방 문을 잠궜다. 미즈키가 들어 올 수 없도록... 그렇게 문을 잠근 다음 인형을 끌어 안으며 침대의 누웠다. 심장이 뛴다. 빠르게 뛴다. 두려움으로... 산화가 알아 버렸으면 이제 잡히는 것은 금방이다.
늘 들키면 할아버지 곁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두려움으로 온 몸이 떨려온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은 정말 차이가 많이 난다. 정말 차이가 많이 난다.
"은월아"
"...왜 미즈키..."
"두려워...?"
"......"
"......"
"...응..."
"그래...? 그래서 넌 어떻게 할거야? 돌아 갈거야?"
돌아 가고 싶지 않다. 돌아 가지 않으면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겠지만 그래도 돌아 가고 싶지는 않다. 그 곳에 있으면 늘 숨막히다. 그리고 슬프다. 숨막히는 이유는 잘 안다. 그 집은 내게는 너무나 자유롭지 않으니까... 그래서 숨막히는 거다.
하지만 왜 슬픈지 모르겠다. 퍼즐 조각이 하나 없어진 퍼즐처럼 왜 그런지 전혀 모르겠다. 이유를 생각해봐도 왜 그런지 전혀 모르겠다.
"...모르겠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것 하나만 알아 줬으면 좋겠어 언제나 난 네 편이라는 것을..."
"역시나 한국으로 온 것은 나 때문이었구나?"
"...맞아...내 친구 이은월은 말이지 겉으로는 밝은 성격에 강해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에 한 없이 약해...그런 친구가 혼자 있다가 이상한 결정 내릴까봐 걱정이되서 일본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왔지 그 친구에게... "넌 혼자가 아니다. 네 곁에는 카나 미즈키라는 아주 훌륭한 친구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야..."
한 없이 우울해지는 기분이 괜찮아졌다. 미즈키가 내 곁에 있다. 그 사실에 얼마나 내가 기쁜지 아마 미즈키는 모를 것 이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고마워 미즈키..."
"됐어 고마워 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고마우면 얼른 기운차려"
"...응..."
정말 고마워... 아마 네가 없었다면 난 분명 소리 없이 흐느꼈을거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밤새도록 울면서 두려움에 떨었을거야... 분명 그 날 처럼 그랬을거야... 사비가 내 곁에서 떠나는 그 날 처럼...
"푹 잠자 배고프면 밖으로 나와 내가 밥 해줄테니까...물론 네가 해주는 김치볶음밥보다는 아니겠지만 이은월을 위해 이 몸이 특별히 오므라이스를 팔 걷어 붙이고 만들어 줄테니까..."
"...응. 그럼 너도 푹 셔"
"...은월이 너도..."
그것을 마지막으로 난 눈을 감았다.
"휴우..."
은월의 방 문의 등을 기대며 앉고 있던 미즈키는 한숨을 쉰 다음 일어나 쇼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쇼파의 누워버렸다.
"...나야 말로 미안해...너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서...그냥 지켜 보는 일만 할 수 밖에 없어서...정말 미안해 은월아..."
낮게 그 말을 중얼거린 미즈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을 쯤... 벨소리가 들렸고 미즈키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주머니만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카나님...]
"레이구나..."
[카나님 이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일 있어?"
천장을 멍하니 보며 기계적으로 말을 하고 있던 미즈키는 진지한 목소리로 레이에게 말했다.
[네. 그게 초대장이 왔다고 합니다.]
"뭐? 초대장이? 말도 안돼..."
초대장이 왔다. 레이는 초대장이 왔다는 말만 했지 초대장이 어디서 왔다는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즈키는 그 초대장이 어디서 왔는지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초대장은 '월 가문'에서 왔다.
[저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래서 가짜인지 조사를 해보았는데 가짜는 아니었습니다.]
"파티 날짜는 어떻게 돼지?"
[약 한 달 후 쯤입니다.]
'...그 때 동안 은월이를 데려가겠다는 건가?'
[카나님 그것 말고도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월 가문에서 온 자가 카나님을 뵙길 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날? 그냥 없다고 하면 되잖아..."
[그게 중요한 일이라며 카나님이 돌아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겠다고 하면서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으로...]
"......"
한동안 미즈키는 대답이 없었다. 레이는 그런 미즈키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심란할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며 그녀는 레이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폴더를 닫아 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핸드폰을 내동댕이 쳐버렸다.
55.
"당장 얘기 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어제 아무 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다. 배고픔을 참고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현준 녀석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시끄러운 목소리 때문에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밥 해 먹기 귀찮아 참으려고 했더니만! 저 녀석이 끝까지 나에게 적이군!! 할 수 없지... 밥 먹고 저 녀석과 한판 하는 수 밖에...
쾅-!!
"어? 은월아 일어 났어?"
"어 나 뭐 좀 먹어야겠다. 어제 일찍 잤더니 배고파서 더 이상 못 자겠어"
"그래? 냉장고에 만두 있으니까 대충 그걸로 대충 배 채워 내가 조금 후에 외식 시켜 줄테니까..."
"...응..."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난 전자렌지의 만두를 꺼내 넣었다. 그리고 데우기 단추를 힘없게 꾹 눌렀다.
"야! 카나 미즈키!!"
"유현준 넌 아침부터 왜 소리지르냐? 네가 배고픈 것은 참아 보고 자려고 했다. 하지만 네 녀석의 시끄러운 목소리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일어 났어! 아유~ 말할 기운도 없다. 아무튼 조용히 해 여기가 너희 집이야? 완전 지 집 처럼 소리 지르는구만..."
"미안해 은아...거봐 현준아 조금 있다가 오자니까 왜 자꾸 아침 일찍 가자고 그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마침 너 잘 일어 났다. 어제 그 남자 너와 무슨 관계야? 그리고 너 앞집 녀석들과도 무슨 관계냐?!!"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띠디디디 띠디디디
"아 다 됐다. 뜨겁다. 그냥 조금만 데울 걸 그랬나?"
"야! 이은!!"
대답할 기운도 없다고 이 녀석아!! 배만 조금 채우기만 해봐라! 내가 그딴 거 다 얘기해 주고 만다!!! 아니지 얘기 하면 안돼잖아? 배가 고파서 신경이 날카로워 졌나봐...
"쩝...쩝..."
"만두만 먹지 말고 대답해!!"
"...현준아 은이 어제 저녁도 먹지 않고 잔 것 같은데... 우선 은이 다 먹고 얘기하자"
"한지윤 말이 맞아 유현준. 어제 놀란 것은 너희들 뿐만이 아니야... 은월이도 놀랐다고... 알아?"
맞아 맞는 말이야! 나도 놀랐다구... 뭐 지만 놀란 줄 아나? 정말 충격이었어 앞치마 녀석과 아줌마 녀석이 월 가문 사람이었을 줄이야... 아마 야시장에서 다호님이 말씀하셨던 2명의 월 가문 사람들이 이 녀석들이겠지?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은 산화가 한국에 있다는 거야... 미즈키를 그 때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산화를 치고 말았을거야... 산화 혹시 아직도 포기 못 한 건가? 왠지 미즈키를 볼 때 그 눈빛이 그랬어... 아직도 포기 못 한 것 같았어... 나도 그렇지만 미즈키도 꽤 복잡하겠다. 여러가지로...
"...그래도 설마 우리 보다 더 놀랬겠어?! 안그래!!"
"...뭐야?!"
띵동-
[누구세요?]
현준 녀석과 나의 싸움이 시작되려고 하는 그 때와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고 미즈키가 인터폰으로 누군지 물어 보았다. 그리곤 곧 "문 열었어 들어 와"라는 말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어?"
"야 이은! 내 말에는 왜 대답하지 않냐...? 뭐야 이 녀석들도 부른거야?"
"은월님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내가 불렀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난 어제 하루 종일 잠만 자서 아까 네 녀석 목소리의 깼단 말이다!! 네 녀.석.이.! 알았어?"
"...알았어! 그렇다고 강조해서 말할 것 까지는 또 뭐야! 쳇..."
"둘 다 그만해 싸우더라로 이 애들 부터 앉힌 다음에 싸워"
지윤이의 말이 옳았기에 난 현준 녀석을 노려 보는 걸 그만 두었다. 집으로 들어 온 것은 앞치마 녀석과 아줌마 녀석 두 녀석이었는데 들어 오자 마자 이 녀석들은 내 앞에 엎드려 나에게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원래는 현준 녀석에게 한 마디 하고 이 녀석들을 일어 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이 두 녀석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다행이도 지금은 지윤이가 나에게 잊어 버린 이 두 녀석들을 생각나게 해줬다.
그러니 얼른 일으켜줘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앞에 누가 엎드려 있는 것은 불편하니까... 내가 무슨 조선시대 임금도 아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필요 없으니까 그냥 고개 들고 편하게 앉아"
"용서해주실 때까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아줌마 녀석!! 네 녀석이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단 말이냐!! 사람이 편하게 앉으라면 편하게 앉을 것이지!! 이 녀석 나에게 용서를 빌러 온 거 맞아!!
"내가 너희들이라도 충분히 지윤이를 나라고 착각했을거야 난 너희들에게 이은월 다운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편하게 앉아"
"그렇게 말씀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다 저희들이 못난 탓이니까요. 그러니 용서해 주실 때까지 이렇게 있겠습니다."
이 아줌마 녀석이!! 네 녀석이 자꾸 이러면 나를 향한 현준 녀석과 지윤이의 의심이 더 심해 진단 말이다!! 그러니까 얼른 앉으랄때 편하게 앉아!!! 한대 쥐어 패주기 전에!!
맘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왜냐 내가 이 녀석들에게 화를 냈다가는 이 녀석들은 분명 어른들에게 끝장이 날테니까...
"알았어 용서해 용서 그러니까 편하게 앉아"
"감사합니다. 은월님"
둘은 동시에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고 앉았다. 이 녀석들은 앉아 있어도 엎드려 있는 것과 같았다.
"그냥 편하게 앉으라니까 무릎 꿇고 앉지 마"
"네"
날 보는 현준 녀석과 지윤이의 눈빛은 꼭 나를 조직 두목으로 본다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조직 두목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기는 하지... 이게 뭐냐고!! 의심 덜 받으려고 이 두 녀석들을 앉게 했더니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왔잖아!!
"그건 그렇고 은월아 두 사람이 너에게 할 말 있나 본데?"
"그래? 너희들 나에게 할 말 있어?"
"...네..."
"그럼 너희들은 옆 집에서 대화를 하고 와 집안 얘기 같은데 우리가 들으면 안되잖아"
"응 알았어 그럼 미즈키 네가 저 녀석이랑 지윤이에게 잘 설명 좀 해줘 너만 믿고 난 옆 집으로 갈테니까..."
"알았어 그럼 잘 갔다 와"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미즈키에게 나 역시 웃으면서 "응"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옆 집으로 두 녀석들과 함께 건너왔다.
"우선 여기 앉으세요."
"됐어 그건 그렇고 앞치마...아니지...너는 이름이 뭐야? 생각해보니까 네 이름을 안 물어 봤더라구... 옆 집인데 이름을 모르고 산다는게 참 바보 같지...하하"
"아뇨. 저희들이 얘기 하지 않은 것 뿐인데요. 제 이름은 이유예요. 그리고 쟤 이름은 이유태이고요."
앞치마 녀석의 이름은 이유였다. 그리고 저 아줌마 녀석의 이름은 이유태였고... 그럼 이 녀석들은 정식 월 가문 사람.
"내 이름은 아시다시피 이은월이야 여기서는 이은이고 이제 서로의 이름은 알았고 나에게 할 말이라는 건 뭐야?"
"...제 4 후계자께서 이번일에 왜 관여하셨는지 아세요?"
"산화? 몰라 전혀...너희들은 산화와 날 같이 찾아 다닌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처음 부터 은월님을 찾아 다니기로 한 것은 저와 유태였는걸요. 근데 어제 갑자기 제 4 후계자께서 그렇게 나타나셔서..."
그럼 도대체 산화는 왜 온 것이지? 역시 내 생각대로 미즈키를 만나러 온 것인가? 하지만 미즈키는 당분간 해외 출장은 나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미즈키가 여기 있을 걸 알고 산화는 왔지?
"그래...이제 산화 얘기는 그만 하자 어차피 산화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그럴 수는 없으니까"
"네? 하지만 지금 은월님께서는 가문과의 접촉을 끊으셨다고 알려져 있는데 혹시 도움을 받고 계신 후계자가 계신가요? 제 4 후계자께서 무슨 짓을 하셔도 안전한 후계자에게요."
56.
"아니 그런 것은 전혀 없어 물론 다호님과의 접촉은 하고 있지만 말이야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후계자들은 할아버지가 감시하고 계셔 은밀히 말이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후계자들도 알아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다른 후계자들을 감시하는 이유는 너희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바로 나 때문이야"
"......"
"난 후계자들 중에서 가장 어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내가 걱정 대신다면서 다른 후계자들을 그렇게 감시하고 계시지 그리고 그것은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 다호님도 예외는 아니야 지난번 다호님의 집에 갔을 때 은밀히 감시하고 있는 감시자를 봤어..."
"......"
이유와 유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둘의 표정으로 충분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충분히 놀랐겠지... 할아버지가 날 예뻐하신다고 그들은 충분히 들었을 것 이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것 이다.
"앞으로 그 감시는 정식 가주 선발 전까지 계속 될 거야 그리고 만약 내가 가주 선발이 된다하여도 왠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 계속 다른 후계자들은 감시를 당할 것 같아"
"...몰랐습니다. 다른 후계자들께서 그렇게 감시를 당하고 계실 줄은..."
"나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아 그래도 꽤 오래됐지. 아 그리고 유"
"네?"
"너희들에게는 친하게 반말을 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지? 갑자기 다른 가문 사람들처럼 대하기가 힘들어서 그리고 그렇게 대하면 조금 우습잖아..."
난 다른 가문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쓴다. 그리고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늘 보았던 사람처럼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나에게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라는 경고. 그렇게 난 가문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선을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어 오지 않게 한다. 친절함으로써... 하지만 이 둘에게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갑자기 그렇게 하면 너무 웃기니까...
"그렇죠. 그럼 저도 옆 집 누나 처럼 대해도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대해. 그리고 가문 사람들 앞에서만 나에게 은월님이라고 하면 되잖아"
"누나는 모르겠지만 누나에게 은월님이라고 하면 큰일나 제 1 후계자라고 해야 해 아니면 제 1의 후계자라고 그러던가"
"그래? 휴. 뭐 그래도 너희들이 나에게 제 1 후계자라고 다른 가문 사람들 앞에서 그럴 기회는 없을 거야 왜냐면 난 가문으로 절대 돌아 가지 않을 거니까"
둘은 날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았다가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볼 것은 다 봤다고...
"왜 돌아가시지 않으실 거죠?"
이곳으로 온 뒤 처음으로 아줌마 녀석 아니 유태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날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은월이라니까 지금 완전 존댓말 하는 것을 봐라 참나... 어이가 없다. 정말로...
"...편하지 않으니까..."
"제가 알기로는 가문에서 제 1 후계자만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다른 이는 누구도 없는 걸로 아는데요?"
"그 반대야 내겐 할아버지의 애정이 너무나도 불편해"
"...유일하게 가주님께 "할아버지"라고 은월님만이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걸 부러워했나보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래 나에게 "넌 그만큼이나 우리들 보다 더 행복하다. 근데 뭐가 불만인거지?" 꼭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 같다. 유태 녀석이 나에게 말하는 눈빛 말투가...
"난 이은월보다는 이은이 더 좋아 이은월일 때 다른 사람들은 날 '이은월'이라서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지 내가 나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아니잖아. 난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내가 '이은월'이기 때문이잖아"
"......"
"하지만 지윤이와 현준이는 달라 내가 '이은월'이기 때문에 좋아 해주는 것이 아냐 날 '이은'이기 때문에 좋아 해주는 거라고 그리고 미즈키는 내가 누구든 날 좋아해 줘 한번 생각해봐 이유태 너 같으면 내가 '이은월'이 아니라면 신경 써줬겠어?!"
"......"
두 녀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태 녀석은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화도 전혀 내지 않고 그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걸 보여준 예가 바로 너야!! 내가 '이.은.월'이 아닐 때는 막 무시 했으면서 '이.은.월'이라고 하니까 나에게 말투 행동이 바뀌었잖아!"
"......"
"내가 가문에 들어가기 싫은 이유는 바로 그거야... 예전에 그래도 있었던 이유는 사비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사비는 이제 그곳에 없지 사비가 그 곳에 없는 이상 난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고보니 나 만두도 별로 못 먹었잖아? 현준 녀석 때문에...!! 이씨! 생각할 수록 열받고 배가 고프네...
"...아 배가 고프네. "미즈키한테 얼른 밥 먹으러 가자" 그래야겠다. 그럼 나중에 보자"
"누나"
"왜? 유?"
"누나를 찾았다는 말 하지 않을게 어차피 내가 하지 않아도 제 4 후계자가 말하면 끝이겠지만 그래도 난 말하지 않을게"
그렇게 말해주는 유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곤 나와 버렸다. 유태 녀석을 한번 노려봐주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은 재수 없는 녀석이야!!
그렇게 궁시렁 거리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니 현준 녀석은 화가난 상태였고 지윤이는 그런 현준 녀석을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즈키는... 미즈키는... 멍해 보였다. 혹시 현준 녀석 미즈키에게?!!!
"지윤아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미즈키!! 미즈키!! 정신 차려! 나 알아 보겠어? 나 은월이야! 네 친구 이은월!!"
[은월아?]
"응 그래 은월이야"
[은월아...]
그렇게 말하며 미즈키는 내 품에 안겼다. 내 품에 안긴 미즈키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런 미즈키는 꼭 어린 아이 같았다.
"지윤아 현준 녀석 데리고 좀 나가줄래"
"...응 미안해 은아 내가 곁에 있었으면서 말리지도 못 했어"
"아냐 괜찮아 현준이가 그런 말을 할줄 네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렇지?"
"...그래도..."
"그러니까 괜찮아 그렇게 미안하면 현준이 데리고 집에 가줘"
"...응..."
지윤이는 그대로 현준 녀석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현준 녀석이 나가버자마자 미즈키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런 미즈키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은월아"
"왜?"
한참 후 미즈키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는 걸로 보아서 분명 현준 녀석이 자신에게 그 말을 한 것에 대해 충격이 큰 것이리라...
"예전에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가 내가 혼혈인이라고 놀린 적이 있었어 그 애는 계속 나한테 혼혈인 혼혈인 하면서 놀려댔고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어 합기도나 태권도로 그 애를 패줄 수는 있었지만 난 울기만 했어"
"......"
"그 후로 누구에게 그 말을 듣는 것이 제일 싫었어 다행이도 난 내가 혼혈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혼혈인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았어. 그래서 그 말을 그 이후로 들어 본 적이 고등학교 때 딱 한번 빼고 없어"
"......"
"어떻게 그 녀석이 이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서 못해! 혼혈인인게 뭐가 죄라고 나한테 그러는거야!"
미즈키가 목소리를 높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우는 미즈키의 모습은 꼭 나 같았다. 아까 옆짚에서 나이기 때문에 좋아하길 바라는 나 같았다.
"그래...그래...힘들었을 거야...마음껏 울어 너에게 위로의 말을 해줄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널 안아줄게 아무도 모르게 울 수 있도록..."
"응 고마워"
"고맙기는 뭘..."
오히려 널 안아 줄 수 밖에 없는 내가 더 미안해...
57.
"알았어 그럼 잘 갔다 와"
"응"
은월은 그렇게 말하면서 유태와 유와 집을 나갔다. 은월이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미즈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얼굴을 하고 지윤과 현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제 일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지?"
"그래 이은에게 왜 은월이라고 부르며 방금 나간 저 녀석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어 한 마디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은에 대해서 알고 싶어!"
"은이에 대해서?"
"그래"
미즈키의 말에 대답한 현준은 떨렸다. "은이에 대해서?"라고 자신에게 되묻는 미즈키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은월에게 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였다.
"너의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어"
"뭐?! 왜 그런데!"
"그래요. 왜 그런거요?"
"네가 궁금한 것은 이은이 아니니까..."
'이은이 아니다.' 현준과 지윤. 두 사람은 그 말 뜻을 이해 하지 못 했다. 궁금한 것이 은이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두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미즈키가 설명해 주길 기다렸다.
"너희가 은이의 모르는 점을 알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근데 그게 왜 이은이 아니란 거야?"
"너희가 모르는 것은 이은이 아냐. 이은월이지"
"이은월? 그래! 알았어! 아무튼 설명이나 해봐!"
현준은 짜증이 나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 모습이 한심해보여 미즈키는 한숨을 한번 쉰다음 입을 열었다.
"이름은 이은월. 나이는 25살. 월 가문의 유력한 가주 후계자로써 현 가주의 귀여움을 유일하게 받고 있는 인물. 5년 전 쯤 아무 이유 없이 잠적해 버린 후. 현재 찾고 있는 중이나 아직까지도 찾아 내지 못했음"
"그게 무슨 뜻이야?"
"현재 은월이에 대해 알려진 자료야. 이건 물론 은월이의 사촌들 사이에만 알려진 자료지만..."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건 알 거 없어"
딱 잘라 말해 버렸다. 솔직히 쉽게 가르쳐 줄 수는 있으나 왠지 그러기는 싫었다. 남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왠지 모르게 싫으니까...
"카나씨가 말씀해주신 사람이 바로 저희가 모르고 있는 은이라는 말씀이세요?"
"맞아요."
"근데 가주는 뭐고 후계자는 뭐야? 이은이 후계자라니! 말도 안돼!"
현준이 미즈키에게 말했다. 지금 그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가 없었다. 항상 자신과 철 없이 싸우는 은이 후계자라니!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것 만은 틀림 없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가주는 월 가문의 주인이고 후계자는 가주 후보들을 얘기해 총 7명으로써 각자 다른 분야가 뛰어나게 물려 받은 사람들이지. 가문 사람들은 후계자들을 제 몇 후계자 또는 제 몇의 후계자 그렇게 불러"
"......"
"후계자 서열은 제 1 후계자가 가장 높아 그리고 현재 제 1 후계자는 바로 은월이야 제 1 후계자는 가주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후계자야. 그래서 그 후계자가 죽지 않는 이상 절대 바뀌지 않으며 가주 선발 때가 다가오면 가주가 되지"
"...이은이 말도 안돼..."
"하지만 제 1 후계자라고 해서 꼭 가주가 되는 것은 아냐. 만에 하나 가주가 될 마음 가짐이 안 됐다고 하면 그 즉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 그리고 제 2 후계자에게 자리를 주거나 아니면 새로 선발하지"
미즈키의 말에 지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듣는 것 밖에는... 그녀가 말하는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현준은 달랐다.
"대충 알았어 근데 왜 이은이 제 1의 후계자인거지? 내가 보기에는 이은은 대단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야"
"은월이는 계산력이 뛰어나 도형에는 약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또 한가지 검도를 잘해 월 가문 중에서 제 5의 후계자를 제외하곤 말이지 그게 바로 제 1 후계자가 된 이유야"
"하긴 이은은 수학 시험 볼 때 도형 문제는 많이 틀리지만 계산 문제는 항상 다 맞았으니까... 하지만 검도를 잘 한다고? 그건 말도 안돼! 그리고 만약 잘한다고 쳐도 이은이 겨우 그것 가지고 제일 높은 자리에 올랐단 말야?"
'어지간히도 은월이를 무시하고 있구나. 은월이가 물론 검도 실력을 숨겼을 테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심한걸...'
그런 생각을 하며 미즈키는 나중에 현준이 은월의 검도 실력을 보고 얼마나 놀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네 말대로 후계자가 제일 뛰어난 자만 오르는 자리라면 이은보다 더 머리좋고 뛰어난 사람이 많을 것 아냐? 근데 왜 하필이면 이은이야?"
"현준아 친구로써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지윤이 현준에게 그렇게 말하며 잘못을 끄집어주자 현준은 투털거리며 "그래도 사실이잖아"라고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현준의 모습은 완전 떼쓰는 어린 아이가 따로 없었다. 도대체 언제 현준은 철이 들까...?
"그거 말고도 은월이가 제 1 후계자가 된 가장 강력한 이유가 있어. 그 이유만은 다른 후계자들은 따라 갈 수가 없지 그건 어떤 방법을 써도 될 수가 없는 거니까..."
"그게 뭔데?"
"뭔데요?"
"그건 바로 이름이야 이은월이라는 이름"
"이름? 그게 왜? 이름이 뭐가 어쨌다고 그러냐?! 이은월은 이은에서 월을 붙인 이름일 뿐인데..."
그런 현준을 보며 미즈키는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 한숨의 뜻은 '정말 설명해야 할 것이 많구나...'였다.
"은월이네 집안은 월 가문이야 성은 이씨인데 월 가문이라고 그러는 이유는 처음에 월 가문을 창시한 사람이 이월이라는 분이셨기 때문이야 그 분이 돌아 가신 이후 월 가문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월을 쓰지 않기로 했지. 그래서 여태까지 이름의 월이 들어 간 월 가문 사람은 없었어"
"...야 잠깐만! 근데 이은의 본명은 이은월이랬잖아? 말이 안되잖아! 안된다며? 근데 왜 이은은 본명의 월이 들어가?"
"그걸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가주 뿐이고 현 가주께서는 그것을 깨뜨려버려 은월이에게 월을 넣어 주었어 그리고 나서 새롭게 가문 사람들과 약속을 했어 은월이 이후로 월이라는 이름을 쓰면 가문에서 내쳐버리기로"
"뭐? 내쳐?"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인가!! 그러게!!'
그만큼 가주는 은월을 아낀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현준으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은 지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조금 심하지 않나요?"
"맞아! 이은 때문에 내치다니"
"현 가주께서는 그러고도 남아 역대 가주 중 가장 냉철하고 정이 없기로 유명하신 분이시니까... 그런 그 분이 은월이를 아끼게 된 것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 현 가주께서는 손녀 은월이를 자식보다 더 아끼고 있고 그 귀여움은 최초이며 최후라는 것을..."
잠시간에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늘 싸우던 친구가 위대한 사람이었고 늘 사이 좋게 지낸 친구가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흥. 그래도 너 같이 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너보단 우리가 너 친해 거기다가 넌 외국인이잖아 원래 민족이 더 친한 법이라고!"
현준의 억지였다. 실제로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은월에게는 많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친했던 것일까?
"...완전 외국인도 아냐..."
"뭐? 그럼 넌 혼혈인이라도 된다는 거냐?"
"현준아!"
미즈키의 표정이 어두워 진 것을 보고 현준이 말했다. 하지만 현준은 그런 지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
"혼혈인인거냐고! 왜 묻는 말에 대답을 안해!!"
현준이 그렇게 외친 후 문이 열리더니 은월이 얘기를 다 마쳤는지 집안으로 들어왔다.
58.
"그렇게 된거구나"
"응 그러니 너무 뭐라 그러지 마"
"...그래 근데 정말로 현준이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지?"
"그래 정말로 유현준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라니까"
현준 녀석이 미즈키를 울린 그 일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났다. 그 후 현준 녀석은 내 집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이유가 미즈키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현준 녀석은 나와 냉전을 유지하고 있다.
지윤이와도 역시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화로 대화는 나누고 있다. 우리 둘이 만나지 않는 이유는 요즘 지윤이가 바쁘단다. 그래서 당분간은 못 만나다고 미안하다고 지윤이가 그랬다. 뭐 그리 미안해 할 것은 아닌데... 그저 조금 심심해 질 뿐인데...
아무튼 그렇게해서 그 둘과 만나지 않는 난 이틀동안 그 둘 대신 미즈키와 별하고 놀았다. 그런데 미즈키가 오늘 일본으로 돌아간단다. 그리고 지금은 공항이다.
"...그럼..."
"그럼 뭐?"
"아니야 아무것도... 근데 왜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 가는 거야?"
"레이가 내가 처리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라... 얼마나 중요한 문제길래... 근데 그들에게 있어 미즈키가 여기로 온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지?
"그렇구나. 레이라는 사람과 같이 왔다고 그랬지? 혼자 도망오기는 그래서?"
"응 그리고 그곳이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야하니까 그래서 레이를 데리고 왔어 난 국제 전화는 역시 하기 싫으니까... 레이보고 하라고..."
"...하하하...그래?"
"근데 은월아 너 요즘은 꿈 안꿔?"
미즈키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가면서도 내가 걱정이 되나보다.
"어. 이상하게 이틀전 부터는 안꿔 미즈키 마지막으로 물어 보는 건데 정말로 현준이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지?"
"아니라니까! 그러니 걱정마 은월아"
미즈키에게 '그럼 산화 때문에 가는 거야?'라고 묻고 싶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 다시 그 말을 목구녕 넘어로 넘겨 버렸다. 역시나 미즈키가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산화 때문이겠지...?
휴. 미즈키가 싫어 할 것을 뻔히 알면서 물어 보려도 하다니 난 정말 나 밖에 생각하지 않는가봐. 아까만 해도 그래 하마터면 미즈키에게 산화 얘기를 꺼낼 뻔했잖아. 다행이도 미즈키에게 "...그럼..."까지만 말했지만...
[곧 있으면 도쿄로 가는 일본행 비행기가 이륙할 예정이오니 아직 탑승하시지 않은 승객들께서는 어서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그만 가봐야겠다. 그럼 은월아 나중에 만나자"
"그래 잘가 나중에 전화 할게"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미즈키에게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를 돌아 보며 미즈키가 하는 말...
"국제 전화는 안돼!"
하하하 까먹고 있었다. 미즈키가 국제 전화 요금이 비싸다고 싫어 하는 것을...
"그럼 편지 쓸게"
그렇게 말했건만 미즈키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것도 비싸 거기다가 오래 걸리잖아"
"알았어 그럼 내가 일본으로 날아갈께"
"그래~~!! 꼭 놀러와 내가 비행기 값 아깝지 않게 잘해줄테니까!!"
"그래..그래"
비행기 값이 더 비싼데 국제 전화보다. 뭐 비행기 값 아깝지 않게 잘해준다니까... 나중에 현준 녀석과 화해하고 지윤이가 한가하게 되면 같이 가야지.
미즈키가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 난 공항을 빠져나왔다. 시계를 보니 이제 별을 데리러 가야 한다. 어제 결국에는 별의 집에 가지 못 했다.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1시여서 전화 하기는 그만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안 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알고 기다리지 않겠지'라고 태평하게 생각하며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별의 집에 갔는데... 내가 한참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내 생각과 반대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보니 다 충혈된 눈이었다. 별의 아빠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들의 심하게 충혈된 눈을 본 난 그 다음부터 절대로 빠지면서 연락하지 않는 짓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기절할 것이다. 거실에서 충혈된 눈으로 현관에 일렬로 정렬해 있는 그 모습을 본다면 말이다. 들어오는 순간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휴우, 정말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맞잖아! 맞는데 왜 거짓말 해!!"
갑자기 들리는 남자 아이의 큰 목소리에 아무래도 싸우는 것 같아 말리려고 소리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소리친 것은 아무래도 유치원 앞에 모여 있는 6명의 아이 중 한 명 인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슬금슬금 피해 가는 것을 보니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싶어 얼른 걸어가 아이들에게 다가갔는데... 어째 한 아이의 뒷모습이 익숙하다?
"...별?"
"아니야! 난 거짓말 같은 거 한 적 없어!"
그 목소리는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한 뒷모습에 주인공이 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왜 싸우는지 물어 보고 싶었지만 일단 말려야 그걸 들을 수 있으므로 우선 말리기로 했다.
"애들아 왜 그러니?"
"류별이 자꾸 자기 엄마가 있다잖아요! 우리 엄마가 류별 엄마 아빠 영원히 안녕했다고 했는데!"
"맞아. 우리 엄마도 그랬어"
"우리 아빠도 그랬어"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의 말을 한 마디씩 거들어 준다. 그 반면에 별의 편인 아이들도 있었다.
"아니야! 우리 엄마는 별이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가 온 거라고 그랬어! 그래서 별이 엄마가 별이 아빠와 잠시만 안녕한 거랬어!"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별이한테 뭐라고 그러지마! 너희들 두고 보라고 곧 있으면 별이네 엄마가 와서 너희들 혼내 줄테니까!"
하하하... 애야 별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좀 심하지 않니? 이러다가 말싸움이 주먹 싸움으로 변하겠다.
"...애들아 이제 그만 싸우렴. 싸우는 것은 나쁜거야"
"하지만 류별이 거짓말을 하니까...!"
"난 거짓말 하지 않았어! 엄마 우리 엄마 맞아! 그렇지 엄마?"
"엄마?"
"별이네 엄마?"
나를 돌아 보면서 묻는 별의 그 한 마디로 인해 난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하하하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거야! 으이...
"...그래"
"거봐 맞다잖아! 진한이 니네 엄마가 잘못 말한거야!"
"...아...아닌데...분명 엄마가 영원히 안녕 했다고 했는데..."
"그게 말이지 진한아 아줌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별이랑 별이 아빠랑 잠시 안녕하고 있었던거야. 그런데 그것을 너희 어머니가 잘못 아신거야"
어쩔 수 없다. 거짓말을 하는 수 밖에... 미안하다. 진한아... 흑흑 날 용서해줘 최대한 너의 순수함을 더럽히지는 않을테니까... 그리고 또 내가 나중에 너한테 맛있는 것도 사줄게 그러니 용서해주렴
"하지만 엄마라기에는 아줌마는 젊잖아요."
"별이 아빠와 결혼을 일찍해서 그래 근데 진한아 아줌마가 그렇게 젊어 보이니?"
"네 누나 같아요."
"맞아요! 누나 같아요."
정말 고맙다. 애들아... 그런 너희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난 참 나쁜 어른이야!!! 내가 정말로 나중에 맛있는 거 해줄게...
"그래? 고마워... 나중에 한번 집에 별이랑 놀러와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줄테니까 알았지?"
"네!"
"그럼 이만 우리는 갈게 나중에 또 보자 별아? 뭐해 인사해야지"
"내일보자"
"그래 별아 잘가~~~"
그렇게 별의 친구들과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 내내 난 내 신세가 너무 불쌍해 보여 한숨만 쉬어 대며 가고 별은 나와 반대로 내가 엄마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줘서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걸어간다. 참 극과 극이군.
그러는 사이 집에 다 도착했고 난 별의 손을 잡지 않고 있는 왼손으로 벨을 눌렀다. 오른손으로 눌르고 싶었지만... 왠지 별이 상처 받을 것 같아 그냥 왼손으로 눌렀다.
[누구세요?]
"은이요."
[...네?...아...네...]
끼이익-
왠지 목소리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근데 왠지 불길하다. 애써 불길한 마음을 떨쳐 버린채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별과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 온 순간 여자의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아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될까?"
59.
이현아... 두 사람은 그 정도로 친한 것 같다. 저 여자가 누군지는 처음 다시 시작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부터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는 그와 이혼했던 별의 '진짜 엄마' 별을 낳아 준... '가짜 엄마'인 나와 다른 별의 엄마...
"...아빠? 이 아줌마 누구야?"
"......"
별 너 알고 있잖아. 누군지 알고 있잖아. 근데 왜 물어? 넌 똑똑해서 5살이라는 나이와는 달라서 알고 있잖아. 네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 알고 있잖아...
"별아 엄마야 널 낳은 엄마"
"...아니야..."
"별아 맞아 내가 네 엄마야 미안해 엄마가 널 버리고 가서 하지만 이제는 정말 잘할게. 엄마가 어떻게 됐었나봐 귀여운 별이를 두고 가다니..."
...있기가 싫다. 그래 정말 있기가 싫다.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전혀 다른세계의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지현."
"네 선배 왜 그러세요?"
"피곤해서 그런데 집에 일찍 가도 되지?"
"...네...그러세요."
"그럼 내일 보자"
별의 얼굴과 그의 얼굴은 보지 않고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왔다. 잘된거야. 모처럼 가족끼리 만났는데 내가 있으면 방해만 될거야 그러니 거짓말을 하고서라도 나온 것은 잘한거야 그래 정말 잘한거야...
잘한거야... 정말 잘한거야. 잘한거라고... 근데 왜 자꾸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한걸까?
앞에 뿌옇게 보인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 그래 눈에 뭐가 들어가서 우는 거야 절대로 그들 부자와는 더 이상 상관 없어진다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우는 것이 아니야...
절대로 그래서 우는 것이 아니야!!
"......"
은월이 나간 후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꼭 그들은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지현아 별이 방금 유치원에서 온 거 맞지?"
"...네...선배"
"근데 왜 아까 여자 분이 별이 손을 잡고 집에 온 거야?"
"별이랑 친하거든요."
"그렇구나...근데 아까 선배라고 부르던데 대학교 선배야?"
혜린은 웃으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왠지 자신이 낄 자리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것 같이 보였기에...
처음에 그 둘이 들어 올 때 별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별은 정말 귀여웠었다. 근데 자신을 보는 순간 별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다.
"아니요. 고등학교 선배요."
"그래? 근데 그 분은 여기 자주 오셔?"
"...네..."
"그래? 그럼 언제 한번 보답해야겠다. 우리 아들 나 대신에 잘 보살펴주신 보답"
"......"
그런 혜린의 말에 어느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답을 해주던 지현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냐. 우리 엄마야"
"...별아?"
"아줌마는 내 엄마 아니야 내 엄마는 아까 나갔어 피곤하다면서 나갔어"
"......"
뚝-
별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조금 섭섭했다. 피곤하다면서 자신이 뭐라 하기도 전해 문을 닫고 가버린 것에 대해...
"아줌마 때문이야 엄마가 가버린 건 아줌마 때문이야"
"별아 네가 그 누나가 좋아서 그 누나가 엄마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 누나를 좋아 하는 것은 알겠는데 네 엄마는 나야 아주 어렸을 때 헤어져서 기억 안 나는 거야?"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나한테 엄마는 두 명이 아냐"
"...별아...제발 엄마 좀 알아봐 줘"
"그래 별아 혜린 선배가 엄마라는 건 사실이야...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인정해"
지현은 별한테 애절하듯이 말하는 혜린이 불쌍해 한 마디 거들어 주었다. 그렇다고해서 지현이 혜린과 이현이 다시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 처음에는 그것을 바랬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혜린과 다시 사는 것보다는 은월과 재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이 은월에게 엄마라고 하며 따르는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자신을 싫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까지 좋아해하는 별의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절대로 인정안 해!"
"...별아...제발...엄마가 잘못했어 이제부터 잘할게..."
"...엄마보고 싶어...아저씨 엄마 불러 주면 안돼? 전화해서 불러 주면 안돼? 엄마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으까 전화 하면 금방 올거야 응?"
"별아 선배 피곤해서 못 올거야 그러니까 내일 부르자"
"그럼 나 엄마한테 데려다 줘 엄마한테 갈래"
"별아...선배가 피곤해서 아마 별이 귀찮아 할거야 그러니까 내일 일찍 엄마한테 가자"
지현은 애원하듯이 별에게 말했다. 하지만 별은 막무가내다.
"엄마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엄마 한테 갈래! 데려다 줘"
"...별아..."
그 때 이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혜린이 집안으로 "오래간만이네요."라면서 가정부에게 말할 때 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이현이...
"류별 괜히 귀찮게 하지마"
"아빠 너무해!"
별은 결국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유모가 따랐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곧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하고 부르며 별이 우는 소리가...
"이현아!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하는거야?"
"착각 마 난 단지 별에게 피곤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야 당장 내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어 지현 앞으로 회의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지?"
"30분 남았어요. 선배"
"그래? 그럼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며 이현은 나가버렸다. 지현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거실에 남은 사람은 이제 집사하고 가정부 몇 명 혜린 뿐이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이제 그만 가십시오. 예전에 모셨던 아가씨를 강제로 내쫓고 싶지 않습니다."
"...네. 그러도록 하죠. 근데 뜻밖이네요. 이런 상황은... 전 이현이가 냉정해서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제 생각이 참 짧았군요."
그녀의 목소리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녀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떠난 후 이현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런 혜린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안녕히가십시오. 부디 몸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네..."
돌아 서는 순간까지 그녀는 슬퍼 보였지만 그래도 그 슬픔은 이현의 슬픔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60.
힘없이 걷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덧 아파트에 도착해있었다. 지금 그들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오직 머리속에는 지금 그들은 어떤 얘기를 나눌까에 대한 궁금함 밖에 없었다. 그 밖에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 힘도 없다.
그렇게 한 가지 생각만을 하며 난 아파트 통로 앞으로 걸어왔다. 통로로 들어가려는 순간...
"은월님"
"...왜 부르시죠?"
산화가 불렀고 난 그런 산화에게 건성으로 대답해주었다. 지금은 산화와 말싸움 할 힘이 없다. 머리속이 너무나도 복잡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은월님"
자세히 보니 산화 옆에는 산하가 있었다. 산하는 산화의 쌍둥이 누나다. 하지만 후계자는 아니다. 원래 산화가 된 제 4의 후계자 자리는 산하의 자리였다. 하지만 산하는 하기 싫다며 산화에게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다.
그리고 듣자 하니 산하 역시 원래는 제 4 후계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 전에 제 4 후계자가 누군지는 난 그것까지는 모른다. 원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네. 그렇네요."
"저희가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답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답? 무슨 답을 말씀하시는거죠?"
"미국에 가는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충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까?"
"......"
산화... 날 직접 데려갈 작정이다. 안 그래도 마음 심란한데... 거기다가 이제 더 이상 산화의 얼굴 보고 싶지 조차 않은데... 자꾸 그 얼굴을 보면 생각나니까... 산화가 현준 녀석과 지윤이에게 내 정체를 알린 것이!!
"...아닙니다. 꼭 오늘 들으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
"되도록 간다는 쪽으로 해주십시오. 꼭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하여 저희가 감히 강요를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두 사람은 큰일 날 것이다. 할아버지가 화내시겠지 하지만 나는 혼나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다 내 편을 들어 주시니까...
"...산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오늘 꼭 들어야하겠습니다. 대답해주시지요."
"...갈게요.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좀 피곤해서요."
"편히 쉬십시오"
그런 산화의 말을 무시하며 집에 들어왔다. 정말로 피곤하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힘들기 싫어서 가겠다고 대답해버렸다.
어쩌면 난 친 엄마의 손을 잡고 다니는 별을 보기 싫어서... 그래서 가는 걸지도 모른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힘들기 싫어서 가겠다고 한 것은 그저 껍떼기일 것이다.
진짜 알맹이는 내가 아닌 친 엄마에게 엄마라고 웃으면서 부르는 별이 보기 싫어서 일 것이다.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
예상하고 있었던 내가 미국으로 끌려가며 별과 헤어지는 것과 달리 별의 친 엄마로 인해 헤어지는 것이 다를 뿐이다. 내 예상이 틀렸을 뿐이다.
그저 그것만 틀릴 뿐인데... 헤어지는 것은 같은데... 어째서 느끼는 감정은 이리도 다른 것일까?
그것을 나도 모르겠다. 꼭 출구가 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너라도 있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미즈키... 정말 보고싶다. 네가 떠난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난 정말 네가 보고 싶다.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현준 녀석과 지윤이랑 아무 말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서 흐르는 눈물인 것일까? 아니면 별과 헤어지게 되서 슬퍼서 흐르는 눈물인 것일까?? 아니면 미즈키가 보고 싶어서 흐르는 눈물인 것일까?
"......"
이유도 모르는 채 계속 울고 있다. 정말 오늘만큼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차라리 이대로 기억이 지워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잊어 버린 그 기억처럼 기억하지 않은채로 웃으면서 살텐데... 전혀 슬퍼하지도 않고...
"산화 넌 오늘 너무 심했어"
"알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분은 가지 않으실거야"
"오늘 일은 제 2 후계자와 가주님께 보고 할 거야 하나도 남김 없이 내가 네 누나라고 해서 오늘 너의 행동을 보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산화의 대답은 없었다. 대답대신 잠시나마 산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산하는 그것을 보고도 못본척 태연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넌 이 일에서 손 떼도록 해 이제부터는 내가 할테니까 내가 표를 구해 줄 테니까 내일 비행기로 먼저 미국으로 돌아가있어"
"...왜 그러는 거야? 명령은 나도 같이 받았는데!"
"너와 있을 때 그 분이 표정이 굳어져 있었어 그것은 분명 너에게 화가 나셨다는 거겠지? 만약 그 사실이 다른 가문 사람들에게 알려 진다면 넌 제 4 후계자에서 쫓겨 날지도 몰라 그러니 더 이상 그 분과 마주쳐서 문제를 일으키지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건데! 난 그 분을 특별히 미움을 할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산화는 산하를 지나쳐서 먼저 걸어갔다. 산하는 그런 산화가 저 멀리 사라질 때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 지울 수 없는..."
'너희 말투 행동 모두가 다른 이들한테 상처가 되는 것을 모른다는 건 참 불행한 일이야... 산화 언젠간 넌 너의 가시가 있는 그 말 때문에 상처 받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어 왜냐면 넌 너무 많은 잘못이 져왔으니까...'
산하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산화는 말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니까... 그래서 산화는 현 가주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 가주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상처가 되는 말을 어김없이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현 가주는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월을 보면 알 수 있다.
현 가주는 은월에 앞에서는 한 없이 다정한 할아버지다. 하지만 다른 이들 앞에서는 냉정한 할아버지다. 그것은 산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때 난 널 도와 주지는 않겠어 왜냐면 나 역시 너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이니까... 그리고 그 일은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하지만 산화는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것은 미즈키를 보면 알 수 있다. 미즈키를 단 한마디로 자기에게 멀어 지게 했다.
산화는 부모에게도 버림 받은 존재와 같아 산하와 달리 누굴 그렇게 따뜻하게 대할 줄 몰라서 그러는 애정 표현 밖에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애정 표현으로써 너무 심한 말이었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렸으면 해'
'....존재 자체가?'
'그래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라는 인물이'
미즈키는 그 말을 듣고 가버렸다. 그 뒤에 산화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작은 목소리로... '내가 가실 수 없다면...' 그것은 산화의 진심이었을거다. 하지만 그것은 미즈키를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
아마 보통 사람이 들었어도 그 말을 상처 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는 미즈키인 만큼 그 말은 상처가 더 컸을거다.
그녀는 혼혈인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어서. 그래서 산화가 한 말은 그녀에게는 "혼혈인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라는 말로 해석 되었을거다.
'곧 네가 남들에게 준 상처를 되돌려 받을거야 그리고 네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될거야 그리고 그 상처를 돌려주는 사람들 중에 네가 좋아 하는 그녀가 있을지도 몰라 만약 그래도 어쩌겠니. 그것 역시 네가 자초한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