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수필문학회 탄생의 배경과 발자취
김 홍 은 수필가
Ⅰ. 충북수필문학의 배경
1. 초창기의 충북문단
충북은 예로부터 청풍명월로 알려진 산자수명한 고을이다. 인심이 좋고 순박한 백제인의 품성과 늠름한 신라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원문화권을 이룬 예술의 요람지로 예술인들의 예향이다. 문자를 보더라도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청주에서 출토되었다. 신라의 문장가 강수, 조선시대의 퇴계이황, 율곡이이는 단양과 청주에서, 송강정철, 김득신, 우암송시열과 같은 선비의 정신이 남아 있으며, 김생의 글씨와 김홍도가 머물다간 그림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예술로는 충주에 삼대 악성으로 알려진 우륵과 난계가 우리 고장 출신으로 충북의 예술은 싹이 텄다. 이러한 선인들의 정신을 이어 받은 1950년 이전의 충북지역 문인들 중에 정지용은 1902년에 충북 옥천면 하계리에서 태어나 1924년에 일본 경도 유학생 잡지 <학조>에 자유시 <카페 프랑스> 외 2편과 시조 7수, 동시 5편을 발표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朝鮮之光>에 <鄕愁>를 발표하고 <시문학>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정지용은 비록 시를 쓰고 있었지만 산문 형태인 수필도 발표하였다. 1927년 <근대풍경 3호>, <みなし子の夢>, <春三月の作文>, 1933년 <카톨릭청년>1, 2, 3호에 수필<소묘1>,<소묘2>, <소묘3>을 발표하였다.
소설가 팔봉 김기진은 1903년 충북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에서 태어났다. 자유파의 초기 동인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海潮音>, <청년 김옥균>, <통일천하> 등이 있으나, 이미 1923년에 開闢誌에 수필 <프로므나드상티 망탈>, <눈물의 순례>, <마음의 폐허 – 겨울에 서서>를, 그리고 <백조 3호>에는 <떨어지는 조각조각> 등을 시작으로 많은 수필을 발표하였다.
충북이 낳은 한국의 농민문학 거봉인 이무영(본명 이용구)은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1908년 음성군 석인리(오리골)에서 태어나 중원군 신니면에 있는 소학교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1920년 上京하여 진학을 하고는 문학에 뜻을 두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6년에는 장편소설로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출간하고, 그 이듬해 <폐허의 울음>을 다시 출간함으로서 작가로 출범하였다. 그는 농촌에 들어가 살면서 농민문학 작가적인 체험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며 수필도 썼다. 이무영은 초기에는 시, 동시, 동화 소년소설, 희곡, 수필을 썼으며 서울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1988. 7. 19 해금조치로 풀려나가게 된 포석 조명희를 들을 수 있다. 포석은 1894년 진천에서 태어나, 1920년 경 일제와 맞서 투쟁하다 28년 소련으로 망명하고는 1942년 소련의 우즈베크 공화국 타슈켄트 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석의 대표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낙동강>, 시집 <봄 잔디밭 위에>, 창작 희곡집 < 金英一 의 死>가 있으며 1926년에 발표한 시대일보에 수필 <생명의 고갈>과 <개벽>誌에 <느껴본 일 몇 가지> 등이 있다. 현재 타슈켄트 시에는 작가를 기리기 위한 조명희의 거리가 있다고 한다.
해금 작가로 널리 알려진 괴산 태생인 벽초 홍명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벽초는 1888년에 괴산군 괴산읍에서 태어났다. 1921년 장미촌에 수필<명말사담>을 시작으로 1924년 개벽지에 <가을의 미혹>과 <쥐 이야기>, 1926년 시대일보에 <호랑이>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민중문학의 선구자적인 소설 <林巨正傳>을 1928년부터 1939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벽초는 일제 강점기 괴산 지방의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나, 6·25때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학창산화>(1948), (林巨正傳)(1948)이 있다.
1818년 보은군 회북면 중앙리에서 태어난 시인 오장환은 시를 썼지만 수필 역시 발표하였다. 1933년 《문장》에 <독서여담>을 비롯하여 <심야의 감상>, <방황하는 시정신> 등을 올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사학자로 더 많이 알려진 독립투사로 역시 중요한 작가이다. 단재는 사학에도 능통하였지만, 주로 신문에 논단을 썼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글을 남겼다. 언론인이자, 교육자이며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문학작품으로 시가, 수필, 소설 등을 발표하였다.
그 외로는 이 지역에 머물며 문학의 영향을 많은 이들에게 끼친 1904년 진천태생인 유촌 유재형이 있다. 그는 1928년 《朝鮮詩壇》에 <새벽에 올린기도> <낙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1964년에는 <대추나무 꽃피는 마을>, 1957년에는 <종소리와 꽃나무>의 시집을 펴 놓았다. 1946년에는 충주고등학교에서 교직에 몸담으면서 시인 신경림, 이상화와 추리작가 정건섭을 길러냈다. 또한, 그는 평론가인 유종호의 선친이기도 하다.
1910년 중원 태생인 박재륜은 1930년 <편지> <강촌연곡> 등을 발표 모더니즘 문학 이론으로 시단에 등장하였고, 1959년에 <궤짝 속의 왕자>란 시집을 내 놓았지만 수필도 간간이 발표를 하였다. 박재륜은 충주지방에서 오랫동안 교편생활을 하며 문하생을 길러 내었고 내륙문학동인, 충주문학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충북지방에 발행되고 있는 《내륙문학》, 《중원문학》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88년에는 그 동안 발표한 수필을 모아 <천상에 서서>라는 수상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1906년 청주에서 태어난 시조시인 정기환은 1936년 《개벽》지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면서, 목사로서 1974년에는 《저 하늘》이라는 시조집을 출간하기도 하였고, 내륙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모두 직접, 간접적으로 주위의 많은 이들에게 수필문학의 꿈을 심어 놓기도 하였으며 충북문학사의 우뚝한 작가들로 충북문단에 빛을 남긴 분들이다. 이외에도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방송극작가 한운사를 내세울 수 있다.
1950년대 이전의 작가들로 따지자면 시, 소설로 장르에 치중되어 있었고 수필문학을 내세우기가 어렵다고는 하겠다. 다만 이들로 하여 이 지역에 문학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하면서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라고 해도 수필문학의 뿌리를 내리는데 중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 충북 문학인의 모임
일제 치하의 문학은 민족의 아픔을 달래는 노래요, 가슴에 맺힌 한의 발산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1945년 해방의 기쁨과 희망차고 자유로운 사회분위기 속에서 문학예술의 꽃이 피기도 전, 1950년에 일어난 6·25로 인해 문학예술은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폐허의 전란 속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딛고 젊음을 불태우는 문학청년들은 이 지역에 문학의 씨를 뿌리기에 정열을 다 바쳤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는 전쟁의 폐허와 아픈 상처를 가리며 문학의 뿌리가 내려 숲을 이루기에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이 고장 예술인들이 향토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발기한 <충북문화인협회>의 모임은 오늘의 충북문단의 모든 기초가 되었다.
당시 충북문화인협회의 문학분과를 보면 신동문, 민병산, 이설우, 박재용, 오세탁, 최병준, 최창희 등이 활동하였으며, 모기윤, 최승길, 홍원길 조건상 김진교 등은 명예회원이고, 그 이 외 도지사, 교육회장 등을 고문으로 위촉하여 활동함으로써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결성된 문학단체가 되었다. 이후 문학 분과는 ‘충북문학인협회’로 개칭하여 문학의 밤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글백일장과 시화전을 열었다. 이것이 해방 이후 우리 고장의 첫 문학의 산실이라고 하겠다.
1950년대의 이 고장 출신들의 문단 활동을 보면 수필을 쓰고 있던 김사달이 1952년 문학지에 수필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55년에는 서울의 김태길이《사상계》에 수필, 서리 맞은 화단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57년에는 영동 출신 송도가 국제신보에 수필 <물과 바다에 대한 동경>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그 외 다른 장르로는 박재용이 195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입선되었으며, 중남에 거주하던 추식은《현대문학》에 <부랑아>, <모오든 나는 오라> 등 소설이 추천 완료되었고, 또 청주에 정착한 전예근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사이도 좋다>가 당선되었다. 그 외 1956년에는 충주의 신경림이 문학 예술지 <갈대>로 추천되고, 조남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별곡>이, 그리고 류흑렬은 경향신문 장편소설에 <주인 없는 강> 이 각각 당선되었다. 또한 옥천의 유승규가 자유문학에 <예순이>, <빈농>으로 추천 완료되었다. 신동문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산문시 <풍선기>가 당선되었다. 1957년에는 김영옥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표정>으로 당선되고, 구석봉은 《자유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첫 시집으로 <피의 역사>를 펴냈다.
한편 신동문은 제1회 충청북도 문화상과 충북문학상(충북문화사 홍원길이 제정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몇 해 시행되지 못하였음)을 받았다. 이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어 향토문학에 새 바람을 일게끔 하여 1957년에는《푸른문》문학동우회가 발족하였으나 다른 분야는 물론 수필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충북의 문학동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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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북예술제(청주공업고등학교운동장)
1960년대에 접어들며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그에 따라 문인들의 모임도 활발해져 갔다. 충북 도내의 청주, 충주, 영동 지방에서도 동인들 모임이 탄생되었다. 당시 문학인들의 모임으로는 청주에《향우문학》동인으로 윤석준, 송주헌, 이진호, 김원길, 윤용호, 우영 등이《향우문학》동인회를, 충주에서는 박재륜, 오세탁, 유재형 등이《예문회》로 활동하였고 그 외 청주에《소상》동인, 중원지방의《남한강》동인, 영동의《피노래》동인, 진천의 《박꽃》동인 등이 있었다. 고등학생들로는《푸른문》문학동호회,《원탑》문학동호회,《새벽》문학동호회가 있었다.
대학생들로는 충북대에《창》문학동인회가 있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임은《푸른문》문학동호회와 《창》문학회 만이다.
초창기《푸른문》문학동호회원은 임찬순, 홍기삼, 조남기, 김문수, 조장희, 박영수, 윤혁민, 신경식, 오필환 등이고 지도교사로 신동문, 이설우 그 외 민병산, 최병준, 유흑열로부터 간접지도를 받으며 합평회, 시화전, 문학의 밤을 열었다. 이 모임은 3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푸른문》문학회에서부터 이제까지 배출된 문인들을 보면 홍기삼(평론), 조상기(시), 김문수(소설), 조장희(동화), 임찬순(희곡), 윤혁민(극작), 김홍은(수필), 김규영(소설), 이현암(시), 홍강리(시), 김문자(수필), 이효숙(시), 신경득(평론), 곽영석(아동문학), 전병호(아동문학) 등이 있다. 그리고《창》문학회에서는 김홍은(수필), 김재명(수필), 조관형(수필), 정한용(평론), 정효구(평론) 등이 문인으로 등단하였다.
한편 60년대 충북문인협회가 출범하고 많은 사람들이 속속 문단에 등단하기 시작하면서 문학 동인들의 문학 활동이 활발해졌다. 1961년에 조장희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산골 겨울밤>이, 김문수는 조선일보에 소설 <이단부흥>이 각각 당선되었으며 최창희는 현대문학에 추천되었다.
1963년에는 이상범이 시조 문학지에 시조<碑>가 천료 되었고, 박용삼은 자유문학에 시<꽃과 철조망>이, 이동희는 소설이 추천되었다. 1964년에는 홍기삼이 현대 문학지에 평론<반비평론서>가, 그리고 1965년에는 양채영이 시문학에 <가구점>, <내실의 풍경>으로 추천되었다. 1966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박용삼의 시조<독도>, 조상기의 시<밀림의 이야기>가 당선된 것에 이어 박희선은 문학춘추지의 신인상에 <심야의 목련>으로 당선되어 회원들을 기쁘게 하였다.
1967년에는 박용삼이 다시 신아일보에 소설 <부러진 이빨>이 당선됨으로써 시 시조에 이어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또한 김문수가 문학춘추에 발표한 단편소설 <반향쇄풍기>로 제 5회 충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69년 강준형이 시집《댕기》를 홍해리도 시집《투망도》를 상재하여 등단하였다. 안수길은 월간문학 신인상에 <멀고먼 장승>으로 당선되었고, 장지성은 시조문학지에 <과수원 마을>이 추천완료 되어 등단하였다.
충북문인협회 출신은 아니나 이 고장 출신으로 서울이나 타 지방에 거주하며 활동한 문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2년 전의홍이 현대문학지에 <꽃> 등이 추천완료 되었다. 1963년 윤종혁은 동성춘추에 시<무지개>를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하고, 안장환은 경향신문에 <늪가의 이야기>가 당선되었으며 최연홍은 현대 문학지에 시<빈의자> 등이 추천되었다. 1964년에는 김의경이 문학춘추지에 장막극 <갈대의 노래>, 단막극<신병후보생>이 당선되어 극작가가 되었다. 1967년 오탁번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지온이 빛나는 이 아침이> 로 당선되었으며, 1968년에는 전의홍이 시조문학에 동시조 <눈사람>이 추천되었고, 또 대구에 있던 이무영의 생질 강준영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다도해 근경>으로 당선하고 염재만이 신문학지에 <떡>, <반노>로 추천받았는데 이 작품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오탁번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어 시인 겸 소설가가 되었다.
각 장르별로는 당선, 추천이 완료되어 많은 문인이 배출되고 있었으나 수필문학에서는 등단하는 문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 당시만 해도 문학 지망생들은 수필 쪽을 등한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4. 충북 문학회 동인지의 첫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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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제13회 충북예술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수필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사람은 민병산, 송주헌, 박영수, 최병준, 박재륜, 김현길 등으로써 이들이 각 문학 단체나 동인들이 발간하는 문학지에 발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문인협회 충북지부에서 1974에 발간한 《충북문학 4집》에서 최병준은, 수필문학의 재검토>에서『수필이라고 하면 으레 문인들이 창작의 여가에 쓰는 소품거리로 오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이 되기에는 너무나 散設的이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기가 되어 어디다 발붙일 수도 없으며 또 홀로 꿋꿋이 서 있을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고 전제하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수필은 하루 빨리 문학인들의 소설도 시도 아닌 자기 신변이나 심상의 해명 비슷한 넋두리에서 벗어나 생활인의 건전한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장 가깝고 생생한 현실을 소재하여 깊고 큰 근본 진리를 손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생활인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수필은 문인 전용물에서 벗어나 직업인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문학이기를 바란다.』 고 하였다.
이것만으로도 70년대의 초기만 해도 수필은 문인이면 다 쓸 수 있는 평범한 글로 여겼고, 수필은 문학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문단 등용이 지방에서는 더욱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수필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1977년 8월에 [한국수필문학 진흥회 충북지부 창립총회]를 태동관에서 갖게 되었다. 당시의 회원은 김상억, 김원길, 최병준, 김태창, 강승원, 진선주, 김창환, 김효동, 한현구, 강우진, 안수길, 최병학, 박재식, 윤송연, 문종수, 강준성, 최창중 등이었다. 수필진흥회에서는 충북지부 회원들의 작품을 《수필문학 8월호》에 특집으로 다루었고 작품을 보면 박재식 <약한자의 이름은 꽁초>, 김효동 <말(言語)>, 김현길<반장>, 한현구 <나>, 김태창 <인간시비>, 안수길 <닭다리와 애기감자>, 강준형 <파경여상>, 윤송연 <수(數)>, 문동수 <200해리>, 최창중 <어머니> 였다. 이 작품들을 《수필문학 9월호》에는 수필의 재미 <수필문학진흥회 충북지부 회원수필을 읽고>란 제목으로 평론가 신동한이 평문을 썼다. 이를 참고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문학》지에서는 수필문학 진흥회를 만들어 지방에 각 지부까지 두게 되었다. 지부회원의 글을 특집으로 잡지에 실어 나가는 계획인 듯싶은데 그 첫 회로 충북회원의 작품을 싣고 있다. 먼저 박재식씨의 <약한 자의 이름은 꽁초>가 있다. 제목이 나타내고 있듯 이것은 담배에 얽힌 박씨의 지난날의 에피소드를 엮어 나간 이야기이다. 官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글과 그림에 관심을 갖는 취미를 드러내 주는 필치가 읽은 사람을 지루하게 해 주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말도 그렇지만 우선 흥미 있는 내용이 담겨져야 한다. 공허한 붓장난은 아무리 재주를 부리는 글이라 하더라도 읽는 사람에게 별다른 공감을 주지 못하는 법이다.
< 약한자의 이름은 꽁초>는 재주를 부린 글이 아니다. 담담하게 지난날의 생활의 체험과 대인관계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삶의 진실을 엿보게 해준다.
또한 진실을 글의 밑바닥에 깔면서 세련된 형식을 쌓아올려 나가는 것은 문장도의 가장 큰 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효동씨의 <말>은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말을 가지고 추상적이거나 아리송한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말에 관한 적절한 글을 쓰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누가 읽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명석한 글로 나타나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효동씨의 <말>은 자칫하면 재미없는 이야기로 빠지기 쉬운 글의 제목을 가지고 그것을 요령 있는 수필의 소재로 소화시키고 있다.
김현길의 <반장>은 우리 주변에 익숙한 직함으로 통용되는 반장에 얽힌 이야기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작하여 군대 생활을 거쳐 직장과 사회생활을 겪게 되는 반장이라는 직함과 만나게 되는 인연을 과장 없이 소박한 문장 속에 서투르지 않게 담아 놓았다.
한현구씨의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글로 엮어 나간 내용인데 나를 그대로 드러냈다 기 보다 나에 관한 반성의 붓을 들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을 한씨는 별로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러한 종류의 글에서 너무 심각하거나 딱딱한 이야기 보다는 웃음 짓게도 해주는 위트가 있는 글의 요소가 보태어 진다면 어떨까 싶다.
강승원씨의 <H시와 C화방>은 수필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담은 소품이다. 제대로 갖추어진 구성과 때를 벗은 문체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게 해준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그려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것은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높은 격조를 풍기게 한다.
김태창씨의 <인간성 시비>는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인간성을 가지고 엮어나간 수필이다. 인간성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모두가 자기 위주로만 헤아리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반성의 제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수길씨의 <닭다리와 애기 감자>는 어린이의 마음가짐과 몸짓이 비롯되는 과정을 소설가 다운 솜씨로 살피고 엮어 나간 글이다.
글이란 역시 섬세한 觀察眼과 그것을 남달리 느끼는 감성에서 풍요한 내용과 무게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닭다리와 애기 감자>는 그것을 충분히 보여주는 글이다.
강준형씨의 <파경 여상>은 겨울을 일기에 비겨 스스로의 일기에 얽힌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일기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곡절이 적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나 어쨌든 요령있게 일기를 읽게 된 사연을 엮어나간 글이다.
윤송연씨의 <수(數)>는 인간 생활의 바탕이 되는 수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 있게 풀어 나가고 있다. 누구나가 수와 떨어져 살 수 없으면서도 자칫 염두에서 생각하지 않는 수에 관한 상념을 생경하지 않은 표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문동수씨의 <200해리>는 요즈음 떠돌고 있는 경제수역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시사에 머무는 내용이 아니다 재치 넘치는 글을 가지고 우리 시야의 폭이 넓은데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다만 200해리라는 시사문제를 빌어 이야기 하고 있다. 문씨의 글은 자유분방한 문인의 글을 무색케 하는 사고의 활달성을 보여주는 재기 넘치는 글이다.
최창중씨의 <어머니>는 누구나가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상이 있듯이 여기에서도 스스로의 어머니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고 있다. 어쨌든 이상 여러 편의 충북수필동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수필의 재미를 새삼스럽게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이때가 충북에서는 수필문학의 태동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불행이도 이 모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지고 말았다.
5. 충북 출신 수필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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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9. 26. 제 1회 충북문학인대회
1980년대의 충북의 수필문학회의 발족은 1981년 충북문인협회가 주최한 도내에 있는 모든 문학동인, 단체, 문인들과 한국문인협회 임원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충북 출신 문인들과의 만남이 9월 26, 27일 양일간에 걸쳐 청주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제1회 향토문인과의 만남’이 열리면서부터 자극되었다. 이로부터 충북문인록이 작성되었고, 그 결과 1983년에《충북문학전집》을 펴내게 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수필분야의 작가는 아래와 같다.
김사달 수필가는 팔방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작고하였다. 1928년생으로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에서 태어나 청천초등학교만 졸업하였으나 대학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였다. 1952년 수필발표로 문단에 나왔으며 저서로는 <소의락수>(1964), <대장부와 졸장부>(1979), <인생과 건강>(1982), <맛과 의미><1982)가 있다.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멋과 기교를 함께한 수필을 남겼으며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에서 작품 활동하였다.
김사달의 작품세계를 보면 「수필이란 솔직하기 때문에 다른 글보다 오히려 접근이 빠르고 예리할 수 있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구수하고 자유로울 수가 있다. 또한 아름다운 시경(詩境)이다. 가벼운 경구, 익살과 유머 등이 은연중에 풍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글쓴이의 개성이나 면목이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수가 있는가하면, 그 사람에게 깊숙이 내재한 교양이나 아취, 견식이나 사상 등이 글 가운데 풍기는 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필을 모름지기 그것대로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수필이라는 것이 잘 쓰여지고 다듬어진 것이라면 훌륭한 창작의 문학작품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소야(疎野)하고 생경하여 멋대가리가 없는 글이라면 넋두리 같은 잡문이나 견강부회의 너절한 궤변이 되고 만다. 잘 쓰여진 수필에는 해학과 웃음이 있고 가슴을 저리게 파고드는 정감이 있으며 구수하고 톱톱한 인정 가운데 예리한 비판이 있는가하면 적벽부의 글귀에 있는 대로 淸風徐來水波不興(하늘은 잔잔하고도 아련히 피어오르는 안개와도 같이 인생의 생활을 관조하는 여유와 철학이 서릴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하듯이 그는 깔끔한 작품으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는 수필을 썼다.
金泰吉은 1920년대에 중원군 이류면 두정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는 충주와 청주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1955년 <思想界>에 수필 <서리 맞은 화단>으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수필집으로 <웃는 갈대>(1962), <빛이 그리운 생각들>(1965), <검은 마음 환한 마음>(1969),<흐르지 않는 세월>(1974), <窓門>(1976), <고독한 城主들>(1979), <민물고기와 바다>(1980), <情熱 그리고 知性>(1980) 등이 있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지금은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김태길의 작품관을 보면 필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며 진실이 담겨 있는 수필을 추구한다. 교훈은 간접적이며 바람직하고 마지막 판단은 독자 자신이 하도록 여운을 남기는 글, 즉 생각이 깊은 글을 좋아한다. 또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고 하며, 소재에 따라서 분재를 다듬는 수법으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게 하며 심산유곡을 원경으로 그린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글을 써 각박할수록 마음속 꿈의 언어를 느끼게끔 한다. 평이한 문장이면서도 쉬운 말을 간결하게 쓰여 진, 겉보다는 안으로 덕성을 담고 있다.
徐廷範은 1926년 충북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나비이야기>, <미리내>, <겨울 무지개>, <巫女의 사랑 이야기>(1979), <그 生命의 故鄕>(1981), <사랑과 죽음의 미술사>(1982)등 이외에도 많은 저서가 있다. 동인활동을 보면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한국수필>주간 등으로 활약하였다.
서정범의 수필관을 보면, ‘내가 수필을 쓸 때 첫째로 생각하는 것은 이 글이 재미있는 글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재미없는 글을 누가 읽겠는가, 재미란 어떤 것 일까, 말을 바꾸면 예술적 쾌락도 이 안에 들 것이다.
재미란 어떤 의미에서 새로움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작가의 눈, 새로운 발상 새로운 작자의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면 독자는 거기에서 즐거운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수필에는 창조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 창조라는 것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창조래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수필이란 작자의 경험을 고백 또는 표백한다는 특성을 지닌 문학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수필을 작자의 거울이라고도 하겠다.
재미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소재가 참신해야 한다는 것도 그 하나가 되지만 무엇보다도 작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작자만이 가지고 있는 시각, 세계, 생각, 문장 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내가 즐겨 추구하는 소재는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인생을 크게 보면 삶과 죽음으로 가를 수 있다. 이 삶과 죽음을 다리 놓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사랑이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죽음의 의미도 진실하게 한다. 그러한 면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삶과 그리고 죽음이고 그 다리인 사랑이 소재이자 주제가 된다. 이러한 삶과 죽음과 사랑을 추구하면서 인생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만을 추구하고 있다. 인생의 어두운 면과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만을 추구하고 있다. 인생의 어두운 면과 부정적인 면이란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의 하나가 된다고 하겠다. 어두운 면과 부정적인 면을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밝은 면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이론이 성립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고 인생의 긍정적인 면만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는 실제 이러한 생각을 담은 작품들을 충실히 발표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모두 학자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宋島는 1926년에 영동군 양강면 문동리에서 태어났고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서울 장충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임을 하였다. 1957년 국제신보에 <물과 바다에 대한 동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저서로는 <교사와 학생들의 대화>(1966), <餘白의 藝術> (1978 공저)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 pen클럽 회원, 수필가협회회원, 사문예동우협회, 영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작가는 누구나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게 꿈일 것이다. 좋은 글은 작가의 노력한 흔적이 서려 있어 그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담아 두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글을 쓰려면 체험에서부터 많은 생각을 오랜 세월을 두고 다듬어질 때 독자들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여운을 주게 마련이다.
송도는 재담이 많은 분이다. 글에서도 그의 해학은 늘 웃음을 선사하여 주고 있다. 한 편의 글을 읽고 웃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분의 글을 읽고 나면 흡사 고향의 이웃집 어른이 재미있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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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82년10월25-26일 충북 향토문인들의 만남 - 화양동 계곡에서>
李淑은 1926년생으로 영동군 영동읍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 고려대 국문과를 나와 서울 강서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73년 <한국수필>에 <고향의 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대표작으로는 <참멋>, <영원한 보석>, <마음의 꽃밭> 등이 있으며 저서로 <유정>(1953),<내 영혼의 무지개>(1990) 등이 있다.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숙의 작품관을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한 세계를 그려내는 수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위안과 평안함을 준다. 수필은 그저 담수와 같은 심경으로 자연이나 인생을 바라보아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는 문학이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마음속에 얼룩지는 앙금과 사색의 여적을 적어놓는 일이다. 메마르고 가파른 생활 속에서도 때로는 나 자신에 돌아 올 때가 있다. 매일 거의 같으면서도 뉘앙스가 다른 일과에 쫓기어 다니다가도 문득 고요히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자연이나 생활에서 마음에 앙금이 얼룩질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을 다시 나 나름의 심성으로 포옹할 수 있게 사색의 날개를 펼쳐 나간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관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항상 자기 사상을 전달하려는 또는 자기의 진실한 생활 기록과 참회적인 자기의 인생을 그려내는 척도적인 수상을 말할 수 있다.
둘째로는 예술적인 형식의 수립은 순수한 인간 감정에 대하여 발로된 에세이로 간주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情恨적이며 서정적인 수상을 말할 수 있다. 나는 항상 나의 생활적인 표상화의 발로로 하여 내 나름의 철학적 사상을 수필작법에 가미하고 있다. 문학작품 가운데 자아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수필작품이며 이에 나타난 자기상은 자기화한 사고력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의 한편의 수필작품은 나의 心田에 심은 한 포기의 꽃 아니면 心眼의 악관적인 표출 속에 순간과 영원이 합일화한 나의 覺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수필은 한가지의 예술 형식으로써의 문학처럼 그것이 존재하는 경험에 의하여 창작되기 때문에 순수한 전달에서의 독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든 글은 양심의 밑바닥에 산재한 마음의 표출이며 그 인간의 行의 전부다.’라고 한 의미를 나는 나의 작품관에 항상 적용시켜가며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한국수필문단에서의 원로로 수필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鄭辰權은 1935년 영동군 영동읍에서 태어났다. 영동고와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을 나와 한국 체육대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푸르른 나무들에 저 붉은 해를>(1972), <비닐우산>(1976), <한국인의 향수>(1979(, <中殿과 侍女>(1982)가 있으며 1979년에는 제 1회 한국수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목사님과 술>, <네 이놈>, <시장 구경> 등이 있다.
그의 수필관을 보면, ‘첫째는 우리말을 바르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어느 장르의 문학임을 막론하고 다 해당되는 이야기다. 다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영혼과 같은 것이다. 문법(논리)에 어긋난 말을 써 놓고도 태연하거나 그런 말을 접하면서도 아무 반응이 없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이 논리를 상실해 간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하여 규범적인 문법을 파괴하는 경우는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창조적인 행위로서 말을 잘 못 쓰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나는 비교적 많은 수필을 쓴 셈이지만 이렇다 할 가작은 쓰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말을 바르게 쓰기 위한 노력만은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둘째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모든 장르의 문학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다. 문학이 아무리 고귀한 가치라 하더라도 사람보다 더 고귀한, 삶보다 더 높은 가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문학이 인간에 대한 증오감을 유발한다든지 삶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든 지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문학은 가령 정치나 윤리와 같은 다른 문화의 수단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와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나는 내 수필에 인간에 대한 증오나 삶에 대한 야유 같은 것이 끼어들까봐 늘 경계해 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람을 따뜻이 사랑하고 작은 삶도 큰 삶처럼 기뻐한다는 것은 역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인 듯하다. 그러나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셋째는, 짤막한 한 편의 수필도 새로운 세계(인생)의 창조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가령, 일기, 기행문, 전기, 역사, 뉴스 기사와 같이 실제로 있거나 일어났던 일을 쓴다는 것이다. 만일 수필이 그런 것이라면, 수필가는 결코 하나의 새로운 세계는 구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쓴 수필은 결코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즉, 사실의 묘사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그리는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내가 겪은 여러 사실(체험)들을 수정하거나 보충하거나 하여 새로이 조직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따라서 내 수필들 속에는 허구적인 요소가 많든 적든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허구화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수필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조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허구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끝으로 하나는 어떤 글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수필도 완벽한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느니,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쓴다든지 하는 말들의 표시적 의미만을 생각하고 쓴다면, 그것은 한낱 무질서한 산문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한 편 한 편마다 그 나름의 구조를 생각하고, 그 구성을 치밀히 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수필은 아직 산만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바른 우리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장초적인 세계를 보일 수 있는 완벽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수필을 쓰는 나의 소원이다’라고 하고 있다.
鄭在恩은 1939년에 충주시 성서동에서 태어나 충주여고를 나와 1960년 여원 신인상 소설 부문에 <방천뚝 사람들>이 당선되어 1976년 <수필문학>에 <치마>, <銳角>이 천료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옛정>, <합수머리>, <돌배의 꿈>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돌배의 꿈>(1980)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정재은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잊혀져 가는 언어(言語), 풍습, 예절 등이 너무나 많다. 모든 사회가 고도의 기능만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어 버려 이제 쓰잘 데 없는 것 같이 되어 버린 우리 주변의 자질구레한 아름다움들이 묻혀 가고 있다.
마치 가보로 내려오는 한 폭의 글씨라던가, 한 점의 그림에서 뼈대 있는 집안의 기풍을 엿볼 수 있듯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일상에서의 전통적 맥락을 승계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작품에 대한 일면이었음을 고백해도 그다지 과장된 표현은 아니리라.
「얄풋하게 솜을 둔 겨울 상보」<옛정>, 「상큼하게 다림질 된 옷」<돌배의 꿈>, 「작은 마을에 동싯한 집 한 채」<그 복된 가을>, 「아녀자들의 잡다한 애환이 고운때처럼 솔기마다 촉촉이 배어진……」<치마>, 「대가미 연못물이 파닥파닥 넘어가는 햇살」<나의 이력서> 무작위로 뽑아본 <나의 작품> 중 한 구절 들이다.
우리는 잊고 산다. 우리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상큼한 감각을 지닌 훌륭한 글이란 것을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아름다운 표현이 곳곳에 깔려 있다. 충청북도 충주 태생인 나는 다행이도 본적지인 충북 괴산과 이모님이 살고 있는 보은엘 자주 다닐 수 있었다. 고유한 충청도 사투리와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며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산재해 있었다. 서울의 규격화된 세련된 말씨와는 달리, 구수하고 은근하며 정감 넘치는, 이러한 수많은 언어들이 그대로 묻혀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와 과거의 미묘한 연결로 이어지는 맥(脈)의 역사성 구현을 나의 작품이라고 굳이 표현한다면 변명이 될까?
시간과 건강이 여의치 않아, 아직 둘레둘레 시골을 돌아보며 두리뭉실 둥글둥글 살아가는 우리 아낙네들의 때절은 앞치마에 묻혀가고 있는 아름다운 표현들을 다 찾아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는 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러한 어휘에 말 못할 정감과 애착을 가지고 발굴하려는 의지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가장 문학적인 표현 가장 수필적인 표현, 그것은 세련되고 자로 잰 듯 깍듯한 도시의 칼날 같은 싸늘한 언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득, 여유와 풍요로운 그러면서도 세밀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구수하고 아름다운 토속적인 우리 전통 언어에 있다고 확신하며 나는 무궁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것이다.
「대문이 삐삣내기로 열린다」, 「험없는 왕골자리를 매듯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인정을 짜 가는 이웃 관계의 고드랫돌 품앗이」, 「도랍이 비쳐 드는 햇살」 …… 모두가 우리들이 잊고 살던 단어들이다. 현대와 접목되어 빛나게 살아오는 우리의 언어, 생활, 느낌, 이러한 전통적 맥락의 승계가 나의 작품관이라고 변명하였다.
潘淑子는 1939년에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81년 한국 수필 <가을이 오는 소리>가 천료 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으며, 이어 현대 문학에서도 천료 되었다. 저서로는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 <가슴으로 오는 소리>가 있다.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진흥회 회원, 뒷목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반숙자의 수필관을 보면 풀잎에 내려앉은 물방울이나 무거운 흙덩이를 쳐들고 솟아나는 새싹을 대하듯 그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찬란한 아침 햇살이 온 누리에 반짝이듯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는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 사람들의 끈끈한 인정이 묻어 있는 속에서 사과들이 주렁주렁 익어 가는 열매를 따낸다.
그의 작품 속에는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의 아픔을 느끼게도 하고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측은함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연상시켜 놓기도 한다. 어떤 불행을 뭇 가슴에 희망과 결실을 맺게 하는 실한 꽃으로 아름답게 피워 놓는 생명이기도 하다
朱蘭淑은 1945년에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여고를 나와 수도여사대 서양학과를 다녔으며 1982년 <한국수필> <내 영혼의 바람소리>로 천료 되어 동년에 월간 문학 신인상에 <낙조>가 당선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천재와 끈>, <기도하고 싶던 순간들>, <내 영혼의 바람소리>, <지금 우리는 어디에>가 있다. 저서로는 <불꽃이고 싶다>가 있으며 주란숙의 작품관을 들어 보면 「가끔 릴케의 충고를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거든 쓰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쓰지 않고는 살 수 없거든 글을 쓰도록 하십시오」 문학과의 만남이 얼마나 숙명적인 것이어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이 말은 문득문득 불치의 유전병에라도 시달리고 있는 것 같은 통증을 몰고 온다.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다른 것 다 놔두고 하필이면 글을 쓰겠다고 덤벼들었을 리가 없을 터인데도 문학을 하겠다는 청년에게 릴케는 그런 충고를 했다. 글을 쓰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자기를 소모시키는 길인가를 암시하는 그 말속에는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그렇게 기가 올라 미치지 않고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을 택했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내적인 욕구는 신열에 떠서 몸살 하는 무당이 살풀이 춤이라도 한 사위 추어야 제 정신이 드는 것처럼 영혼의 심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어떤 종류의 글이든 써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만 올라서 쓰는 글은 자칫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고 더 높은 의식수준으로의 성장을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어느 시인은 시의 생명을 리듬에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수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균형이 깨지고 리듬을 잃은 수필은 조율이 안 된 피아노로 심포니를 듣는 것만큼이나 독자들을 싫증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진실을 정직하고 감동스럽고 가장 자연스럽게 읽은 이에게 전달했을 때 그 수필은 균형과 리듬을 조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潘寅燮은 1938년에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태어났다. 1982년 <한국수필>에 <고향>이 천료 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으로는 <겨울바다>, <사랑>, <낙엽> 등이 있다. 저서로는 ,가을에 앓는 병>(1994)이 있으며 제 1회 충북수필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한국수필, 충북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내륙문학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북수필문학회 발족하였고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재주들이 좋아서 이것저것하며 잘도 사는데 난 이렇다 할 재주가 없으니 그 많은 재주 중 신은 나에게만은 인색한 것 같다.
수단이 없으니 재복도 없고 사람이 못생겼으니 염복도 없고 또 관운도 없으니 말이다. 딴 재주를 내리지 않는 대신 글 쓰는 재주라도 흡족히 내려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도 시늉뿐이니…….
그러나 조금이라도 주신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그나마 재주도 없다면 삶의 보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글을 쓰기위해 산다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옛날 중국의 先哲이 문장을 「經國之大業 不朽之盛事」라고 했지 않은가? 글은 한 나라를 경륜하는 큰 사업이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성대한 일이란 뜻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것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簞食瓢飮할망정 글다운 글을 쓰는 것에 마음을 써야겠다.
나는 어렸을 적 꿈이 담긴 고향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따스한 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어디에 사나 내가 태어난 곳, 정이 배어 있는 고향을 버릴 수 없고, 엄마의 젖꼭지를 만지며 잠들던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러한 포근한 정을 될 수 있으면 작품 속에 용해시키려 한다.
정이란 무엇인가? 흐뭇하고 아름답고 훈훈한 것이다. 정이 없는 인간이 냉혈동물 같다면 정이 담기지 않은 글은 메마른 콘크리트처럼 황량할 것이 아니겠는가? 정은 인간의 정신의 양식이요, 마음의 영양소이다. 그래서 수필을 머리와 가슴으로 쓴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며 자연 속에서 호흡하는 수필을 썼다.
尹松然은 1951년에 괴산군 증평읍에서 태어나 충북대를 나와 충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82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만종>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으로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잊혀져가는 편지>, <보리밭>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음치의 영가>(1979), <기러기 울어 예는>(1983) 등 수필집이 있다. 충주에서 중원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윤송연의 작품 세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 깊어가는 여름 밤하늘을 보며 애태워 써 봤던 많은 연서들이 세월이 지난 다음에 철없이 여겨지듯 지금의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언젠가는 후회할 일이다. 글은 순간의 감정을 화석으로 만들고 만다. 결국 물릴 수도 바꿀 수도 없이 浮彫가 되어 그냥 그 자리에 영원히 남을 것이고 한때의 만용이 더러 부끄러울 것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데 불과하며 그 많은 옷 중에 하나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아무리 아름다운 색의 옷을 입는다 해도 허세에 지나지 않을 일이다. 평생을 승복만 입고 살아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구태여 다른 색깔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고 때론 무가치한 열정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金洪殷, 그는 1941년에 청원군 문의면에서 태어났다. 1983년 4월 <월간문학> 신인상에 수필 <문창호지를 바라보며>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으로는 <어떤 나무>, <싸리나무>, <대나무>, <가침박달>이 있으며, 저서로는 <차가운 세월 속에 정다운 합창>(공저), <저 바람 속에 불꽃이>(공저 , 1994)이 있다.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충북문인협회 회원, 대표에세이 동인, 충북수필문학회 회원이며 한 때는 뒷목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활동을 보면 충북문인협회 회장, 충북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충북수필 문학상을 제정하였고, 충북수필문학회 세미나를 개최하여 그 뿌리를 내려놓았다.
김홍은의 수필세계는 자신이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추억들을 캐어 깨끗한 물에다 수없이 헹궈 내어 다듬어 놓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가슴에 담아 둔 사무친 그리움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생활들을 나무와 연결시켜 나름대로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게 한다. 소재를 나무에서 찾고 있어 자연을 어루만지며 자연의 숨소리를 듣게 한다.
조성호는 1942년생으로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학교 약학과를 나왔으며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 <소금기>가 당선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조제예찬>, <아침은 즐거워>, <재생인생>, <미나리 꽝> 등이 있다. 충북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 회장, 뒷목 동인 회장, 대표에세이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충북수필을 발기하였다. 조성호의 수필관을 보면, ‘이제껏 많은 글을 쓰지 않은 처지로서 제 작품 세계와 작품관을 논의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오래 살아서야 인생관이 제대로 형성되고, 다작하는 작가가 작가관이 근사하리란 법이 없긴 하지만 제가 제 것 떠벌이기란 얼마나 쑥스러운 일이랴.
남에게 좀처럼 내 안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던 완고의 성채를 가슴의 빗장을 조금씩 열고 안으로만 웅크리던 부끄럼의 응어리를 서서히 쓸어내린다. 그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작업으로 수필쓰기를 뒤늦게 시작한 용기는 늦바람 난 홀아비의 바람기만큼 허둥거리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이리라
설익은 풋과일의 풋풋한 내음 그대로, 원시림의 원목 그대로인 채 아직 덜 가다듬어진 나의 조그만 작업들은 누구에게 얼마의 감동을 주고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더 짙게 감겨 오는 건 아직도 나의 세계가 미흡하고 제 둥지, 제 울타리를 치지 못한 탓이다.
TV와 라디오와 신문을 매체로 저질 대중문화가 문화와 예술의 탈을 쓰고 선무당 생사람 잡듯 날뛰는 이 판국에 그래도 자진해서 「순수」란 정조대차고 지조 굽히지 않는 이들이 밤새워 음호하고 있는 「문학성의 향상」은 그런대로 한 번쯤 생애를 걸고 도전하여 볼 히말라야 봉우리요, 열애하여 볼만한 구원의 여성상이리라.
생활문화가 위기에 닥치고, 수필이 시나 소설보다 비록 천덕구리로 큰다 할지라도 다 한두 줄의 의미 깊은 글귀 하나로 몇몇 사람을 어루만져 주고, 깨우쳐 주고, 꼬집어 주고, 생각하게 하여 주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일이다.
수필문학이 흔히 신변잡기나 끄적이는 글장난이란 오명을 벗고, 너무 흔하고 너무 손쉽다는 잡문의 너울을 훌훌 벗어 던지고, 일상의 평범을 문학성에로의 승화작업을 통하여 고양하여야 하리라」고 하고 있다.
충북문학인대회 이후 충북출신 문인 주소록에 등재되지 않은 회원으로는 안성호, 윤덕근, 지연희가 있다.
지연희는 1982년 <한국수필>로 등단한 이후 1983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으며 제5회 동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수필과 비평 이사, 한국낭송문인회 부회장 등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이제 사랑을 말하리라>, <사랑찾기>, <가난한 마음을 위하여>, <그리운 사람이 올 것만 같아>, <비치는 것이지 모습뿐이랴>, <그대 가슴에 뜨는 초록빛 별처럼>, <네게 머무는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등이 있다. 수필가로서의 지연희를 평론가 오학영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인생을 영위해 가는 데는 여러 가지 양태가 있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정의가 있는가 하면, 명예를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치는 것도 있을 터이고 사랑을 위하여 부귀를 초개같이 던져버리는 용기도 있다. 이런 속에서 매일 죽음 앞에 맞서서 도전하는 생도 있다.
지연희씨는 죽음 앞에 공포와 외경으로 몸을 떠는 수많은 중생의 인생을 보면서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로 생각하는 의연한 인생을 추구하는 자세를 조명하면서 문학의 길을 걷고 있다. 즉, 지연희씨는 인생의 도전자로서 매일의 삶의 마지막 날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조용한 구도자와 같은 겸허와 사랑으로 삶을 재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십 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음미의 가치를 주는 글은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하는, 이 글의 한 문장에서 시사 하 듯 어느 한 순간의 조그마한 후의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는 고운 ‘다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겸허와 진실은 <언니……>, <관음소심>, <나뭇잎에 쓴 각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겸허한 마음은 선전적 품성의 노정으로 보인다.
사랑하므로 문득 소유하고 싶고, 붙잡아 두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라도 그 감정을 속으로 태울 뿐 가랑잎에 띄울 여유(감정적)마저 갖지 못하였음을 신음하는 것은 중년 여인의 덧없는 몸부림이 아니라 고운 미소요, 한숨이거늘 이런 모습은 저자의 천품이 곱고 아름다움으로 쌓여 있음이다. 이러한 내면적 아름다움과 겸허의 심성은 삶의 인장을 진실 되게 하며, 수필 또한 아름다운 꽃의 미소와 같이 격조를 지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무릇 예술의 길이 그러하듯 수필의 길이 무한무량 함을 감득하여 더욱 정진함으로써 관음소심의 그 고고한 품격을 지닌 일품을 창작할 것을 기대한다. 평론에서 잘 통찰했듯이, 지연희씨의 수필은 삶을 관조하며 넉넉히 표현하는데 그 매력이 있다. 그 외에 안성호, 조효현은 <문예한국>에서 작가상을 수상하였고, 윤덕근은 한국수필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6. 전국 수필문학단체의 세미나 마당
전국의 수필문학단체가 세미나 개최를 우리 고장은 지역적으로 한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국적인 행사의 장소로 각 지역에서 볼 때 거리상으로 가장 적합하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충북출신 작가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은 고향의 문학동인의 모임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로작가도 여러분 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수필문학 단체 세미나를 우리의 고장에서 가졌다.
▶한국수필가협회
1982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갖는 한국수필가들의 모임이 우리 고장인 보은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있었다. 한국수필가협회가 주최가 되어 제1회 세미나를 하였으며 전국의 수필가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진지한 발표가 있었다.
▶한국수필문학 진흥회
1984년 9월에는 한국수필문학 진흥회가 제1회 수필 세미나를 청주사범대학(현 서원대학교) 세미나실에서 개최하였다. 당시 주제발표는 <한국수필의 어제와 오늘>로 성황을 이루었다.
▶대표에세이 문학회
1989년 8월에는 대표 에세이 문학회가 제3회 세미나를 썬프라자에서 가졌으며, 1994년 8월에도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교수회의실에서 ‘나의 수필관’에 대한 발표를 하였는데, 발표자는 지연희로 충북 출신이었다. 많은 이 지방 수필동호인들이 참석을 하였다.
▶월간 수필 문학회
수필문학사는 1994년 7월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서 제3회 수필세미나가 보은 서당골 관광농원에서 전국의 수필가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하게 열리었는데 세미나 주제는 ‘한국 수필의 국제화 모색’이었다. 충북수필 회원들이 대거 참여를 하였다.
Ⅱ. 충북 수필가의 등단
1. 80년대의 수필가
충북지방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수필을 쓰는 문사는 수명에 불과하였으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필인들의 태동이 일기 시작했다. 각 지역으로부터 문학동인 단체가 탄생하면서 수필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각 동인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수필동인들로 80년대 이후부터 반숙자(한국수필, 현대문학), 반인섭(한국수필-고향), 윤송연(월간문학), 김홍은(월간문학-문창호지를 보며), 조성호(월간문학-소금기), 김재명(현대문학), 장병학(시와 의식-향수), 홍경식(시와 의식), 안인찬(수필공원-토요일 오후), 조무주(한국수필), 이성범(시와 의식-놀라움), 홍종희(한국시-모초송), 임병무(시와 시론), 이현숙(시와 시론), 양주석(우리 문학-참나무) 등이 등단되었다. 외지에서는 주난숙(한구수필, 월간문학), 지연희(한국수필, 월간문학), 안성호(시와 의식), 조효현(시와 의식) 등이 등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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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4.15 공동 등단축하회
충북에는 수필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문학단체가 20개나 된다. 이 중 한국문인협회의 지부로서는 충북, 청주, 제천, 영동, 진천이 있으며 동인들의 단체 모임으로는 내륙문학, 뒷목문학, 충북수필, 괴산문학, 보은문학, 음성문학, 중원문학, 제천문학, 단양문학, 행우문학, 여백문학, 새이웃문학, 문향회, Y글방, 옥천주부문학회가 있다. 이 중 여성들로만 모인 단체로는 여백문학회, 새이웃문학회, 문향회, Y글방, 옥천주부문학회가 있다.
단체 중 순수한 수필문학만을 위주로 한 모임체는 충북수필문학회와 새이웃문학회 뿐이다.
각 지역별 문학단체내에 수필회원을 보면 충북문협이 25명, 충주문협이 11명, 제천문협이 5명, 영동문협 3명, 진천문협이 5명으로 거의가 등단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인별로 보면 내륙문학 8명, 뒷목문학 1명, 충북수필 45명, 괴산문학회 5명, 보은문학 8명, 음성문학 9명, 중원문학 7명, 단양문학 3명, 행우문학 7명, 여백문학 16명, 새이웃문학 14명으로 되어 있으며 옥천주부문학회는 시, 수필을 함께 활동하고 있어 정확히 밝히기가 어렵다.
문학동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수필을 쓰고 있는 사람까지 합친다면 200여 명이고, 이 중 등단작가는 40여 명이다. 그러나 수필을 쓰고 있는 회원들은 한사람이 여러 단체에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실제 인구는 이보다 적을 것이다.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1990년대를 전후로 한 수필을 쓰고 있던 문학단체의 수필가.)
▶ 충북문인협회 :
김길자, 김문자, 김홍은, 반인섭, 장병학, 장우자, 조성호, 김광언, 김영한, 김다린, 김종선, 김진, 김진수, 박순철, 박영자, 박인수, 변윤섭, 엄갑도, 연은순, 이양선, 임순이, 이혜진, 정부래, 정태원, 조준애, 현혜화, 이현숙
▶ 충주문인협회 :
김현길, 이인원, 김재명, 최근배, 강선영, 박선예, 이덕자, 박미향, 이대훈, 엄인순, 윤송연
▶ 제천문인협회 :
손병난, 안문용, 유근모, 유명상, 이정숙
▶ 영동문인협회 :
민영이, 장미리, 조창기
▶ 진천문인협회 :
정진운, 조용철, 노항묵, 홍종진, 홍종희
▶ 충북수필문학회 :
김문자, 김애자, 김영한, 김인숙, 김종선, 김다린, 김진, 김진수, 김태하, 김현규, 김현식, 김홍은, 남소현, 민태진, 박권하, 박병해, 박순철, 박영자, 박인수, 박종순, 반인섭, 변윤섭, 송문숙, 신향수, 안성호, 안승덕, 안인찬, 양주석, 엄갑도, 윤덕근, 이성범, 이성숙, 이혜진, 임순이, 장병찬, 장병학, 장우자, 정부래, 정태원, 조성호, 조준애, 현혜화, 홍종희
▶ 괴산문학회 :
김복순, 박정숙, 설은미, 우원자, 이연자
▶ 내륙문학회 :
김은수, 이강주, 반숙자, 반인섭, 이기주, 이현숙, 홍경식, 김현길
▶ 단양문학회 :
안순득, 유남현, 최영희
▶ 뒷목문학회 :
조성호
▶ 보은문학회 :
김영휘, 김형빈, 남광우, 이영휘, 박미림, 김영애, 송원자, 임병무
▶ 여백문학회 :
김길자, 김순덕, 김묘순, 김옥녀, 김영희, 김진, 나윤정, 박명애, 박재분, 이덕자, 이중희, 이영순, 이영재, 임정순, 장우자, 최규옥
▶음성문학회 :
김영삼, 김용관, 김인숙, 신동완, 양순복, 유대준, 이선자, 이성자, 채수찬
▶ 중원문학회 :
김현길, 이인원, 홍경식, 김재명, 윤송연, 최근배, 이덕자
▶ 행우문학회 :
김예식 송원자 송주헌 신동완 안선미 윤명수 조희자
▶ 새이웃문학회 :
이양선, 임순이, 은지연, 안정인, 한정이, 안정이, 반미화, 김영서, 이영순, 유영자, 홍은기, 이진순, 반숭례, 송정
2. 수필문학 강좌와 수필가의 환생
충북지방에서 문학 강좌가 학교나 단체에서 이루어지기는 도내에서는 청주가 처음이다. 학교로서는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1992년 개설), 청주YWCA가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수필문학만을 강좌하는 단체는 한국지역사회교육 충북협의회와 충북여성단체협의회이다.
1990년도 이후부터 수필문학인구가 많이 늘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여러 문학 강좌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한국 지역사회교육충북협의회”에서 문을 연 이후 이곳에서 수업을 하고 등단한 수필가만도 임순희, 김광언, 이양선, 백수진, 반숭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는 김진수, 김태숙이 등단하였다.
또한, 충북 여성회관에서는 매주 2시간씩 많은 주부들이 수필문학수업을 전념하고 있어 수필인구는 80년대보다 더욱 급진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충북에서는 문학 동인들의 단체가 20여개에 이르고 있는데다가 뒷목문학회가 주최하고 있는 충북여성백일장, 제천문학회가 주최하는 주부백일장, 충주 중원문학회가 주최하는 남한강 백일장, 행우문학회가 주최하는 공무원백일장 등은 수필인 발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 90년대의 수필가
1990년 이후 수필가로 등용된 문인을 보면 김종선(한국수필-세월의 강), 박영자(한국수필-그곳에 두고 싶다), 김길자(수필문학-어느날의 불심), 김애자(수필문학-공사판 여인들), 김현규(수필문학-백선선호), 임병무, 이현숙(시와 시론), 이강주(시와 의식), 박순철(수필문학-그 아이는 지금……, 동양문학-잊을 수 없는 사람), 정부래(시와 시론-부래지사), 정태원(현대문학-남편이 붙여준 이름), 장우자(시와 의식-가리마), 이덕자(문예한국-고향과 넝마주이), 엄갑도(문학공간-세상구경 할 만 합디다), 김영한(문예한국-삶이 이는 여울), 김진수(창조문학-시들지 않는 꽃), 김진(수필과 비평-짜장면 행사), 김옥녀(수필문학-酒席의 思念), 변윤섭(문예한국-우유 배달하던 학부형), 이혜진(수필과 비평-고향바다), 임순이(문예한국-내 가슴에 피는 꽃), 김학원(수필과 비평-여든까지 간다는데), 이양선(수필과 비평-내 영혼의 선물), 김광언(한구수필-난을 키우며), 박인수(문예한국-여름날의 향수), 한혜화(한국시-따뜻한 손), 조준애(문학공간-명주), 홍종건(문학공간), 정진운(시와 의식), 연은순(시와 시론), 김인자(창조문학), 이미경(창조문학), 박경희(한겨레문학), 박병해(포스트모던-가훈), 지교현(수필문학), 김태숙(창조문학), 백수진(시와 시론), 반숭례(문예한국-호박꽃)가 등단을 하였다.
경향 각지에서 등단하여 활약하고 있는 원로 작가로는 김태길, 서정범, 송도, 이숙, 정진권을 꼽을 수 있고 그의 윤덕근, 정재은, 주난숙, 지연희, 안성호, 조효현, 박권하, 조관형 등이며, 명성을 떨치는 반숙자는 음성에서 생활하다 85년도에 서울로 이사하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근년에 와서는 충북 지역 수필을 사랑하는 작가지망생들의 작품활동이 유달리 왕성한데다가 문학강좌를 열고 있는 한국지역사회교육 청주협의회와 청주 YWCA 충북여성회관, 서원대학평생교육원 문창과의 역할이 등단의 길을 부추기고 있다. 거기다가 전국적으로 많은 문학지가 쏟아져 나옴으로써 예전보다 작가의 길이 넓어졌다 그 외 문학단체에서 엮는 동인지를 통해서까지도 등단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뒷목문학동인회에서는 86년도부터 매년 5월에 충북여성백일장을 개최하므로 각 단체에서 닦은 기량을 겨루어보는 좋은 계가가 되고 있다. 백일장에 참여하는 인원을 보면 매년 100여명(시 포함) 이상이 참여하고 있어 수필문학 발전에 많은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다.
2) 2000년대의 수필가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각대학에 평생교육원이 개설되어 수필강좌가 이루어지면서 급진적으로 수필가의 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에는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강생모임으로 푸른솔문학회, 청주대학의 우암문학회, 청주교육대학의 무심수필문학회를 꼽을 수 있다. 그 동안 20여 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배출한 수필가만 하여도 어림잡아 80여명 정도다. 그외 지역 까지 합산 한다면 100명도 넘으리라 추측된다. 이들은 문학단체의 활동이 이루어 지면서 우후죽순으로 많은 수필집이 발간되고 있다. 또한 청주시에서 운영하는 1인 1책 갖기 운동의 수업으로 수필을 사랑하는 인구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한 때는 2005년 경 전후에 예술위원회서 우수도서 선정에 수필문학을 폄하(貶下)하고 수필집은 제외시키기도 하였다. 이로하여 수필이 무시되는 바람에 주춤하다가 다시 환생되는 느낌이었다.
Ⅲ. 충북수필문학회의 탄생
1. 충북수필문학회 창립
충북에는 80년 이전만하여도 수필작가의 명칭을 가지고 신문에 글을 발표하던 작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필에 관심을 가지고 청주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이에 반인섭을 선두로 하여 83년 가을에 조성호, 김홍은이 만나 수필문학회의 모임을 주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각 지면에 수필을 발표한 명단을 뽑아 반인섭이 앞장서 추진하였다.
1984년 1월 28일, 반인섭, 조성호, 김홍은, 양주석, 김문자가 주축이 되어 발기를 하고 첫 모임이 사직동 거구장에서 있었다.
회원확보는 반인섭 조성호의 활약으로 마침 그해 11월 17일에 첫 모임을 갖고 회장 : 반인섭, 부회장: 김재명, 총무: 김문자, 주간: 조성호가 선임되었다. 이후 적극적인 활동으로 원고 수집을 하기 시작하였다.
2. 창간호 발간
드디어 노력끝에 1985년 7월에 창간호를 펴냈다. 반인섭 회장은 창간사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랫동안 수필문학의 불모지였던 우리 고장에도 근래에 와서 많은 수필문학인들이 배출되고 있음이 향토문학발전을 위해 반가운 일이라 하면서, 이미 경향 각지에서 수필문학회를 조직하여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오고 있는데 우리 충북에서만은 아직 한권의 동인지도 발간하지 못하였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면 도민들의 기대 속에 첫 선을 보이는《충북수필》은 앞으로 내 고장의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충북수필>은 우리 충북수필인들에게 작품발표의 광장이 됨은 물론이고, 이 고장 수필문학인구의 저변확대에도 전력을 다하겠다고 하고 있다.’
축사는 조경희 한국수필문학회장이 하였고, 초대수필가로는 김태길, 이기진의 작품이 게재되어 있으며, 회원작품 4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9E44E5B7DEDEA24)
<충북수필 창간호>
창립회원 : 김문자 김영귀 김인자 김재명 김종덕 김종선 김태하 김풍식 김현식 김호숙 김홍은
민태진 박권하 박병해 박영자 반숙자 반인섭 박인수 변윤섭 송 도 신기완 신수영
신한순 안계후 안승덕 양주석 윤종혁 이강주 이경애 이숙 이종오 이혜진 이호성
장병찬 장병학 전명자 정재훈 조성호 조준애 주난숙 지연희 천동기 천동기 최병준
![](https://t1.daumcdn.net/cfile/cafe/993D144C5B7DEE7E22)
< 창간호출판기념>
3. 충북수필문학회 10주년
1994년 충북수필문학회는 10주년을 맞이하였다. 10년의 세월을 뒤돌아보며 김홍은 회장은 발간사에서 ‘우리 충북수필문학회가 어언 1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주옥같은 마음들의 발자취가 아련히 이 곳 저 곳에서 보입니다. 늘 부지런하고 흐트러짐 없이 고운 자세로 자신들을 드높여 온 10년 세월의 연륜이 오늘에 와서야 아름답게 무늬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상을 드날려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양보다는 질을, 순수보다는 진솔하게 덕풍을 지닌 문학회로 우뚝 솟아있기를 바랍니다. 수필문학이 이 고장에 꽃이 되고 향기가 되고 숲이 되고 산이 되어 항시 맑은 물을 흘러내려 목마름을 잊게 하는 신선함으로 존재하기를….’
김효동 충북문학단체연합회장은 축사에서 ‘충북에 있는 여러 문학단체 중에서도 가장 우애스럽고 두터운 사랑을 받는 문학회가 충북수필문학회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특집으로는 <제1회 충북수필문학상>, <올해의 신작수필>, <다시 읽는 등단작품>으로 354페이지의 특집을 엮었다.
1) 제1회 충북수필문학 세미나
충북수필문학회의 새로운 발돋음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뜻에서 1993년 10월8일에는 제1회 충북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다. 초청연사 윤재천(중앙대교수. 수필가)교수를 모시고 회원과 수필을 사랑하는 일반인 115명이 충북대교 교수휴게관에서 대성황을 이룬 자리가 되었다.
수필을 쓸적에는 포도주를 담는 것처럼 해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연히 맛좋은 포도주가 되는 것같이 소재를 갖고, 오래 머릿속에 두고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 후 써라. 좋은 수필을 쓰는 방법은 오래된 포도주와 같다고 하였다. 수필을 맛있는 포도주에 비유하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2FB375BAC07F81F)
< 제1회 충북수필 세미나 기념>
2) 충북수필문학상 제정
1994년 4월 충북에서는 동인단체가 수여하는 문학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상패와 부상으로
상금 일백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충북수필문학발전을 위해 제정한 수필문학상의
규정을 보면 우수한 수필가의 발굴 및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수필문학상을 제정
하였다.
충북수필문학상 규정을 보면
목적: 수필가 발굴 및 작품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본상을 제정하였음.
제1조 자 격 : 1) 개인 저서 및 공저를 펴낸 자.
2) 문단등단 5년 이상의 경력자
3) 충청북도의 수필문학발전에 기여한 자
4) 충북도내 5년 이상 거주한자
제2조 대상작품 : 중앙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3편 또는 저서를 3년 전 분부터
당해 연도 6월30일 이전의 것을 7월 말까지 본회에 제출
제3조 심사위원 : 심사위원은 6월 정기모임에서 회원들이 선정하는 5명으로 구성하고
8월중에 대상자를 실사하여 확정한다.
제4조 시상시기 : 1) 매년 1명씩 시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심사위원들이 대상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시상하지 않는다.
2) 충북수필 출판기념회에서 상패와 상금을 수여하고 충북수필지에 특집으로 게재한다.
제5조 상 금 : 1백만 원
부 칙 : 본 규정은 1994년 4월 17일 부터 실행한다.
3) 제1회 충북수필문학상 시상
충북수필문학회에서는 제1회 수필문학수상자를 결정하여 1994년 11월 11일 주성예식장에서 수상식을 가졌다. 수상자로는 반인섭 수필가가 선정되었으며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심사평
수필집 <가을에 앓는 병>의 책머리에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의 겸허하고 소박한 삶의 진실을 자기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라고 한 것처럼 이 수필집은 가을에 앓고 있는 추억들을 자기의 가슴에 와 머물게 하고 조용한 인생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 어떤 생활을 일깨워 준 작품들이다.
땅에 떨어진 인륜을 다시금 추스르게 하고 부모를 저버리고 사는 사회인들에게 자식으로서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애틋한 부모에 대한 정을 그려 놓고 있다. 또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벗 삼아 산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맑고 아름다운 그 속에서의 삶의 철학을 터득한 마음을 겸허하고 부담 없게 들려주고 있다.
참으로 순수하고 고상한 미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는 작품들이다. 조용한 선비의 목소리로 자기의 삶의 경험을 흐트러짐 없이 진솔한 문장으로 엮어 놓았다.
어쩌면 도인의 경지를 넘나드는 깨우친 인생철학을 엿보이게 한다. 작가는 우리 지역의 보배로운 수필가뿐만 아니라 온 누리에 우뚝하게 서 있는 사람이다.
<가을에 앓는 병>의 작가를 제1회 충북수필문학상 수상자로 뽑는데 심사위원 전원은 주저하지 않았다.」
심사 위원장 : 김홍은, 심사위원 : 김태하, 김종선, 박영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997CFC4F5B7DF83F32)
< 제1회 충북수필 문학상 시상식 기념>
4) 미래를 향한 충북수필 문학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불모지와 같았던 충북 수필문학계는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해 옴에 따라 오늘날에는 40여명의 등단 작가들이 이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외 경향 각지에서 충북출신의 많은 수필가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충북수필문학회에서는 세미나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수필문학상을 제정, 시상함으로써 많은 다른 문학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
충북수필문학회에서는 충북 문학발전을 위하여 장차 더 많은 시상금을 확보할 계획이며, 또한 <충북수필문학전집>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 충북수필문학회는 더욱 노력하여 회원들의 위상을 드높이고 사랑받는 수필문학회로 우뚝 설 것이다.
Ⅳ. 충북수필 문학의 방향성 정립을 위한 미래
1. 충북수필의 과거와 현재
충북수필은 어언 금년이 33년이 된다. 그동안 단체의 문학활동을 종합하여 연혁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공자도 三十而立이라고 학문 수양의 발전과정으로 서른 살 때 인생관이 섰다고 하였다. 우리 충북수필문학도 30년이 넘었으니 문학단체의 뜻을 세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83년에 발기의 꿈을 세워 84년에 1월 24일에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후 수필문학회의 중요행사 추진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표1) 충북수필 중요 진행 행사
4-5대(김홍은) 1-2대(반인선) 3대(조성호)
첫댓글 한시간을 읽었습니다 충북 문학회 탄생과 배경 발자취 감사합니다
다 읽었다니 대단하십니다.
이제 충북의 수필문학의 발자취나 방향을 다른 사람과 어느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요.
교수님 대단하시네요. 종경합니다. 충북 문학회 탄생과 그발자취 종경합니다. 잘읽어습니다.
1`2 대 반인선 3 대 조성호 4`5 대 김홍은 교수님 종경 합니다. 감사합니다.
1980년. 3 .4 . 거구장을 인수받고 '충북수필 문학회창립'을 (1984.1 .28 .)거구장에서 첫출발하여 2019년이 오기까지
35년동안 역대 회장님들과 회원님들이 발전하신 '충북수필 문학회' 발자취를 김홍은교수님의 쎄미나를 통해
돌아보니 감회가 남다르군요.한분한분 기억이 새롭습니다.충북수필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조순희올림.
충북 수필문학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적어주신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라성 같으신 교수님과 선생님들의 노고가 있으셨기에 오늘의 수필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충북 수필문학회가 대대로 맥을 이어 영원히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