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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 1910년대 복원하기 전 청운교 백운교의 돌계단이 어스러진 상태. 뒤로 다보탑, 석가탑이 보인다. 첨성대 - 1920년대 첨성대 뒷길을 오고가는 사람들... 포석정 - 1910년대 포석정과 바지, 저고리 입은 아이들...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 이전 - 1915년대 봉황대에 있던 종을 경주고적보존회 (현 경주문화원)로 옮기고 있다. 봉황대의 오솔길 - 1950년대 노동. 노서동 일대의 전경. 봉황대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태종 무열왕릉비 비석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삼존불 - 1930년대 남산 삼불사에 있는 불상으로 지금은 보호각을 설치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 연대미상 경주남산 용장계곡에 있던 불상 지금은 머리와 광배가 복원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석조여래입상 - 1920년대 왕정곡 제2사지 석조여래입상으로 하반신이 땅에 묻혀 있다. 지금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감은사 - 1950년대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안압지 - 1950년대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뒷산은 소금강산. 일제때 세운 임해정은1977년에 황성공원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호림정이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갓 쓰고 한복 입고 나귀 몰고 간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죽은 아이를 넣은 옹기를 지게에 지고 묻으러 가는데 일본 순사가 검문한다. 삼 릉. 아이들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다가 삼릉에서 놀고 있는 모습 경주 집경전 - 1922년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셨던 곳으로 1960년대 초까지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집경전의 비각으로 추정되며 현재 경주여중 교정 동편에는 집경전 옛터라는 비석만 서 있다. 솥전 - 1910년대. 경주 읍성 밖에 장이 열리고 솥 가게에 손님이 많다. 경주 중심가 - 1930년대. 지금의 중앙로에서 대릉원 쪽으로 바라본 모습 경주 기생 - 1914년 4월 경주고적보존회(현 경주문화원)의 온고각 앞에서 기념촬영 스웨덴 쿠스타프 황태자 - 1926년대. 서봉총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쿠스타프(왼쪽에 안경 쓰고 무릎 꿇은 사람)와 일행. 스웨덴의 한문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에 새겨진 봉황 (鳳凰)에서 한 자 씩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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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이제는 옛 사진들을 보면 정겹네요. 워낙 우리 나라가 곳곳이 발달되어 있어서 그런지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건물, 거리, 사람들의 모습이 편안하게 느껴 집니다. 아이들에게 보여 줘야 겠어요.
귀한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늘 정성으로 민족성을 상기 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방길남님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복원되기전의 사진은 처음 봅니다. 행복한 빛밤되세요, 방길남님 ^^
방길남님의 귀한 옛경주 유적지 초등학교 수학여행갔던 옛 추억도 같이 되살아납니다.
감사드리며 건강과 행복도 기원합니다.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가사드립니다. 방길남님.
정말 귀한 자료네요.. 경주로 전근와서 그런지 관심이 많이 가는 자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