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慶熙宮)은 서울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광해군 9년(1617년서울시경운궁일제강점기[1]
일제 강점기에 경희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중학교를 만들었으며, 해방 후에 서울고등학교사적 제271호로 지정되었고, 1980년 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로 이전한 이후 서울 시립 미술관서울고등학교의 별칭과 경희대학교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영조가 1760년(영조 36년)에 궁궐 이름인 '경덕(慶德)'이 원종[2]
경덕궁터는 인조[2] 광해군은 임진왜란 뒤 재건된 창덕궁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고, 인왕산 아래 새 궁궐인 인경궁[2] 그러나 1623년 인조 반정[2] 인조가 즉위한 뒤에 창덕궁이 소실되고,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마저 불타버리자 인목대비[2] 이 곳에서 숙종이 태어났고, 숭정문에서는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하였으며, 숙종, 순조[2]
경희궁은 경복궁 서쪽에 세워진 까닭으로 서궐(西闕)로 불렸고, 이 밖에도 새문안 대궐, 야주개 대궐, 새문동 대궐 등으로 불렸다.[2] 경희궁은 순조 29년(1829년) 10월 화재로 인하여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831년에 중건하였다.[2]
일제가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궁궐의 서쪽에 세우면서, 경희궁의 많은 전각들은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2] 정전인 숭정전은 일본의 한 불교 종파인 조동종의 조계사 본전으로 쓰기 위해 1926년 남산 기슭으로 이건되었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의 법당인 정각원[2] 흥정당은 1928년 광운사로 이건되었으며, 관사대(觀射臺)는 사직단 뒤로 이건되어[2] 현재 황학정(黃鶴亭)으로 쓰이고 있다.[3] 흥화문은 1932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의 문으로 쓰였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폐사되고, 이후 신라호텔[3]
경희궁터는 광복 후에 서울중ㆍ고등학교로 쓰이다가 1980년 6월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건설[3] 그 뒤 서울특별시서울역사박물관[3]
2013년 1월, 서울특별시청과 종로구청은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을 문화재청흥화문서울시립 경희궁미술관을 철거한 후 흥정당을 복원하며, 현재 성곡미술관서울역사박물관[4]
건축물[편집]
경희궁을 구성하는 전각들은 궁궐지, 서궐도안, 서궐영건도감의궤[3] 흥화문과 숭정문은 궁궐의 내외 출입문을 형성하였고,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융복전, 회상전, 흥정당, 자정전, 장락전, 집경전, 만학정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3] 그러나 일제 강점기
경희궁의 배치 형태와 공간 구성은 다른 궁궐과 달리 매우 독특하다.[5] 정전인 숭정전 영역이 서쪽에,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영역이 동쪽에 나란히 놓여 있으며, 정문인 흥화문은 궁궐의 남쪽에 있지 않고, 동남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5] 따라서 정문에서 내전으로 진입하는 길은 침전 앞을 지난 다음 북으로 꺾어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5]
흥화문[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흥화문
흥화문(興化門)은 광해군 8년(1616년우진각지붕[5]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 오른쪽에 개양문, 서쪽에 숭의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5] 일제 강점기에 박문사(현재의 장충단장충동 신라호텔의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6] 흥화문은 원래 경희궁터에 동남쪽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에 동향하고 있던 경덕궁 정문이었는데, 처음과 달리 지금 위치에 남향하여 세워졌다.[5]
숭정문[편집]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상왕의 승하시 정전이 아닌 정전의 문에서 즉위하는데 경종, 정조, 헌종이 그러했다.
숭정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숭정전
숭정전(崇政殿)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운 것으로, 경희궁의 정전이다. 숭정전 일곽은 남향한 경사지에 축대를 조성하여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5] 숭정전은 행각으로 둘러졌으며, 뒤로는 자경전이 있다.[5] 동ㆍ서 행각은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바닥과 지붕이 단을 이루며 높아지도록 조성되었다.[5] 숭정전은 이중 월대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건되어 본래 건물은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정각원[5]
자정전[편집]
현재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되어 있다. 이 건물은 주로 편전으로 쓰였다고 한다.
태령전[편집]
태령전은 발굴조사시 유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궐도안》의 자정전과 숭정전의 위치를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었다. 2000년에 서울시에서 복원하였다.
경희궁 방공호[편집]
1944년 초, 경성중앙전신국의 피폭에 대비하여 중요 통신 유지를 위해 설치된 지하전신국 겸 방공호이다. 왕과 왕비의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이 있던 자리에 콘크리트를 이용해 방공호[7] 서울특별시청은 방공호를 서울역사박물관의 근현대유물 수장고로 활용하기로[8] 하고 2014년 수장고 준공[9]을 계획하였으나, 2013년 수립된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철거 후 융복전과 회상전을 복원할 계획이다.
황학정[편집]
원래 경희궁에 있었던 정자로 고종황제가 청-일-러 3국의 3파전을 근심해 이곳에서 활을 쏘며 피로를 풀었는데, 일제 때 팔려나가 현재 사직공원의 옛 등과정 자리에 있다.
함께 보기[편집]
참고문헌 및 링크[편집]
- 이상해, 궁궐ㆍ유교건축, 서울: 솔 출판사, 2004.
좌표: 북위 37° 34′ 16.29″ 동경 126° 58′ 5.95″ / 북위 37.5711917° 동경 126.9683194° / 37.5711917; 126.9683194
|
|
강남구 |
|
강동구 |
|
강북구 |
|
강서구 |
|
관악구 |
|
광진구 |
|
구로구 |
|
금천구 |
|
노원구 |
|
도봉구 |
|
동대문구 |
|
동작구 |
|
마포구 |
|
서대문구 |
|
서초구 |
|
성동구 |
|
성북구 |
|
송파구 |
|
양천구 |
|
영등포구 |
|
용산구 |
|
은평구 |
|
종로구 |
|
중구 |
|
중랑구 |
|
기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