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기훈 기자 |
![]() |
||
올해 부각될 노동이슈는 원초적인 문제들이다.
임금·노동시간·정년·일자리 등 노동자들이 일하고 대가를 받는 것과 관련한 내용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교섭하는 기본적인 권리까지 쟁점이 되는 가운데 노동계와 정부의 힘겨루기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임금 전쟁’은 지금부터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 100명에게 ‘2014년 노동현안에서 가장 주요하게 부각될 이슈’를 질문했더니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72표)이 1위에 선정됐다.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지난달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예고된 결과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는 동시에 울상을 짓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영계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통상임금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어쨌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됐고, 이 전제는 당장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는데도 노조가 통상임금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그렇더라도 160여건의 소송은 끝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통상임금 반환으로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하는지 따져 봐야 한다.
노사정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정기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각종 법정수당을 받아 내라고 지침을 내린 상태다.
한국노총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체불임금이 된다”고 밝혔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급여체계를 당장 바꾸라는 노동계 요구에 재계가 반박할 명분은 남아 있다.
대법원 판결에도 고용노동부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예규를 근로기준법 개정 전까지 그대로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재계는 초과근로를 최대한 줄이려는 분위기다.
진짜 전쟁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재계의 역공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정기상여금 축소와 변동성과급 확대, 포괄임금제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지난 3년간 밀린 통상임금 소송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지만 실제 추이는 두고 봐야 한다.
금속노련은 최근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정지시키기 위해 사측에 대법원 판결 이전 3년치 임금소급분에 대한 최고장을 보내도록 지침을 내렸다.
소송 진행을 당분간 멈추고 통상임금 판결추이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도 최근 이슈페이퍼를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화시키고 추가 소송을 벌이는 것, 법률 개정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성실 원칙에서 복리후생비가 제외된 것도 통상임금 소송을 늘리는 원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은 '패키지 이슈'
=이번 조사에서는 근로시간단축(31표) 3위와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15표) 8위가 올해 주목되는 노동이슈에서 각각 3위와 8위에 선정됐다.
대법원은 조만간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1심과 2심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휴일근로를 할 경우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중첩해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수용하게 되면 노동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두 수당 모두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제2의 통상임금 전쟁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단축 법안 논의는 통상임금 범위 등을 논의하는 임금체계 개선논의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2016년부터 정년 60세 법제화가 시행되는 만큼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예상된다.
통상임금을 다루는 고용노동부 임금제도개선위원회는 정년연장에 대비해 직무급제와 임금피크제까지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전문가들은 “통상임금·근로시간단축 법제화·정년연장이 한 묶음이 된 임금체계 개편이 2014년 노동정국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살얼음 걷는 노정관계, 곳곳에 시한폭탄
=노사정 전문가 21명은 올해 주요하게 부각될 노동이슈로 노정관계(4위, 21표)를 지목했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경찰의 강제진입으로 정권 퇴진 투쟁을 선언하고,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철도노조 파업 중단과 무관하게 이달 9일과 16일 총파업을 벌이고, 다음달 25일 국민총파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철도노조의 업무복귀로 총파업 분위기가 주춤해질 수 있지만 갈등요소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대규모 징계가 예상되면서 현장 갈등이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 철도산업발전소위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철도 민영화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병원자회사에 대한 영리사업 허용을 추진하면서 촉발된 의료 민영화도 노정관계의 암초다.
보건의료노조와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까지 거론하고 있다.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 처분에 대해 전교조의 취소소송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전교조의 노조자격이 취소된다면 다시 한 번 노정충돌이 불가피해진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를 복원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이달 22일로 예정된 임원선거가 변수다.
설문에 참가한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노총 임원선거를 올해 주요 노동이슈로 꼽았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 등을 위해 노사정 논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한국노총이 현재 방침을 고수할 경우 임금·근로시간을 논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대 노총을 아우르는 갈등요소도 여전하다.
대표적인 게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단체협약 정상화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들이 공동대응하면서 공공부문 노정관계가 올해 노정관계의 지뢰밭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협을 대폭 손질하려는 정부와 이를 지키려는 노동계 사이에 한바탕 전쟁이 예상된다.
42명은 ‘철도·의료 등 공공부문 민영화와 공공기관 단협 정상화’(2위)를 올해 주요 노동이슈로 꼽았다.
전교조·공무원노조 문제는 19명이 지목해 6위에 선정됐다.
한 응답자는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단협 개입, 전교조 노조 아님 여부 등 노동기본권 문제로 인한 노정갈등이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올해도 시간선택제 ‘올인’
=노동이슈 5위는 노사정·전문가 20명이 선택한 고용률 70% 달성 관련 시간선택제 일자리였다.
박근혜 정부가 여타 노동현안을 제쳐 두고 올인한 만큼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포함해 45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에 사용될 227억원이 그대로 유지됐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의 90%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기대임금은 149만원이었다. 반면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시간제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65만4천원이다.
노동자들의 기대치 현실의 격차를 해소하는 게 관건인데,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비정규직 이슈도 여전한 과제다.
18명이 비정규직 문제(7위)를 선택했다.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재개되는 데다,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고용의제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온다.
지난해 이슈화되지 못했던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에서 정치권 논의가 무르익을지도 관심사다.
9위와 10위에는 노조법 재개정(8표)과 6·4 지방선거(6표)가 뽑혔다.
지난해에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에 대한 노동부 고시가 변경되면서 노조법이 재개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노동 전문가들은 “노정이 극단으로 대치하는 현재의 노동정국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 진보정치세력의 재기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