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에서는 차의 음용법에 대해 큰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컵이든, 어떤 물이든 그저 물을 끓여 찻잎을 넣고 마십니다. 중요한 것은 차를 자주 마신다는 사실이지 어떻게 마시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인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데 있어 어떤 도구가 있어 품격을 높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장합니다.
(1) 물
우리는 찻잎을 먹는 것이 아니라 ‘찻물’을 마시는 것이니, 물은 차의 음용에 중요한 부분임이 분명합니다. 차가 발달한 나라들은 수질이 제각각이고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어 차를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부터 광물질이 다량 함유된 ‘경수’는 마시기에 부적합한 물이고, 다른 성분의 함량이 적은 ‘연수’가 마실 수 있는 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증류수, 미네랄 워터, 수돗물 모두 연수에 포함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어느 쪽을 선택하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미네랄 워터는 물 자체에 미네랄의 맛이 섞여 있기 때문에 충분히 끓이는 것이 좋고, 수돗물 역시 하루 정도 받아놓았다가 윗물을 뜨는 편이 맛을 좋게 합니다. 정수기로 걸러진 물도 좋습니다. 물을 신경 써서 선택한다면 차맛을 해칠 수 있는 어떤 성분도 제거하는 편이 좋습니다. 차 애호가 중에선 전국 곳곳에 있는 샘물을 비교해 최고의 물을 따지기도 하는데... 대개는 그럴 여력까진 없겠지요.^^
(2) 다구
중국인들은 차를 마실 때 특별한 다구(茶具)를 굳이 찾지 않습니다. 유리잔, 자기, 사기, 머그컵 등등 각양각색입니다. 다구를 찾는 것은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굳이 다구를 따진다면 자사호(紫沙壺)가 보이차의 맛을 가장 좋게 합니다(정식으로는 다관(茶罐)이라고 해야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다호(茶壺)로 통용됩니다). 잔도 자사로 된 것이 있습니다. 시중에서도 자사(紫沙)로 만든 다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그 차이가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집에 있는 다구나 머그컵을 이용하다가, 어느 정도 차의 맛에 익숙해진 후 구입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사실 다구를 이용해 차를 마시는 게 꽤 귀찮은 일이거든요.^^ 편리함을 위해선 무선 전기주전자 같은 게 있으면 좋습니다. 보이차는 물을 계속 끓여줘야 하기 때문에 특히 유용합니다.
다호를 선택할 때엔 뚜껑을 덮은 채로 돌려보아 둔탁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고르십시오. 자사호는 원료가 매우 작은 알갱이의 모래이기 때문에 긁히는 소리가 청명합니다. 벽돌을 가는 것처럼 뻑뻑하고 심한 소리가 난다면 일반적인 토기일 확률이 높습니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용기에 오래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금속은 차의 맛을 왜곡시키고, 플라스틱 컵은 뜨거운 물을 부으면 나쁜 맛이 날 수 있습니다.
포차법으로 다구 세트를 써서 차를 마시면 아래와 같은 순서로 합니다.
- 뜨거운 물에 다호와 숙우(熟盂, 공도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에게 차를 따라줄 때 씁니다), 찻잔에 부어 용기를 덥힌 후 따라냅니다.
- 2인 기준으로 3~4g(차스푼 하나 정도)의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이를 투차(投茶)라 하는데, 찻잎과 물 중 무엇을 먼저 넣는가에 따라 투차법이 달라집니다. 차를 먼저 넣는 것을 하투(下投), 물을 먼저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합니다. 옛 사람들은 겨울에는 하투를, 여름엔 상투를 하고 봄과 가을엔 둘을 섞어 중투(中投)를 했습니다.)
- 첫물을 따라내 버립니다. 보이차 외부에 붙은 먼지와 잡균을 없애 맛을 순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오래된 보이차에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맛이 좀더 부드러워지는 면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티백까지 첫물을 버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 다시 물을 붓고, 취향에 따라 찻물을 우려낸 후 여과기를 얹은 숙우에 따라냅니다.
- 숙우에 담긴 찻물을 찻잔에 따라냅니다.
- 찻물의 색, 향을 천천히 감상하며 찻물을 음미합니다.
(3) 수온
차를 우리는 3대 요소로 수온, 찻잎의 양, 우려내는 시간을 들 수 있습니다. 찻잎의 양이 많아지면 농도가 진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수온이 높을수록 또한 차의 농도가 진해지며 향기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보이차가 100도의 끓는 물을 사용하는 것은 향기와 맛을 더욱 순수하게 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찻잎을 데우는 온차(溫茶) 과정이 필요합니다. 끓는 물을 다호에 넣은 다음 바로 따라낸 후 찻잎의 향기를 맡습니다. 이때 향기가 순정하지 못한 느낌이 들면 다시 한번 위 과정을 반복합니다. 일반적으로 온차는 1-2회 정도가 적당하며 가급적 빨리 물을 따라내야 합니다.
(4) 찻물 우리기
보이차를 우리는 법은 크게 나누어, 끓인 물을 붓는 포차(泡茶)와 물과 같이 끓이는 자차(煮茶)의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합니다. 이유는 보이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운남성 소수민족은 여러 가지 곡식이나 우유, 심지어 돼지기름까지 섞어 끓여먹는 방법이 발달해 있었고, 녹차를 애용하던 중원의 한족은 포차법에 익숙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차법이 옳으니, 포차법이 옳으니 말이 많지요. 일반적으로 덩어리차는 자차를 하고, 잎차는 포차법을 씁니다. 그 이유는 덩어리차의 내부가 물에 쉬 침출되지 않기 때문인데, 잘게 쪼개면 상관없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선 녹차를 마시던 습관이 있어 자차법이 그리 익숙하진 않습니다. 포차법 지지자들이 더 많은 편이니 그냥 물 끓여서 부어 마시면 되겠습니다. 운남 하관 보이차는 포차법에 맞게 나온 제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물을 부어서 얼마나 두어야 하는 문제도 중국인들이라고 전부 같은 게 아닙니다. 오래된 보이차의 향을 중시하는 대만 사람들은, 끓는 물을 부은 후 바로 따라내 마십니다. 자연히 맛은 연하지만 향을 감별하기 쉽습니다. 대륙인들은 진한 맛을 좋아해서 오래두는 편인데, 심지어 맛의 감별을 위해 5분을 두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여기에 너무 얽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삼아 대만식으로 해보십시오. 너무 엷다 싶으면 조금 더 두었다 마시며 좋아하는 맛을 찾아내면 됩니다. 주위 사람에게 시음을 시켜보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진한 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만 오래된 진품 보이차를 구하셨다면 대만식으로 바로 따라내 마시는 방법을 추천해드립니다. 오래된 보이차의 가장 큰 특색은 숙성된 나무향이니까요.
차를 우려내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우려내는 시간도 조금씩 길어집니다. 보이차는 다른 차에 비해 여러 번 우려내도 변화가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8-10회 정도가 적당하며 맛이 너무 엷어지면 우려내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우려낼 생각이라면 처음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우려내지 말고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보이차는 여러 차례 우려내도 맛과 색, 향의 변화가 크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감미로움, 입안에서의 굴러가는 느낌, 익음, 두터움, 순함, 부드러움, 단맛, 생기, 청결함, 밝음 등의 요소를 평가해 좋은 보이차를 감별합니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자신에게 맞는가 아닌가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5) 소수민족의 음용법
운남성에는 20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로는 200이 넘는다고 하는데... 밖에서 보는 소수민족과, 부락별로 다 다르게 취급하는 현지인의 구별법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안동 김씨’는 하나지만 무슨무슨 파까지 나누면 복잡해지니까...^^ 아무튼 많습니다.
운남성의 산지에는 야생 차나무가 많고, 곡식은 귀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름모를 독초와 샘도 많아서, 여행 다닐 때 아무거나 먹고 마실 수는 없었죠. 삼국지를 읽다보면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러 나갔다가 맹획과 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의 배경이 바로 지금의 운남성입니다. 그 중에서 맹획이 산지로 도망친 후, 촉의 군사들이 뒤쫓다 괴상한 물을 마시고 병에 걸려 제갈량이 난처해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맹획의 형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튼 제갈량은 병사의 독을 없애기 위해 어떤 나무의 잎을 끓여 마셨는데, 그게 차(茶)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제갈량이 지팡이를 꽂았는데 후에 이것이 자라 차나무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제갈량의 남만 정벌 이야기는 중국 식문화에서 차와 만두를 탄생시킨 셈이 되었습니다만... 이 지역에서 자생된 역사서가 없는지라 ‘제갈량이 차의 시조’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이들 믿고 있다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한나라때(BC 59) 이미 차를 즐기는 사람의 기록이 있습니다.
어쨌든 소수민족의 차 음용법은 환경적, 지리적 요인에서 중원의 그것과 사뭇 달랐습니다. 보이차 역시 그렇게 해서 탄생이 된 것이고요. 그래서 소수민족의 음용법은 우리가 따라한다기보다는 참고 차원에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차(烤茶)
토기로 된 다관을 불에 빨갛게 달군 후, 차를 넣어 볶습니다. 찻잎의 색이 황갈색이 되면 뜨거운 물을 붓고, 알맞은 농도가 되었을 때 따라내 마시게 됩니다. 고차는 지금도 운남성의 납고족(拉袴族), 와족(佤族), 이족(彝族) 등이 흔히 쓰고 있으며, 손님이 왔을 때에도 환영의 뜻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납서족(納西族)은 용호투(龍虎鬪)라 하여 차를 볶아 끓인 후 소량의 술과 섞어마시기도 합니다.
와족의 경우 소차(燒茶)라 하여 다관 대신 철판에 볶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들의 차 중 특이한 것이 고차(苦茶)입니다. 이것은 차를 끓여 다섯 모금 정도가 될 때까지 졸인 것으로, 맛이 쓰지만 오히려 해갈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애용합니다. 이것은 차의 엑기스를 만드는 법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이를 차고(茶膏)라 합니다.
중국인들도 녹차를 애용하긴 하지만 많이 마시면 배탈이 나기 때문에, 방법은 좀 다르지만 차를 볶아 고차를 만들어 마시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 중국요리점에서도 흔히 마실 수 있습니다.
타유차(打油茶)
타유차는 운남성 영승현(永勝縣)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곳엔 백족(白族) 이족(彝族) 납서족(納西族) 보미족(普米族) 등이 살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이족(彝族)의 생활풍습은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어, 상하 관계가 분명하고 부계와 모계의 족보를 따져 서열을 매깁니다. 자리도 나이 따져가며 연장자를 상석에 앉히고, 손님이 오면 무조건 상석을 양보합니다. 비슷하지 않은가요?^^
타유차 재료로는 찻잎 외에도 쌀, 라드(돼지기름), 땅콩, 깨, 산초, 설탕, 소금 등을 준비합니다.
-다관을 불에 빨갛게 달굽니다.(위)
-쌀, 땅콩, 깨, 산초 적당량을 넣고 향기가 날 때까지 볶습니다.
-신선한 라드를 넣습니다. 라드와 쌀의 품질과 양이 타유차의 질을 좌우하게 되므로, 재료들이 충분히 잘 섞이도록 수시로 다관을 흔들어줍니다.
-쌀이 볶아져 갈색을 띠면 사람 수를 감안해 적당량의 찻잎을 넣습니다. 넣은 후엔 신속하게 흔들어 재료와 잘 섞이도록 하며, 찻잎이 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물을 넣고 끓입니다.
-다 끓었으면 차를 냅니다.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치기도 합니다.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죠? 이것은 차가 흔하고 상대적으로 곡식이 귀했던 운남성 산지의 전통음식이고, 차를 이용해 스프를 만들어 먹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출처 : 유니버스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