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04년 9월 29일_일반법회_반야심경5_박세훈 교무님 설교.hwp
◆ 원기 104년 9월 29일 일반법회 / <반야심경 5>
◆ 설 법 : 박세훈 교무
◆ 타이핑 : 일반7단 이제선
◆ 다시보기 : 카페 - http://cafe.daum.net/jnyouth/974Q/2723
유투브 - https://www.youtube.com/watch?v=41_FAMgxonk&list=PL8Zz6u3raIrzoUojtNhUaCVvoKd8ncFYD&index=3
<관자재보살이 속깊은 반야공부로써 낙원세계인 저 언덕에 도달하려는 수행과 적공을 할 때에 형상있는 육신과 정신작용인 수상행식이 모두 텅 비어있는 반야자리를 비추어 보고 고통과 역경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나니라.
사리자야! 온갖 괴로움을 일으키는 형상인 색과 이상의 세계인 허공같은 반야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허공인 반야와 형색인 현상이 서로 다르지 않으며 형색이 있는 현상이 바로 허공과 같은 반야이며 허공인 반야가 바로 삼라만상의 현상과 둘이 아닌 것이니라. 사리자야! 모든 법이 텅 빈 반야의 진리는 어디로부터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더럽혀지지도 아니하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더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로다.
반야의 진리를 깨달아 실천하여 들어가면 육신과 수상행식의 정신작용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는 것이요, 안이비설신의인 나의 육근에도 걸림이 없고 색성향미촉법의 외경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으며, 안신의 세계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고 나아가서 의식의 세계에도 아무런 걸림과 막힘이 없이 자유로울 것이요./ 무명도 없으며 무명이 다 맑아졌다고 하는 관념도 없으며 나아가서는 늙어 죽음도 벗어났으며, 또한 늙고 죽음을 해탈했다는 흔적도 없는 것이로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설하신 고집멸도의 사제법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요, 깨달음에도 걸림이 없고 실천하여 얻음에도 걸림이 없으며, 총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에 걸리고 막힘이 없나니라.>
반야심경 절반인데 이렇게 한글로 풀어놓으면 좀 길죠. 이게 조계종에서 하는 한글반야심경이에요. 이렇게 해요. 훨씬 그래도 좀 쉽죠. 근데 이제 오늘 제가 할 것은 경산상사님께서 하셨던 걸로 합니다. 조계종에서 했던 것보다 설명을 조금 더 했어요.
지난주가 이제 검은색 부분이였죠. 수상행식에도 걸림이 없고, 색성향미촉법에도 걸림이없고. 무안의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거기가 이제 18계인데.
지난번에 18계에 대해서 했죠. 안이비설신의, 눈귀코입몸마음이 있어서, 이것이 보이는 것이 눈에는 안계고, 귀에는 이계. 각 기관에 따라서 각 경계가 생겨나는 것이고, 그 경계와 기관이 만나면 뭐가 생가난다? 식(識)이 생겨나는 거죠. 눈이라는 기관과 눈에 보이는 대상이 만나면 안식(眼識). 그래서 육근 하나당 3개가 있잖아요. 그러면 3*6=18개 해서 18계입니다. 어렵기는 하시겠지만. 절에 다니셔도 평생동안 이거 모르고 절 다니시는 분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90%는 모르실 것 같은데. 한번 들어서 알기가 힘들죠. 저도 한 열 번 넘게 봐도 아직도 힘듭니다.
오늘 이겁니다. 제가 번호를 달아놨어요. 경산상사님이 하셨던거 하고. 1번은 한글1번, 2번은 한글2번, 3번은 한글3번인 거예요.
그러면 오늘은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한번 읽어보실까요?
<반야의 진리를 증득하여 살아가는 부처님의 세계에서는 윤회전생하는 12연기 중 근본 원인이 되는 진리에 대한 무지인 무명이 없으며/ 또한 무명이 모두 멸도 되었다는 상도 없으며/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과 늙어 죽는 등의 모든 과정으로부터 해탈했으며/ 또한 해탈하였다는 부질없는 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대자유인인 것이로다.>
밑에만 아시면 되요. 대자유인인 것이로다. 그런데 대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12연기를 우리가 깨달아야 된다는 것데.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내지가 이거예요. 제가 밑줄쳐둔 곳.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이것을 그냥 생략해둔 거죠. 무무명-역무무명진/ 무행-역무무행진. 이런 거예요. 근데 그런걸 다 생략해놓고 내지에다가 다 넣어버린 겁니다. 12연기의 첫 번째가 무명이고, 마지막이 노사거든요. 그러니까 처음과 끝만 넣어놓고 나머지 10개는 생략해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10개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10개를 다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무명, 그 다음에 기타 등등 똑같고, 마지막에 노사도 이렇다~라고 된 거죠. 반야심경도 축약이 된 건데 거기를 또 축약을 시켜놨어요. 그러니까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하면서 머릿속에는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이 싹 지나가고 그 다음에 <노사>가 왔다. 이렇게. 그동안 보셨을 때는, 왜 이게 무명 다음에 노사가 나오지? 잘 이해가 안 되시잖아요. 이게 12연기 중에서 두 개만 뽑아놓은 거예요.
오늘 이제 12연기에 대해서 말씀드릴겁니다.
불교에서 어렵다고 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보면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오래 보시다보면 또 이해가 되실거에요.
12연기법이 나오게 된 부처님과 제자의 대화가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훌륭한 제자들이 많았던거 같아요. 그래서 되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십니다. 어떤 질문을 하냐면, 제자가 부처님한테 “부처님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면서 고통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고 그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낍니다.” 이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아요. 모든 느낌이라는 것은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고/, 그것을 고수/ 낙수/ 비고비낙수/. 그렇죠? 한자로. 한자 뭐 구지 알 필요 없잖아요. 한글로 알면 되죠. 그래서 이렇게 적어 놨습니다. 이제 그 뒤에가 핵심인거예요. “부처님의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고통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고 그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낍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어왔던 저희들도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렇게 딱 물어요. 되게 젊잖하게 물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거잖아요. 부처님 밑에서 오래 배웠는데 안 배운 사람하고 배운 사람하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 이야기예요. 우리 식으로 하면, 교당 열심히 다닌 사람하고 안 다닌 사람하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어차피 똑같이 즐겁고 괴롭고 똑같지 않습니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뭐라고 대답을 하실까요? 교당 오래 다녔으니까. 안 다닌 사람이나 다닌 사람이나 똑같이 괴로운데 뭔 차이가 있냐? 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물어보면 뭐예요?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보통사람과 나의 법을 들은 사람이 즐겁기도 하고 괴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같다. 그런데 나의 법을 믿는 사람은 괴로울 때 그 괴로움에 빠지거나, 그 괴로움으로 인해서 원망심이 일어나지는 않고, 즐거움을 당했을 때 그 즐거움에 집착해서 또한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다. 나의 법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괴롭고 즐거운 것은 같다. 하지만 그 괴롭고 즐거운 다음에 일어나는 작용이 다르다.” 그러면서 이렇게 합니다. “그것을 나는 두 번째 화실을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부처님 아닌 사람이나 첫 번째 화살을 다 맞아요. 그 말은 부처님이나 부처님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어요. 그것이 첫 번째 화살이에요. 그쵸! 원불교 다닌다고 해서 안 좋은 일 안 일어나지 않잖아요. 아무리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죠!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좋은 일도 똑같아요. 여기 다닌다고 해서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저도 말할 수도 없고. 똑같이 일어나죠. 그것은 똑같아요. 인생의 풍파는 똑같애. 그런데 그 풍파에 대응하는 자세는 달라요. 그니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의 법을 믿는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유명한 법문 있잖아요. <첫 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
오늘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이 12연기입니다. 그러면서 12연기가 나오는 거예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 12연기.
두 번째 화살 이야기 많이 들으셨잖아요, 부처님이. 근데 교도님이 여기서 이런 의문은 안 드세요? 저 같으면 하나 질문 더 했을 것 같은데 부처님한테. “첫번째 화살도 안 맞을 수 는 없습니까?” 이런 질문 했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첫 번째 화실, 이런 의문 안 드세요? 첫 번째 화살도 안 맞는 방법도 가르쳐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첫 번째 화살을 안 맞을 수 있습니까? 살면서 괴로운 일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을 수 있을까요? 태어난 순간부터 화살이 날라 오는데 그쵸? 태어난 순간부터 화살이.. 예. 그렇지 않나요? 태어난 순간부터 화살 준비되어 있다가 태어나면 막 날라 오잖아요. 한 시간에 한 10개씩 날라 오는 사람도 있고, 전생에 잘 지었으면 한 두 개 날라 올 수도 있고. 안 날라 올 수는 없죠. 내가 업을 지어서 태어났잖아요. 태어났다는 것은 내가 업을 지은건데, (그래서) 안 날라 올 수는 없는데. 화살을 안 맞는 방법 하나 딱 있죠. 뭐가 있을까요? 죽으면 안 맞겠죠. 죽으면. 하하. 시체한테 화살이 날라 오진 않겠죠. 예. 살아있으면 무조건 화살은 날라 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상 첫 번째 화살을 안 맞고 살 수는 없습니다.
첫 번째 화살도 안 맞고 살려는 분은 경계가 없는 곳에서 살려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과거의 수행은 첫 번째 화살도 안 맞으려 해서 산 속에 들어갔죠. 그래서 내가 수행이 잘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았죠. 화살이 안 날라 온 거지 내가 방어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경계 없는 곳으로 가서 나의 수행은 끝났다. 과거의 종교는 첫 번째 화살도 맞지 않게 하려고 했었죠. 첫 번째 화실도 안 맞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세상이 이제 다 산속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고 경계가 없는 곳에서 살려고 하니까. 그것이 대종사님이 바라는 낙원세계는 아닐테고. 우리는 화살이 날라 왔을 때 첫 번째 화살은 맞을 수 밖에 없잖아요. 두 가지겠죠. 제가 보기에는. 두 번째 화살을 안 맞는 방법과 첫 번째 화살을 맞아도 체력이 튼튼해서 별로 그냥 맞았구나 이정도로 끝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12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12연기에 대한 그림이에요. 12연기를 글로 설명하면 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게 어느 나라의 그림일까요? 제가 가보고 싶은 나라 두 나라가 있었는데 한 나라는 갔어요. 인도. 가서 한 달 동안 그 수행하시는 분들 찾아가고 만나고 그랬습니다. 한 달 동안. 그때 이제 약간에 수행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가서 온갖 분들 만나보고 했었는데. 못 가본 나라가 하나 있어요. 그 나라 그림인데. 티벳. 제가 인도 가서 부처님 태어나신 보드가야? 거기 갔어요. 제가 한달 동안 수염을 안 깍고 도인처럼 보이는 외모로 해서 부처님 깨달은 것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거든요. 부처님 비슷하게 한번 앉아있어보자 하고 앉아 있었는데. 옆에 티벳스님이 막 수행을 하더라구요. 오체투지를 하시는데, 보는데 막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왜냐면 진짜 사심없이 진심으로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분 멍하니 보고 있었거든요, 거의 한시간 넘게 계속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참 티벳이라는 나라는 진실하게 수행을 하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는 티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게 티벳의 사원에 많이 붙어 있데요. 육도윤회도라고 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가보진 않아서. 티벳어로 씨빡콜로. 발음을 잘못하면 위험하게 나올 수 있는.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게 흰색이 그 그림의 앞면이고, 왼쪽이 뒷면이라고 해요. 그래서 저 보면 위에 부처님 계시잖아요? 왼쪽 그림에. 그리고 왼쪽에는 달이 보이죠. 부처님이 달을 향해서 해탈을 향해 가려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그림들이 재밌어서 한번씩 찾아서 보는데, 교리를 글로 보는 것도 재밌지만 그림으로 보는 것도 재밌어서. 이게 육도윤회에 대한 그림을 그려 놓은거고.
우리가 오늘 배울 것은 이제 12연기입니다. 12연기 첫 번째가 뭘까요? 삼세윤회에 대해서 설명한 거예요. 나를 중심했을 때 내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한 건데. 이거 보시면.
무명하고 행이 과거로 보구요. 그 다음에 식에서부터 육까지가 현재 삶이고, 생에서 노사가 미래 삶이예요. 과거 미래 현재의 삶이거든요.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설명해 준거예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게 위해서.
자 첫 번째 시작이 뭐죠? 무명입니다. 무명이란 뭘까요? 무명? 진리에 대한 어두움을 무명이라고 해요. 그냥 어두운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어두움. 깨쳤으면 업을 많이 짓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깨치기 전에 실수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무명이 시작인 거예요. 무명에서- 어두운 한 생각에서. 우리도 가만히 있다보면 어두운 한 생각이 일어나잖아요. 한번 해 볼까? 오늘 한번 가지 말아 볼까? 뭐 하지 말아 볼까? 그 한 생각이 이제 행을 만들죠. 우리의 과거사는 무명->행, 무명->행의 반복이라고 해서 부처님께서 나의 과거의 삶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무명과 행이다. 무명으로 짓고 무명으로 짓고 무명으로 짓고, 짓고, 짓고..
계속 해서 뭔가 만들어질까요? 태어나기 직전에? 그 다음에 뭐가 나와요? 과거의 식이예요. 식(識)은 뭘까요? 식은 종자입니다, 씨앗. 과거의 무명->행, 무명->행, 무명->행 하면서 여러 가지 지었을 거 아니에요? 짓고 나서 이 생에 종자를 가지고 태어나죠, 그쵸. 우리가 첫 번째에는 어디 있죠? 육체적으로는? 부모님 배속에 있잖아요. <식-명색-육입>은 태중일 때 이야기거든요. 우리 태중일 때, 식이라는 것은 씨앗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부처님께서 표현하셨냐면, 대산상사님께서 하신 12연기 법문도 있어요. 식이라는 것은 과거의 결실인 동시에 현재의 시작. 과거의 결실인 동시에 현재의 시작이 종자예요. 그래서 내가 과거에 지어놓은대로 종자가 형성이 되요. 과거에 지은 것은 두 가지가 되거든요. 종자가 형성이 되고, 내 부모가 결정이 되잖아요. 그 부모한테로 식이 탁태가 되는 거예요. 49재가 끝나고 나면. 탁태가 되는 순간 식이 발생하는 거예요. 부모 태중에서. 그래서 이제 우리가 임신이 되는 그 1일째, 그때가 식인 거예요. 종자, 씨앗. 하지만 거기에는 내 과거의 모든 게 들어있을 거 아니에요? 우리 DNA하나에 공룡이전까지의 생명의 모든 정보가 들어가 있듯이, 이것(=識)은 제가 보기에 영적DNA일 것 같은데. 내 모든 것이 들어가 있을 거예요. 여기에. 과거의 결실인 동시에 현재의 시작.
그 다음에 식 다음에 뭐가 있어요? 명색(名色). 명색은 뭐냐면요 - 명은 정신, 색은 육신. 태어나서 이제 정신과 육신이 형성이 되는 거예요. 처음 식이 정신과 육신으로 분화를 해요. 그게 명색. 명은 정신, 색은 육신.
그 다음에 뭐가 나와요? 육입(六入). 이제 어떻게 되요? 태아가 배 속에서 뭐가 생기죠? 요새는 엄마들이 초음파 사진 찍고 좋아하잖아요? 저게 눈인거 같고 이게 코인거 같고, 하면서 보잖아요. 그 단계. 육근이 형성되는 단계. 육입. 눈 코 입 귀 마음. 그래서 이때부터 뭘 하죠? 태교를 하잖아요? 예. 육근이 형성되는 단계에요. 정신과 육신에서 정신과 육신이 분화가 되요. 정신은 안이비설신의 중에서 의로 가잖아요. 육신은 안이비설신 다섯개로 가고. 식에서 명색으로, 명색에서 육입으로. 여기까지 다 이해가 되시죠? 여기까지가 어디다? 뱃속에서.
그래서 이제 배 속에서 완벽하게 육근을 갖추고 태어나죠. 그게 뭐다? 태어나서 어떻게 되요? 태어나서는 모든 게 다 뭐죠? 처음 아니d[요?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촉(觸)입니다. 여기(무명-행)는 과거/ 여기(식-명색-육입)는 태중/ 여기(촉~~)는 현재가 됩니다. 태어나야지 만지잖아요. 태어나서 이제 의사를 보던지 엄마를 보던지 처음 보겠죠. 육근을 통해서 경계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촉이에요. 그래서 만지고 보고 그래서 울고 하잖아요. 그것이 촉이에요. 육근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오는 것이 촉이죠.
그 다음에 뭐가 나와요? 수(受). 수는 뭐예요? 느낌이에요. 좋고, 싫고,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느낌은 항상 3개. 고, 락, 비고락. 느낌이 생기잖아요. 촉이 있으면 바로 느낌이 생겨요. 외국에 다녀오면 가장 발달하는 촉이 뭘까요? 외국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저는 외국에 갔다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후각인거 같더라구요. 음식. 한국음식이 먹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오잖아요. 그래서 된장찌개 냄새나면 엄청 거기에 모든 게 집중이 되잖아요. 된장찌개 냄새가 촉이에요. 그 촉이 생기면 수가 나오잖아요. 아 된장찌개 냄새 맡으니까 좋다~ 이게 수예요. 근데 외국인들은 된장찌개 냄새 싫잖아요. 제가 아는 청년 한명이 유럽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청국장 한번 끓여먹었다가 기숙사 쫓겨났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까 촉에 따라서 일어나는 수는 다양한 거예요. 왜 그러냐? 식이 다르니까, 종자가. 우리는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바로 좋은 느낌이 나오는데, 외국인들은 그 냄새를 맡자마자 역한 마음이 날 수 있죠? 그래서 촉에서 수로 가요. 이건 자동화예요. 끊을 수 가 없어요.
그 다음에 뭐가 나와요? 애(愛). 애라는 건 뭐예요? 내가 좋고 싫음이 생기면 어떻게 되요? 거기에 대해서. 좋은 것은 취하고 싶고, 싫은 것은 버리고 싶고, 그 마음. 취사하려는 마음. 좋은 것을 더 갖고 싶은 거. 맛있는 거 있으면 더 먹고 싶은 마음. 그것을 애라고 합니다. 갈애(渴愛) - 채워지지 않는 욕구. 갈애. 애가 생겨요.
애가 생기면 그 다음에 뭐가 생겨요? 우리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것을 취하려고 하잖아요. 취(取). 소유하려고 해요. 애는 욕망이고. 첫 번째 좋은 것이 생겼어. 그러면 그것을 계속 취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데 그 욕망이 소유로 가는 거예요. 취라는 것은 소유하고 싶은 거.
그 다음에 뭐로 나가요? 유(有). 유는 쌓아두는 거죠. 오랫동안 소유하고 싶은 마음. 취는 그냥 소유하고 싶다. 유는 오랫동안 소유하고 싶은 마음, 쌓아두는 거.
술을 예로 들면, 청년들에게 할 때 술을 예로 들으니 이해가 제일 빠르더라구요. 술집을 지나가요. 술 냄새와 안주 냄새가 나요-촉. 어떻게 날 까요? 술을 좋아하는 분한테는? 향기롭게 나겠죠. 이쪽(낙수)로 갈 거 아니에요? 고통스럽게 나진 않을 거 아니에요? 낙수가 생기죠. 술의 냄새를 맡고 비촉(脾觸)해서 낙수가 생겨요. 무슨 마음이 나와요? 한 잔 하고 싶다-<애>. 그 다음 어떻게 되요? 한 잔 해요-<취>. 근데 한잔만 하지 않았아요. 내일도 한 잔 하고 모레도 한 잔 하고 한 달 동안 했어요. 그게 <유>. 여기까지가 현생인데, 유라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습관이 형성이 됐습니다. 유.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나라는 사람은 다양한 유의 복합체. 이런 것들이 쌓여서 현재의 내가 된 거죠. 그것을 내가 고치려고 하죠. 식에서부터 유까지가 종자에서부터 열매 맺는 과정이에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오죠? 생(生). 그 다음에 노사(老死). 이거는 뭐냐면 부처님께서 식에서부터 유까지가 종자를 심어서 열매 맺는 과정인데, 이 과정을, 이거(생-노사)는 미래잖아요.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매 생마다 반복하고 살더라 이렇게.
과거의 삶을 요약해서 무명과 행으로 해놓은 거고. 미래의 삶은 생-노사로 해 놓은 거예요. 그래서 과거-현재-미래, 무명에서부터 노사까지 오는 건데.
자, 그러면 이 12연기를 왜 부처님께서 설했냐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설했다? 뭘 하기 위해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 대산상사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이 무명이 아니라 지혜로 공적영지의 광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해탈의 세계로 가고, 무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집착의 세계에서 산다. 그래서 우리가 이 해탈로 가기 위해서 이 12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 거예요. 중생이나 부처나 똑같이 12연기 속에서 살지만, 부처님은 지혜로써 순환하고 수생하고. 중생들은 무명으로써 집착으로써 수생해서, 부처는 언제든지 나올 수 가 있는 거구요. 중생은 식에서 유로 열매를 맺는 거죠. 그 열매가 고통을 주는 열매를 계속 맺는 거예요. 예. 그리고 이 열매가 화살인 거죠. 그러니까 내가 첫 번째 화살을 안 맞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화살을 많이 쏜 거죠. 내가 쏜 화살을 내가 돌려받은 거지 다른 화살은 아니잖아요. 여기 식에서부터 유. 무에서 행. 생에서 노사. 계속 화살을 쏘고 있는 거죠. 그 화살이 나에게 첫 번째 화살로 다가오는 거죠, 내가 쏜 화살이.
자 그러면 여기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이 중에서 한군데를 끊어야 화살을 맞지 않을 수 있거든요. 어디를 끊어야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수 가 있을까요? 이 12개 중에서? 무명으로 시작해서 노사까지 인데, 이 중에서 한 군데를 끊어야 돼! 끊어야지 여기 12연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어디를 해야 할까요? 생이요?? 안 태어날 수 가 없잖아요. 하하하. 답지를 조금 좁혀보면. 무명-행은 과거, 생-노사는 미래잖아요. 과거는 지나가서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미래는 돌아오지 않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제가 보기엔 답은 현생 중에서 하나 있을 거 같은데, 그쵸? 현생 중에서 어디에 있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수(受)! 수가 제일 중요하다. 수행의 핵심은 수다라고 했어요. 수에서 애로 가는 것을 끊어라! 여기서 마음공부가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경계 안 만날 수 없잖아요. 일단 촉이라는 것은 경계에요.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 수예요. 촉은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가 살면서 촉이 첫 번째 화살인 거예요.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는 없잖아요? 막는 방법, 제가 보기에는 죽는 거나 산속에 들어가는 건데, 그럴 수 는 없으니까, 촉에서는 끊을 수 가 없고. 식-명색-육입은 태중이잖아요. 그러니 끊을 수가 없죠. 식도 우리가 어떻게 못해요. 식은 과거의 결실인 동시에 현재의 시작이니 이것도 어떻게 못해요. 안되잖아요.
해서 끊을 수 있는 데는 수에서 애로 가는 것을 끊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마음공부하가 이겁니다. 원불교에서 하는 마음공부가 수에서 애로 가는 길을 끊는다고 표현하는 데, 알아차리는 거예요. 수에서 애로 가지 않기 위해서 알아차리는 거에요. 왜냐면 애까지 가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화 과정으로 들어가요. 애가면 취가고, 취가면 유예요. 유가면 뭐예요? 결실이잖아요. 열매를 맺으면, 식에서 한 개의 씨앗이 열매 맺으면 몇 개가 되요? 백개 천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뒤로 갈수록은 수에서 애로가는 길을 끊을 때는 10이라는 힘으로도 끊을 수 가 있는데 뒤로 가면 30의 힘이 필요하고, 뒤로가면 뭐 50의 힘이 필요하고, 뒤로 가면 더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데는 수에서 애를 끊는 거예요. 더 커지기 전에. 열매까지 맺어버리면 그때는 이제 감당이 안 되는 거죠. 이미 다른 곳에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공부는 수와 애 사이에서 끊는 건데, 그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수에서 애로 가는 것을 끊어버리는 공부. 수에서 애로 가는 것을 끊어버리는 공부가 무시선법에 있어요. 무시선법에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해 잊지 말고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라> 그러니까 수에서 애로 가는 것을 끊는 것은 알아차리는 거예요. 아 이것이 수구나. 고수구나. 촉에서붜터수로 왔구나. 수에서 애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싹이 틀 때 뽑아버려야지, 이 씨앗이 싹이 터서 열매까지 맺은 상태에서 뽑으면 힘들죠. 그러니까 알아차리는 공부. 촉을 통해서 이런 마음이 일어났구나, 이것은 고수구나. 거기서 끝내는 거죠. 낙수구나. 그것이 대종사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신 거예요. “공부할 때가 돌아왔구나”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는 거” 그것이 정산종사님 말씀으로는 관심공부, 바라보는 공부. 그때 보고 있으면, 바라보면, 자기의 공부의 정도에 따라서 사라지거나, 잠잠해지거나- 공부가 많이 된 사람은 거기서 끝나요. 바라보기만 해도 90프로는 해결이 됩니다. 엄청나게 강력한 경계 아닌 이상에는 바라보면 멈춰져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 했더니 청년이 묻더라구요. 바라보기만 해도 진짜 멈춰집니까? 저는 확실히 바라보면 멈춰져요. 여기 컵이 있어요. 이 컵이 뜨겁게 달궈져있어요. 이 컵이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컵을 만질 때 같을까요? 모르는 사람은 덥썩 잡을 꺼고, 아는 사람은 잡아야 되는 상황이 와도 조심스럽게 잡을 거 아니에요. 잡아도 달라요,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거든요. 내가 아직은 업장이 너무 센 게 왔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너져. 아이고 내고 지금 끌려가고 넘어지고 있구나! 저 경계에 무너지고 있구나! 그것을 알면서 무너지는 것과 무방비 상태로 무너지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공부가. 알고서 무너지는 사람은 컵의 뜨거운지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잡는 거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잡는 거예요. 아무 무방비 상태로. 그러니까 잘못생각하면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잡는 공부가 뭐가 대단하냐 하는데 그것이 수에서 애로 가는 길을 끊는 거예요. 수에서 애로 가는 길이 한 번에 끊어지겠어요? 전생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칼이 독일제 칼이라 한 번에 끊어질 테고, 많이 안 된 사람은 커터칼이라 계속해야 되겠죠. 하지만 끊고 있는 작용이잖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기라도 해라 하셨거든요, 수에서 애로 갈 때. 그게 훨씬 났다. 그러니까 이 12연기 공부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어디있는지 바라보고 이 수가 일어날 때. 이 수라는 것은 촉이 일어나는 거죠. 제가 설명한 거 있잖아요~ 무명에서부터 노사로 가는 것은 순관(順觀)이라고 해요. 순서대로 가는 거. 근데 수행자들은 역관(逆觀)도 많이 해요. 이런 감정이 일어나서 수. 그러면 이 수에 대한 촉은 어디서 왔을까? 이렇게 거슬로 올라가서 찾아가는 거, 그 원인을. 이게 역관이라고 해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역관도 많이 해요. 제가 설명하기 위해서 순관을 했고. 역관을 해서 원인을 찾아가는 거죠. 찾아가다 보니까 근본원인은 무명이 나온거고. 그쵸? 그래서 이 12연기라는 것이 이런 공부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그냥 단 두줄로 된 거죠. 무명하고 노사로 이렇게. 그런데 그 안에 이렇게 많은 진리가 들어가 있는 거죠. 이 대종사님 공부도 다 그런 거예요. 감수불보하라, 감수! 수잖아요. 수. 그냥 받는 거예요. 낙이면 낙이구나. 고면 고구나.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낙일때는 집착하고, 고일때는 원망하고. 그래서 두 번째 화살뿐만 아니라 세 번, 네 번, 다섯, 막 무더기로 화살을 맞잖아요. 첫 번째 화살 맞고 나서. 근데 원불교에는 첫 번째 화살은 맞아주고-아 아프구나-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맞지 않는 거죠. 그것이 아까같이 감수불보. 또는 은생어해(恩生於害). 은생어해 잖아요. 화살을 맞았는데 거기서 공부심을 챙기면 해에서 은이 나오잖아요. 은생어해 공부. 그리고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해 잊지 말고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는 공부 - 관심 공부.예. 이게 계속 그것을 보다보면 무심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계속 이제 보다보면 마음의 힘이 생겨서 그냥 이제 바라본다는 것도 없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단계가 무심단계인데. 이 단계(수에서 애로 가는 길을 끊는 공부)가 관심공부. 12연기를 통해서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 1의 화살은 맞아도 제 2의 화살은 맞지 않는 공부, 12연기에 대해서 밝게 바라보는 공부, 이것이 법을 아는 자와 법을 모르는 자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12연기 공부입니다.
오늘 이 12연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거든요? 이게 불교에서도 상당히 어렵다고 하는 공부입니다. 불교에서도 많이 설명을 못 하고 있고. 교도님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시죠? 일생을 이걸로도 한 번 보시고, 오늘 하루도 한번 이걸로 보시고. 내가 내 식이 어떻게 가서 어떤 유까지 갔는지, 어떤 열매를 맺었는데, 그 열매 맺기 전에 내가 수에서 애로 가는 길을 차단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한 번 찾아보시면 성숙한, 그리고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 12연기까지 설명을 드리고 다음에 또 이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세요? 12연기. 12연기라고도 하고 12인연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부처님의 방편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이야기 하고. 또 어떤 분은 우리가 육도 이야기를 할 때 현생육도로도 이야기도 하잖아요. 지금 삶 속에서도 육도가 있다. 짐승같이 사는 사람은, 현생에 인간이지만 축생계에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현생육도를? 이런 것처럼 12연기도 그렇게 해석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래서 12연기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찾아보시면. 그런데 이제 우리 대산상사님께서 설명하시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삼세로 해서.
혹시 궁금한거 있으시면.
Q : 불교에서는 12연기법을 서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근원이라고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석가모니부처님께께 연원을 댄 근원은 이 12연기법에 있지 않는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A : 저도 12연기 공부를 하면서 유명한 스님들이 하신 12연기법에 대한 설법을 들어봤어요. 조금씩 다르시더라구요. 불교의 핵심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이잖아요. 이것이 인과의 핵심되는 건데. 이것을 부정할 순 없겠죠? 지금 질문이 그거 아니세요? 대종사님의 본의도 다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 이것은 유일하게 종교라기 보다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가는지를 정확하게 근원을 밝혀주시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서 대종사님께서도 이 부분을 중요하게 보셔서 연원으로 하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A : 그렇죠. 대산상사님은 여기서 한단계 더 들어가셨어요. 불교에서 촉이라는 것을 현생에서 생긴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대산상사님은 촉은 태중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태교가 있는 거다. 그런데 제가 거기까지 설명은 안 드렸어요, 혼란스러울까바. 대산상사님은 태중의 시기를 촉까지 보셨어요. 그런데 일반적인 해석은 촉은 현생으로 보는데, 대산상사님은 촉이 태중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래서 태교하는 것이 다 태중에서 보고 듣고 하기 때문에 태교할 때 엄마들이 보는 것도 주의하고 듣는 것도 주의하고 먹는 것도 주의하는 것이 다 그런 원리다~라고. 그것이 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좀 다른면이거든요. 그런 것처럼 오히려 12연기를 더 발전적으로 심도있게 바라보신 것 같은데. 우리 생각일수도 있겠죠. 하하하. 불교에서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불교에서도 해석이 분분합니다.
Q : 고맙습니다.
A : 불교가 가장 최고의 심리학이라고도 하거든요. 이런것들이 참 무궁무진하고 알면 알수록 경탄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대산상사님께서 하신 12연기 법문이 많이 있습니다. 검색해보셔서 읽어보시면 훨씬 도움이 되실 거예요. 이게 한번에 이해는 안되요. 계속 곱씹고 곱씹고. 저도 계속 볼 때마다 다르더라구요. 저도 제가 확연히 깨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 밝아지는 면이 있더라구요. 대종사님 근본교리 중에 하나인 인과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12연기이니까 이 12연기 공부를 한번 화두삼아서 좌선 끝나서 의두연마 시간에 한번 해보세요. 저는 이걸로 하고 있습니다, 요새.
12연기 공부로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고 행복하게 사시는 한주 되시길 바라면서 오늘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미지와 함께 올려 주시니 훨씬 좋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