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루이16세 동상
본인의 잘못보다 선대왕들의 과오때문에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주인공
파리에서 약 20km에 떨어져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
궁전의 규모와 화려함 속에서 중세시대 민중의 처참했던 삶이 함께 오버랩 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 <콩시에주리>
혁명의 폭풍이 휘몰아 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마리앙뜨와네트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이곳으로 끌려와서 갇혀있던 감옥
콩시에주리 감옥에서 콩코드 광장 단두대로 처형당하기 위해 감옥을 나서는 마리 앙뜨와네트
기요틴에 오르면서 어느 군인의 신발을 실수로 밟았을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정도였으면
심성은 착한 여성이었을 것 같은데 단두대에 처형될 정도로 죄가 컸을까?
공화정파의 혁명의 명분이 필요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콩코드 광장에 우뚝서 있는 <오벨리스크>
이집트에 있던 저 거대하고 무거운 것을 2년에 걸쳐 운반하여 광장에 세웠다.
자기나라의 유물이 아닌 타국의 유물을 가장 상징적인
광장에 세워진 모습이 왠지 부조화스럽다.
루이 16세 처형일 : 1793년 7월 21일
마리앙뜨와네트 처형일 : 1793년 10월 16일
왕와 왕비가 목이 잘리는 처형을 당한 장소라고 하니 지금의 파리 시민들은
이 장소를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옛 바스티유 감옥에 있던 자리에 우뚝솟은 7월 혁명의 탑
파리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루리16세를 호위하던 스위스 근위병이 파리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화약을 구하기 위해 군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바스티유감옥은 1800년대 파리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되어 그 돌로 파리의 다리를 만들었다고 함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혼란했던 시기를 평정하고 등장했던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그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전쟁에서 이긴 나폴레옹을 맞이 하기위해 파리 시민들이 개선문을 짓는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개선할때는 완공되지 못하고 그 이후 십수년이 지나서 완공되었으니
2차례 실각한 나풀레옹이 죽고 그는 죽어서 이 개선문을 통과해서
장례식을 치룬다.
파리 센느강의 다리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이 다리에서 영국가수 Adele이 뮤비를 촬영
명품도시 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