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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고교 야구사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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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북일고교 우승2차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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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선동열. 김태업. 이순철┃
@@ @@ @@@@@@ @@ @@ @@ @@ ┃안언학. 차동철. 허세환┃
┃김건우. 민문식. 이종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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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대회기간 │회수│ 대회명칭 │참가│우 승 팀│결승전│준우승팀│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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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4/23∼5/ 1│14회│*대통령배*│20팀│광주일고│ 8 - 2│광주상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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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6/15∼6/23│35회│청 룡 기│20팀│선린상고│ 5 - 0│마산상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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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7/24∼8/ 8│10회│*봉황대기*│46팀│북일고교│ 2 - 0│배재고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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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8/16∼8/23│32회│화 랑 기│20팀│북일고교│ 2 - 0│선린상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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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8/16∼8/26│ 2회│대 붕 기│20팀│세광고교│ 7 - 1│인천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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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27∼10/5│34회│황금사자기│20팀│선린상고│ 5 - 3│광주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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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0/8∼1013│61회│ 전국체전 │10팀│경남고교│ 4 - 3│선린상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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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024∼11/4│ 2회│야구대제전│24팀│경남고교│ 3 - 2│중앙고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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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고교야구의 판도는 선린상고(청룡기, 황금기)와 북일고(봉황기, 화랑기)가
각각 2관왕에 올라 전국을 호령 했으며 광주일고(대통령배)와 청주세광고(대붕기)
가 타이틀 하나씩을 차지했다. 이는 충청세의 북일고와 세광고가 득세하고 경북고
대구상, 경남고, 부산고 등 영남의 명문들이 몰락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선린상고
는 한해 동안 4개 대회를 통해 무려 0.321에 달하는 팀타율로 무서운 공격력을 자
랑했으며 북일고는 그에 훨씬 뒤지는 0.239의 팀타율을 보였으나 이상군이 지키는
마운드가 워낙 견고해 2관왕에 오를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선린상고 2년생 김건
우가 0.470으로 최고 타율을 마크 했고 광주일고 3년생 선동열은 4개 대회에서 방
어율 1.27로 단연 두각을 나타 냈다. 또한 선동열과 이하룡(심석종고)은 노히트노
런을 기록했고 이종두(대구상고)는 고교야구사상 최초의 사이클링히트를 작성했다.
고교야구의 인기는 여전히 절정으로 서울에서 열린 4개대회에 모여든 관중은 무려
1백3만6천여명에 달했다. 보름간 대회를 치른 봉황기는 43만3천명으로 으뜸이었고
대통령배가 23만8천면, 황금사자기가 18만5천명, 청룡기가 18만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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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회 대통령배 (야구협회. 중앙일보 공동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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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의 마수걸이 대회에서 광주일고 - 광주상고 동향 팀끼리 패권을 다투었다.
광주일고는 대회 첫날 1회전에서 군산상고와 격돌, 3시간 20분의 진땀나는 대결끝
에 4 - 4 동점이던 9회초 2사 3루에서 투수겸 5번 선동열이 우전 결승타를 터뜨려
5 - 4 승리를 이끌며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광주일고는 2회전에선 차동철의 완투
로 전년도 우승팀 선린상고를 5 - 1로 격파, 8강에 오른 뒤 이효봉을 앞세운 대전
고와의 경기는 8 - 1로 8회 콜드 게임승을 거두고 준결승전에 올랐다. 충암고와의
결승진출 다툼에서는 에이스 선동열이 4안타로 역투, 4 - 0의 완봉승을 따내 갈수
록 넘치는 힘을 보여 주었다. 반면에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광주상고는 모처
럼 혜성처럼 나타난 정통파 투수 김태업이 부산고 좌완 김종석과 멋진 투수전끝에
4 - 2로 승리를 거두었고 서울의 강호 신일고와의 8강전에서는 9회초 2사 3루때에
투수 김태업이 1 - 1의 균형을 깨는 좌전 결승타를 때려 2 - 1 승리를 낚았다. 그
리고 중앙고와의 4강전에선 이순철이 6회말 우월 3루타로 1 - 1 동점의 발판을 만
들어 놓고 8회말에는 안언학을 좌중월 솔로홈런으로 두들겨 2 - 1 승리를 낚는 수
훈을 세웠다. 광주일고는 선동열과 허세환, 광주상고는 김태업과 이순철등 발군의
투수와 유격수를 거느리고 결승전에서 맞 붙었다. 동향팀끼리의 결승전 대결은 역
대 통산 23번째 였지만 광주팀끼리 서울 무대에서 자웅을 겨루기는 이것이 처음이
었다. 광주일고를 이끈지 1년이 되는 조창수 감독은 선동열 대신 차동철을 선발로
기용하고 7회부터 선동열로 뒤를 막으면서 13안타를 터뜨려 8 - 2로 대승하며 5년
만에 패권을 되찾으며 정상에 복귀했다. 마침 광주일고가 우승하던 이날은 광주일
고의 전신인 광주서중으로부터 따져서 개교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이었다. 허세
환은 이대회에서 수훈상, 타격상(18/8, 0.444), 안타상(8), 타점상(4), 도루상(3)
등 5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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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회 청룡기 (야구협회. 조선일보 공동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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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3연패를 노리던 강호 부산고가 충암고와 네차례나 엎치락 뒤치락하는 열전끝
에 2회전에서 탈락하는 등 이변이 속출하는 가운데 선린상고, 대전고, 중앙고, 마
산상고가 4강에 진출 했다. 준결승전에서 선린상고는 이경재의 2점홈런 등 중반에
많은 득점을 올려 이효봉이 버틴 대전고를 5 - 0으로 셧아웃시키고 결승전에 올랐
고 마산상고는 3회에 사사구 5개와 안타, 실책 등으로 걷잡을수 없이 무너진 중앙
고 마운드로 부터 6점을 뽑아 일치감치 승부를 결정지어 7 - 3으로 승리 했다. 마
산상고가 결승전에 오른 것은 16년 만이었다. 대통령배 대회에서 무려 8개의 실책
을 저지르는 바람에 초반 탈락했던 선린상고는 박노준 김건우를 포함한 2년생들이
머리를 박박깎고 집단 이탈했던 잘못을 반성하며 심기일전한 덕을 보았다. 결승전
의 결과는 5 - 0의 완승 이었다. 선린상고 구본호 감독은 투수 나성국과 박노준을
무려 5차례나 마운드에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마산상고 타봉을 5안타로 저지 했다.
선린상고는 1969년 이후 11년만에 이대회 우승기를 품에 안았다. 김건우는 16타수
10안타(0.625)로 타격상과 6타점으로 타점상을 차지 하면서 비로서 박노준과 맞서
는 대형선수로 성장 했음을 보여주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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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봉황대기 (고교연맹.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공동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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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천 서울시장의 시구로 개막이된 대회 첫날 선동열이 경기고를 노히트노런으로
잠재우고 4 - 0 승리를 따내는 것으로 화려하게 막이 올랐다. 선동열은 매회 삼진
에 선발타자 전원 삼진 등으로 1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내야땅볼 9, 내야플라 1,
외야플라이 2개로 가볍게 경기고 타선을 요리 했다. 그러나 대기록을 세운 선동열
을 앞세운 광주일고는 2회전에서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중앙고의 재치에 2 - 3 한
점차로 주저 앉고 말았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 중앙고 1번 노승구가 그라운드
사정을 이용해서 기습번트 안타로 나간뒤에 또다시 보내기번트로 선동열의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조은형의 좌전 적시타로 1점을 선제 했다. 결국 비로인해 일시정지
후 다음날 계속경기에 들어간 중앙고는 진장현의 좌중월 2루타를 발판으로 추가점
을 올리는 한편 안언학이 광주일고 타선을 3안타로 막아 1점차 승리를 따낸것이다.
이렇듯 잦은 비와 폭염속에 팬들을 열광 시키던 대회는 11일째를 맞는 8월 3일 세
광고가 무명의 민문식을 앞세워 청룡기 우승팀 선린상고를 2 - 1로 꺾는 최대이변
을 낳았다. 1977년 화랑기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 했던 세광고는 이날 승리로
대회 출전사상 10년만에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면서 강팀으로 뻗어 나가는 자신감
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는 더 진기한 사건이 터졌다. 대구상고가 선린상고
의 강타선을 잠재운 세광고의 민문식을 무려 20안타로 두들겨 12 - 6의 대승을 거
두면서 이종두가 고교야구사상 최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던 것이다. 1회초 첫
타석에선 삼진을 당한 이종두는 3회초 좌월 2점홈런, 4회초 우중월 2루타, 7회초
좌중월 3루타를 치더니 10 - 3으로 리드 한 8회초에는 좌중간을 꿰뚫는 장타를 때
려놓고서 대기록을 위해 1루에 멈춰섰다. 이날의 성적은 5타수 4안타 5타점이었다.
결국 이대회 4강에는 2연패를 노리는 전년도 우승팀 광주상고와 북일고, 대구상고
배재고의 대결로 압축됐다. 준결승전도 파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준결승 첫경기
에서 북일고는 3 - 3 동점으로 치달은 연장 11회초 광주상고에 먼저 1점을 허용했
으나 11회말 2사 2,3루라는 절호의 찬스에서 1번 타자 김용대가 배짱좋게 기습 세
이프티 번트로 안타를 뽑아내 동점을 만들고 뒤이은 2사 만루 볼카운트 2 - 3에서
전대영이 회심의 끝내기 우전 적시타 날려 5 - 4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괴력의 투
수 김태업은 경남고전, 전주고전에 이어서 이날까지 3연속게임 홈런을 기록하고도
분루를 삼켜야 했다. 배재고는 대구상고에 8회초 까지 1 - 3으로 패색이 짙었으나
8회말 2점을 만회하며 동점을 만들더니 9회말 2사후 투수 김진원이 타석에 등장하
여 대구상고 투수 마수진을 좌월 끝내기홈런으로 두들겨 4 - 3으로 또하나의 극적
인 연적승을 연출하며 결승전으로 뛰어 올랐다. 최종 결승전에서 북일고는 에이스
이상군이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7회초 찾아온 2사 만루 때 배재고 유격수 안
종만이 내야땅볼을 1루로 악송구 하는 바람에 2점을 헌납받아 2 - 0으로 승리했다.
김영덕 감독이 다듬어 놓은 찬ㅇ단 3년째의 신예 북일고는 전국대화 첫 우승의 감
격을 맛 보았으며 전통의 명문 배재고는 에이스 김진원이 11개의 삼진을 탈취하며
역투하고도 내야 실책 하나로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