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사람은 작가 지망생(단편소설 1탄)

[김정철]

 

                           글루미 선데이

10시 50분. 거의 모든 TV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 언제나 이 맘 때면 다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까 퇴근길에 <글루미 선데이>를 부탁하고 들어간 사람도 나올 것이다. <글루미 선데이>는 개봉관에도 사람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내가 보고 싶어 받아두었던 테잎이다. 정말 보고 싶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받아놓은 테잎이 벌써 여러 장이다. 신프로 코너에서 한번도 대여되지 못한 채 아래 칸으로 밀려 난 그런 테잎들을 빼들고 재미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번도 네, 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이 묻는 재미있냐는 의미의 대부분은 얼마나 많이 피가 튀고, 얼마나 많이 부수는가, 혹은 얼마나 에로틱한가 하는 것이다. 간혹 취향이 비슷한 손님들이 있기는 하다. 드물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오면 난 너무나도 반갑다. ** 들어왔어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말한다. 아, 정말이요? 고마워요. 두말 않고 들고 나간다. 인기 없는 프로를 같이 봐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나는 대여 기일이 며칠이 지나도 절대 독촉하지 않는다. 연체료에서도 물론 제외다. 그가 와서, 잘 봤어요. 좋던데요. 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글루미선데이>도 벌써 일주일 전에 대여되었다. 골목 초입에 있는 마을버스 종점 쪽으로 다섯 집 건너에 자리한 사진관 집 남자.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해도 언제나 비디오테크의 열기가 식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테잎을 반납하는 사람이지만 간혹 이렇게 테잎은 잊은 채 며칠씩 사진관을 비우기도 한다. 아까 열에 들뜬 아이를 업고 큰길가에 있는 작은 소아과엘 다녀올 때에도 사진관은 마치 전체가 어두운 암실처럼 두터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우두커니 전화를 바라보고 있는데 벨이 울린다. 수희다. 아이가 또 열이 올라 보채는 모양이다. 아이가 감기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나 되었지만 나을 기미는 없이 계속 39도가 넘는 고열에 어제부터는 물만 마셔도 토하고 설사까지 한다. 숨소리가 쌔액쌔액 가쁘고 기침을 할 때마다 자지러지게 운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귀가 전. 오늘도 마을버스 종점에서부터 골목 안쪽으로 주욱 늘어선 10평 남짓의 고만고만한 가게의 고만고만한 사장들과 내기당구를 치고 있다. 초저녁에 아이를 업고 찾아가 내일은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다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개만 주억거리던 그는 오늘도 가게문을 닫고 셔터를 내린 다음에나 돌아올 모양이다. 이제 손님이 몰릴 시간이라 가게를 비울 수는 없고 하여 수희에게 그냥 아이를 데리고 나오라고 말한다.

한바탕 손님들이 몰렸다 빠지고 골목 안의 가게들은 하나 둘씩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우리는 그만 들어간다. 비디오집은 골목 잘 지키그래이.”

“네, 들어가세요.”

“아는 아직도 아프나?”

“네... 그만해요”

바로 옆의 세탁소 아줌마가 등에 업은 아이의 이마를 짚어본다.

“열은 좀 내렸네. 아도 아픈데 그만 들어가지.”

“애 아빠 들어오면요. 먼저 들어가세요.”

간간이 늦은 손님 두엇이 다녀가고 어느새 2시를 넘길 무렵에야 다시 골목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들의 귀가다.

잠들어 무거워진 아이를 추스려 고쳐 업는다. 카운터 뒤쪽, 비디오 테잎이 꽂힌 진열장 한 쪽을 슬그머니 밀면 한 평 반 짜리 밀실 같은 내실이 나온다. 소형냉장고와 한 칸 짜리 싱크대, 커버도 없이 맨몸인 싱글 침대로 실내는 비좁다. 수희와 함께 집에서 놀면 좋으련만 유난스레 엄마를 밝히는 아이는 그 곳에서 밥을 먹고, 동화책을 보고, 낮잠을 자며 자랐다. 침대 구석에 밀쳐둔 이불을 펴고 베개를 집어 한쪽 끝에 던져놓는다. 소형냉장고에서 유리병에 든 보리차를 꺼내 놓고 항상 싱크대 선반 위에 놓아두던 작은 패트병을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오늘 아침에 좀 많이 모였길래 정리를 한다는 것이 그만 다 버리고 말았나보다. 그에게 유리병은 너무 무겁고 또 위험하다. 밖의 소란함이 꽤 가깝다. 가게 앞의 평상에 잠시 자리들을 잡았나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리는 그를 부축하며 들어선 사람은 예의 치킨집 이씨 아저씨다. 김사장이 많이 힘든가봐요. 제수씨 잘해주세요. 김사장은 정말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너무 순수해서 탈이에요. 딸 뻘은 되는 사람을 제수라 부르며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 그냥 미소와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평상에 앉거나 선 사람들은 대 여섯 명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마디씩 하며 아는 척들을 한다. 그들에게도 역시 미소와 고개짓으로 인사를 하고 골목 안 가게들이 공동으로 재활용품을 버리는 마대가 있는 공터 쪽으로 향한다. 재활용품 수거일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패트병은 아직 있을 것이다. 아까 패트병을 버릴 때만해도 여유가 좀 있어 보였는데 어느새 마대는 가득 차고 주둥이도 노끈으로 꽁꽁 동여 매여있다. 노끈은 오른쪽 검지 손톱을 조금 부러뜨리고야 풀린다. 패트병을 버렸을 때의 마대 높이를 어림하며 한참을 뒤적여도 잘 찾아지지 않고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 할 때마다 등에서 잠든 아이는 이쪽으로 쏠렸다, 저쪽으로 쏠렸다 한다. 아픈 아이는 낮에도, 밤에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오직 엄마의 등에서만 깊은 잠을 잔다. 허리를 구부려 아이를 추스려 업고 포대기를 머리끝까지 올려 덮어준다. 땅에 끌린 한쪽 끈은 어깨 위쪽으로 돌려 앞쪽에서 좀 더 단단히 동여맨다. 한결 가뿐하다. 마대를 뒤집어 안의 내용물을 모두 쏟아놓는다. 누군가가 재떨이로 썼던 캔을 그냥 버렸나보다. 아까 버린 패트병들과 함께 물에 불은 담뱃재로 범벅이 된 음료 캔들이 발등 위로 쏟아진다.

가게 앞에도 가게 안에도 이미 아무도 없고 그는 내실 침대에 널부러져 있다. 작은 패트병 하나를 흐르는 물에 말끔히 씻어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를 조심스럽게 덜어 담는다. 패트병과 유리병을 다시 냉장고에 넣고 두고 가게 쪽으로 돌아서는데 그가 기습적으로 야, 물! 한다. 순간, 2, 3초쯤 심장이 멎고, 몸은 마비된다. 냉장고에서 패트병에 담긴 물을 다시 꺼내 그의 입안으로 조금씩 흘려 넣어준다. 그가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살짝 틀고 나는 흘리지 않기 위해 얼른 패트병을 세운다.

끝이 구부러진 긴 쇠막대를 들고 셔터문의 열쇠를 채우는 고리에 걸어 힘껏 잡아 내린다. 촤르르륵~ 셔터는 한번에 내려지지 않고 아이를 업은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욱 흐른다. 삼분의 이쯤 내려온 셔터 밑으로 아이의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한껏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와 간판 불을 내린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한껏 목청을 돋운 그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 아직 가게 문 안 닫았어?”

“으응, 형부가 술을 많이 마셨어.”

“내가 나갈까?”

“아니, 괜찮아. 형부 잠들면 금방 들어갈게.”

“언제 잠들지 알고... 알았어.”

수희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마을버스 종점을 경계로 그 길 건너편에 있는 전원주택단지의 집으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의 집으로 그는 오늘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노래를 시작했고 쉽게 잠들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캔으로 된 스포츠 음료를 꺼내 들고 다시 가게로 나온다. 스포츠음료는 물보다 체내흡수가 빠르다. 카운터 의자를 딛고 올라서 제일 윗칸에 꽂힌 테잎 박스를 빼서 그 안에 들은 캡슐로 된 열 개들이 알약을 꺼낸다. 휘청, 잠시 현기증이 인다. 다섯 개는 이미 비어있다. 언제부턴가 피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정작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은 늘어만 갔고 이제는 수면제를 삼키지 않으면 전혀 잘 수가 없다. 그가 알게 되면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은 누구나 비가 오면 쓸쓸해지고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아니 누구나의 그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가 그렇다는 것을, 그와는 상관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의 파편들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그는 용납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 나의 감정들을 용납하지 않듯 자기가 모르는 내 지난 시간들 역시 싫어한다. 내게 자기가 함께 하지 않았던,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못 견뎌한다. 더더군다나 나는 그가 모르는, 그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어릴 때 사진 한 장, 일기 한 줄이 없다. 그가 모르는 시간들, 그가 보고 연상하게 될지도 모를 흔적들을 모두 지워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레 캔을 따서 놓고 캡슐 하나를 캔 안에 털어 넣는데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나는 곧 이 캡슐 대신 내가 마시기 위해 준비해 둔 파라퀘트 원액을 흘려 넣을지도 모른다. 이전에도 그가 죽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교통사고나 계단에서 실족하는 가벼운 상상, 그리고 조금 발전하여, 아주 가파른 계단에서 밀어버릴까. 내가 밀면 저 사람은 넘어질까. 그런 것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무서워져 가슴을 쓸곤 했었는데 나는 어느새 이 손으로 수면제를 타고 있다.

엄마네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그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써왔던 일기와 사진과 문집들을 한국의 엄마네 집 장롱 뒤에 감추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한국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엄마와 아직 공부가 덜 끝난 수희는 일본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했고 집은 늘 비어있었다. 어릴 때부터 쓰던 알록달록한 열쇠 달린 비밀 일기장과 두터운 대학 노트, 태어날 때부터의 기록인 사진 앨범, 문집이라고 정리해 두었던 파일 박스, 밤새도록 스토리를 엮어서 다음날 수업 시간 중에 몰래 돌려 읽히곤 했던 내 연재소설 뭉치들. 사실, 일기나 연애편지가 아닌 그런 어릴 때 사진이나 문집들까지 넣어두어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장롱 뒤의 공간은 충분히 넓었고, 공부도 마치지 못한 채로 돌아와 한 달만에 급하게 치룬 결혼식의 그 짧은 준비 기간동안 그는 내 주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추리고 정리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난 그것들을 참 많이 아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그것들은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들 같은 것들이었다. 내 가슴 아파 낳은 내 시간들...

하지만 그 애들이 거기 숨어있을 수 있었던 시간도 그리 길진 않았다.

엄마네 집 근처에 신혼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치루고, 신혼 여행을 다녀오고, 새 생활에 대한 설계로 분주한 석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그 즈음 혼자 남은 수희 때문에 거의 일본에 머물던 엄마에게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도 공부 그만하고 싶다며 짐까지 다 꾸려놓았다는 수희를 와서 달래보라는 긴급 SOS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가려 했지만 한국에 와서 취업을 시도한 여러 회사 중에서도 그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회사의 첫 출근 날짜와 맞물렸고 그는 흔쾌히 혼자라도 다녀오라 말했다. 하지만 결국 설득하려 했던 수희에게 오히려 설득을 당해 1주일만에 함께 돌아왔을 때에는 작은 일기장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고 화장대 거울은 산산조각이 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직 그가 모르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은데... 

돌연 모든 의욕을 상실한 듯 그는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결혼 전 애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 예전 애인과의 정리기간 역시  인내하며 기다려주었었다. 그리고도 그에 대해 서운하다거나 하는 내색 한 번 안 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그 작은 일기장 하나로 매일 술을 마셨다.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마시던 술병은 언제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새로 꾸민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신혼집은 순식간에 20년쯤 박 터지게 싸우며 살아온 부부의 집으로 변해갔다. 나뭇결 무늬가 고왔던 우드륨 장판은 군데군데 기스가 나고, 고르고 골라 좀 사치를 부렸던 벽지는 얼룩이 지고, 그가 선물한 보랏빛 스타치스가 꽂혀있던 꽃병, 하얗게 빛나던 식탁의 다리며 유리, 그와의 결혼식 비디오테잎이 꽂혀 있던 장식장, 야외 촬영 한 것을 확대해서 걸어두었던 액자, 집안의 깨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깨어져 버렸다. 그리고 번번이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흐느낌으로 잠이 드는 그... 그럴 때면 난 그냥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때때로 깨진 유리가 발에 박혀 피가 흐르고 그가 던지는 무언가를 미처 피하지 못해 광대뼈가 화끈거려도 백치처럼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벽에 기대어 깨진 유리조각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것은 돌연이었다.

야, 물!

캔에 든 스포츠 음료를 입안에 흘려 넣어주고 살그머니 가게를 빠져 나와 골목길을 서성인다. 전봇대에 붙은 외등 앞을 지나는데 잠든 아이의 발이 꼼지락거린다. 손을 뒤로 돌려 열 때문에 양말을 벗겨놓은 아이의 맨발을 조물락 조물락 만져준다. 해열제 기운이 떨어져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지 아이의 발이 뜨겁다. 엄마아... 으응... 우리 애기 깼어? 아이는 불러놓고 제 어미 등인 것만 확인하고 다시 잠이 들었는지 얼굴을 등에 찰싹 붙이고 쌔액쌕 숨소리만 가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어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오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자암이 드읍니다.

엄마아...

으응... 우리 애기 안 잤어?

애기가 부쌍해...

어떤 애기?

엄마아...

으응...?

애기 혼자 자면 안데지이...?

그럼 안되지... 걱정하지마. 엄마는 우리 애기 혼자 자게 안 할거야.

가게 내실에서 그가 부르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나는 반대 방향, 중량천 뚝길로 가는 골목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부르는 날이면 나는 엄마가 섬그늘에를 부른다. 잠든 아이를 들쳐업고 동네 뚝길을 서성이면서 많이 취한 그가 어서 잠들기만을 기도하듯 그렇게 자장가를 부른다. 어렸을 때부터 늘 혼자 웅얼거리던 노래, 그 어린 속으로도 왜인지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나던 노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날 엄마가 불러주었다는 자장가. 잠든 아이를 업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를 때면 등으로 전해지던 아이의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뼈와 살의 느낌, 그 가녀린 숨결.

처음 그가 애국가를 부르던 날.

어렸을 때 말야... 한 초등학교 5학년쯤 됐을 때 일거야. 겨울방학이었어.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했던 그 날도 그는 술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또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그 다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엄마가 막내만 데리고 도망을 가신 거야. 아버지는 매일 술만 마시고... 우리보고는 엄마 찾아오라고 매질을 하고... 그래서 엄마를 찾아 이리로 갔어. 사실은 도망을 친거야. 엄마를 만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어. 돼지 저금통을 털어 내 기차표를 사고, 형진이는 3학년이었는데 다행히 체구가 좀 작았어. 그래서 역무원이 물어보면 학교 안 다닌다 그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이리까지 내려간 거야.

이리 시내에서도 30분을 넘게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큰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문전박대를 당했어. 엄마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니 아버지 쫒아오기 전에 어서 돌아가라며 차갑게 문을 닫아 버리던 큰어머니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사실 엄마가 아버지로부터 도망을 친 게 그게 처음이 아니었거든. 어린 조카들을 내칠만큼 아버지가 끔찍했던 건지, 진짜로 독한 맘 먹고 돌아선 엄마가 또 자식들 때문에 발목 잡힐까봐 같이 그렇게 독하게 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어. 설마 그 먼 길을 차비도 없이 니들끼리 왔으랴 싶었겠지.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형진이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 더듬더듬 걸었어. 더 어렸을 때, 그 때도 엄마가 도망쳤을 때였는데 그 큰집에서 몇 달을 지낸 적이 있어서 이리까지 가는 길을 대충은 알고 있었거든. 형진이가, 형 무서워... 하는데, 주위는 어느새 깜깜해져 있드라. 또 얼마쯤 가서 형, 다리 아파... 하는데,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거야. 나도 그랬는데... 나도 무섭고, 춥고,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그랬는데, 난 형이잖아. 빨리 걸어 임마, 하는데 눈물이 나드라.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형진이의 손을 더 세게 잡고 힘차게 애국가를 불렀어. 왜 하필 애국가였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내가 아는 가장 쉽고 가장 긴 노래는 애국가 밖에 없었던 건지.

얼마쯤을 더 갔는데 길옆에 움막처럼 지어놓은 창고 같은 게 있었고 그 안에는 짚단들이 쌓여 있드라. 그걸 깔고... 덮고... 거기서 잤어. 너무 추워서 둘이 꼬옥 끌어안고서 그걸 깔고, 그걸 덮고....

이 대목에서 그는 이미 많이 취해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설움에 취했는지 고개를 떨구고, 아직도 그 때의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듯 몸을 잠깐 부르르 떨 때는 정말로 눈물 방울들이 술잔 위로 떨어졌다.

날이 샌 다음에 그 헛간을 나와 이리역까지 다시 걸었고, 역의 담장을 넘어 서울행 기차를 탔어. 역무원을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내내 가슴을 졸이며 왔는데 다행히 들키진 않았지. 서울역에 내려서 형진이에게 말했어, 형이 뛰면 무조건 뛰어! 출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에 묻어나가다 어이, 하는 소리를 듣고 뛰기 시작했어. 서울역에서 노량진까지 그 눈길을 전속력으로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뛰었어. 그런데 웃긴 건 두 살이나 어린 형진이가 나보다 더 빨랐다는 거야. 하하...

이미 또 해는 졌고, 그렇게 서럽게 집에까지 왔지만 이번엔 또 아버지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꽁꽁 언 손과 발을 구르며 대문 밖을 서성였단다. 골목으로 난 창으로 방안의 동정을 살피며 아버지가 빨리 잠들기만을 기다렸단다. 드디어 아버지가 잠이 들고 살금살금 부엌문을 열었을 때의 그 따뜻함과 안도감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하던 그. 곤로에 불을 붙여 쌀을 끓이고 미처 뜸이 들기도 전에 밥인지 죽인지 쌀인지도 모를 그것을 냄비 밑바닥까지 긁어먹고서 살그머니 방문을 열었을 때, 술안주 삼아 드신 라면 냄비며 몇 병인지도 모르게 쌓여 만 있는 술병들 사이를 헤집고 잠들어 있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달콤했다던 그...

그 날 그는 참 오랜만에 얌전하게 잠이 들었다.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그대로 모로 눕더니 애국가를 부르며 조금 어깨를 들썩이다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늘어진 테잎처럼 천천히, 물기가 꽈악 배인 저음으로... 술상을 치우고 베개를 베어주고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고는 헝클어진 그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네 집으로 갔다. 자고 있는 수희를 깨워 같이 장롱 뒤의 것들을 들어내어 옥상으로 옮겼다. 종이를 태우면 왜 그렇게 연기가 나는 걸까? 시커먼 밤에 잿빛 연기..., 연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태웠다. 불빛 때문에 거기에 쓰인 것들이 읽혔다. 아주 조금씩 읽혔다.

그렇게 내 24년은 타버렸고 그 날 내 안의 내 아이는 첫 발길질을 했다.

9시 30분, 늘 만원인 소아과 병원 대기실. 공기가 좋지 않은 가게에서 자란 탓인지, 밤이면 에미 등에 업혀 서성인 탓인지 아이는 늘 감기를 달고 산다. 아이가 아프면 난 멍해진다. 바른 정신으로 아이를 지켜주어야 하거늘 난 번번이 멍해지고 만다. 침체될 대로 침체된, 그러나 무척이나 담담한 기분으로 아일 끌어안고, 업고 병원엘 간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수다에 열중해 있는 여자들, 보채는 아일 달래는 엄마들. 아인 보채지도 않고, 난 그런 아일 꼭 끌어안고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다.

아이는 예상했던 대로 장염에 폐렴이다. 감기가 오래되다 보니 합병증이 온 것이라고, 유아기의 아이들에게는 흔한 일이긴 하지만 두 가지가 겹치다 보니 위험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설사가 멈출 때까지는 금식을 해야 하고 원인균을 알아내어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입원을 권유한다. 만약, 세균성일 경우엔 그 위험도가 더 높아진다는 말을 덧붙인다. 담당의는 <위험>이라는 말을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 배정을 기다리며 수희에게 전화를 한다.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를 부탁하고 가게에는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에 시어머님이 인삼을 달여오셨었다. 그 때도 아이는 미열이 조금 있었고 내가 알기로 인삼과 열은 상극이었다.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님이 먹여보라 하셨다 하니 어머니도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가게에 나가 있는 사이에 기어이 먹이셨다 했다. 그날 밤, 아이는 열 경기로 눈이 하얗게 뒤집어 졌고, 온몸이 뒤틀렸다. 다행히 금방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은 무시된 채 아침이 밝기도 전에 다시 아이를 업고 나와야만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사를 불신하는 아버님에게 세뇌되어 있는 그. 아이는 예방 주사 한번 제대로 접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제 분명히 열에 들뜬 아이를 들쳐업고 나가 부탁했었다. 이제는 정말 안되겠다고, 오늘만은 제발 마시지 말아달라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어 달라고...

병실이 없어 임시로 들어간 2인용 병실의 다른 쪽 침대가 비어 있다. 별다른 고생 않고 링거를 꽂는데 성공한 아이의 손에는 심하게 움직일 수 없도록 손바닥에 댄 작은 종이판지가 넓은 반창고로 고정되어 있다. 마치 팔목 부상으로 깁스를 한 것 같은 제 손을 아이는 제법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여는데 벌써 바람이 차다. 간호사실에서 담요와 가습기와 유아용 환자복을 받아올 때까지도 아이는 마냥 심각하기만 하다. 아이의 그 심각하고 골똘한 표정에 풋~ 작은 웃음이 터진다.

“우리 아기 아프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이따가 엄마가 싸인펜 사다가 손에 이쁜 그림 그려줄게.” 　

정형외과 환자들이 깁스를 한 팔이나 다리 등에 낙서들을 하는 것이 생각나 아이한테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 쳐다보고만 만다.

아직 앳된 간호사, 침대맡에 금식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링거를 들여다보며 주사양을 조절하고 혈압을 잰다.

“참, 보호자분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신청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는 저녁식사 시간의 소란함이 잦아들 무렵에야 수희가 챙겨주었을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병실로 들어선다. 아이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며 아빠를 반기고, 제 손을 무슨 훈장인양 자랑스럽게 내민다. 그는 여전히 이 쪽으로는 눈을 안 마주치며 무릎에 앉힌 아이의 손을 호호 불어주고는 TV 리모콘부터 찾아 든다.

“가게는 당분간 당신이 봐줘야 할 거 같아. 그리고 병원비도 많이 나올 거야”. 　

어쩌면 당연한 말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법 비장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TV를 향해 등을 돌린 채 말없이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다. 

가게는 어찌하고 온 것일까. 아까 다녀간 수희와 교대를 하고 나온 것일까. 오늘도 하루종일 가게문을 닫아걸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있었나? 저녁은 먹었을까?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의 어디가 얼마나 아픈 지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표현 할 수 있는 미안함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내 지난 시간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그가 보고 연상하게 될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음에도 그의 괴로움은 나날이 커벼만 갔다. 작은 일기장 하나로 인한 첫 직장의 실패를 시작으로 그는 어떤 일을 해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의 전공이었던 프로그래밍을 해보겠다고 들어갔던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는 출근 첫날 축하주로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나지 못했고, 중저가 의류를 제작하여 일본으로 수출하던 작은 무역 회사는 수희가 예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나라고 착각하여 시작한 것이 또 며칠을 가느라 그만두어야 했다. 임시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던 택시회사는 더더군다나 술과는 인연이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는 곳이었고, 뱃속의 아이가 자라 8개월이 되었을 무렵, 자판기 사업을 하던 친구와 뜬금없이 시작한 생선장사를 때려치우며 드러누운 것도 꼭 일주일 만이었다.

그래도 도매 생선을 받으러 할부로 구입한 작은 트럭을 몰고 나갈 때면 새벽시장을 구경하겠다며 부른 배를 안고 그를 따라 나서곤 했었다. 이렇게 살아들 가는구나, 행복에 겨워 운전대를 잡은 그의 옆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팔았다는 전대를 받아 들 때는 추위에 꽁꽁 언 그가 너무 가여워 콧날이 시큰거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얼음에 재운 다섯 상자의 꽁치가 그냥 트럭 위에서 그처럼 널부러져 남았고, 나는 혼자 생선 상자를 집안으로 옮겼다. 목욕탕에 조그마한 프라스틱 의자를 놓고 앉아 배를 따서 내장을 발라내고, 비늘을 벗기고 지느러미를 잘라냈다. 임신 8개월의 배로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다섯 상자의 생선을 모두 손질했다.  그리고 수희에게 전화를 했다.

“꽁치 가지러 와.”　

나에겐 이미 꽁치를 나누어 줄 친구도 없었다.

그에게 아이를 맡기고 싸인펜을 핑계삼아 밖으로 나온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는 환자와 보호자들로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다. 7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고 비상구 문을 여는데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가 황급히 등뒤로 무언가를 감춘다. 감춘 등뒤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대학 안에 있는 병원의 진입로 쪽이 아닌 반대편 교정을 가로지르는 길을 택해 걷는다. 어둠이 내린 교정이 꽤 호젓하다. 오렌지 빛 가로등에 새삼 가슴까지 설레인다. 길가에서 조금 들어간 숲 속의 벤치에 앉아 작은 손가방의 안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는데 그 안에 같이 들은 것들이 만져진다. 이제 네 알이 남은 수면제와 검은 필름통에 담긴 파라퀘트 원액. 나는 아이에게 감사해야 하나. 아이는 아파서 내게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일까.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고 길게... 그리고 하늘을 향해 피어 올리는 잿빛 연기.      

다시 일기를 쓰고 싶은 밤이 있다. 그 텅 빈 노트를 대할 때의 설레임, 손가락 끝에 감도는 펜의 감촉, 머리 속을 떠도는 무수한 상념들이 깨알같이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려갈 때면 어떤 덩어리가 저 밑바닥부터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던 그 벅찬 시간들. 많은 날들이 지난 뒤에 다시 읽다 보면 거기엔 또 다른 내가 있다.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먹먹하게 그리운 무엇들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 그리움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대상, 혹은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그냥 막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 혹은 기쁨이 될 수도 있다. 그 글을 쓸 당시의 생각과 느낌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거기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

책을 보지 않아도, 노트를 사지 않아도, 비가 내리지 않아도 미치도록 무언가가 쓰고 싶어지는 날, 나는 영화를 본다. 영화에 몰두해 있는 동안엔 내가 없다.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스치는 영상 속에 파묻혀 나는 사라지고 그들만이 남는다. 여기는 사라지고 그 곳만이 남는다.

“언니, 사진관 집 남자 죽었대.”　

금식 이틀째 기침은 좀 멎은 듯하나 여전히 묽은 변을 본다. 다행히 세균성은 아니라 한다. 열흘 정도만 치료하면 퇴원하여 통원 치료를 해도 된다고 한다. 오자마자 무얼 먹었느냐고 묻는 수희의 물음에 고개만 젓는다. 그럴 줄 알았다며 은박지에 싼 김밥 한 덩이를 내밀고, 아이의 눈과 코를 피해 창가에 서서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지만 잘 삼켜지질 않는다. 아이가 남긴 젖병의 맑은 보리차를 마저 마셔버리고 나머지는 다시 싸서 창틀에 두고 돌아서는데 수희가 말한다.

사.진.관.집. 남.자.가. 죽.었.대.

내게는 분명히 그렇게 들린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하는 듯 그렇게 끊어져서 들린다. 일순 아이의 모습이, 수희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이 늘어진 필름처럼 느리게 돌아간다. 현기증이 인다. 

“글루미선데이는?“　

“글루미선데이?”　

“빌려갔었어. 일주일 전에.” 　

“언닌, 사람이 죽었다는데 비디오가 문제야?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했다나봐. 그러고 보    니 그거 빌려간 날 인가보다. 어제 발견을 했는데, 죽은 지는 일주일쯤 됐다고 하드라구.    정말 너무 끔찍하지 않아? 안에 사람이 죽어있는지도 모르고 그 앞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으니...”　

수희는 정말로 끔찍하다는 듯 어깨를 두어번 떨며 몸서리까지 친다.

“근데 더 끔찍한 건, 그 아저씨 10년 전에 자기 부인을 죽인 사람이라는 거야. 여자가 바람이 났었다나 봐. 자기 부인을 죽이고도 감쪽같이 빠져나갔는데 이번에 자살하면서 밝혀졌대. 일기장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야. 근데 어떻게 자기 부인을 죽이고도 10년씩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살았을까? 하긴, 그 아저씨 어쩐지 좀 암울하기는 했어. 그치 응? 언니 어디가?”　

“젖병 소독하러.”　

아직도 할말이 많은 듯 입을 종긋거리는 수희. 그러나 나는 아이가 사용했던 젖병을 모아둔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병실문을 연다. 시간이 벌써 이리 되었는지 복도의 불은 모두 꺼져 어둡고 간호사 데스크의 하얀 불빛만이 차갑다. 세면장 앞의 공동주방에서 긴 젖병 전용 솔에 세제를 묻혀 젖병들을 닦는다. 흐르는 물에 오랫동안 헹구어낸 젖병에 정수기 물을 삼분의 일쯤 채워 넣고 전자레인지의 열림 단추를 누른다. 팅, 문이 열리는 맑은 소리가 적막한 실내에 퍼진다. 조리시간 십 분에 다이얼을 맞추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위잉, 하고 전자레인지의 유리판이 돌아간다. 그 위의 젖병들이 돌아간다. 물이 서서히 끓어오른다. 팔짱을 끼고 서서 그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을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응급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날 아침, 나는 그에게 이제 그만 우리를 놓아달라고 말했었다. 그냥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기만 하던 그는 잠시 후 집을 나갔고, 언제나처럼 가게 문을 닫을 시간에 맞추어 삼분의 이쯤 내려진 셔터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잘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잘하겠다며 차가운 가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흘렸다. 나는 철제 의자에 오도마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도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맑은 정신으로는 단 한마디의 말도 못하면서 그렇게 취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집요하게 설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설득의 말들은 그가 취했다는 증거로 거의 앞뒤가 맞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짓누른 듯한 상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어떤 끔찍한 물체가 닿은 것처럼 온 몸의 솜털들이 돋았고 얼굴은 싸아하니 핏기가 가셨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는 것으로 그의 손을 털어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뒷머리로 퍽 하고 손이 날아왔다.

야이 씨팔, 니가 일어나면 어쩔건데.

또 날아왔다.

씨팔, 이 개쌍년아. 뭐? 이혼을 해?

퍽.

웃기고 자빠졌네.

퍽퍽퍽.

아나 해봐라 이 년아, 아나 해봐.

퍽퍽퍽퍽.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이 풀어지고 흩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한번 손을 올리기 시작하면 자신이 지금 무엇을 왜 때리고 있는지는 잊는 모양이다. 달리는 모든 것에는 가속이 붙는다. 숨이 가빠지고 가속이 붙으면서 이성을 잃는다. 뒷머리가 얼굴이 되고 어깨가 되고 등이 되고 가슴이 되고 다리가 되고 배가 된다. 손바닥은 주먹이 되고 발이 되고 비디오 테잎이 되고 전화기가 되고 컴퓨터 키보드가 되고 탁상용 철제 책꽂이가 된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지만 고통과 공포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자칫 중심을 잃어 쓰러져 버리면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그 배가 된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널부러져 철제 의자를 들고 찍어 내리려는 그 눈빛과 마주쳤을 때의 공포, 출구이면서도 출구가 아닌, 입구이면서도 입구가 아닌 내려진 셔터의 절망. 영혼이라도 팔리라. 누군가가 저 셔터 문을 밀어 올리고 뛰어들어준다면, 누군가가 이제 그만 이 상황을 멈춰준다면... 나는 그에게 영혼이라도 팔리라. 그러나 언제나 그와, 나 그리고 벽, 벽, 벽....

씨팔, 다 죽어버리면 되.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그는 또 칼을 찾아 내실로 뛰어들었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셔터를 밀어 올렸다. 어둠, 어둠 속에서 불빛을 향해 뛰었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도와주세요, 저 좀 숨겨주세요. 불빛 속으로 뛰어들며 낮게 애원했다. 불빛 속의 남자는 순간 당황한 듯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방 사태를 파악한 듯 재빨리 불을 끄고 문을 닫아걸었다. 두터운 커튼을 치고 커튼 틈새로 밖을 잠시 살펴보던 남자가 돌아섰다.

헝클어진 머리칼, 맨발에 젖은 몸, 어둠 속에서 촬영용 조명 뒤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떨고 있었다. 그가 금방이라도 칼을 들고 뛰어들 것만 같았다. 다 같이 죽으면 되. 진짜로 그 퍼렇게 날이 선 칼날로 온 몸 구석구석을 난도질 할 것만 같았다. 그가 칼을 든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포에는 면역이 없는가. 오히려 그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번번이 이번에는 진짜로 찌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이러지마. 내가 다 잘못했다고. 제발, 제발 이러지마.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빌었다. 빌고 또 빌었다. 나는 무엇을 빌었던 걸까.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을 가진 것, 그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상처받은 어린 날을 함께 해 줄 수 없었던 것.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아 그의 어깨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운 것. 

남자는 어둠 속에서 작은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 어둠에 익숙한 듯 그대로 포트에 물을 올렸다. 여전히 촬영용 조명 뒤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는 나에게 그가 내민 것은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코코아였다.

“뜨겁고 달콤한 것을 마시면 기분이 좀 나아져요.”

나는 춥다. 마음도 몸도 엉망인 채로 나는 그래서 더 춥다. 이런 내게 누군가가 담요를 주고, 따뜻한 코코아를 준다. 아, 내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던가.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 일기장을 발견하기 전의 시간... 있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시간이 흘렀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혼자 쇼파에 몸을 묻고 앉아 있었고, 내 코코아는 이미 반 넘어 식어 있었다.

“그거... 저 좀 나눠주세요.”

“그거?”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에 얘기했던...”　

“......”

“걱정하지 말아요. 난 아무것도 끝내지 못해요. 그럴 용기가 없어요.

그냥 가지고 있으려고요. 그걸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 같아서.

적어도...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을 거 같아서... 당신이 그런 것처럼...“

그는 그러고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 쪽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병 하나를 들고 나왔다. 카운터 책상 위의 작은 조명 하나를 켜고 서랍에서 검은 필름 통을 꺼내 병에 들은 것을 조심스럽게 덜어 넣었다. 극소량만으로도 치명적이라는 제초제 파라퀘트.

새벽녘에야 수희는 돌아가고 나는 오랫동안 창가에 서서 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본다. 어쩐지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은 남의 창, 남의 불빛.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들 가고 있을까. 저들은 이 시각에 왜 깨어있는 걸까. 새벽까지 공부하는 수험생 아들을 위해 새벽간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불빛일까, 아픈 아내를 위해 약을 찾아 들고 투명한 유리잔에 물을 따르는 남편의 불빛일까. 새벽시장엘 나가기 위해 옷을 꿰어 입는 가장의 불빛일까. 젖은 나뭇잎이 흔들리고 차가운 가로등 불빛 사이로 간간이 포도 위의 물줄기를 가르며 차들은 달린다. 그들은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자던 아이가 링거를 꽂은 손이 불편한지 손을 뻗어 올리고 칭얼거린다.

엄마아... 엄마아....  

잠결에 눈도 뜨지 못하고 에미를 찾는다.

환자용 침대의 아이 옆에 누워 꼬옥 끌어안아준다. 엄마 여기 있어. 아이는 잠결에도 제 어미 냄새를 맡는 듯 가슴에 코를 묻고 링거를 꽂은 손을 겨드랑이 밑으로 파 넣으며 꼬옥 끌어안아 온다. 이 연약한 뼈와 살의 느낌. 아이는 금방 다시 잠이 든다. 아이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내려와 매트리스 밑으로 손을 넣어 더듬더듬 노트를 찾는다. 12가지 색 싸인펜를 사러 나갔던 날 이 노트가 눈에 띄었다. 광택이 나지 않는 까만 표지가 너무 예뻤다. 예전에 일기장으로 쓰던 것들과 비슷한 것이었다.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서 바라만 보다가 결국은 집어들었다.

머리맡의 작은 등을 켜고 베개를 가슴에 끼고 엎드려 노트의 표지를 넘긴다. 하얀 백지 위의 푸른 줄무늬. 그 안에 끼워 놓은 펜을 손에 쥐어본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그 뿌듯한 감촉....

그의 손에 죽기 전에 내가 나를 죽이리라 했었다. 그렇게 그를 배신해 주리라 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는 내게 <나를 좀 놓아달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파라퀘트를 마시면 내일쯤 아니면 모레쯤 치킨집 아줌마는 그 집 아저씨에게 말하겠지. 비디오집 애기 엄마가 사진관 집 남자랑 바람이 났었대. 그래서 김사장이 버릇 고치려고 몇 대 쥐어박았는데 둘이서 농약을 나눠 마시고 동반자살을 해버렸다는 거야. 세상에 얼마나 독하게 바람이 나면 그 어린 새끼를 두고 죽어버릴까?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쯧쯧... 이제 김사장이랑 애기만 불쌍하게 됐지 뭐...

다시 일기를 쓴다. 아직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그를 떠날 것인가. 하지만 어느 쪽이든 별로 억울할 것은 없다. 다만 잠시를 살더라도 내 느낌 그대로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뿐이다.

[김정철]

사실 우리 집사람은 작가지망생으로 직장 다니면서 밤에는 문학소녀로 글을 쓴다. 난 별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열심히 몇작품을 신문사에 단편문학소설을 열심히 응모한다.... 그래서 집사람 양해도 없이 글을 올려본다.

[정희]

그래도 아내의 영원한 팬이지? 덕분에 나도 너의 아내글 잘읽었어. 다음에도 기회를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