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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 글 그리기
유태리
간디. 나는 간디인이다. 정확히는 간디인이 되기 위해 간디학교를 다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간디인이 되기 위해서 간디학교에 들어온 것은 아니고, 공부와 관계에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내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 찾은 쉼터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쉬러 왔다고 해도 시간은 지나가니 할 건 해야 하고, 그렇게 나에겐 이 학교에 나를 담고 무기력해진 몸을 풀어야 하는 가벼운 과제가 생겼다. 그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한 지 한 학기가 지난 지금 현재, 나는 성공적으로 과제를 이행하고 있다. 여기저기 관계를 형성하고, 친구와 교류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전에는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보았다면, 이제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관찰하지만 정작 내가 가진 문제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학기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으니 다음 학기 목표로는 나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를 깊게 형성하기로 잡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몰입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알아가면서 주변인과의 관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나를 충분히 탐구한 후에 두 가지를 동시에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겠다.
나는 집 앞 거리에서 걷다 보면 보이는 교복 입은 중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3살부터 7살까지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드나들며 살아왔지만 8살 1학년, 초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입학하게 되면서 여태까지 같이 지내온 친구들과 헤어졌다. 그때의 어린 나는 그저 친구와 같은 학교를 가고 싶었던 마음에 뾰로통했지만 그 발도르프 학교를 1년 정도 다니자 차츰 자유로운 그 공간과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교육도 없이 그렇게 5년 정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낸 후 5학년 여름방학에 엄마가 나를 그 학교에서 빼내었다. 나온 그 직후에는 전과 같이 엄마에게 불심을 갖기도 하고 정말 온갖 짜증이 다 들었지만 또 한 학기동안 집에서 생활해보니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그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통제당하고 있었는지. 통제라는 말을 쓰니 조금 이질감이 들지만, 그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활동과 경험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사교육을 금지하고 오직 그 학교에서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교육 방식은 아이들을 밝은 예술가로써 키워낼 수는 있지만 항상 어딘가 집착하게 하고 문제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조금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여느 대한민국 학생들과 같이 집 앞 일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대안교육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아무리 해도 일반학교 교육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생활과 공부 방식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의 문화라던가 하는 것들이 뼈에 새겨져 있다 보니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꾸만 고개를 드는 묘한 이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냥 그런대로 6학년 2학기 중반까지 대안과 공교육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지내다가 학교를 나와 버렸다. 그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바로 홈스쿨링에 돌입했고, 나는 학교에 소속된 채 그대로 졸업되었다. 그 뒤 일 년 간 홈스쿨링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진도가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뒤쳐진 공부를 하겠다고 책만 펼쳐놓은 채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일 년은 그냥 쭉 지나가 버렸고, 23년 1월, 태국으로 별꼴학교가 주최한 캠프를 다녀온 후 다시 학교를 다니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엄마는 홈스쿨링을 조금만 더 진행하면 조짐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변에 좋은 선생님도 많았기에 내가 기숙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간 일 년 동안 친구도 없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엄마와 있어도 마음을 편히 놓지 못하는 내가 기숙학교에 가서 마음을 낼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다. 천천히 알아갈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 있는 기숙학교를 가고 싶었고, 공부를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일반 기숙학교를 원했다. 그러나 일 년 전부터 원서를 냈던 내 희망학교는 나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고, 그리하여 대안 기숙학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괜찮아 보이는 학교에 바로 방문했다. 조금 시골에 묻혀 있는 학교에 찾아가 보았다. 어느 정도 학교가 돌아가는 구조를 들어 보니 내가 이전에 다니던 대안학교 같지는 않아 보였고, 편입이 안 돼 입학을 해야 했던 터라 급하게 결정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계속해서 그 학교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었다. 그걸 들을 틈은 없었지만 이제 여유가 생긴 나는 그 장단점에 대해서 조금 깊게 생각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얼렁뚱땅 입학해 보니 첫 일주일은 고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고 입학식에서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르는 재학생들을 보며 이상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상함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한 달을 정신없이 지내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 친한 친구들도 생기고 처음 지낸 일주일보다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한두 달 지내보니 그 일주일간에는 마음은 편했지만 몸은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긴장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하는 생활들도 몸에 배어 주말에 집에 가면 허전하고 짜증이 드는 것만 보아도 기숙사를 제 2의 집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알리는 것이리라. 가끔 갈등이 생기거나 답답한 상황에 놓일 때 말고는 한 살 차이가 난다는 것도 평소에 잊고 지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관계라는 그물은 쳐졌다. 이제 그물의 간격에 격차가 나지 않게 유지하는 것만 하면 된다. 굳이 더 깊이 파고들어갈 필요 없이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왜냐? 유지만 제대로 하다 보면 가까워 질 사람은 저절로 가까워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그런대로 지내게 되니까. 이래서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비 두면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고 자꾸 발버둥 치며 바꾸려고 하면 나타나는 것이 악연이니까 흘러가게 두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니까 우리가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발버둥은 때로 인생선의 굴곡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 굴곡은 우리를 대폭 성장시킨다. 그 굴곡들을 우리는 때로 못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혼자의 시선에서는 해결선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사실 나에 관한 모든 것의 대다수는 내가 바뀌기만 하면 해결할 수가 있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되뇌는 그 ‘스스로’란 단어 하나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 어려운 일들을 풀고 해쳐나가려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학교이다. 학교 외에도 다른 모임이나 단체도 그런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학교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학교는 우리가 처음 접한 삶을 함께 배우는 공동체인 것이고 그것들을 통해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다.
이렇게 목표와 기준이 뚜렷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평불만을 찾아내는 나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한 가지만 알지 말고 그 주변을 조금 둘러보라고.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을 돌아보았더니 나와 같이 에세이를 쓰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그렇다. 친구다. 감정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에세이 쓰는 것이 힘들다고 서로 맞장구치면 불쾌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불어난다. 당시의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지만 친구라는 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로 인해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또 하나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엮어가다 보면 만들어지는 것이 친구이다. 친구로 시작해서 친구로 흘러가고, 친구로 끝난다. 그러니 친구는 그냥 친구인 것이다. 딱히 그렇게 큰 존재는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나 자신이고, 친구는 그 자신과 공유하는 또 다른 나일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큰 존재는 아닌 친구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나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다. 어떤 방법으로든 미처 발견하지 못한 틈새를 툭 치고 들어와서는 말을 건넨다. 친구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말을 건네서 나를 깨우는 친구도 있고 말없이 침묵으로만 대화하는 친구도 있다. 사람들은 친구라는 것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친구가 어떤 친구와 어떻게 다른지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 홈스쿨링을 시작하기 전까진 친구라는 것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홈스쿨링을 하며 매일 만났던 친구들만 만나다 보니 더 알아갈 구석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서로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제 서로에게 더 이상 새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제 이 학교에 와서 새롭게 사귄 친구가 거의 스무 명이나 되니 친구 사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이것으로 기말 에세이를 꽉 채우게 되었으니 나는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친구로 글을 그림으로써 한 학기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내가 친구를 갈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작년 1년간의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홈스쿨링을 하는 동안 공부에 대해 흥미를 잃어가는 동시에 ‘친구’라는 존재의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던 홈스쿨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친구가 필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내 결과물을 나눌 상대가 필요했다. 그때 가족은 그 상대가 되어줄 수 없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전에 언급한 대로 엄마는 홈스쿨링을 조금만 더 진행시킨다면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나는 그 시간을 참을 인내심도 바닥났을 뿐더러 똑같이 비슷한 상태가 되었을 엄마도 이제 엄마의 공부에 더 집중하게 할 수 있도록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들어오게 된 금산간디학교에서는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나갈 수 있게 구성된 환경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친해지고 미운 정 고운 정이 고루고루 생기게 되는 학교였다. 나는 그래서 학교에 들어온 지 3주 만에 공부란 공부는 다 때려치우고(어차피 이전에도 안했었지만) 그냥 지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나, 집간디 주말에 집에 갔을 때 나는 가족과 조금씩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얼마 만나지 못하니까 갈 때마다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공간을 계속 지속적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생긴 참사였다. 어쨌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지 못할 것 같으니 일단 일 년 동안 함께 지냈던 가족들은 조금 뒤로 밀어놓고, 새로운 환경에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전보다 관계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씩 날아오는 엄마의 편지 덕분에 긴장이 누그러질 때도 생겼다.
한 가지를 잡으려니 다른 한 가지를 놓치게 되는 인생을 반복하다 보니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중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며 1년간 홈스쿨링을 진행할 때 가족들 얼굴을 매일 보는 것이 얼마나 지겨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반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나면 간디학교 학생들조차 지겨워질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또 지나면 주변에서 서로의 빈틈을 메꾸어 주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다. 근 5년 동안 꽤 많은 가족들을 떠나보내면서 딱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 장례식에 오셨던 친구 어머님이 이 경험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면 된다고 하신 말씀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항상 곁을 지키던 사람들과 갑자기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훅 실감이 나게 했고 주변에 머물러 주는 존재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내 현실이었다. 계속 헤어지는 사람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비뚤어진 일상이었던 것이다.
한 학기라는 금방 지나갔던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많은 생각을 한 것이지만 작년 일 년 동안 성장한 것에 비하면 이번 한 학기동안 발전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삼 년 뒤 졸업하는 미래의 나는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것을 알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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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주 글을 쓰고 있어서 글을 잘 쓰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멋진 글이 나올 줄은 몰랐어. 상 탄거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