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트래킹을 멈추지 않는 구도(求道)의 시인
- 단국대학교 총장 김수복
글 이원오(시인, 용인문학 편집인)
김수복 시인을 뵙는 날은 유난히 맑았다. 법화산 자락 신도시 같은 느낌의 깔끔한 죽전캠퍼스에서 김 시인을 뵈었다. 이곳에서 2년간 공부를 했던 필자는 인터뷰를 기회로 주경야독했던 옛 추억을 되살리는 행운을 가졌다. 학교 본관 총장실에서 만난 김 시인은 ‘총장’이라는 감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막걸리같이 투박하고 걸쭉한 모습이었다. 특히, 부리부리하면서도 선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의례적인 인사를 마치자마자 대뜸 시창작에 대해 직격해 본다.
# 시창작이 잘되지 않을 때 극복 방법은 무엇인지요?
- 무조건 걷습니다. 새로운 사물을 만나 배우고, 새롭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만상(萬象)은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듯이 모든 우주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합니다. 지구도 하루 24시간 동안 한 바퀴를 돕니다.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엄청나게 변합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전환하려 노력하면 예기치 않는 새로운 영감과 이미지가 떠오르고, 또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메모해 놨다가 의미와 생각, 의식과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를 투영시키면 작품이 됩니다. 그것을 페이스북 등에 간략히 담아놓거나 메모로 모아놨다가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걸어서 작품화합니다. 칸트의 철학도 산책에서 비롯되었고 하지요. 2시간 동안 똑같은 코스를 걸어도 자연의 표정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시 쓰는 주체화를 하면 작품이 됩니다.
얼마 전 김수복 시인은 열세 번째 시집으로 ‘고요공장’을 냈다. 2018년 ‘슬픔이 환해지다’(2018) 이후 4년 만이다. 작품 상당수는 양재천을 산책하고 히말라야 설산이 바라보이는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건졌다. 시적 트래킹으로 얻어낸 산물이다. 시인은 “걸어진 굽잇길을 돌아보니 고백할 길이 늘어서 있다. 이 중턱만큼의 동행도 행복하다”라고 고백한다. 40여 성상을 지켜낸 교수로서의 정년을 앞두고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고자 하는 의미일 것이다. 시인은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 고여있지 않기 위해 이 시집을 냈다고 부연한다. 시인이 얘기하는 ‘동행’은 아마 시와 함께해 온 동행이어서 행복했을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하게 시를 탐구하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해 온 각고의 노력이 느껴진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절정이다
웃통을 벗고 올라가는 막내가 된 단풍숲
더 기어 올라가
풍요한 가슴 위에 물들어 간다
-「중턱」 전문
이번 시집은 이제까지의 삶에 대한 독백과 고해(告解)를 통한 성찰의 모습을 담았다. 가장 짧은 형식의 언어로 압축과 긴장의 미학을 보여준다. 비움과 여백의 맛이 있어 깊게 우려낸 명차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달이 자고 나갔다/ 박꽃이 피고 질 때까지/ 한평생을 살았다(‘달방’)고 고백한다. 배는 가고/ 빈 그만 남아 있다(‘피안’)고 자문하며, 가을바람이 숨이 멎었나/ 적막은 선뜻하다/ 어디쯤 그의 배는 가고 있을까(‘이슬’ 전문)라며 스스로 답변한다. 그 질문과 답은 ‘저 언덕(彼岸)’이라는 이상향과 구원을 추구해 온 시적 탐구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과 탐구만으로 이 시집은 끝나지 않는다.
오늘은 날이 쾌청하여
우리 남해의 먼동을 들쳐서 업고
압록강 넘어 요동으로 가서
우리 노을이나 한 짐 지고 올까나
-「한반도」 전문
단순한 서정시만으로 그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시에 담고, 통일이라는 시대의 담론을 담담히 표출해 낸다. 그것은 두메산골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관통해 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제기해온 물음이자, 새로운 존재의 자유로 나아가는 출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시인은 1953년 10월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나 외가인 산청군 금서면 신아리에서 아동기를 보냈다. 대구로 옮긴 청소년기야말로 문학에 눈을 뜨게 된 삶의 전환점이었다. 대륜중 2학년 때 도서관에서 한국문학 전집을 독파하던 중 오영수 작가의 ‘메아리’를 읽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소설의 무대가 소년 시절 땔감을 구하러 오르내리던 필봉산 화전 터로 유년의 장소가 소설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문학전집에 푹 빠져 지냈고, 대륜고로 진학한 이후 문예반장, 학생회장, ‘회귀선’(대구 소재 연합동인) 회장 등 문청으로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고향인 산청의 천왕봉 왕산 자락에서 시를 구상하였고, 이 중에서 ‘겨울 숲에서’, ‘청동그릇’, ‘저물 무렵’ 등 5편의 시를 응모하여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1975년 3월의 일이다. 한겨울 시창작에 몰두하고 화개장터 금서우체국에서 투고했던 열망이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등단 후에 시인은 장충식 총장의 따뜻한 배려로 행정학과에서 국문학과로 전과를 하고 이후 특별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시인의 단국대 재학 시절은 ‘단대신문’ 1학년 수습기자로 시작해 기자, 편집장으로, 졸업 후에는 편집 주임, 편집국장으로, 교수 부임 후에는 주간, 편집인으로, 지금은 총장으로 발행인으로 재직 중이니 무려 48년을 함께 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1980년 ‘윤동주 연구’로 석사학위를, 1990년 김소월과 윤동주 시를 다룬 ‘한국 현대시의 상징유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동주에 관한 선행 연구는 거의 없었기에 선구적인 연구자였던 셈이다. 이후 윤동주의 삶과 시를 다룬 평전 ‘어두운 시대의 시인의 길’(1984),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1988), ‘별의 노래’(1995) 등을 발간하였고,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들에 대한 대(對)시집 ‘밤하늘이 시를 쓰다’(2017)로까지 이어진다.
# 앞으로 어떤 시집을 내고 싶은지요?
- 구약성서 시편은 총 150편인데 상당수가 다윗 왕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해하며 기도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평화가 존중되고 절대적인 가치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이 세상은 회개의 정신이 사회 속에 없는 실정입니다. 회개하는 자세와 구원, 참회로 가는 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런 정신이 없어지고, 참담해져서 이를 회복하고 구현하기 위해서 시집을 내려고 합니다. ‘25년 3월이면 등단 50년인데 기념으로 성경 시편에 따른 대(對)시집입니다. 윤동주 대시집을 냈는데 시편 대시집인 것이지요.
김 시인은 1985년 단국대 교수로 부임한 후 천안캠퍼스 교무처장, 예술대학장, 천안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예창작회장, 한국시인협회 수석부회장을 지냈고, 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총장 임기는 2019년 8월 26일부터 4년이다.
# 교수로 퇴직을 준비하시다가 총장으로 취임하여 생각이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총장직은 저에게 보이지 않는, 뭔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도로서 좋은 기회입니다. 대학도 기본적인 삶의 화해와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아야 하는데 소신 있게 삶의 새로운 시도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대학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고 소통할 수 있는 역동적인 조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합니다. 총장이란 직책이 대학의 작은 바퀴로서 직업적인 윤리를 지향하도록 바퀴가 굴러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총장은 행정적인 판단과 정책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면 대학 구성원들의 중론을 집약하여 이 시대가 추구하는 대학의 방향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것에 집중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방향을 잘 잡아 이를 실행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려움은 사명감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시인은 한국문학의 외연을 개척한 연구자이자 기획자로도 명성이 있다. 남북한 문화예술의 소통과 융합 방안 연구는 물론 한국연구재단에서 펀딩을 해 한국문학 공간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실용화 방안을 연구했다. 2000년에는 단국대에 문예창작과를 창설했고 다음 해 한국문예창작학회를 설립해 문예 창작의 학문적 범주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켰다. 국제적 네트워크도 활발하게 조성해 국제문예창작센터를 설립했고 세계작가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 대학에서 문창과가 없어지고 있는데 시인으로서 바라보는 대학은 어떻습니까?
- 근간 인문학이 힘들다거나 위축되거나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문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기회라고 봅니다. 크게 보면 사회가 산업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산업사회는 자동차 등 공장 위주, 공급자 위주였지요. 반면, 지금 사회는 바뀌어 아마존이나 플랫폼 등 디지털 사회로서 수요자에게 수요를 어떻게 제공하느냐,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사회로 변화했으며, 인터넷으로 인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인문학은 이러한 시대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은 역사, 정치, 경제적인 배제적인 조직들을 콘텐츠로 만드는 것입니다. 콘텐츠란 측면에서 볼 때 인문학은 그런 분야의 발전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학문적인 블루오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기회라는 학문적인 운동이 일어나려면 인문학도 변화해야 합니다. 즉,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시와 소설도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지금까지 13권의 시집을 내셨으며, 이 중에는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도 있습니다만.
- 네, 저의 영시 번역 시선집으로 Anthony 수사가 번역한 Beating on Iron이 2016년 미국 Green Integer 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해외 문학 소개 출판사인 베르붐(VERBUM)이 하늘우체국(풀꽃문학상 수상시집)을 스페인어로 번역했는데 정지용 시인의 시집 향수 등을 번역한 출판사입니다. 올해 서정시학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글과 영문이 함께 있는 시집을 번역하여 출판할 예정입니다. 그만큼 외국에서 한국 시에 관심이 많아지고, 판도가 변화되고 있습니다. 헝가리 국립대학이 단국대와 자매대학인데 한국어 전공자가 200명일 정도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전공자가 늘고 있습니다. 올해 유럽 3대 대학 중 하나인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에
서 국민 시인인 안토니오 콜레나스 시인과 특별 토크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럽대학에서 한국어가 각광을 받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 단국대 죽전캠퍼스에는 문창과 대학원이 개설되어 있는데 총장님이 생각하시는 용인과 지역 문학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 대학은 지역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단국대학교는 용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 정신 유산, 반도체 등에 대해 컨소시엄 형성으로 지역과 대학이 같이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용인문학 등 매체도 중요하지만, 용인지역 문인과 대학에서도 서로 상생하여 용인이 세계와 우주 속의 용인이 되고, 결국은 대학과 유기적인 무엇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문학적인 유산들을 대학에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어 내 협력해야 합니다. 김진경 동화작가는 초등학생이 자신이 동화주인공인 맞춤형 동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철수란 학생을 동화와 문학의 주인공으로 교육청이 지원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옛날 자서전 쓰기처럼 용인시도 그런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MOU를 체결하여 지속해서 확대하고……. 그러면 재미있는 사업이 되고 지역도 발전할 수 있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변화가 보이는데 함께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용인문학회와 《용인문학》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 주십시오.
- 용인문학회가 창립 26년이 되고 《용인문학》이 38호나 발간되었다는 것은 남다른 일입니다. 문학인만을 위한 발전 매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용인문학이 용인시민들에게 용인의 지역성, 용인인의 정체성, 용인의 문화적인 것들을 수용하는 그릇으로서 시민들과 숨을 같이 쉬는 잡지로서 성장한다면 보다 생명력을 유지하고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육체적인 트래킹이 중요하듯이 정신적인 트래킹을 추구해야 하며 시를 쓰는 것도 일종의 정신적인 트래킹이라고 부연하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떠나온 길에 이 말씀이 귀에 선연하다. 결국 시 창작도 트래킹이라면 인생이란 길을 걸으며, 쉼 없이 시와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격려와 당부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원오|2014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2018년 시집으로 『시간의 유배』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