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母情)
김시종
청명한 밤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둥실거린다.
달 밝은 밤이면 장독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두 손 모아 비는 어머니를 볼 수 있다. 한 가지 소원을 풀기 위해 삼신님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무속신앙을 숭배하는 주문 외우는 소리는 고요한 밤하늘에 적막을 깨트리는 듯 애절한 사연이 가슴에 파고드는 듯 애달파 보인다.
한집안의 대를 이를 자손을 얻기 위해 삼신님께 기도하는 풍속(風俗)이 있었다. 비녀를 뽑고 명태 머리로 끓인 물에 머리를 감으며 몸단장을 한 어머니는 두 손 모아 삼신님(三神)께 빌고 또 빈다. 아들을 태기(胎氣) 해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신령님 전에 빌고, 조상님께 빌며 공덕을 쌓아 얻는 자식이기에 애틋한 사랑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어렵게 얻는 자식을 위해 먼동이 트기 전에 이 십리 길을 멀다고 하지 않고 봇짐을 이고 산자락을 돌고 돌아 하천을 건너 장터로 간다.
자신이 배우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한 그 무엇을 자식에게 얻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欲求)인지 모른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키운 자식이라 할지라도 성장 후 의젓한 성인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외로우면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 한국 여인의 어머니상이 아닌가 싶다. 작금의 세태는 서구 문물의 유입과 물질문명의 만능으로 핵가족화로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자식도 성장하면 일가를 창립하고 직장 따라 부모 겉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가 거동하기가 불편하고 늙어 병들면 정성을 다하여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했다.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붕괴하고 시대 변천에 따라 핵가족화로 이산가족처럼 분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지금의 세태다.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자식도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성장하여 일가를 창립하게 되면 삶의 터전을 따라 흩어지게 마련이다.
이젠 우리 사회도 고령화 시대다. 신생아 출산은 점차 감소하고 노령화 현상이 두더러 진다. 의료 기술 발달과 복지제도 개선(改善)으로 노인 인구는 증가 추세다. 한국도 멀지 않아 초 고령 사회다. 고령화된 사회에 노년층도 이제는 자식한테 의탁하지 않을 여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고령임에도 건강이 허락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일을 찾아보겠다는 욕망이 충족된 노인층이 많아진 듯싶다. 옛날처럼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지 않고 인생의 황혼기를 스스로 준비하려는 관념이 생활 관습을 바꾸어 놓았다.
요사이 며느리는 시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처럼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사이에도 효도가 차별화되고 있는 듯 서운한 마음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듯했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노령화가 더욱 심각하다. 젊은이가 떠난 농촌에는 나 홀로 사는 노인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객지 생활을 하는 자식들은 그저 부모님의 생신이나 어버이날이며 명절에 다녀가면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면서도 며느리들은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사는 집이 비좁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시골의 전답이라도 처분하여 큰집으로 이사하여 어머님을 편히 모시자고 남편을 부추긴다. 어린 손자 손녀를 돌봐주시는 것도 어머님께 즐거운 일이고 시골에 혼자 외롭고 쓸쓸한 생활도 정리하실 겸 전 답을 처분하여 합가하기를 바란다.
세월이 강물처럼 빠르다 보니 어느덧 손자 손녀가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니 시어머니는 존속 가치가 희박해졌다. 노령의 병석에라도 누우면 며느리로부터 소외당하기 일쑤다. 그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이 부부 싸움이 되고 며느리는 어머님과 함께 못 살겠다고 엄살을 부린다.
시어머니는 시골의 재산을 처분하여 자식한테 다 준 처지라 노령에 몸을 의탁할 마땅한 곳이 없어 외로움에 삶이 고달프고 고독해진다. 그래서 양로원에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싶다. 부양가족이 있는 노인은 무료가 아닌 유료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다. 매월 보내는 요양비도 달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부담스러운 처지다.
어느 날 자식 내외가 요양원을 찾아왔다. 매일 요양원에만 있지 마시고 바람도 쐴 일 겸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 바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타고 온 차에 벅찬 마음으로 동승했다. 복잡하고 정감(情感)이 가지 않은 서울을 떠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마음이 황홀했다.
남해항 포구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바닷길을 따라 어촌이며 삼천포 대교로 사천의 연륙교 등지로 관광하며 어머니는 행복감을 느끼며 차내에서 잠이 들었다.
아들은 황혼 무렵 이름 모를 야산 자락 한적한 도로에 차를 정차시킨 뒤 어머니를 차에서 잠시 내리시게 했다. 간식을 사 올 테니 아무 데도 가지 마시고 잠깐 이곳에 기다리시면 돌아오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말만 믿고 해가 저물도록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 교통사고라도 났을까 싶어 근심 걱정으로 애를 태운다. 명색(名色)이 아들은 중앙부처 고위 공직에 재직 중이고, 며느리는 교육계 종사하는 교사이지만, 어머니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민물처럼 차오르는 듯했다. 혹시 누가 물어보아도 자식의 신분이 드러날까 싶어서 묵묵부답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자식의 신상에 불이익이 돌아갈까 싶어 걱정이 앞서는 어머니다. 그 순간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귓전을 스치는 듯했다.
해가 저물고 밤을 새웠다. 먼동이 터지고 동녘 하늘에 햇살이 대지를 적셔도 아들 내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이 자식으로부터 버려졌음을 알게 된 노모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인생무상을 절감케 한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통탄한 마음을 쓸어안으며 무거운 발길로 통영 미륵산 자락 암자를 찾아간다.
통영의 미륵산 도솔암자에 고양 주 보살로 취업하여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위해 기도드리는 어머니의 사랑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문단 약력
《경찰문학》《 영남문학 》등단 /제 50회 한민족통일문예대전 대구협의회 회장상,
한국경찰문학 발전 유공상 수상, 영남문학 창간 10주년 공로상 수상, 송암 문학상 수상, 국제 펜 문학회 공로상 수상, 한국예술인 복지재단 “디딤돌”창작기금수혜, 제 1회 대구문화원 연합회 회장상,(시각예술상)
대구문인협회 홍보위원, 영남문학 대외협력 이사, 대구수필가협회 이사, 영축문학 회원, 수필지성 동인, 국제 펜 문학회원, 한국경찰 문학회 대구 경북지회장.
시집 『봄의 지열 』
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자식 기른 어머니 중 가슴 아픈 사연 하나 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이 글 속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 가슴이 아파옵니다^^
선생님 연간집 원고는 파일로 올려주셔야 출판사에서 작업하기가 수월합니다.
한가하실 때 파일도 첨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그 며느리도 누군가의 어머니고 모정이 있겠지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 노모와 함께 저도 밤을 함께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