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하심 대로
성경본문 : 에스라 1:1-6
이따금 시골길을 가닥보면, 개천이나 시냇물이 곧바로 흐르지 않고, 고불고불하게 흘러감으로 따라서 길도 꼬불꼬불하게 된 것 을 봅니다. 내 마음에, 왜 개천을 이렇게 고불고불하게 내버려두었는가? 곧바로 만들면 개천도 곧게되고, 다니는 길이나 도로 도 곧바로 날텐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번은 시골에 계신 분께 곧게하면, 다니시는 길로 편하실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 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무리 완벽하게 개천을 곧게 만들고, 단단하게 시멘트로 길을 내어놓아도, 큰 비가 한 번 지나가거 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 길은 다시 옛날의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애써, 굽은 길을 곱게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개천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개천을 청결하게 하는 일이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물이 흐르지않고 고이면 썩기 때문에, 고인물이 없도록 물길을 자연스럽게 내는 일이나, 지저분하고 더러워진 쓰레기들이 물에 쌓이게되면, 악취가나고 물이 썩기 때문에, 물에 버려지지 않도록 청결하게 하는 일일 뿐이 라고 말합니다.
지난 몇주간은 한국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와 함께 사진들이 종종 날라옵니다.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지난 홍수로 말미암아, 애써 만들어놓은 포장도로가 완전히 끊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문명과 기술과 능력이 실낱같은 작은 도랑의 길조차도 바꿀 수 없는데, 어떻게 우리의 지식과 힘을 의지해서 살려고 이처럼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힘과 지직과 물질과 문명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자 되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은 온 주의 역사 의 주인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생각하고 설계하고 노력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어 가 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이 지혜자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청결하 게 하는 것입니다. 썩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러움으로 오염된 것들을 깨끗하게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역사속에 우리가 감당할 일이며, 우리의 생애를 주장하시는 이는 우리 주님이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스라엘이 바벨론에 나라를 잃은 뒤, 주전 605년부터 4차례에 걸쳐 포로가 되어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강대국들은 약 소국들을 점령하게되면, 저들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붕괴하는 야수적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다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국 백성들로 하여금 일단 그들이 지켜온 땅을 떠나게 했고, 흩어지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오직 힘을 통해서만 가능했었습니다.
점령당하여 흩어 진 노예와같은 삶속에서 그들이 정치,군사적으로 정복 국가를 향해 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상황속 에서 바벨론이 망하고 파사 나라의 고레스가 바사 제국을 통합하였고, 바벨론을 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한 국가 바벨론 마저 멸망하게 되고 또다른 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회는 완전히 없어진 상태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소망과 희망은 다 깨어져버렸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 한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약속 "( 다른말로는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25:11, 29:10에보면, " 나 여호 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서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 오게 하리라..."라는 거듭된 약속을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서의 말씁은 그 약속의 성취에 관한 말씀입니다. 역 대하에 보면, 포로된 이스라엘이 파사의 고레스 왕의 특별한 배려속에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며, 이 귀환은 세차 례에 걸쳐서 갖게되는데, ( 주전537년-스룹바벨 / 주전458-에스라 / 주전444-느헤미야 )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는 축복된 자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여도, 하나님의 약속을 갖지 못한자는 참으로 불행하 고 어리석은 삶입니다.
약속이 있는자는 더디온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약속이 있는 자는 오늘의 삶이 고달프다고해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약속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저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약속은 철저하고도 빈틈없는 약속인줄로 믿습니다. 그 약속을 가졌다면,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비록 독립의 가능성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잇는 아무런 비젼이 없어도, 이스라엘은 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포로로부터 귀환하는 축복을 갖게됩니다.
이시간,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어떻게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가시는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감동케하심과 감동함을 받는 자를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1,5절)
1절을 봅시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이 마음을 감 동시키시매....."
요세푸스에 의하면, 고레스는 이사야 44:28에 이스라엘의 포로된자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자가 바로 자기 이름 "고레스"가 기록된 것을 읽고는 열망을 가지고 유다 백성을 귀환시키는 일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절을 봅시다.
"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 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이 두 구절에 보면, 공통적인 단어가 있는데, "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것입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1절에서 고레스 왕은 감동시키셨고, 5절에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자 일어난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입니다.
1절은 피동적 동사이고, 5절은 능동적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감동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위대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감동케하심을 체험하기도 하며, 감동함을 받고 주의 뜻을 따라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동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 이르라는 단어로서 이 단어는 "일어나다"라는 단어입니다.
감동을 시키다는 말은 "일으켜 세우다"라는 의 미이고, 감동함을 받는다라는 단어는 "일으켜 세우실 때에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단어는 주의 뜻을 성취할 때에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실 때에, 감동함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에 먼저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한동안 코메디언으로 있던 한 분이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가 되었고,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항상 무대에서 사람을 웃기고는 들어오지만, 무대를 떠난 시간부터는 온통 걱정과 좌절과 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교회를 나가면 참 평안이 있다고 강제로 강권하여 데리고 나갔습니다.
교회에 앉아있지만, 자신을 바라보니 참으로 유치하게 짝이 없습니다. 아무 런 위로함도, 평안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목사의 설교도 자기를 향하여 비웃는듯한 소리로만 들렸고,
" 왜, 하필 이런곳에 내가 앉아있어야만 하는가?"해서 후회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번에는 싫다고 적극적으로 거부했지만, 강제로 그를 데리고 철야기도에 나갔습니다. 남들은 찬송을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미친사람들 처럼 보이기만 합니다.
"ㅉㅉ, 안됐다... 겉은 멀쩡해서..."하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가운데, 자신도 어느 시간인가 무슨 이유인가는 모르겠는데,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면서, 정말 불쌍하고, 한심하며, 외롭기 짝이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는 조용히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2시간을 넘게 회개하고 나니 얼마나 기쁨이 충만한지, 얼마나 마음이 평안한지 모릅니다. 해결할 수 없는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도망을 갔는데, 4-5년이 지난 후에, 모든 빚을 다 청산했습니다.
모든 빚을 청산하고, 장로가 되었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울 때에 그는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의욕을 성령님의 감동하심 앞에 세워놓습니다.
의욕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 령님의 감동입니다.
( 우리의 의욕과 방법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교회를 꾸밀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형제와 성도와의 교제 속에 우리가 알고있는 스포츠나 상식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교제 후에 무슨 감동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의 지식으로만 드리지는 않습니까?
감동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려면 성령님께서 일으켜 세우실 때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의 생활에서 유대땅으로 돌아올 때에 도저히 상상치도 못하는 그 축복을 체험하였던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일으켜 세우심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어나는 일입니다.
감동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감당치 않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실 때에 선한 양심으로 일어섬으로 주의 역사를 감당하는 대흥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감당하는 것은 즐거이 감당케 하십니다 (4,6절)
4절을 봅시다. "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6절에 " 그 사면 사 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고레스 왕은 바벨론 땅의 모든 거민을 향하여 명령했습니다.
유대땅으로 향하는 백성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베풀되, 즐거움으로 감당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곳 거민들은 고레스왕의 명령대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방백성들 조차도,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때에, 어떠한 불평과 불만도 없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사야1 2:2-3에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 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생수는 결코 악에바친 얼굴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생애를 보면, 그는 120년을 살았는데, 생애를 40년씩 3기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제1기는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기간이었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도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제2기는 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면서부터입니다
그 때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기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양떼를 먹이는 목자로서 살아가면서, 그는 입이둔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제3기는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입니다.
이 때에는 주 앞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고 바뀌었습니다. 그는 모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 기쁨 으로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릇을 준비하실 때에 즐거움으로 감당할 그릇을 찾으십니다. 성전에 바쳐진 사무엘도,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이사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할 때에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기쁨으로 감당할 준비가 된 고백입니다.
빌립보서 2: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하나님의 기쁘 신 뜻을 이루어 나가실 때에, 우리로 소원을 두게하신다는 것은 하고자하는 열망을 주시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을 주 신다는 것입니다.
찬송가513장
"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가라
내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시편100:2 - 온 땅이여 여호와 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저는 요즘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너무 열심히 교회를 사랑하시고, 너무 열심히 봉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합니다. 혹 저들의 이 열심이 억지가 되지 않게 하소서... 모두가 기쁨으로 사랑하고, 기쁨의 분량대로 감당하여, 큰 기쁨 이 있게 하소서....( 헌금도 봉사도 구제도 헌신도,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분량을 주셨는데, 그것은 기쁨으로 감당할만한 선입니 다. 교회일하고 시험에 드는 것이 왠 손해입니까?...)기쁨이어야한다
유대인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중에 빅터 플랭크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차대전중에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이 공포속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식구들은 강간을 당하고, 개스실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자신도 수도 수없이 모욕을 당했지 만,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스스로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나찌와의 싸움이 아니라, 이는 나 와의 싸움이라는 자신과의 전쟁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낡은 면도날과 유리조각을 주워서 매일 아침 면도를 해서, 건강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곰팡이핀 빵을 먹으면서도 그는 마음 중심에는 늘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던 풍성한 만찬 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먹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이는 곧 나찌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쁨으로 자신을 정복하십시오. 주심이 쓰시는 그릇이 됩니다. 주님의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성결한 그릇이며, 기쁨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축복은 얼마나 힘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순종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뜻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힘쓰고 애를 썼느냐?하는 것이 그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 그 기준입니다. 흩어진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그외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원하여 마 음에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 자들은 5절에 보면 모두가 다 일어났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행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즉각적인 결단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그들은 성벽을 향하여 "성벽아 무너져라..."라는 결단도 해본적이 없고 , 외친적도 없고, 차지하기 위해서 망치를 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초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권세가 여리고성의 엄청난 성벽을 완전히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고, 뜻을 이룬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217장을 보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 리니
진흙과 같은 날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발 앞에 엎드리니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 게 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
주님 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순종하 는 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자가 마귀에게 붙잡혀 깊은 성안에 갇혀 있는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제까지 많은 젊은 왕자들과 청년들이 그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모두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왕자는 성 안에 공주를 구하기 위해 온갖 장애물과 방해물들을 극복해 나가게 되는데, 그 왕자의 유별난 점은 그 마음이 한가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공주, 사랑하는 공주를 구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막혀지는 장애물들과 방해물들이 전혀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두려움의 이유도, 피곤함의 이유도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 이 오늘의 삶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두려워하거나, 고민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축복된 방법이 있습니다.
사단의 방해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예수 사랑에 맞추는 것입니다. 날 위해 죽기 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 어떠한 장애물들도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라고 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도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복되고, 우리의 교회가 부흥하며 축복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려면,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며, 그분의 역사하심을 이루어 나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청결일 뿐입니다. 서론에서도 말씀했듯 이, 굽어진 냇가면, 굽어진대로 청결하게 감당하면 되는겁니다.
지난번 한국 홍수때에 북한산 냇가에 사는 한 사람이 뉴우스에 나와서 이야기하던 것이 생생합니다. 잘 흐르는 냇가를 쓸데없이 정리한다, 튼튼하게 한다고해서 제방뚝을 쌓고, 모양을 바꾸 어놓았기 때문에, 이처럼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 더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의 역사의 길의 방향과 모양을 트는 것이 아니라, 성결하고, 깨끗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순종합시다. 그래 서 주님의 역사하시는대로 우리교회가 전진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시간 작은 결단을 모두가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 속에 살아 역사 하시는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사모합시다. 내 뜻과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역사하심 앞에 두지 않도록 합시다.
(1) 우리속에 감동하심을 주실 때에 순종합시다.
일으켜 세우실 때에 다리에 힘을 얻어 일어납시다.
(2)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결코 억지로 감당케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즐거이 감당하시는 주의 종들이 됩시다.
(3) 주님의 역사하심은 우리의 힘과 능에 있지 않고 순종에 있습니다.
주안에서 순종하심으로 주님이 역 사하심대로 우리교회가 성장하고, 우리교회가 일하며, 우리교회가 나아갈 수 있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흥 교회l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