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헬로 트로트> 3라운드에서 풍금 님이 1등을 차지했지요. 풍금 님이 커버곡으로 부른 <야래향>은 1950년대 유행했던 번안곡이더군요.
<야래향>은 1996년 상영된 홍콩 영화 <첨밀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노래입니다. 2005년 상영된 한국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도 여주인공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요. 이 노래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크게 유행합니다. <야래향>은 시적인 가사와 감미로운 멜로디로 큰 인기를 모았고,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했지요. <야래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야래향>은 1940년대 전반 중국인이 작사, 작곡한 중국 가요였고, 일본 출신의 가수 이향란이 불렀습니다. <야래향>은 중국 민요를 바탕으로 서구 음악을 가미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선율이 좋기는 하지만 음역이 넓어 부르기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향란은 고저음을 자유로이 구사할 줄 안다는 평을 받고 있어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향란은 <야래향>이 인기를 끌자 1943년 상영된 <만세류방>이라는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리고 <야래향>은 <만세류방>의 주제가로 쓰입니다. <만세류방>은 1839년에 일어났던 중국과 영국의 전쟁, 즉 아편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였습니다. 중국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하고, 홍콩을 넘겨주게 되지요. <만세류방>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중경과 중국 공산당의 거점인 연안, 그리고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야래향>은 수십만장의 음반이 판매됐고, 이향란은 1945년 상해의 극장에서 3일 내내 이 곡을 불렀다고 하네요.
이향란은 일본명이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라고 합니다. 이향란은 만주에서 출생하고 이태리인으로부터 소프라노 발성법을 수학하여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지요. 또 중국어, 일본어를 모두 구사하여 영화 배우로도 활동합니다. 이향란은 미국에서 영화 배우. 일본에서 정치가로 활동했지요. 또 중국과 일본이 우호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향란은 과거 전쟁을 선동하는 영화에 출연한 것을 반성했습니다.
<야래향>은 발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습니다. 이향란은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한 영화에 출연한 것이 문제가 되어 2차 대전 이후 일본으로 추방됩니다. 이어 <야래향>은 발표된지 얼마 안돼 금지됩니다. <야래향>은 30여년 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됐지요.
<야래향>의 원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那南風 吹來清涼 那夜鶯凄愴
남풍은 시원하게 불어오고요 꾀꼬리는 밤새 구슬피 우네요.
月下的花兒 都入夢 只有那夜來香 吐露著芬芳
달 아래 꽃들은 모두 꿈에 빠져 있는데 저 야래향만이 향기를 내뿜고 있네요.
我愛 這夜色茫茫 也愛 著夜鶯歌唱
나는 아득한 야경이 좋아요. 밤꾀꼬리의 노래소리도 좋아요.
更愛 那花一般的夢 擁抱著夜來香 吻著夜來香
꿈속에서 야래향을 껴안고 야래향에 입맞추는 저 꽃들을 더욱 좋아해요.
夜來香 我為你歌唱 夜來香 我為你思量
야래향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하고 야래향 나는 너를 그리워하네
啊~ 我為你歌唱 我為你思量 夜來香~ 夜來香~ 夜來香~
아~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하고 나는 너를 그리워하네 야래향 야래향 야래향
<야래향>은 황홀한 봄밤에 새들이 지저귀는 속에서 그윽한 꽃향기를 맡는 장면을 잘 표현했다고 보여집니다. <야래향>은 밤에 오는 향기라고 풀이할 수 있고, 밤에 피는 꽃을 뜻합니다. <야래향>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꽃이어서 귀한 손님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야래향을 달맞이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야래향>의 가사는 <봄밤의 한 순간은 천금의 가치가 있네. 꽃은 맑은 향기 머금고, 달은 그림자를 드리우네>라는 중국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의 시를 연상시킵니다. 옛 시인들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봄밤은 너무 황홀해서 거액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칭송하곤 했지요.
<야래향>은 1954년 심연옥 선생님의 노래로 한국에 알려집니다. 심연옥 선생님은 <아내의 노래>, <한강>으로 유명한 가수지요. 그런데 <야래향>을 한국으로 전파하는데는 반야월 선생님의 활약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반야월 선생님은 <야래향>을 번안했습니다. 반야월 선생님은 일제 시기 조선은 물론 만주에서 활동하던 작사가이지요. 당시 조선과 중국은 문화 교류가 있었지요. 이향란은 조선의 인기곡이었던 <황성옛터>를 불렀고, 조선에서는 이향란의 노래 <영춘화>를 커버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커버곡은 일제 시기에도 행해진 것을 알 수 있지요. 반야월 선생님의 노래 <꽃마차>는 원래 만주를 소재한 노래로서 꾸냥 등이 나오지요.
심연옥 선생님의 번안곡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지나간 그 옛날에 푸른산 잔디 위에서 나란히 마주 앉아 속삭이던 그 때가 그리워져요
낯설은 달빛 아래서 그대와 부르던 노래 지금은 사라진 꿈 내 마음은 언제나 외로워져요
예라이샹 예라이샹 애달픈 호궁의 소리
언제나 돌아오려나 구름 같은 그 님아 오늘도 이슬 젖어 끝없이 헤매이며
사라진 옛 추억을 가슴 안고 언제나 울고 있어요
예라이샹 예라이샹 예라이샹
번안곡은 떠난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내용이지요. 주인공은 달밤에 푸른 잔디밭에서 연인과 노래하던 추억을 상기하곤 합니다. 동시에 그때 흘러나오던 호궁 소리를 기억합니다. 주인공은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연인이 마치 구름같이 떠나갔다고 생각하지요. 주인공은 연인이 떠나자 지독한 외로움에 빠집니다. 주인공은 오늘도 이슬을 맞아가며 옛 추억을 더듬곤 합니다. 때로는 흐느끼기도 합니다. 대단한 순정파인 것을 보여주지요. 가사에 등장하는 호궁은 현악기입니다.
원곡과 번안곡은 똑같이 달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곡이 꽃향기를 음미하는 것으로 그친데 비해 번안곡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애착점이 다릅니다. 표면적으로 원곡은 꽃이고 번안곡은 연인인지요. 하지만 원곡의 주인공도 꽃을 보며 연인이 와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되지요.
<야래향>은 심연옥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실려 크게 인기를 얻지요. 다만 씩씩하게 부른 에라이샹 부분이 살짝 민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심연옥 선생님은 1958년 <라이라이 야래향>이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야래향>과는 다른 노래이지요.
https://youtu.be/wFUduJ2RFf4
풍금 님이 들려주는 <야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