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7-2편] 지혜의 연금술 : 현실을 받아들이기 | 번뇌를 받아들이면 보리다 |
현실을 수용하면, 나눠지지 않는 전체가 된다 | 화두하나로(1:05:55)
0:05
< 고통체로부터의 자유는 먼저 자신이
고통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
알아야 해결된다 이거예요.
< 그런 후에 더 중요한 것은 충분히 현재의 순간에 머무르는 능력,
즉, 충분히 깨어있는 능력이다.
그럼으로써 고통체가 활성화 될 때 부정적인 감정이 심하게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 자신 안에 있는 고통체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렇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고통체는 더 이상 당신인 척하며
살아가거나 당신을 통해 자신을 재생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
의식적으로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고통체와의 동일화를 끊을 수 있다.>
하나의 지금 중요한 포인트죠.
그 두 가지 중에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방식의 핵심은
현재의 순간에 깨어 있으면 현재의 순간에는
고통체가 못 따라 들어온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고통체는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현재의 순간에 깨어 있으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생각이 없으면 고통체가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까 생각은 고통체의 매개, 미디어, 매체라는 거에요.
현재에 깨어 있으면, 여러분, 현재에 깨어 있으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예, 자연스럽게.
2:05
< 당신이 동일화 되지 않으면 고통체는 더 이상 당신의 생각을
조정할 수 없으며 당신의 생각을 먹이 삼아 스스로를 재생시킬 수 없다.
대부분의 고통체는 처음에는 잘 사라지지 않지만 당신이 고통체와
생각의 연결을 끊어 버리면 고통체는 에너지를 잃기 시작한다. >
그러면 고통체하고 생각의 연결을 끊는 것은, 방법은 뭐냐?
현재로 우리의 어텐션(attention)을, 주의 집중을, 현재로 가져오는 거에요.
현재로 가져오면 현재는 생각이 없어서
고통체가 존립할 기반을 잃어버린다
요걸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간단한 기록이지만
여러분 선불교가 처음 시작할 때 선종의 초조(初祖)가 달마대사잖아요.
2조가 혜가거든요.
그러니까 혜가가 달마스님을 찾아왔을 때 문답이 있잖아요.
뭐라고 물었는가? 2조, 나중에 2조가 되는 혜가가
달마스님을 찾아봤을 때 이렇게 질문했어요.
"에고 때문에 괴롭습니다. 에고 때문에 괴롭습니다.
좀 이 괴로움을 없애 주십시오."
달마가 뭐라고 답변했냐면, 달마의 답변을 보세요.
지금 톨레가 말하고 있는 것, 고통체와 에고와 생각의 연결을
끊어 버리면 힘을 잃어버린다.
"에고 때문에 괴롭습니다. 해결해 주세요."
그러니까 달마가 뭐라고 했냐면 "그 에고를 가져와라."
그래서 이 혜가가 에고를 가져오려고, 에고 때문에 괴로웠으니까
에고를 찾았다 이거예요.
그러면 에고를 찾으면 어떻게 돼요? 찾는 것이 현재잖아요.
현재의 불이 켜지는 거에요. 에고를 찾으면 찾는,
여러분, 에고를 찾는 자는 의식이지요.
의식의 빛이 켜지는 거에요. 그러면 현재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던 혜가가 와 가지고
이거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하니까 응, 해결해 줄게.
네가 괴로워 하고 있는 그 에고를 가져와라.
그러면 에고를 지금 이 순간에 찾으면 에고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잖아요. 에고는 과거에 매여 있거든. 현재에는 에고가 못 따라 들어와요.
놀랍잖아요,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이 현재의 왕국에는 지금 에고건 이분법이건,
먹은 생각이건, 못 따라 들어와요. 여기가 지금 '극락정토'라는 거에요.
찾아와라, 에고를. 찾아오면 내가 그것을 해결해 주겠다.
그래서 찾아봤어요. 찾아봤더니 지금 찾는 여기에는 에고가 없다.
아, 없네요. 혜가의 답변이, 에고 없습니다. 못 찾겠습니다.
그랬더니 달마가 뭐라고 했냐면 그게 '안심'(安心)이라는 거에요.
그게, 여러분, 안심, 마음이 안심이다. 마음이.
안(安) 자가 한자로 집 안에 여자가 있는 거에요.
여자가 집 안에 있으면 편해. 밖에 나오면 위험해.
어떻게 우리가 안심이 되는가?
이때 집이 뭐냐면 현재에요. 여자는 우리.
현재라고 하는 집에 우리가 있으면 그것은 안심이 되는 거에요.
이게 달마의 안심법문이에요.
문제는 혜가가 굉장히 괴로웠기 때문에, 혜가가 굉장히 괴로웠기 때문에
정말로 진지하게 에고를 찾았고, 아무리 찾아도 이 현제에서는 에고를 찾을 수가 없다.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게 안심이다."
할 때 혜가는 깨달았다는 거에요. 여기에서 깨달았다.
현재라고 하는 여기가 '극락정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게 지금 선종이 시작되는 이야기에요.
선종의 창시자 달마, 그리고 제 2조인 혜가에 선종의 맥이
이어지는 그 모양이다. 똑같아요.
3조는 승찬인데, 승찬은 피부병을 앓는 사람이에요.
완전히 고름으로 덮여 가지고, 그래서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번 생에 이렇게 천벌을 받는 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죄를 사해 주십시오.
그렇게 된 거에요. 2조 혜가를 3조 승찬이 찾아와서 저의 죄를,
제가 지금 이렇게 피부병으로 이렇게 괴롭습니다.
저의 죄를 사해 주십시오. 사해줄게. 죄를 가져와.
죄를 가져오려고 하면 어떻게 돼요?
이 현재는 죄가 따라올 수가 없잖아요.
아무리 찾아도 현재는 죄가 없어.
아무리 찾아도 죄가 없는 데요. 내가 너의 죄를 사했다.
현재로 오는 게 방법이다, 이거예요.
그것이 3조 승찬, 4조 도신, 4조 도신이 뭐라 그랬냐면
승찬을 찾아가지고 저는 이 업의 속박 때문에 업에 묶여 가지고 괴롭습니다.
이거 이 업장을 소멸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똑같은 거에요.
업을 가져와라. 업을 가져와야 내가 소멸 시켜 주지.
그래서 업을 가져오려고 보니까, 여러분, 그 괴롭던 업이
지금 정신 차려 가지고 업을 찾으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 찾는 거에요.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러는 거에요.
"누가 너를 묶었더냐?"
누가 너를 묶었더냐. 그래서 아무리 자기를 봐도 묶은 사람도 없고.
업도 없고, 묶은 사람도 없잖아요. 그게 업장 소멸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선정에서 가르치는 방법은
현재 우리의 의식이 빗나가지 말고, 빗나가는 것은 과거 미래예요.
과거 미래로 나가지 말고 현재로 돌아오면 여기에는 우리의
과거라는 것은 없다. 모든 업장은 과거잖아요. 그러니까 과거가 사라진다.
그리고 깨닫게 되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
이 현재는 계속 되어 가요, 아니면 잠깐 있다 말아요?
이 현재는, 비(be)는 비잉(being)이 되잖아요.
이 현재는 늘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이것이 이어지는데
의식을 놓으면 다시 옛날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깨어 있으면 이것이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이 현재라고 하는, 모든 죄가 사해지는, 모든 과거가 소멸되는,
깨어 있는 현재라고 하는, 이 의식의 왕국, 이 의식의 왕국을 한 번 알아채고
그 다음에는 이 의식의 왕국에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에요.
예수님처럼 극적으로 한 번 그 에고를 확 죽어버리든지
아니면 보통 사람은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현재를 발견하고 현재에 깨어 있기를 꾸준하게 실천해 가면
그 각성의 힘이 커져서 결국 이 각성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게 지금 요 내용이예요.
10:11
< 당신의 생각은 이제 감정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이 중단된다.
현재의 감각, 지각이 과거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다. >
이 말도 중요해요.
현재의 감각을 하는 이 지각이 과거에 의해서 왜곡되지 않는다.
이걸 육조스님은 직심(直心)이라고 불렀어요, 직심.
우리 마음이 왜곡되지 않아. 직심, 직심이란 말은 있는 그대로 대하는 마음.
근데 한 생각이 들어오면 있는 그대로 못하고
그 생각에 의해서 왜곡 당한다 이거에요.
< 현재 깨어있기. 직심으로 살기. 그러면 고통체에 갇혀 있던
에너지가 주파수가 바뀌어서 이 순간에 존재함으로 변형된다.>
자, 그러면 고통체에 갇혀 있던 에너지 주파수가 있는데
우리가 현재에 자각하면, 현재에 자각하면 의식이 깨어나지요?
깨어난 의식의 주파수가 있어요. 깨어난 의식의 주파수가 깨어나면,
주인이 깨어나면, 모든 고통체라고 하는 하인들의 주파수는
주인이 깨어나면 깨어난 주파수에 동화되어요.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에요.
집안이나 회사나 나라를 통솔할 때 주인이 딱 깨어 있으면
희한하게도 그 주파수가 전체로 다 퍼져나가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거에요.
우리 몸도 마찬가지예요. 몸의 팔 쪽의 세포가 있잖아요.
이게 주인이 깨어 있지 못하면 따로 놀아요. 병이 나는 거에요.
근데 이 주인인 의식이 딱 현재의 지금, 여기에, 이 현재에
딱 깨어 있으면 모든 주파수가 다 가지런히 통일돼요.
이게 건강의 또 비결이예요.
항상 주인이 깨어 있기, 주인이 현재에 깨어 있기.
요것이 우리가 자기를 단속하는 포인트다.
12:26
< 고통체에 갇혀 있던 에너지의 주파수가 바뀌어서 이 순간에 존재함으로
변형된다. 이런 방식으로 고통체는 깨어 있는 의식을 위한 연료가 된다. >
이게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의 뜻이에요, 또.
고통체의 에너지가 생명의 에너지로 변한다 이거예요.
번뇌가 보리로 변한다. 같은 의미예요.
13:13
<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군요. >
그녀가 뭐냐면 아주 고통체에 억압 받던 사람이 와가지고 톨레한테
이야기를 했을 때 톨레가 깨어 있게 자꾸 이렇게, 자기가 깨어 있으면서
그 사람도 깨어 있게 유도를 한 거에요. 그랬더니 하는 이야기에요.
<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군요. >
자 여러분, 달마스님 앞에서 혜가가 에고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에고를 가져와라. 그래서 에고를 찾았다.
그랬더니 혜가가 뭐라고 했는지, 지금 똑같은 상황이에요.
< 이상하군요 괴로웠었는데 막상 찾으니까 그 괴로움이 없네요.
이상하군요. 나는 여전히 불행하지만 그래도 그 불행 주위에
공간이 생긴 것 같아요. >
이제 띄어졌다,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거예요.
재밌는 표현이죠? 이 여자가 스스로 '공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 공간이 생긴 것 같군요.
예전만큼 그 불행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불행 주위에 공간이 생긴다는 표현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그 공간은 현재의 순간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저도 이거 경험해 봤거든요.
고통스러운 현실을 '에이~ 모르겠다.' 하고 받아들이면
이상하게 에너지가 변하면서 공간이 이렇게 확보되는 느낌이,
그러니까 힘들어 죽겠는데 막 저항할 때는 그렇게 힘들다가
저항하던 것을 멈추고 그냥 에이 하고 받아들이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이거예요. 이상하게 화학적인 변화가 생겨.
사실은 '연금술'이란 말 들어보셨죠? 연금술.
뭐를 주석을 뭐 해가지고 뭐금으로 바꾼다 그런 거 있잖아요?
이게 연금술이에요.
고통을 받아들일 때 그 고통이 연금술이 일어나서
고통이 황금으로 바뀐다는 거에요. 그 황금이 깨달음이잖아요.
연금술이라는 것의 묘미는 뭐냐면 받아들이는데 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있다.
16:00
< 나는 그 이상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녀가 그 경험과 함께 하도록
해주었다. 이윽고 그녀는 이해했다. 자신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 느낌,
즉, 오래된 고통의 감정과 동일화 되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
동일화 되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의 저항하는 대신에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서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생각의 지배자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속에서 만든 불행한 나라고 하는 이야기와도
더 이상 섞이게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스토리, 항상 에고는 스토리를 가지고 우리를 끌어 당기거든요.
< 그 스토리와 내가 하나가 되지 않고 틈이 벌어지고 이렇게 그게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 개인의 과거를 초월한
새로운 차원이, 즉 현존의 차원이~ >
여러분, 과거와 다른 현존의 차원, 의식이 깨어 있는 것은
현존의 차원이예요.
< 현존의 차원이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불행한 이야기가 없이는
불행해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 그녀의 불행은 끝이 났다. >
재미있네요. 불행한 스토리가 없어지면 불행도 끝난다 이거예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 이 전체를 줄이면 뭐냐?
여러분이 만약에 여러분의 생각에 속지 않게 된다면 그러면
그 생각이 나를 속였던 것은 끝이 난다 그거예요.
근데 보통 사람은 생각 속에 거의 요 말풍선이라고 하거든요. 말풍선.
이렇게 말풍선을 쓰고, 생각에 풍선을 쓰고 다닌다.
그런데 그것을 한 번 되돌아와서 그 풍선을 벗어 버리면
그 스토리로부터 벗어난다.
< 그리고 그녀의 고통체에게는 동굴의 시작이었다.
감정 그 자체는 불행이 아니다. 감정의 불행한 이야기가 되어질 때만 불행이다. >
그러니까 보세요. 아까 첫 시간에 어제 저에게 물었던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 가지고 그때부터 슬픈 감정이 항상 저한테는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요? 슬픈 감정.
슬픈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그 슬픈 감정이 나라고 하는 동일화,
그 슬픈 것이 그 스토리가 내가 슬픈 아이가 되어 버렸다 하는
그런 고정관념이 문제였다는 거죠.
그래서 그 점을 한 번만 제대로 본인이 알아차리면
슬픈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게 나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
그 감정은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데 그게 내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한 번만이라도 알아차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걸 저항하지 않는다,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요.
왜냐하면 현실이 그러니까. 받아들이면 문제는 슬픈 감정은 있지만
내가 슬프진 않은 거에요. 말이 좀 이상하다.ㅎ
슬픈 감정은 일어나지만 내가 슬픈 것은 아닌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리고 그 슬픈 감정을 오히려
따뜻한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그래서 이 고통이 고통의 십자가가 에고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하는
이 부활의 상징으로 이렇게 부활의 십자가로 바뀔 수 있는 그걸
신화화 시킨 게 제가 자주 이야기 하는 고통이 바로 야수고,
그 야수를 사랑하면, 받아들이면, 사랑하면 고통을 사랑하면,
요게 연금술이라는 거에요. 연금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지혜의 연금술.
지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것을 내가 받아들여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로 변해서, 왕자로 변해서 나와,
참 좋은 거 아닌가요?
야수가 왕자로 변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가?
사랑이죠.
자, 그러면 미녀와 야수에서 여러분,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는 나의 에고, 나의 고통체잖아요.
맞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질문. 미녀는 누구에요, 여러분?
그 야수를 왕자로 바꾸는 미녀가 누구예요? 우리 자신이예요.
그러니까 내가 야수를 거부하고, 저항하고, 싸우고, 도망가느냐,
아니면 내가 야수를 사랑할 줄 아느냐.
그러면 그 나의 에고인 야수가 나를 사랑해 주고 보호해 주는
나의 수호천사, 불교를 말하면 신장님으로, 왕자로 바뀐다 이거예요.
그게 지금 연금술이다 이거예요.
그게 지금 모든 지혜의 핵심이예요.
내가 지금까지는 거부하고, 거절하고, 도망 다녔던 그것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그 은혜를 갚는다. 바뀐다.
이게 지금 번뇌 즉 보리, 중생적 부처,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뭐에요?
다른 말로 하면 이거에요.
쉽게 말해서 중생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중생상이거든요.
중생은 나쁘다 하는 게 중생상이에요.
그러면 내가 중생상을 가지고 보면 저 사람은 중생이니까
나빠 나빠 나빠 나빠 하면 모든 사람이 야수가 되어버려.
이해되세요? 근데 만약에 나한테 내가 그걸 바꿔서
중생상이 없어지면 어떻게 돼요? 다시 말하면
중생이 나쁘다고 하는 상이 없어지면 어떻게 돼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야, 그냥.
그러면 지혜가 나와서, 있는 그대로 나타난 거구나, 본질이.
본질은 여러분, 장미꽃으로만 나타나지 않아요.
본질은 현명해서 다양하게 나타나요.
그 중에는 좋다, 나쁘다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근데 지금 중생상이 없으면, 여러분 이 세상에 중생이,
나한테 중생상이 없으면 이 세상의 중생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무명행식에서 중생상은 모든 사람을 중생으로
바꿔 버립니다. 돼지 눈은 돼지 세계를 만든다.
근데 이걸 바꿔서 부처님 눈이 되면, 중생상이 없어지면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그대로 그 인연으로 나타난 것이라서
따라서 부처 눈에는 다 부처로 보인다는 거에요.
이게 중생 즉 부처, 번뇌 즉 보리, 야수 즉 왕자,
어떻게 하면 중생이 나쁘다고 하는 상이 나한테 없어지느냐?
그러니까 중생상이 나의 허물이다 이거예요. 나의 흠을 보는 게 핵심이다.
육조스님의 가르침의 골수,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 공부다.
나의 허물이 뭐냐? 나의 상이다.
상이라는 건 뭐냐면 번뇌는 나쁘다고 하는 것,
중생은 나쁘다고 하는 것, 그게 번뇌상 중생상이에요.
그것만 없으면 모든 게 다 있는 그대로 본질에 나툼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 본질이 법신불이고 있는 그대로 나투는 것은 화신불이잖아요.
(* 나투다 : [불교] (부처가 자신의 모습을) 깨달음이나 믿음을 주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타내다. - Daum 어학사전)
모든 것이 다 화신불로 다 변한다. 화신불의 숫자가 몇 개에요, 여러분?
우리 그러잖아요. 1,100억 화신을 대표해서 석가모니불 그러잖아요.
석가모니라고 하는 한 인간으로 태어난 분이 대표를 하는 것은 1,100억 화신.
1,100억 화신은 에브리싱(everything)이란 말이잖아요.
에브리싱이 화신불이다. 그 깨달음을 언제 생기는가?
우리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그 깨달음이 온다.
이게 지금 지혜의 정수예요.
여기서 지금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25:34
<우리의 상담이 끝났을 때 나는 또 한 명의 인간 존재 안에서
현존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어 기뻤다.>
보세요.
< 우리가 인간 형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의식의 차원을
이 세상으로 가져오기 위함이다. >
의식의 차원이 뭐예요, 여러분? 의식의 차원.
지금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게 부처예요.
그러면, 의식의 차원을 이 세상으로 가져오기 위함이다.
이 말은 괴로움 속에서 헤매던 사람을 도와줘서 그 사람의 의식이
깨어나게 하면 또 하나의 의식의 차원이 나타난 거잖아요.
요게 진정한 부처고 이게 부처의 일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 이게 부처의 일이 되어서
< 우리가 인간 형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의식의 차원을 세상으로
가져오기 위함이다. 또한 고통체와의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의식의 빛을 가져옴으로써 그 고통체가 줄어드는 것도 나는 목격했다. >
그러니까 참 불사를 하자. 우리가 이번 생에 태어난 이유는 불사를 하자.
어떤 게 불사냐?
깨어나는 의식이 불(佛)이다 이거예요.
의식이 깨어나는 그것을 내가 나한테서 하고 몇 사람을 도와주는 것,
이것이 불사(佛事)다.
그리고 이거 하러 우리가 이번에 인간의 몸을 받아서 이렇게 나왔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의 몸을 둘러 쓴 의식이다.
인간의 몸을, 인간의 몸을 불교에서는 인두겁이라 그래요.
우리는 누구인가? 인두겁을 쓴 의식이다.
이번에 왜 인간의 탈을 쓰고 이렇게 왔는가?
이것을, 이 사실을 모르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깨닫고 그 깨달음을 함께 공유하려고 나왔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에 의식의 빛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지금 이런 공부를 했다.
그러면 이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이 있어요.
이런 공부를 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하나의 조건이 있었어요.
그 조건이 뭐냐? 고통이었어요.
고통이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의 고통을 그렇게 절감을 했고
예수님은 뭐 십자가에 달린 고통을 정말 온 몸으로 이렇게 보여줬고,
공자도 아주 힘들었어. 여러분, 공자님의 인생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어요. 논어에 그런 말이 나와요.
공자가 스스로를 보고 상가집에 빌어먹은 개가 나구나.
자기를 써주는 데가 없어가지고, 그 작은 나라들에서, 그 중국에 그 넓은 땅에서
자기를 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가지고 그 빌어먹는 개처럼 다닌 거에요.
그러니까 참 인생은 고통이에요.
근데 놀라운 일은 그 고통을 지혜로 바꾸는 연금술,
고통체가 강한 사람일수록 깨달음도 크다는 거에요.
이 책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잖아요.
여러분, 다 고통 때문에 여기 오셨지요? 그렇잖아요.
근데 알고 보면 그 고통 때문에 우리가 이런 지혜를 이렇게
피부로 와 닿게 느끼고 있다.
이것이 참 묘미예요. 그죠? 인생의 묘미.
고통을 바꾸는 연금술이 있다는 이 사실, 예.
29:56
< 부모는 종종 아이의 고통체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물론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자기 자신의 고통체를 다룰 줄 아는 가이다. >
이 말도 중요해요. 여러분이 만약에 자식의 고통체를 다루려면
자기 고통체를 다룰 줄 알아야 자식을 다룰 수 있죠. 그렇죠?
30:21
< 자기 자신의 고통체를 인식하는가?
충분히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래서 고통체가 활성화 되었을 때 그 감정이 생각으로 스며들어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바꿔놓기 전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
부모는 자기가 먼저 할 줄 알아야 아이들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자기가 안 되는 걸 자기가 옆으로 걸으면서 너는 바로 걸어라, 안돼요.
그 점을 먼저, 대신에 내가 되면 아이들은 본 받게 돼 있어요.
지혜가 나와서 아이를 도와줄 수 있게 되죠. 자, 또 넘어가겠습니다.
31:13
< 모든 불행이 고통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불행도 있다.
당신이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행이다. >
그러니까 현제의 순간에서 벗어나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금이 순간을
거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행, 현재를 거부하기 때문에,
현재와 싸우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행.
<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이며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면 조건 없이 예라고 말할 수 있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불행을
창조하는 일도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저항이 사라지면 삶,
그 자체가 당신에게 힘을 가져다 준다. >
그래서 그 톨레가 끊임없이 현실을 현실에다가 노하지 말라.
현실에다가 예스를 하라. 받아들여라. 현실이 불행일지라도 그걸 받아들여라.
그러면 거기서 변화가 생긴다. 거기서 변화가 생긴다.
그런 이야기가 또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음 넘어가서 고통체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고통체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지금 이야기했지요.
바라보고 거리를 두고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라.
고통체가 내가 아니라는 거에요. 자각하라. 나는 무엇인가.
고통체를 바라보는 이 순간 깨어 있는 이 의식이다.
여러분, 의식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거라고요, 지금. 그게 나다.
근데 그 나 속에서 인연 따라 고통체는 생기잖아요.
생겼다가 사라지는 손님들이다.
항상 있는 것은 주인이다. 나는 주인이다. 주인인 의식이다.
근데 고통체는 찾아오는 손님이다.
여러분, 손님은 잘 대해 줘야 되나요? 손님을 물리쳐야 되나요?
아니 호텔 경영하시면서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고통체 생각 감정들이, 여러분 생각 감정을 중생이라고 해요.
인간을 중생(衆生), 무리 중(衆) 자, 날생(生) 자를 쓰잖아요, 중생.
중생의 뜻은 뭐냐면, 이 안에 이 안에 무리가 살아.
그 무리가 뭐냐? 생각들과 감정들이에요.
고통체들이에요. 함께 살아요. 그래서 중생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주인이 딱 깨어 있으면 그것들이 왔을 때
여러분, 그 생각 감정들이 왔을 때 이걸 거부하면,
호텔이 부자가 됩니까, 쪼그라듭니까? 손님을 거부하면.
근데 받아들이면 호텔은 풍성해지잖아요.
그래서 나는 주인으로서 풍성한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
이 대목에서 이것 한 구절 더 배웁시다.
일본의 다쿠엔 선사(1573- 1645) 의 시,
다쿠엔 선사를 놀리느라고 아랫마을 청년이 누드화를 딱,
그 유명한 기생의 누드화를 딱 그려와 가지고 여기다가 시를 한 편 적어주세요.
그러니까 다쿠엔 선사가 사람들이 놀리려고 가져왔는데 선사가 뭐라고 썼냐면,
"부처는 진리를 팔아먹고 조사는 부처를 팔아먹고,
선사들은 조사를 팔아먹는데 너는 5척 단구의 몸으로,
5척 단구의 몸을 팔아서 뭇 중생의 욕망을 적셔주는구나."
그렇게 썼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팔아먹는다 이거예요.
다 팔아먹는데 기왕이면 모든 사람이 욕하는 그 술집 여자가
알고 보면 관세음보살일 수가 있다.
그 몸을 팔아서 그 욕망들을 이렇게 잠재워주는, 그러니까 그게 참
사람들은 욕을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게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그 거부하는 우리가 그렇게 싫은 생각,
감정을 받아들일 때 변화가 온다.
지금 그 제가 인사동 선방이라고, 여기 계속 인사동 선방인데
여기 지금 회원이 100명 되시는 지금 하나의 그 사이버 지금 회원이거든요.
근데 거기서 저녁에 화요일 금요일 9시에 각자 안방에서 이렇게
밴드 라이브로 참선을 같이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근데 한 분이 질문을 하신 거에요.
염불할 때는 초롱초롱하게 염불을 잘하는데 참선하면
왜 이렇게 졸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가 그 질문을 해오셨길래 제가 답변을 공개적으로
그 시간에 하겠습니다, 했거든요. 근데 지금 내용이 뭐냐면, 보세요.
여러분이 제일 활동할 때가 언제냐면 실험해 보세요.
제가 내기할 수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언저 제일 말똥말똥한가? 고스톱 칠 때 제일 말똥해.
뭔가를 정해놓고 하면 말똥말똥해요.
그런데 참선 같이 본질로서 깨어 있으려고 하면 에고가 득달같이 방해를 해요.
그래서 졸리게 만들고 잡념을 만들고 해서 이걸 방해하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평소보다 잡념이 많이 일어나고 평소보다 많이 졸린다,
이 말은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에요.
그만큼 방해가 심하다는 거에요. 문제는 뭐냐면
참선하는 방법은 그렇게 잡념이 많고 막 졸리고 할 때,
아니 다른 거 할 때 염불할 때나 이런 거 없는데 왜 참선하면
이게 이런 게 생기는가, 하는 질문은 비밀은 뭐냐면
더 사랑하라고, 받아들이라고, 더 번뇌 많이 일어나면
번뇌를 받아들이면 될 거 아니예요?
번뇌나 졸리는 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면
걔네들이 나한테서 변화를 일으킨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번뇌하고 졸음을 없애는 방법은 뭐냐면
그것을 없애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일어나라라고
허용하는, 수용하는 거에요.
계속 이 책에서, 이번 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그러니까 질문은 나는 좀 참선하면서 잡념도 없고 졸리지도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가.
오히려 보통 때보다도 참선하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어떡할까요? 하는 질문은, 그 질문은 너무 당연한 거고
거기에 대한 답은,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나빠서 없애려고
하고 있는 그 마음을 돌아보라는 게, 그거 돌아보라고
그렇게 많이 일어난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해되세요? 받아들이면 어떻게 돼요?
그럼 어떠냐 이거예요. 받아들이면 싹 사라져요. 이게 희한한 거야, 여러분.
야수를 사랑하면 왕자로 변하는데 없애려고 하면 더 야수로 변해.
그렇지 않나요? 이 참 묘하잖아요, 이치가.
그러니까 지금 이게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그런 질문이 난다고, 내 안에는 깊은 슬픔이 있는데 어떡할까요?
나는 지금 앉았다 하면 조는데 어떡할까요? 왜 이렇게 잡념이 많을까요?
이런 질문들이 수없이 많이 있잖아요. 답이 뭐예요?
그 현실을 싸우지 말고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거에요.
그게 십자가다 이거예요, 십자가.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다 이거예요.
그 십자가를 내가 물리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일 때 not my will but time
비단 받아들일 때 놀라운 부활이 일어난다.
잡념도 부처가 되고 혼침도 부처가 되고 졸고 있는 나도 부처가 되는 거에요.
온 세상이 다 부처예요, 받아들이면, 분별하지 않으면.
근데 우리는 끝까지 분별해 가지고 좋다 나쁘다 해가지고 없애려고
그렇게 기를 쓴다. 그러니까 모든 질문이 지금 그런 맥락이다.
그 질문 뒤에는 뭐에요?
앉았다 하면 다 깨어 있는 그 에고의 욕망, 그거 아니다 이거죠.
진짜 깨어 있으려면, 받아들이면 깨어 있는 비결이 거기에서 나온다.
지금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도 이해되시죠?
예, 자 그렇게 그런 식으로 이게 진행이 된다.
다음에 나를 깨우는 고통체, 나를 깨우는 고통체,
그러니까 고통체를 받아들이면 내가 깨어난다 이런 말이네요.
41:38
<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는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 행성
지구 역사상 최초로 의식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인가? 당신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의 선택이예요.
에고를, 계속 나를 지배하는 것이~.
< 에고가 계속 나를 지배하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주인인 의식이 깨어날 것인가? 이 선택은 나한테 있다.
그러면 그 선택을 하는 것이 누구인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 의식이다. >
이런 말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 이런 말이 중요한 이유는, 보세요.
지금 여러분께서 제가 지금 우리가 지금 수업 중이니까
여러분이 딴 생각 안 하고 계시다. 딴 생각 안 하면 과거 없고 미래 없다.
그럼 지금 이 순간밖에 없잖아요.
그럼 이 순간 깨어 있는 이 느낌은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잖아요.
지금 이렇게 깨어 있잖아요. 그럼 깨어 있는 것이 의식이 깨어 있잖아요.
아니 몸이 깨어 있나요? 의식이 깨어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아니 저는 가끔 가다가 그런 생각을 해요.
많은 사람들이 좀 많이 나오는데 이상한 게 뭐냐면, 지금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이렇게 지금 여러 명 모여 있는데, 지금 이렇게 살아서 말하고
움직이고 하는 것이 의식이 하는 거 아닌가요?
몸뚱아리가 스스로 하나요? 얘는 옷, 인두겁이라고요.
이것은 그냥 껍질이에요, 껍질, 한 마디로 껍질.
껍질이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요? 알맹이가 움직이잖아요.
그럼 그 몸에 알맹이가 지금 의식이다 이거예요.
이거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놀라운 거는 이 많은 인파가 이렇게 지나가는데
그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데 하나 하나가 의식인 거에요. 아니에요?
무엇이 움직이는 거에요? 아니 몸뚱아리가 스스로 움직이는 거에요? 아니잖아요.
막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지나가면서 두리번 두리번하고 사람들이 지나가잖아요.
하나 하나가 의식이잖아요.
지금 살아 있는 의식이 흐르고 있잖아요. 근데 놀라운 점은 뭐냐면,
자기가 의식인 것은 몰라요. 저 사람들은 자기가 의식인줄을 꿈에도 몰라요.
그리고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그냥 살아. 아니 너무 이상해요, 저는.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지나가는데, 아니 저 사람 하나 하나가
의식인 거에요, 그냥.
자기가 알건 모르건 그 사람의 본질은 그 사람을 지금
움직이고 보고 듣고 웃고 하는 것은 의식이 하고 있어요.
너무나 분명한데,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자기가 의식인 줄을 몰라요, 정말.
그리고 모른 채로 그냥 살고 있어. 안 그래요, 여러분? 저는 좀 이상해요,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자기가 의식이란 걸 모르고, 그리고 자기가 누군지도 몰라.
적당히 그냥 살고 있어. 되게 신기해요.
지금 공유되나요?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신 차리자 이거예요.
그 속에 나도 마찬가지야. 깜빡하면 그냥 그런 식으로 살아 버려.
그리고 세월이 훅 가버려요. 그렇죠. 대부분이.
여러분, 낱말이 아니라 내가 의식이란 걸 알면 이 몸을 컨트롤 하는 힘이 생겨요.
어떻게 안 생기겠어요, 여러분? 아니에요?
이걸 모르면 그냥 저렇게 그냥, 대부분의 99.9%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요양병원 가잖아요,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 버렸잖아요, 요새.
그러면 나라고 안 그러겠느냐구요.
그런데 내가 의식인 줄 알면 주도권이 나한테 생기는 거에요.
몸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우리가 앉아 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내가 나를 주도하는 그걸 끝까지 가져간다는 그런 상징으로서
그런 것도 옛날 사람들이 보여주기도 했다 이거예요.
그렇게 자기 정신을 가지고 자기가 누구인 채로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사실은 그렇게 깨닫고 나면, 나는 의식이면 의식은 안 죽잖아요, 사실은.
의식 안에 이 모든 것이 생기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런 투철한 의식을
우리가 깨어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
그러니까 이 문제는 중요하다 이거예요.
젊을 때 공부를 해 놓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 인생이 길어졌는데 깨어서 자기 주도권을 가지고 자기 행, 불행을
스스로 결정하는 그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인간한테.
놀라운 일은, 젊은이한테 물어봤어요.
이런 공부를 학교에서 했느냐? 안 했죠. 그죠?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이런 공부를 안 했잖아요.
왜 안 했는가. 학교 교육을 지배하는 것들이 에고라서. 꼰대들이라서.
꼰대라는 말은 에고가 나이 들어서 주도권을 가지면 꼰대가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그런 세상인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깨어서 이런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인연이고, 행운이고,
젊은이들이 이런 행운을 가지면 정말 좋아서 굉장히 기뻐요.
그 젊은 애들이 깨어나는 모습이.
48:05
< 당신은 누구인가.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 의식이다. >
그래서 지난 시간에 기억나세요?
제가 적었는데, 톨레가 그랬잖아요.
당신 즉 의식, 마음 즉 생각, 요 두 개를 구분하는 거,
생각하는 마음을 보는 것은 의식.
나는 누구인가. 보는 의식이다. 그래서 의식으로서 깨어나기.
이게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다음에 고통체로부터의 자유, 이것도 참 중요해서,
여기서 이제 톨레가 하는 이야기는 그거에요.
고통체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고통체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여기서 저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라고 생각을 해요, 일반적으로.
돈오는 시간이 안 걸려요. 돈오는 말하자면,
내가 누구인가, 해서 여러분, 돈오의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자, 중요하네요.
돈오의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돈오는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든지, 아니면 이 질문을 받든지,
해 가지고 이 질문이 자기 생에 1번이 돼야 해요.
내가 누구인가.
말로 하면 지금 움직이는 의식이다.
근데 의식이라는 걸 아는 거 하고 실제로 돈오,
의식이 깨어나서 의식이 자기가 의식이라는 걸 아는 거하고는 달라요.
지금 우리가 "아, 나의 본질은 의식이다."
하는 건 생각이에요.
일반인들이 이렇게 이런 말을 들어서 "아, 의식이 본질이구나."
하는 건 죄송하지만 생각인 겁니다. 에고의 생각인 거에요.
에고의 생각을 믿었다가 기분이 좋아가지고 몇 달을 기분 좋게 살다가
그 이후에 에고가 본색을 드러내서 우울증 빠지는 사람들 굉장히 많아요.
"아, 의식이 본질이구나." 에고예요. 그냥 100%.
근데 그때 기분이 좋아 가지고 막 들떠 있으면 나중에 그 에고가
본색을 드러내서 우울증에 빠져요.
자, 그래서 한 번 이렇게 꽉 막혔다가 정말 의식이 무엇인가,
말로 하지 말고, 정말로 의식이 무엇인가 하는 이 질문이
자기의 1번이 되어서, 정말 궁금한 거, 정말 궁금한 거
그러다가 답이 나오는 게 진짜라는 거에요.
그것이 돈오에요.
그러니까 돈오는 생각으로 이거구나 이게 아니고,
정말로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데 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치명적으로 스스로 일으키든지 아니면 질문을 받든지 해 가지고
꽉 막혔다가 이것이 터져야 되지, 그냥 이런 말 듣고
아, 에고가 "본질은 의식이구나." 하면 에고가 그러고 있는 거에요.
이 점은 반드시 한 번 여러분 짚어서 정말로 무엇인가
이 문제가 꽉 막혔다가 터져야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에요.
이게 돈오의 기준이에요. 이게 중요하고,
근데 이것으로써 에고의 습관을 극복할 수는 없어요.
에고의 습관을 극복하려면 지금 현재에 깨어 있기라고 하는,
이것이 정말로 힘이 붙어야 됩니다. 현재에 깨어 있는
이 힘이 정말로 붙어야 됩니다. 이것도 안 쉬워요, 해보시면.
아 이게 의식이라는 것을 자각을 해도 또 다시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고, 그래서 그 점을 극복하는 것은 점수,
그런데 순서는 돈오 이후에 점수에요.
돈오 이전에 점수는 의미가 없어요. 힘이 없어.
그래서 제일 공부에 첫 번째 타겟은 돈오가 돼야 돼요.
돈오는 간단해요. 뭐냐? 지금 제 말 들립니까?
듣는 게 뭐냐? 그 질문에 내가 답하려고 하면 막혀요, 여러분.
막혀요. 의식입니다. 생각일 뿐이에요.
그런 생각이, 생각으로 답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막히게 되어 있어요. 그 막힌 것을 한 번 뚫어야 돼요. 이게 돈오예요.
죽고 난 다음에는 에고의 습관을 이제 이겨내야 되는데
항상 그것은 현재에 깨어 있기, 현재 깨어 있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일반인이 나는 현재에 깨어 있어야지 한다고 해서 잘 되느냐?
어느새 딸려가서,,, 어떤 스위치, 하나의 방편이 필요해.
그 방편을 '화두'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한 번 자각이 되면 지금 깨어 있는 이것, 깨어 있는 이것을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장 간단한 기본 화두, '이 뭣고' 하는
이것이 자기한테 일상에서 계속 '이 뭣고'를 통해서 챙기는 것,
이해되세요?
화두가 없으면 나는 깨어 있어야지 하는데 잘 안 된다 이거예요.
어느새 그냥 어느새 그냥 딸려가 버리고, 딸려가 버리고.
그래서 뭔가가 필요하다.
그게 그래서 생긴 게 화두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여튼
이것이 무엇인가를 해결한 다음에는
이것이 무엇인가가 하나의 스위치가 되어 가지고
계속 자각한 상태가 이어지도록 계속 하는 것,
낯설은 것을 익게 하는 것,
그게 하나의 일관된 공부법이라서 이것이 무엇인가로 뚫어내고
뚫은 다음에도 이것이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챙겨서 이것을 완성 시켜 가는 것,
화두 하나로 초지일관을 다 꿰뚫어서 공부하는 것, 요게 지금 머리 좋은
한국 사람들이 해보니까 이게 좋더라라고 해놓은 거에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이 화두로 다 설명이 돼요.
이해되시죠? 그래서 한 번 이렇게 또 한 번 결론을 내려드리면,
이 책을 여러분, 정말 좋은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돼요. 정말 좋은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고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화두들락, 화두는 이 책 안 읽어도 초지일관 딱 하나,
이 뭣고 하나 가지고 지금 살아 있는 이것이 이 뭣고, 그리고 이것에 대한.
처음에는 뚫어야 되고 막혀요. 뚫어야 되고, 뚫은 다음에는
끊임없이 '이 뭣고'를 챙겨서 저 같은 경우는 '뭣고'가 떨어져요.
뭣고를 안 해도 돼. 그냥 '이'하면 이거야.
자각이 돼. 의식이 의식을 의식해요, '이' 하면.
의식이 의식을 의식해요. 그러면 끊임없이, 남은 몰라도 속으로는
'이'를 챙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게 지금 이 에고를 결국은 극복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해 보고 하는 소리에요.
그렇게 지금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56:21
< 고통체를 느낄 때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실수에 빠지면 안 된다.>
이 말이 뭐냐면 고통체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잘못된 게 아니예요.
깊은 슬픔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예요. 당연한 거에요.
부모가 돌아가시면 슬픈 거지.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이걸 인정하자. 있는 그대로.
< 그리고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만드는 것, 에고는 그것을 무척 좋아한다.
앎은 현실의 받아들임이 뒤따라야 한다. >
자,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나한테는 슬픔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해야 한다.
< 그밖의 것들은 그 앎을 다시 흐려 놓을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순간에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느끼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의 일부이다.
있는 그것에 반론을 던질 수는 없다. >
있는 그것은 현실이에요. 현실에서의 생각 감정인데
<이것에 반론을 던질 수가 없다. 아니 반론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반론한다면,
반론하고 싸운다면, 당신이 고통받을 뿐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이미 일어났고 완강해요. 여러분 현실은 완강해요.
저 말 음미해 보세요.
현실은 완강해요. 이 말은 뭐에요?
내가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현실은 안 바뀌어요.
완강해요. 왜냐? 절대에요, 절대.
유니크(unique)라는 말 아세요? 유니크. 하나뿐인 절대.
절대 중에서도 하나뿐인 것이 절대인 거에요.
현실은 이것뿐이에요. 절대라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지금 이것과 싸운다. 싸우면 너만 고통이다.
요 대목이 톨레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중요한 아주 이야기에요.
< 받아들임을 통하면 당신은 넓고 광대한 본래 자신이 된다. >
정말 중요한 거에요.
보세요. 거절하면, 보세요
생각 감정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그러니까 슬픈, 깊은 슬픔이 있다.
내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싫다. 거절하면 어떻게 돼요?
생각 감정 그 슬픈 깊은 슬픔하고 내가 두 조각이 나요. 맞아요?
근데 본래 의식은 나누어지는 거에요, 나눌 수 없는 거에요? 없잖아요.
본래 나눌 수 없는 것을 내가 이걸 거절함으로써 나누어지는 거에요.
분별, 이게 모든 악의, 고통의 원인인 거에요. 분별, 이분법 이분법.
그러니까 지금 현실을 수용하는 게 왜 중요하냐.
현실을 수용하면 본래의 나로 돌아가요.
본래 나인 의식은, 우리들의 순수의식은, 항상 전체지요.
나누어지지 않잖아요. 항상 하나잖아요.
근데 그 하나에서 벗어나면 고통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어떻게 벗어나는가?
나쁜 얼굴을 하고 나타난, 부정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난 생각 감정 고통,
이런 것들을 내가 거부하면서 나는 이분법의 세계로 떨어지는 거에요.
그러면 그걸 내가 받아들이면 어떻게 돼요?
받아들이면 나누어지지 않아요.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거에요.
본래의 나로 돌아가 있으면 자각이 일어나. 이게 나구나.
내가 거부하지 않는 세상, 여러분, 내가 무엇이라도 거부하고 거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고 나는 이거 싫어하지 않는 것 그 상태,
그게 나의 본질이라는 거에요. 그 깨달음이 거기서 일어난다는 거에요.
지금 전체의 핵심 포인트는 모든 업장에 근본에는 선악과가 있다.
선악과를 불교식으로 말하면 시비심이에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 .
옳다 시, 그르다 비, 이게 선악과에요.
그래서 나는 지금 끊임없이 시비심을 일으켜서 좋다 나쁘다 하고 있다는 거죠.
그게 지금 내가 극락정토를 살지 못하는 원인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해결하는가.
진짜 간단한 거는 뭐냐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내가 받아들일 때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전체가 다 통합이 된다. 하나가 된다,
본래 상태로 돌아간다. 이게 지금 비결이다 이거예요.
예수님은 그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누지 않았다 그거예요.
그게 부활의 뜻이다. 그게 부활이다.
무엇으로 부활하는가. 전체로 부활하는 거,
이게 부활의 뜻이다 이거지요.
전체가 < 참 나 > 아닌가요? < 참 나 >로 부활하는 것,
그러니까 에고가 죽고 에고가 전체로 바뀌는 이 놀라운 연금술.
예, 그것을 이제 십자가가 상징하고 있다.
그것이 받아주는 메시지는 뭐냐?
우리가 일상에서 이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것은,
여러분 병이 찾아오고 자식이 속 썩이고 화상이 고집 피우고 있잖아요.
그런 것을 내가 항상 싸우고 있다 이거예요. 싸우면 이분법이에요.
갈등이 생겨요. 스스로 빠졌다 이거예요. 지금 그것을 알아차리자.
우리가 지금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나의 시비심, 분별심, 이분법.
근데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상을 추구하면서 지배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게 에고의 전략이었다, 알고 보면. 그것을 우리가 알아차리자.
자, 그래서
< 받아들임을 통해서 당신은 넓고 광대한 본래의 자신이 된다. >
이 말도 우리가 소화가 됩니다, 그죠?
< 즉 전체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이 아니다. >
조각을 불교에서는 모양 상(象) 자를 써요.
조각난 것을, 그래서 무슨 상, 무슨 상 하는 것은 조각,파편, 아상,
그러면 나라고 하는 조각, 무슨 상, 중생상 그러면 중생이라고 하는 조각,
그 조각난 이 세상을 이 세상을 조각으로 만드는 것이 상이 생겼기 때문에.
1:03:31
< 그래서 더 이상 하나의 조각이 아니다.
에고는 스스로를 하나의 조각으로 인식한다. >
이 말도 이해되지요? 자기가 자기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파편인가, 아니면 전체인가. 파편이죠, 지금은.
그렇지 않나요? 파편 아니에요? 여러분 전체에요?
다시 다른 질문을 하면 여러분 밴댕이 속이에요, 하늘 같이 속이 넓어요?
(하늘 같이 넓어요.ㅎㅎㅎ) 희망사항, 희망사항,
자기한테 물어보고 아, 내가 지금 좁구나. 내가 나도 모르게
지금 아상에 집착하고 있구나.
그런 걸 자각을 해서 이것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그렇게 되어야지 한다고 해서 안 돼요.
고치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현실을, 부정적인 현실을
내가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지 그 분리대, 분리대를 걷어야 돼요.
분리대를 걷는다.
< 이제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나타나면
그것은 신의 본질과 하나이다. >
이게 깨달음이에요. 그 분리를 벗어날, 분리를 없앨 때
진정한 나의 본질이 드러나는데 문제는 나의 본질은 신의 본질과 하나다.
여기에 모든 깨달음의 결론이에요. 그래서 참 그동안에
저도 불교를 믿으면서 '번뇌 즉 보리'가 참 소화가 안 됐거든요.
여러분 안 그랬어요?
번뇌 즉 보리다. 참 소화가 안 됐거든. 모순이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 안에다가, '번뇌 즉 보리'에다가 이렇게 한 글자를
넣고 싶어. 번뇌를 받아들이면 보리다. 번뇌를 받아들이면 보리다.
근데 우리는 번뇌를 죽으라고 싫어한다 이거예요.
참선하면 번뇌가 난다. 모든 사람이 싫어해요. 이해되세요?
거꾸로 하고 있다 이거예요.
번뇌가 많을수록 받아들이면 그 모든 번뇌가 에너지로 변한다.
아, 이것 참 연금술이 기가 막힌 거에요.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