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밴드의 개요
1996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인디 록밴드.
2. 밴드의 상세
한국 모던 록 계열 인디밴드의 모태이자 영미권의 얼터너티브 록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음악성을 가진 밴드이다.
대표적인 명반으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2집 후일담,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있으며, 특히 5집의 나이 40을 넘긴 음악활동의 후반기에 전성기 시절의 작품을 비평적, 상업적으로 뛰어 넘었다고 평가받는다.
참고로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명은 1980년대에 나온 동명의 일본 로망 포르노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그 영화는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의 한국에서 야한 비디오를 틀어주는 만화방에서 인기가 있었던 일본 에로 영화이다. 학창 시절 만화방에서 인상깊게 본 그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밴드명으로 삼은 것이다.
에로 영화에서 밴드명을 따온 케이스로는 플레이밍 립스가 있다.
3. 밴드의 역사
3.1. 결성 초기 (1993 ~ 1995)
1990년대 초반 당시 하이텔 음악 동호회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많았는데 음반가게 사장 이석원은 이러한 음악인들을 엄청나게 까는 네티즌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던 이석원은 활동하던 PC 통신의 메탈 동호회 '메탈동'에서 하이텔 동호회 시샵인 류기덕과 함께 '모던 락 소모임'이라는 모임을 만드는데 실제 모임이라도 열리면 자신이 음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발각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게시판에 자신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고 구라를 쳤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구라가 먹혀들었다. 참고로 밴드명은 이석원이 어렸을 때 전파상 아저씨가 이석원 모르게 끼워준 성인영화 비디오의 제목에서 따왔다. 내용보다는 이름이 예뻐서라고 한다.
이후 꾸준히 구라를 치던 이석원은 KBS 라디오 방송인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출연해서 공식적인 구라를 쳤고, 류한길이 키보드로, 류기덕이 베이스로 합류하면서 가상의 밴드에 멤버까지 두게 된다.
참고로 이들 모두 악기 연주에는 문외한이었다. 재밌는 점은 이석원만 밴드 리더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실제로는 악기 연주를 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연주자라고 이석원에게 구라를 쳐서 밴드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즉, 멤버 전원이 서로를 속인 것.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에 끝날 뻔 했던 이 사건은 이석원과 윤병주의 인연으로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993년 이석원의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윤병주와 이석원은 친구가 되고, 윤병주가 속한 노이즈 가든이 1994년 가을 제1회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서 <Rain Of Compromise>로 우승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석원이 진짜 음악인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결국 윤병주와 주위의 권유로 이석원은 음악을 시작하게 되고 이즈음 팔이 길다는 이유로 유철상을 드럼으로 영입해서 4인조 밴드를 완성한다.
당연히 출발은 쉽지 않았다. 윤병주가 이석원에게 기타를 가르쳐준다고 나섰을 때 이석원은 코드 하나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노이즈 가든의 이상문은 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악기 실력을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그들의 첫 합주는 후에 너바나 트리뷰트 앨범에 수록하기도 한 너바나의 'Come As You Are'였는데, 이석원이 기타 인트로를 연주할 실력이 못 되어서 베이스를 맡은 류기덕이 대신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어느 펜션에 갇히듯 합숙 훈련을 거쳐 그나마 들을 만한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 올린다.
그렇게 합주를 하던 중 이석원은 다시 전영혁의 음악 세계에 나갈 기회를 잡는다. 윤병주는 이석원에게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연주를 할 것을 권유했고, 이석원도 당시 실력으로는 밴드가 타 밴드의 커버라는 기준이 있는 음악을 하기엔 어려웠고, 애초부터 홍대거리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연주력과 원곡의 재현도에만 중시한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FUNNY AFTNERNOON'과 '로랜드 고릴라'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나간 전영혁의 음악 세계에 이 노래를 틀었다.
특이한 이름과 그 유명한 악플러 이석원이 이끄는 밴드로 관심받던 “언니네 이발관”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자 음악인들의 관심은 폭발하였고, 기타리스트 정대욱도 이 라디오를 듣고 감동하여 밴드에 합류하였다.
이렇게 한낱 가상의 밴드였던 언니네 이발관은 무려 5명의 멤버들과 함께 1995년 7월 29일 홍대 클럽 드럭에서 데뷔 무대를 갖게 된다.
3.2. 언니네 이발관 1기 & 2기(1996 ~ 1999)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는 홍대씬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다. 당시만 해도 홍대씬에는 너바나와 메탈리카를 필두로 한 커버곡들로 가득했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최초로 셋 리스트를 자작곡으로 채우며 떠오르는 루키이자 다른 밴드들의 견제 대상이 된다.
1996년 2월 밴드는 첫 데모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하고, 이 데모는 대형 기획사의 손으로 들어가 밴드는 금전적 지원을 등에 업게 된다. 그들은 영국까지 날라가 런던의 메트로 폴리스 스튜디오에서 유명 엔지니어 이안 쿠퍼에게 마스터링을 받아 1996년 10월 데모와 동명의 정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한다.
동시대의 얼터너티브 록을 한국에 도입하는 등 음악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결과물을 담고 있었고, 이후 수많은 인디밴드에 영향을 주면서 한국 인디신을 형성한 모태가 되었다.
같은 1세대인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부터 언니네이발관에 자극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고, 이후 이발관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갔다.
1집의 성공 이후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간 류기덕, 흑인 음악에 너무 심취한 유철상, 데이트리퍼라는 테크노 뮤지션으로 따로 독립한 류한길 그리고 고3 신분으로 수능을 치러간 정대욱이 모두 팀을 떠나고 이석원 혼자 만이 남게 되지만, 노이즈 가든에서 이상문과 김태윤이 합류하였고 정대욱이 연세대학교에 합격하면서 금의환향해 밴드는 다시 진열을 갖추고 1999년 2집 <후일담>을 발매한다.
하지만 '가요의 형식과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라는 이유로 스노비즘이 만연했던 당대 평론가들은 이 음반을 외면했고 상업적으로도 완전히 실패하면서 밴드는 무너지게 된다. 결국, 또 다시 정대욱을 비롯해 멤버 전원이 탈퇴하면서 이석원은 혼자 남게 된다.
3.3. 언니네 이발관 3기(2002 ~ 2006)
2집의 큰 실패 이후 이석원은 결혼 및 취직을 하고 밴드는 공백기이자 사실상의 해체 수순에 들어간다.
한편, 음악계에서는 뒤늦게나마 <후일담>을 주목하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집의 참신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듣기 쉽게 정제된 이석원의 멜로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적재적소에 배치된 정대욱의 기타 편곡의 조화가 뒤늦게 재평가받은 것이다.
그렇게 이전과 다른 높은 재평가를 받으며 이석원은 인디의 대들보로서, 당시 유일한 국내 인디락 페스티벌이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1에 밴드 존 도우의 기타리스트 이호준, 절친한 친구인 2기 멤버였던 이상문, 김태윤과 함께 초대되어 3년 만의 컴백을 하게 된다.
<유리>, <동경+보여줄 순 없겠지>, <어제 만난 슈팅스타> 총 3곡을 연주했으며 <동경+보여줄 순 없겠지>는 라이브 녹음 음원이 존재한다.
이후 일본의 아카사카 블리츠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며 음악인으로서 재기의 기회를 맞이하나, 왠지 모를 미묘한 위화감에 이석원은 새로이 모였던 멤버들을 해산시키고 다시 모 닷컴기업의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이석원은 3집을 작업할 마음이 없었지만 아픈 강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음악계로 돌아오고, 인터뷰 도중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던 모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3집을 낼 준비를 하게 된다.
3집을 내기 위해 이석원은 탈퇴했던 키보디스트 류한길과 2집 때 만들다 그만둔 전자음악을 다시 작업하면서, 새 베이시스트 정무진과 오디션을 보며 블랙메탈 밴드 출신의 드러머 전대정을 멤버로 맞게 되며, 날고 긴다는 홍대 인디씬의 멜로디 메이커들 중에서도 기타리스트를 오랫동안 뽑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극적으로 이능룡을 멤버로 맞게 된다.
마침내 언니네 이발관은 2002년 3집 <꿈의 팝송>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인디 씬 역사상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했으며, 평 역시 냉담했던 2집에 비해 따스했다.
하지만 이석원과 언니네 이발관은 2003년 8월 18일, 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상문이 윌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초 이석원이 이혼을 하면서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2004년 그들은 4집 <순간을 믿어요>를 이상문 헌정반으로 발매한다. 이 작품은 이석원이 자신들에 대한 팬들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형성을 띤 앨범이었으나 전작보다 부족하다는 엇갈리는 평을 받았다.
4집 발매 후, 정무진이 자신의 밴드를 위해 떠나고 이석원은 인사동에 카페 살롱 드 언니네이발관을 개업하게 된다. 결국, 밴드 활동에 비중을 두지 않는 이석원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이능룡이 팀을 탈퇴하고, 전대정과 이석원의 사이 역시 멀어지게 된다. 당초 이석원은 2006년 초 5집의 발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음반 제작은 휴지기에 들어간다.
이능룡이 탈퇴한 후 일부 공연에서는 정대욱이 언니네이발관의 기타 세션으로 대신 활동하기도 했으며,당시 방송 출연분 이능룡은 재주소년의 박경환과 함께 공연을 한적도 있다.
3.4. 언니네 이발관 4기(2007 ~ 2017)
그러던 어느 날 이석원에게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다행히 이들은 다시 뭉쳐서 5집인 가장 보통의 존재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석원의 광기에 가까운 편집증으로 인해 발매 연기가 계속되었다. 밴드는 2007년 12월에는 꼭 5집을 발매한다며 앨범 발매 기념공연을 위해 공연장까지 대관해놨는데, 앨범 발매는 다시 연기되었고 공연장 대관은 취소할 수가 없었던 관계로, 사상 초유의 나오지도 않은 앨범의 발매기념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밴드는 '아름다운 것', '산들산들', '가장 보통의 존재', '인생은 금물' 등의 곡을 선보였는데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는 가사가 상당히 달랐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발매일이 나왔다가 또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5집은 2008년 8월 8일 드디어 발매 되었다.
5집은 발매되자마자 2008년 최고의 한국 앨범으로 꼽혔으며 역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올해의 모던록 음반', '올해의 모던록 노래'부분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 현재도 1집, 2집에 버금가는 밴드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느리게 진행된 5집 작업에 지친 이석원은 당초 6집 음반을 2년 내에 빠르게 제작할 것으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상 이러한 계획은 계속 뒤집혔고, 6집의 제작 기간은 계획 외로 상당히 길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2010년 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던 음반은 마지막 정규 음반이라는 선언하에 2017년 6월 1일 <홀로 있는 사람들>들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4. 밴드의 평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까지 이만한 멜로디와 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이석원 밖에 없다.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일부 리스너들은 국내 최고의 록 밴드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한다.
들국화 헌정 앨범에 '솔직할 수 있도록'을 트리뷰트 했는데 평론가 박모씨 왈 “나머진 다 폐기물 수준이고 들을 만한 건 언니네 이발관 밖에 없네.” 자기들은 이건 100%가 아니라고 낙담하며 제작사에 곡을 갖다 줬는데 뜻밖에도 잘했다고 칭찬받아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정규앨범 중에는 1,2,5집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직 우리나라 음악을 대상으로 한 리스트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몇 안되는 리스트에서 이 세 앨범은 빠지지 않고 선정되는 편이다.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 1집이 34위, 2집이 68위에 선정되었으며 1998년 동 리스트에서도 1집이 3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1년에 백비트에서 선정한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 국내 순위에서는 2집이 10위, 1집이 14위에 올랐으며 2000년대 베스트에서는 5집이 무려 2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8년에 다시 선정한 판본에서는 5집, 1집, 2집이 각각 50-84-90위로 선정됐다.
https://youtu.be/mfsJhu5P6ys
첫댓글 오래 되었어도 결코 오래되지 읺은 최근 락음악 같네요.
아쉽게도 음악이 좋있지만 상업성이 안되면 오래가기 어렵지요.
젊을때 무작정 밴드하다가 어려워서 때려치긴 했지만 밴드음악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