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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
진화 했습네다
-어느 탈북청년을 위하여-
권 자이
“나 완전 진화 했습네다.”
19세 탈북청년이 베나TV(탈북민이 탈북하게 된 동기, 북한에서의 생활, 대한민국에서 정착해가는 과정을 대담형식으로 하는 방송)에 나와서 북한에서 벌레처럼 살다가 이곳에 와서 인간 답게 살고 있다는 표현이다.
12세까지 보육원에 있다가 17세까지 꽃 제비로 살았던 그는 보육원에서 이가 엄청 많았는데 처음엔 망설이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잡아먹기 시작하니, 또닥또닥 소리도 재미있고 맛도 괜찮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먹었다고 하는데, 내 얼굴이 벌레 십은 형상이 되면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여자 MC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사고 한참 말이 없더니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더니 그는 뒤에 잇는 말이 이는 수 천 마리는 먹었어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남한에 와서 북한에선 상상도 못하던 계란이 한판에 5천 원 하기에, 원 없이 먹어 볼 거라고 삶은 계란 한 판을 다 먹고는 배가 너무 아파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배고파도 죽지만, 너무 먹어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벌레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이런 건가" 라고 생각 했다며 너무나 태연하게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눈물은 흘리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꽃 제비로 살았던 5년은 도둑질을 잘 해야 죽지 않았기에 평양을 제외한 전국에 장마당은 다 다녀단다. 이곳에 오니 도둑질 하지 않고도 하루만 일하면 한 달 동안 이팦(쌀밥)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북한에서 섞어 빠진 자본주의라 헐벗고 굶주린다고 세뇌 당했지만 이곳이야말로 자신에게는 천국이란다.
공자시대 도척이라는 자가 도둑질을 하도 잘하니 제자 자야가 “스승님 저 도척은 어떻게 저렇게 큰 도둑이 되었습니까?” 하고 물으니 공자 왈 “저놈 도척도 한생엔 저런 큰 도둑이 될 수 없지 수생을 거쳐 왔지”
첼리스트 장한나는 12세(1994년)의 나이에 첼로의 화신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 콩쿨에서 우승을 했다. 예선전에 첼로를 안고 무대로 걸어 나오는데 심사석에 앉아 있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사람은 없고 첼로만 걸어 나오는가" 했다 고 한다 첼로보다 아이의 키가 더 작았으니까.
도척이나 장한나나 몇 생을 진화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습(習)을 쌓았는가가 문제지 오래도록 쌓아온 습(習)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말을 하는 것이다. 다윈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도 지금은 고등 동물인 인간이라 잠재의식에 수 억겁의 시간을 거쳐 오면서 쌓아온 행위가,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고요히 주시해 보면 무의식중에 수많은 상념들이 꿈틀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시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주 작은 애벌레가 진화한 것이 아닐까?
17년 삶이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탈북 청년,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라면서 대학에 가면 사회복지학을 전공해서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희망을 주는 보육원을 하고 싶단다. 그곳에 있었으면 꽃 제비로 살다가 어느 수용소가 생의 종착역이었을 거라고 했던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목숨 걸고 한 유턴이니 거듭거듭 진화(?)하길 바란다.
흡혈귀 빈대
이형국
큰딸 방에서 “깍!”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먼저 쫓아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간다. 큰딸은 침대 위에 서서 방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내는 날쌔게 옆에 있던 책을 들고 내리친다. 책을 드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납작하게 눌리어져 있다. 벌레가 어디 택배물이나 장보기 주머니에 붙어 들어왔나 보다.
아내는 다시 퇴치 약을 뿌려 바퀴벌레를 없애겠다고 딸애에게 말하고 안심시킨다. 어찌 된 일인지 나를 비롯해 아이들 모두 벌레를 범 보듯 겁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징그럽다는 뜻이다. 벌레는 종류도 다양하고 큰 벌레부터 미생물까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기억하는 벌레는 어릴 때 속옷 고무줄과 계집아이들 머리칼 속에 기어 다니던 슬(虱)이란 한자 이름의 ‘이’가 생각난다. 나라가 가난하여 민중의 의식주가 안정되지 않았을 때 우리 몸속의 피를 빨아 먹고 살던 벌레이다. 그땐 청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벼룩이나 빈대가 방바닥 이불이나 벽을 점령하고 있었다. 시골일수록 심했으며, 나는 방학 때마다 고향에 가서 세작인 방이나 동무들 집에 놀러 가면 자주 접하는 일들이었다. 그때마다 보게 되는 그 청결치 못함으로 인해 아마도 벌레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인가 우리 사회에도 ‘인간 빈대’란 신생물이 등장했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중에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부(富)에 대한 본능이 있었다. 부의 축적이란 간단히 정의하자면 ‘남의 주머니의 것을 내 것으로 하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불법, 탈법적인 취득에 있다.
실례를 들면, 민란의 원인이 되었던 권력을 이용한 농민의 재산 수탈이나 노예화, 일제에 빌붙어 조선 민중의 피를 빨아먹었던 소수의 권력 앞잡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부자나 재벌에 빨대 꽂고 살아가던 권력층이나 사이비 권력층이 있었다. 하도급 업체나 거래처에 빨대 꽂고 잔돈 빨아 먹는 상위업체 담당자들도 있다. 무지를 틈탄 약삭빠른 자들의 종가 땅 팔아 챙기기, 길거리 노점상 등에 빨대 꽂고 거들먹거리는 양아치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있다는 거다.
각종 대부업체는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서민에게 폭력, 협박, 폭언 등을 자행한다.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다른 부류에 비하면 그런대로 봐줄 만도 하다. 왜냐하면, 지나치긴 하지만, 본인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신생물인 ‘인간 빈대’는 가장 추하고 악랄하고 잔혹하고 저질인 존재이다. 그들의 흡혈 대상은 재벌이나 부유층이 아닌 우리 국민, 우리 주민, 우리 이웃이다. 천재적인 사기꾼을 정점으로, 정치꾼, 썩은 법률가와 언론인, 회계사에 나름 똑똑하고 도전적인 양아치 조폭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죄란 걸 알면서도 이득을 위한 행위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자들을 일컬어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다. 이런 부류는 죄를 지으나 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니, 죄가 아니라 한다. 자기들 정도의 위치에선 범법이 되지 않는다고 자기방어를 한다
여러분들도 TV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눈을 피하거나 깜빡이지도 않으며, 미안한 감 하나 없이 보무당당하다. 더하여 무덤덤을 넘어 오히려 분노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어떻게 보면 꼭 두고 보자며 공갈치는 듯하다. 왜 그러겠는가. 자기들에겐 힘이 있다는 것이다. 뒤 백이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몇 마리 작은 빈대만 등판을 후려 맞고 피를 튀기고 사라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권력층에서, 각 관공서의 핵심부서에서 흘러나온 정보로 수많은 비합법적 ‘복부인’을 양산 시켰고 인간의 삶을 투자가 아닌 투기화시켰다.
군사정권 시의 재벌, 국회 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가리키는 ‘오적(五賊)’은 일제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니, 새로운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새로운 통치 이념을 구현을 목적으로 했다. 이는 통치 이념 문제이지, 수탈은 아니다.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은 재벌들에게 빨대를 꽂은 노태우 정권의 비리였고, ‘김현철 비자금 사건’은 대통령 아들이 직접 관리했던, 재벌과 전임 대통령이 엮인 빨대 이야기다.
그러나 서민이 직접적인 피해당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냥 별나라 얘기로 웃어넘겼다.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그 이후로 터져 나온 빨대 사건인 ‘바다 이야기 사건’, ‘BBK사건’,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을 거쳐 드디어 ‘LH 광명 시흥 투기 사건’이 발발된다.
일부 LH 직원의 내부 정보망을 이용해 비밀금지 조항을 위반하고 3기 신도시 예정지인 시흥 광명 땅을 친인척 명의로 대량 구매했으며, 땅에 용버들이란 나무 묘목을 과다하게 심어 ‘나무 알박기’로 비용보상마저 노렸다. 구매자금 대부분을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한 돈으로 시세 차익을 챙기려다 꼬리가 잡힌 사건이다. 여, 야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자가 연루되었고, 무주택자는 내 집 마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따지자면 어디 시흥 광명뿐이겠는가. 전국의 무주택자를 울린 사건들은 수두룩하다가 맞다. 이 또한 무자비한 흡혈 빈대들의 빨대 꼽기의 실례들이다.
요즈음은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으로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대권 후보까지 의혹 대상이 되어 있으니 이제 갈 대로 간 셈이다. 민간사업을 공공사업으로 바꾸어서는 지주들에게 시세의 반값으로 해당 토지를 수용했다. 이것이 빨대 꼽기의 출발로 그 지주들이 가져가야 할 지대(地代)를 공권력으로 가로챘다. 막대한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가운데 성남시정을 책임 맡은 관리인조차 빨대를 꼽아, 숙주가 빈사에 이르도록 빨아 먹었다는 것이다. 11만%의 이익률, 단군 이래 최대의 비리가 아닌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정의는 이긴 자의 몫이니, 앞으로 나타날 결과에 연연하진 않겠다. 단지 ‘인간 빈대’라는 벌레인 흡혈귀 빈대가 사라질 날을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인간이 소멸하여야만 그치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짐승만도 못한 일부 인간들을 글로서만 저주하고 증오할 힘밖에 없음을 한탄한다.
저는 벌레고 나는 사람이다
이광조
잠에서 깨어나자 말자 이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중에도 틈만 보이면 꿈틀거린다. 차를 몰고 사무실로 나오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한 마리만 설칠 때는 그나마 참을만 한데, 두 마리가 번갈아 들락거리면 산만해져서 아침 기분을 망친다.
어린 시절, 이것의 존재를 처음 느꼈을 때는 신기했었다. 이러다가 내가 소설가라도 되는 건 아닌가하며 들떴었고,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십 년 상종하고 나니, 관심은 커녕 귀찮기만 하다. 집중해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염치없이 기어들어오면 딱하고 기가 찬다. 육십 줄에 들어서니 이놈의 횡포가 더 심해져서 감당이 안 될 때도 많다. 내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눈치 채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때는 이놈을 좋게 봐서 데리고 놀았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 책상에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방해한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됐다. 한번은 같은 반 친구 누나가 학교에 우산을 가지고 와서 지나가던 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 하고 갔는데, 그녀가 남긴 황홀한 여운이 이놈들과 엉키면서 종일 수업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에 독서실에 가서 책을 펴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중간고사를 앞뒀던 긴박한 때에 감당이 안 되는 극성으로 내 공부를 망쳤던 그 일 때문에 이것의 본색을 확실하게 알아차렸고, 그 때부터 경계를 하면서 지냈다.
삼십대 중반에 종교 서적들을 접하면서 이것의 정체를 더 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불가에서는 이놈을 ‘윤회의 종자’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성이 있어서 이것의 지배를 받다보면 다음 생에도 끌려 다녀야 한다는 경계성 메시지가 담긴 그 규명이 더없이 마음에 와 닿았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때는 밤마다 새끼를 쳐가며 지분대는 놈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라즈니쉬 저서들을 탐독했었다. 그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일이지만 지나놓고 보니 인도의 명상세계를 재미있게 구경한 남는 장사였다.
이놈들을 완전히 거머쥐겠다고 애를 써본 일도 있다. 혀를 위 입천장에 갖다 붙이고 양다리를 서로 엉키게 꼬고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놈을 지켰다. 잠시 가만히 앉아 있어 보면 순식간에 이놈이 대가리를 내밀거나 눈치를 봐 가며 들락거리다가 기회봐서 눌러 앉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니가 하는 짓 다 알고 있다는 시늉만 해도 이놈은 ‘찔끔’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몇 번 해보고 나니, ‘지켜보면 사라진다.’는 그 말이 딱 맞는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시킨 대로만 하면 틀림이 없는 데, 문제는 계속 앉아서 이놈을 지키는 일이 여간 고달픈 게 아니었다. 다리가 저리고 몸이 뒤틀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일 골치 아픈 훼방꾼은 졸음이었다. 조금 지루해진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윗 눈꺼풀이 내려오면서 졸음에 끌려가곤 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자기네 발전의 제일 큰 적이 이 벌레들과 잠이라고 했다. 나야 재미삼아 몇 번 해봤을 뿐이지만, 사자나 호랑이도 아닌,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사냥으로 평생을 보내는 그분들이 좀 딱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원래 이것이 나쁜 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놈은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이놈이 개입해서 구상하고 설계하고 고치고 완성했다고 하는 게 옳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에 인간은 이것을 통해 미리 그곳에 가서 달 표면을 더듬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이놈을 가지고 우주선을 설계해본 다음 아폴로11호를 제작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고 보니, 정말 소중한 놈인데, 잘 다룰 줄 모르면 해코지를 당하는 모양이다.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내칠 수 없듯이, 이것도 내안에서 나오는 놈이니, 어떻게든 다독거려 주저앉히면서 길을 들여야겠다. 먹잇감이 보이면 무조건 입 들이대는 걸 절제시키고, 깜빡잊고 수작하다가도 정신이 들면 가차 없는 외면으로 무안을 주며, 아쉬울 때는 적절한 대접을 하면서 일을 시키면 되려나? 어쩔 수 없이 붙어 지내더라도, 저는 벌레고 나는 사람이라는 위상정리는 칼 같이 하면서 지내야지.
지우개 똥 치우기
엄영희
자신을 통제하면서 살기 힘든 세상이다. 얇은 귀를 뚫고 TV와 스마트폰에 수시로 날아드는 광고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할까? 자고 나면 새롭고 신기한 물건들이 생겨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자라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오늘도 끊임없이 대중매체는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살아가는 일은 물건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아무리 밟아도 제자리인 디딜방아처럼 ‘가진 것’이 늘어나면 ‘가지고 싶은 것’ 또한 늘어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전원주택에 살기’가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꿈쩍도 하지 않던 남편을 조르고 졸라서 앞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해가 잘 드는 나지막한 산비탈에 밭을 하나 마련했다. 바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상수도 시설도 끌어 들였다. 그로부터 몇 년, 아직도 거기는 들깨와 고추가 자라고 있는 밭, 그대로이다.
집을 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벌레가 무서운 것도 그중 하나다. 흙을 밟는 것도 좋고, 만지는 것도 좋은데 벌레는 정말 싫다. 그중에도 단연 지렁이가 싫다. 누구집 며느리는 시집의 '시'자가 싫어서 시금치도 먹지 않고, 시계도 보지 않는다더만 난 지렁이가 연상되어서 고사리나 고비나물도 싫어질 지경이다.
TV를 보다가 지렁이 젤리를 먹는 아이들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독일의 유명브랜드에서 내놓은 벌레 젤리는 아이들이 애용하는 간식이라고 한다. 어느 임산부는 새콤달콤한 지렁이 젤리를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겠느냐?"고 애교 섞인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벌레 무서워 전원주택을 못 짓는 내가 집 안에서 무당벌레 몇 마리를 키우고 있다. 같은 벌레임에도 무당벌레는 색깔도 예쁘거니와 동그란 등 모양도 덜 징그럽다. 책상 마다 한 마리씩, 거실 탁자 밑에 한 마리, 손을 내밀지 않으면 미동도 없는 요놈들은 무당벌레치곤 큰 편이라 어른 주먹만 하다. 빨간 등판에 까만 점 16개. 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요놈은 지우개 똥 청소기이다.
처음엔 '저런 것도 필요하나?' 싶었다. 지우개를 쓸 일이 잘 없을 뿐더러 지우개 똥을 청소기로 치워야 할 일인가? 똥이 나오더라도 종이 쪼가리에 모아서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 버리거나 입으로 '후' 불어내면 될 일인 것을.
지우개 똥 청소기라고 해서 똥만 치우란 법은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웬 부스러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책상 위나 앉았던 자리, 작은 부스러기들을 빨아들이는데 요것만한 것이 없다. 가볍고 손쉬우며, 소리가 크지 않는데다 한 손에 폭 안기며 귀엽기까지 하다. 덩치 큰 청소기들을 다 제치고 내게 사랑받는 청소기가 된 이유다.
벌레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인가? 무당벌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의 천적이고, 보기에 좀 징그러워 그렇지 지렁이도 땅을 숨 쉬게 하는 익충(益蟲)으로 농경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물이다. 무당벌레 청소기가 지우개 똥을 치우며 작고 하찮은 것들을 처리하듯이, 모든 존재의 이유가 있듯이, 벌레도 나름의 생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양대로,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있는 인간에게 든든한 계단을 제공해 주는, 공생해야 할 대상이다.
옛날 어른들은 마당에 뜨거운 물을 버릴 때에도 벌레들에게 미리 알리고 버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당벌레 청소기를 아끼듯 미물들도 사랑해 봐야겠다.
그런데 난 이브의 후예가 맞긴 맞나보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어도 뱀을 닮은 지렁이는 징그럽다. (9.7매)
그리마
이미경
섬칫했다. 지네의 사촌 같기도 하고 어린 송충이 같은 것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눈을 질끈 감고 빗자루로 쓸어버렸지만 소름이 가라앉지 않는다. 도망가면서 급했는지 다리를 몇 개 남겨 놓고 간 흔적도 보였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세이레를 보내기 위해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역국을 들고 온 엄마는 놀란 내 꼴을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아이구 야야! 그걸 왜 잡노. 거기 바로 돈벌레 아이가” 처음 듣는 말이다. 그토록 징그러운 것이 돈벌레라니... 혹시 지네처럼 한약에라도 들어가나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돈벌레의 영어 본명은 ‘그리마’다. 온도가 높고 어둡거나 습한 곳을 좋아하며 바퀴벌레, 파리, 모기, 그 알까지 먹어준다고 하니 고맙기는 하다. 과거 부유한 집은 따뜻해서 이것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돈벌레로 불리게 되었단다. 하지만 집안에 복을 차떼기로 몰고 와도 나는 이 벌레를 퇴치해야만 했다. 신생아가 있는 방에 몰래 침범한 놈을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눈치작전은 심각했다. 살기가 등등한 딸과 돈벌레를 살리려는 엄마의 간절함이 용호상박이다.
그즈음 남동생의 사업이 기우뚱거렸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애간장을 태웠다. 아들이라면 끔뻑 넘어가는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것이다.오죽하면 이런 미물에 목숨을 걸까. 모든 걸 포기하려는 동생에게 엄마의 기도발이 먹혔는지 거래처에서 다시 손을 잡자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게 돈벌레를 살려준 덕분이라고 믿었다. 알고 보니 이게 다리가 잘려도 다시 자란다고 하는 걸 보면 중도하차 할 뻔한 동생의 사업에 다리역할을 한 일등공신이 아닐까.
그러나 기세등등한 엄마의 돈벌레 사랑도 안 먹힐 때가 있다. 갑자기 동생 전화를 달려간 곳은 응급실이었다. 아버지의 급한 수술로 온 식구가 모였다. 수술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찾아 나섰다. 한참 후, 엄마와 함께 들어오는 동생을 보니 입이 씰룩거렸다. 엄마는 속이 상해 바람을 쐬러 나갔다고 했다. 동생 말에 의하면 엄마가 벤치 밑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모으고 있었단다. 아버지의 수술 후유증은 오래갔다. 동생이 번 뭉턱돈을 사정없이 쓸어 넣고도 완전한 회복은 힘들었다. 그러고 보면 돈벌레는 익충인가 해충인가 그래도 익충이라고 믿고 싶다.
십년 전 몸이 아파 친정에 갔다. 두 노인이 사는 집 헛간구석을 살폈다. 돈벌레가한 바가지는 될 만큼 득실득실 하더니 요즘은 간혹 한 마리씩 나타나서 휘젓고는 달아나 버린다. 진짜 돈이 들어오는 벌레라면 계란처럼 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 돈벼락이라도 맞아 봤으면 좋겠다.
종손의 반란
이지연
제사장을 보러 가면 반쯤 건조된 생선들에 눈길이 더 간다. 비린내도 덜하고 구울 때도 잘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살 때는 생물로만 산다.
새댁일 때 어머님이 제사장을 보러 갈 때면 내가 태워드렸는데 그때 어머님이 사시던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생선을 고를 때에도 대충 고르는 법이 없었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생선의 앞뒤를 살펴본 후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으면 퇴자를 놓았다. 조기, 가자미, 오징어, 동태는 일일이 어머니의 두 손가락 감촉을 느낀 후에야 장바구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새댁의 티를 다 벗은 후부터는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대신하여 혼자 제사장을 보러 다닌다. 어머니를 따라 다니던 칠성시장에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사람도, 차도 많아서 주차도 힘들뿐더러 무거운 것을 몇 번씩 차로 옮겨 싣기도 힘들어서이다. 종갓집 맏며느리라 일 년에 몇 번씩 장을 보러 다니다 보니 생선 고르는 것에 이력이 날만도 한데 어머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동네 시장 생선가게에서 크기와 때깔 보고 나름대로는 꼼꼼하게 검수한 후 “싱싱하고 흠 없는 것으로 주세요.” 하며 생선 가게 주인의 판단도 더한다. 하지만 어머님이 하신 두 손가락의 심사를 거치지 않아서인지 어머님의 마음에 드는 생선을 고르는 것에는 실패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생선을 씻어 물기를 빼며 “조기가 살이 무르네.” 어떤 때는 “오징어 살이 찍혔네.” 언젠가는 “이거는 참가자미가 아니네.”하셨다.
내가 결혼하니 막내숙모님이 당신이 전을 이십사 년 부쳤다며 이제는 나에게 물려주겠노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명절, 제사 때는 내가 전을 담당하게 되어 이제는 막내숙모님이 부친 전보다 더 많은 전을 부쳤다. 차종손 집 막내딸로 4대봉제사를 보고 자란 나는, 전 아궁이 참관이 더해져 이제 누가 봐도 전을 잘 부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전 부치는 달인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과 동서 아이들이 아직 어려 차례에 참석시키지 않을 때였나 보다. 아마 서너 살 정도 되었을 무렵인 것 같다. 남자 어른들은 거실에서 차례를 지내고 우리 여자들과 아이들은 방에서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서네 아이들은 앉아서 노는데 우리 아들만 문틈으로 차례 지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둘째 숙모님이 “ 이렇게 어린애가 차례지내는 거 신경 쓰는 것 좀 봐라. 확실히 큰집 애는 다르구나.” 하며 그저 호기심에 가득한 아이의 행동을 치켜세워 주셨다. 그 아이가 이제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 아빠, 요즘은 우리처럼 이렇게 제사 지내는 집 없어요. 우리도 간소하게 바꾸어요.”하며 제례 문화의 변화를 요구한다.
사실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좀 구닥다리인 편이다. 시아버지 법도에 이어 남편의 법도도 제사 시각은 새벽 1시이다. 제삿날이 평일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시간을 당겨서 지내자는 의견을 수없이 냈지만 번번이 묵살되었다. 1시에 제사를 지낸다는 건 자시(子時)에 지내는 것인데, 자시라면 밤 11시부터 1시까지이니 내 생각에는 11시부터 지내는 것도 허용될 것 같다. 그러나 시아버님이나 남편은 허용을 하지 않았다. 시간을 앞당기려고 나름 계산을 해봤자 소심하게 20~30분 빨리 메와 탕을 제상 앞에 대령하는 것이었다. 음복하고 정리정돈을 하면 새벽 3시쯤에 잠자리에 들었고, 그 다음날은 항상 약 먹은 병아리마냥 비몽사몽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제주(祭主)인 남편도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 싶어 한다. 지난 추석 때, 내년부터 제사를 현실에 맞게 바꿀 것을 약속했다. 어차피 우리 아이가 우리 집안 제례 문화를 이어갈 것 같지도 않으니 자신이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종갓집 종손의 제례에 대한 생각이 현실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내년에 있을 제사 풍경이 기대된다.
한식구가 된 산고양이
배정행
라라가 우리 집에 온 날은 추석이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상을 차리고 있는데 딸과 사위가 도착했다. 사위는 통처럼 생긴 가방을 들고 들어 왔다. 딸이 전날 말했던 고양이가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답답하다고 고양이가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너무 성급하게 가방을 연 탓에 온 집 안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가방을 연 다음 안아서 베란다로 옮길 계획이었는데 고양이가 비호같이 날쌔게 튀어나와 싱크대 위로 돌진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놀라서 소리를 질러댔다. 제사상으로 올라가기라도 할까 봐 몇몇은 상을 막아서고 몇몇은 고양이를 잡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사위가 겨우 잡아서 베란다로 옮길 수 있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늦은 제사를 지내야 했다.
라라의 고향은 창원 삼박골산으로 추정된다. 딸이 다니는 회사의 노조 사무실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고양이다. 회사 주변은 인가가 없고 산이었던 것으로 봐서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란 것으로 추측된다. 수의사의 말에 의하면 생후 5~6개월쯤 된 것 같다.
어린 고양이는 엄마를 잃고 헤매다가 산 아래에 있는 노조 사무실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는 귀엽고 불쌍하기도 해서 먹이를 주곤 했는데 그때부터 그곳에 터를 잡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여름 휴가가 시작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고양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휴가가 끝나고 돌아와 보니, 비쩍 말라 탈진하기 일보 직전인 고양이가 그들을 반기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무실 사람들은 합심해서 그 아이를 키웠다. ‘투쟁’이라는 글자가 프린트된 옷도 만들어 입히고 기념 촬영도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동물을 계속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노조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간식을 주기도 하고 주말에는 밖에서 굶을까 봐 일부러 밥 주러 가기도 했던 딸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이미 두 마리나 반려묘를 키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베란다에 우선 데려다 놓고 적응 기간을 가지려고 커튼도 쳐 놓았단다. 그런데 그 아이의 존재를 눈치챈 먼저 키우고 있던 고양이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질투심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맞닥뜨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사납게 으르릉 대고 울어대니 어떻게 같이 키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딸은 내게 구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처음엔 입양 보낼 데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맡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이미 예감했다, 라라와 우리의 인연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그렇게 라라는 우리와 한식구가 되었다. ‘라라’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닥터 지바고’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불우했지만 강했던 그 여주인공의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했더니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나는 지금껏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개는 늘 물지나 않을까 겁나는 존재였고 고양이는 그냥 싫었다. 더군다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가까이서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길고양이를 보는 것이 다였다. 늦은 저녁 아파트를 한 바퀴 돌려고 나가면 길고양이가 왜 그렇게 많은지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녔다. 번뜩이는 눈빛이 음침하다고 느껴졌고 우는 소리도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딸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해서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TV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라는 특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방송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엄청나게 많이 키우고 신성시했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발견된 이집트의 고양이 미라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중세로 접어들면서 고양이를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일삼았다고 한다. 악마의 이미지로 고양이를 이용했다는 것인데 인간의 교활하고 잔인한 음모에 희생을 당한 셈이다. 사악한 존재의 이미지를 그림이나 동화로 표현한 것을 자주 보고 자란 탓이었을까, 고양이를 보면 왠지 께름칙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그것도 산고양이를. 야생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일은 무척 어렵다고 한다. 틈만 나면 밖으로 도망치려는 습성 때문에 베란다같이 좁은 곳에서 우선 적응 기간을 거쳐 야성을 잠재운 뒤 집 안으로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라는 10일 정도 베란다에서 답답하고 외로운 생활을 한 다음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동안 집 안에 있는 위험한 물건을 치웠다. 전선 정리 커버로 전선도 싸매고 침대 아래 먼지도 깨끗이 닦아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라라를 맞이했다.
거실로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자 처음엔 생소한 환경에 어리둥절해서 선뜻 들어오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구석구석 탐색을 하면서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있으면서 얼굴을 익힌 탓에 라라와 우리는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베란다에 가서 밥 주고 놀아준 남편은 라라에게 1순위 측근이 되었고 약간 무심한 나는 2순위, 가끔 야단도 치시는 시어머님은 3순위가 되었다. 그 순위는 아마도 영원히 갈 것 같다
고양이와 한 침대에서 자리라고는 예전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잠이 오면 라라는 아기가 칭얼대는 것처럼 ‘야옹’ 하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보챈다. 그동안 정에 굶주린 탓인지 잘 때는 꼭 사람 몸에 제 몸을 밀착시키고 싶어 한다. 그럴 때면 마치 옛날 어린 딸 아이를 안았을 때처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들어 행복한 기분이 온몸에 전해진다.
이런 맛에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보다. 말만 못 한다뿐이지 동물이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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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총무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