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줄 은퇴의 선물, 이탈리아 여행
목련화
결혼 주례를 맡아 주시고, 출판인으로서의 나의 젊은 패기를 지지해 주셨던 D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하셨던 오 교수님이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유군아, 니 만약 나중에 여유가 있거들랑 이탈리아는 꼭 가봐야 된데이. 내가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았지만 이탈리아만큼 멋있는 나라는 없었데이. 이탈리아는 나라 자체가 전부 유물이야,’
억양이 심한 경상도 사투리로 엄청 크신 눈을 더 크게 뜨시며 강조하셨던 노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나는 언젠가 시간이 나서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꼭 이탈리아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녹녹치 않아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직장생활과 육아에 틈낼 시간이 없었고, 지금 역시도 직장에 얽매인 상황이라 그때 마음먹었던 계획이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나는 은퇴를 하자마자 약 10여 일의 해외 여행을 하고 싶다.
첫 번째로 가고 싶은 곳은 베네치아다.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나는 건물과 건물 사이로 부드럽게 흐르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가서 중세의 사람들이 그러했을 낭만의 곤돌라를 타보고 싶다. 나는 그때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작은 양산을 들고 옅은 바이올렛 빛 원피스를 입고 모네의 그림 속 여인처럼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선상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되새겨 읽어 보고 싶다. 안토니오가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샤일록에게서 빌려온 3천 커트, 그 두 사람의 우정, 결국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하게 되어 위기에 처할 때, 재판 날 바사니오의 아내인 포셔가 남장을 하고 재판관으로 들어가서 돈을 빌려준 샤일록에게 통쾌하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읊조려 보고 싶다.
“안토니오의 살을 가져가되 한 방울의 피가 나와서는 안 되고, 목숨을 잃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고 판결한 포셔의 지혜로움은 베니스 상인의 여러 내용 중 가장 절창이라 생각한다. 곤돌라를 탄 채 그 멋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멋진 일이다.
베네치아는 도시의 생성부터 특이하다고 한다. 외부의 침략을 피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이주해 오면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땅으로 몸을 숨긴 이들은 얕은 바다 위에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100개가 넘는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연결했다니 자연히 집과 광장, 이웃과 이웃 사이에 그런 아름다운 물길이 놓였다는 것이다. 블루 빛 물길이 휘감은 수상도시인 베네치아의 이국적 풍경이 벌써부터 그림처럼 다가온다. 나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인터넷을 통해 ‘가볼 만한 이탈리아 여행지’를 자주 검색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인데도 마치 이미 다녀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내 생동감 없는 정보에 지치고 만다.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더 확실하고 기쁠 테니 나는 이제 은퇴를 기회로 결행을 할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 두 번째로 가고 싶은 곳은 베니스를 찾는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소라 하는 현대 모더니즘 작가의 성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가보고 싶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미술 컬렉터들은 미국으로 탈출한 상황에서 미국인 페기는 오히려 나치 치하의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그림을 하루에 한 점씩 사들였다고 한다. 당시 페기는 그림을 안전하게 보관하려 루브르 박물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박물관 측은 "당신의 그림은 가치가 없다"며 무시했다고 한다. 그 당시 페기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달리, 마그리트, 자코메티 등의 작품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루브르 박물괸 측의 평가에 실소가 터진다. 미국으로 돌아온 페기덕분에 현대미술 중심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페기는 또 미술관에서 잡부로 일하던 무명화가인 잭슨 폴록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했다고 한다. 스튜디오를 마련해주고 매달 생활비를 지원하고 '금세기 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열어줬다고 하니 여성인 페기는 대장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손에 의해 수집된 작품들을 더 보고 싶은 것이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나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돌로 만들어진 리알토 다리에 갈 것이다. 다리 자체의 아름다움도 돋보이지만 다리 위에서 보는 대운하의 전경이 압권이라 하니 그 리알토 다리 위에서 베네치아의 가옥과 물길이 고스란히 보일 수 있도록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 그리고 석양 무렵에는 대운하를 따라 펼쳐져 있는 분위기 좋은 노천카페에서 이탈리아 전통 수제피자를 시켜 놓고 우아하게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그간 바쁘게 살아왔던 나의 삶을 뒤돌아 보고 싶다.
2박3일 정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나는 로마의 카라칼라 극장으로 향할 것이다.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 행사가 있었던 그곳에 가서 내가 가장 즐겨 봤던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루티의 세 성악가가의 ‘3인의 콘서트’의 현장에서 그들의 공연을 회상하고 그 이튿날은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있을 것 같다.
은퇴의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향후 5년 정도 더 열심히 일하고 나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이탈리아 여행의 비행기표를 끊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현실 생활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완결을 기하느라 몰두하다 보면, 나중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5년 뒤로 미룬다는 말, 그 말이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열흘 연가를 낼 수는 없을까, 학생들이 대학 수능 고사 치른 후 조금 한가할 때 틈을 낼 수는 없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목련화다운 책임감과 성실성을 보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나는 목련화가 일년내내 일요일까지 묶이어 지내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저께 그러니까 10월 1일 밤 비행기로 하린이가 휴가를 내었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열흘 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네 집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상할 위험이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집 냉장고로 옮기고 탈탈 털고 남편이란 함께 떠났습니다. 나도 이태리에 여러 번 가 보았는데도 다시 가고 싶었습니다. 외국 여행이라 하면 맨 처음 가는 곳이 이태리여서 가는 길에도 들르고 오는 길에도 들러서 잠시 잠시까지 치면 여러 번 갔습니다. 슬쩍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줄을 서서 바티칸 성당에도 가보고 트레비 분수대에 걸터앉아서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헵번도 생각했습니다. 폼페이 유적에서 역사의 흔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잠깐입니다. 깊이 보고 느끼기에는 여행의 일정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도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거기서 한 일년 머물러 살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담담한 마음으로 떠나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그렇게 살지 못했던 내 젊은 날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한 번 맡은 일은 죽도록 하다가 끝을 내야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는 딸처럼 하던 병원을 팔아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만 출근하더니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만 나갑니다. 내가 그 애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등이 굽어지도록 개인병원을 이끌어가느라 고생고생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나는 너무나도 놀라서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게 익힌 일을 왜 아깝게 버리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어미가 자식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고 할까 봐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라.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마음을 접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그만 둔 후에 아이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서 좋습니다. 형제들에게도 내 대신 할 일 하고 미술관 출입 많이 하고 요리도 배우고 여행 많이 하고 자유롭게 삽니다. 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잘못 살았구나 싶습니다. 본인은 자유로워서 살 것 같은가 봅니다. 나는 틀에 박혀 살았던 내 인생을 돌아다봅니다. 답답하게 살았다는 후회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성격대로 삽니다.
목련화는 아마 학원가에서도 유능한 원장으로 이름이 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십시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실현가능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고민하지 말고 우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생각을 하는 동안은 우리를 현실에서 건져올립니다.
이탈리아 여행 말고도 할 일은 많을 것 같아요.
목련화님, 목련화는 젊으니까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참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투철한 목련화, 고전적인 사고방식을 조금씩 버리고 하고 싶은 일 현실에서 차근차근 성취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5년 후에 이태리에 가면 더 깊이 이해하고 의미 있게 해석하고 현실에 더 밀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5년을 너무 성급하게 기다리지는 마십시오. 부자유한 오늘과 내일, 하루하루가 중요한 우리의 인생이니까요. 내년에는 책을 꼭 내십시오. 책을 내려면 정리도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첫댓글 아네! 교수님!
말씀말씀을 읽어내려 가면서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교수님 삶도 그러하셨었네요! 지금도 젊은이 못지 않게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현실에서 삶을 건져 올리라는 말씀, 가슴에 칵 하고 와서 박힙니다.
제겐 너무나 약이 되는 말씀이고 한 방향만 바라보는 삶도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엄마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고, 저를 찾으려고 했던 것도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현명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 호흡 가다듬고 시간을 아껴 가며 좋은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좋은 주제 주셔서 현재를 짚고 갈 수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이렇듯 좋은 말씀 언제나 듣고 살고 싶습니다
교수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