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25 11:58
3sang4/40023914657<>
텔레비전 그리고 스타와 스타시스템- 김호석
김호석 (KBS 방송문화원 연구원)
I. 문제 제기 : 한류(韓流) 현상과 스타
“한국 바람이 거세다. 최근 2∼3년 사이에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서 한국의 가수들과 텔레비전 드라마 등이 인기를 얻는 ‘한류’ 현상에 이어, 이제 중화권 팬들이 한국의 스타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를 통해 이웃 나라 스타들을 건너다보며 그들이 찾아와 주길 기다리던 중화권 팬들이 애가 달아 아예 한국 나들이에 나서는 것은 눈에 띄는 새로운 흐름이다.”(황준범 기자, 《한겨레신문》, 2001. 8. 17. 17면)
“대만TV에서 최근 [불꽃]이 방송되면서 차인표와 이영애가 젊은이의 우상으로 떠올랐다.(중략) 탤런트 장동건은 베트남에서 자국 스타들을 제치고 제1의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일간지와 잡지에는 그의 최근 동향이 상세하게 보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윤손하, 김지수 등이 안방극장에서 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고, 가수 보아, 투야 등 한국 가수들이 활발하게 뛰고 있다. (중략) 99년 아시아로 수출된 방송물은 MBC 450만 달러, KBS 320만 달러 등 1,274만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30% 증가한 1,4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드라마가 주로 수출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큐멘터리, 만화, 오락 프로그램, 코미디 등 장르도 다양해졌다. 수출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안재욱, 고수, 김소연, 이영애 등은 고액의 출연료를 받고 콘서트나 광고에 출연하는 등 우리 스타들의 몸값은 수직상승하고 있다.”(배국남 기자, 《한국일보》, 2001. 4. 26. 17면)
2001년, 우리 문화산업에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류 현상’이다. 중국대륙을 포함한 화교 문화권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선풍적인 인기’라고 지칭되는 한류 현상은 우리 대중문화가 해외에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으로 확고하게 진출했다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경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대다수의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21세기가 ‘문화산업의 시대’ 또는 ‘정보화 산업의 시대’라고 한다면 우리 대중문화가 향후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중국 대륙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일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1)
그리고 한류 현상의 중심에는 드라마와 가요, 영화 등 콘텐츠와 함께 스타가 있다. 우리 스타를 보고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오는 화교권 국가들의 청소년이 잘 보여주듯이 이제 한류 현상을 주도하는 주체는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콘텐츠의 대중적 성공으로 스타가 발생하는 것이 근본적인 원리일지라도 스타는 한번 발생하면 장단기적으로 문화산업을 주도하기 때문이다(김호석 1998).
한류 현상은 우리 대중문화뿐 아니라 스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再考)해 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스타란 인간 소외의 산물이라거나, 소비적 우상에 불과하다거나, 제조된 상품이라거나, 조작된 현상이나 의사사건에 불과하다’는 스타에 대한 지배적인 평가(T. Adorno 1975, J. Baudrillard 1970, E. Morin 1957: 138-139, T. Harris 1957, D. Boorstin 1963)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비록 이런 평가들이 스타 현상의 본질을 일정 부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타 현상의 모든 실체를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므로 스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균형 있게 사회적 평가로 자리를 잡아야 한류와 같은 새로운 현상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스타에 대한 비평계의 부정적 인식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연예·오락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뿌리깊은 문화적 풍토는 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인을 사회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스타를 ‘대중문화를 저질화시키는 주범’처럼 인식하게 하였다. 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비평의 주류는 여전히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스타를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언컨대 ‘문화산업의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한편에서는 문화산업의 시대를 역설하면서 또 다른 편에서 스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이는 모순된 진술에 다름아니다. 왜냐하면 문화산업의 시대를 주도할 주체는 바로 스타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스타 없는 문화산업이란 상상할 수 없는 가공의 세계일 뿐이고, 세계 시장에서 대중적 소구력이 있는 스타가 나와야 우리 문화산업이 그야말로 시대적 소명에 걸맞게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본고에서는 한류 열풍을 계기로 스타와 스타시스템2)을 텔레비전 매체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의 경우 텔레비전의 스타들이 스타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한류 현상의 핵심으로 위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텔레비전이 비용과 소비조건상 모든 대중매체를 이끄는 문화산업의 주도적인 매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달리 말해 역사적으로 오락의 일상화를 실현시키며 스타를 주기적으로 양산하고 스타시스템을 하나의 제도로서 유지시키는 핵심 매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텔레비전 중심으로 스타와 스타시스템을 설명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스타의 영향력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텔레비전이 어떻게 스타를 양산하고 스타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우리 나라 스타시스템의 진화 정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Ⅱ. 스타의 영향력
한류 열풍이 중국 대륙을 휘몰아치며 중요한 결과물로 스타를 동경하는 중화권 팬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자국에서 우리 스타들이 출연하는 콘텐츠를 집중 소비하는 한편 한국어를 배우고 심지어 우리 나라를 찾아오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스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타가 언제나 문화상품의 성공을 완벽하게 보장하지 못 한다는 점에서 과연 흥행의 보증수표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다이어 또한 할리우드 전성기인 20세기 초반에도 스타를 활용한 영화들이 이유 없이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스타란 경제적인 관점에서 매우 문제가 많은 필수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R. Dyer 1982, p. 35).
하지만 스타의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또는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입장들은 문화상품의 성공 가능성과 스타의 가변적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상품, 그것이 영화이건, TV 드라마이건, 음반이건 간에 해당산업의 성공 확률에 제약받을 수밖에 없으며, 스타 또한 대단히 가변성이 높은 인기를 기반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언제나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말해 스타가 출연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문화상품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의 영향력, 특히 해당 산업의 당대 최고 스타의 영향력은 결과적으로 아주 강하게 발현되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스타(international star)인 마이클 잭슨이나 타이거 우즈는 물론이고 최근 이종범의 복귀로 프로야구 관중이 급증하며 구단의 수입이 증가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또한 우리 음반산업만 하더라도 백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는 조성모, GOD, HOT 등 극소수의 스타들이 산업을 지탱하고, 또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요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요즘 과연 1년에 몇 팀이 성공으로 분류될 수 있는 20∼30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는가. 조성모, GOD, HOT가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로 떠들썩한 사이 20, 30만의 괜찮은 가수들은 모두 씨가 말라가고 있다,”(오윤성, “유니버설 뮤직”, 《국민일보》, 2001. 3. 15. 20면)
그리고 스타의 영향력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스타와의 계약 여부에 따라 나타나는 상장기업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이다. 서태지와의 계약설로 주가가 급등하는 예당엔터테인먼트나 HOT의 해체설로 주가가 급락하는 에스엠의 모습은 스타가 음반사의 시장가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서태지와 광고모델로 계약한 국제상사의 주가 또한 급등하는 모습은 서태지의 광고가 해당기업의 매출과 순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함의하며 스타의 광고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HOT에 이어 서태지가 코스닥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최근 인기 댄스그룹 HOT가 멤버들의 재계약 문제로 소속사인 에스엠의 주가를 쥐락펴락한 데 이어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라고 평가받는 서태지가 코스닥 등록 음반업체인 예당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연 나흘째 폭등시키고 있다. (중략) 서태지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은 지난해 가을 그가 컴백한 이후 일부 종목에서 ‘서태지 장세’가 나타난 데 이어 두 번째다. 지난 해 11월 서태지를 광고모델로 기용했던 국제상사는 서태지 효과에 힘입어 거래량 증가와 함께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이승재 기자, 《문화일보》, 2001. 3. 9. 12면)
물론 스타의 영향력은 스타의 시장가격에 온전하게 반영되어 있다. TV 프로그램 회당 출연료나 영화 편당 계약금, 판매 음반당 가수의 몫, 그리고 스포츠의 연봉 등에 스타의 영향력, 특히 시장 영향력(market power)이 해당 문화산업의 전체 시장 크기(market size)와 스타에 대한 수요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의미이다(김호석 1998, 118∼122쪽).3) 특히 스타가 공급의 탄력도가 거의 영(zero)에 가까운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스타에 대한 시장수요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극소수에 불과한 스타 가수의 시장가격이 엄청난 액수로 높아지고 있는 일이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제는 스타 가수 한 명이 음반 한 장으로 소속사에 수십억 원을 벌어다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유승준은 음반 2장을 내는 조건으로 레코드 회사로부터 37억 원(제작비 포함)을 받았고, 조성모는 그 이상의 조건으로 새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이다. 조만간 스포츠 재벌처럼 가수 재벌도 탄생할 전망이다.”(김영찬, “시나리오 작가”, 《동아일보》, 2001. 9. 11. 45면)
그리고 스타의 영향력은 단지 문화상품의 흥행과 같은 시장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 ‘꿈의 공장(dream factory)’이라고 일컬어졌던 할리우드의 전성기 시절,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스타 중심의 장르영화를 제작했던 일이 대표적인 예이고(S. Earley 1979),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스타들이 40%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선전하고 있는 우리 영화산업으로 진출하는 바람에 다수의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방식의 드라마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KBS 드라마국의 윤흥식 주간은 ‘근래 들어 강력한 매력을 가진 주연급 배우들이 TV보다 영화를 선호해 주연급의 캐스팅이 어렵다.’면서 ‘따라서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사극 드라마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대적할 만한 배우가 없어 차라리 ‘종합선물세트’형 주인공 안배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이송하 기자, 《대한매일》, 2001. 7. 13. 19면)
이러한 현상은 스타급 연기자들이 TV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하고, 강수연과 이미연 등 스타들이 높은 출연료를 받으며 사극에 출연하자 방송 3사의 트렌디물에 캐스팅할 스타가 별로 없어 ‘종합선물세트’형이라는 매우 독특한 배역구조를 창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청률 경쟁으로 드라마 편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우리 방송계의 현실이 지극히 희소한 스타를 대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으로 다수의 신인 연기자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전략을 세웠다는 의미이다. 이는 비록 스타가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스타의 희소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스타의 영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편 우리 대중문화가 자국을 넘어 타국에서 대중적 성공을 하자 스타의 영향력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우리 나라에서 미쳤던 것과 같은 영향력을 우리 스타들이 동남아 국가에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스타들의 인기는 ‘한국풍(韓國風)의 유행’으로 이어진다. 동아시아에 한국식 패션, 한국 음식,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드라마 [의가형제]가 방영된 이후 장동건은 베트남의 국민배우가 됐다. 김남주는 드라마 [모델]로 인해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대명사가 됐고, 그녀가 광고모델로 출연한 한국 화장품은 세계적 브랜드 ‘랑콤’을 누르고 베트남에서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이창형 기자, 《세계일보》, 2001. 9. 1. 21면)
우리 스타에 대한 인기가 곧바로 패션뿐 아니라 한국 음식과 한글 배우기라는 핵심적인 문화전파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이 국가의 교육정책이 아니라 청소년의 자발적인 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스타가 미치는 영향력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고 하겠다. 비록 중국과 화교권 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우리 스타의 영향력을 우려할 만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치부할지 몰라도 우리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스타만큼 효과적인 상품이 없다는 것은 진정 명백한 사실이다.
스타의 영향력에 대해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는 시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타의 영향력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그 영향력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얼마나 강한지를 규명하는 일이 매우 어려울 뿐이다.4) 더욱이 스타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영향력이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현실, 그리고 패션부터 언어, 일상 행동에까지 미칠 수 있는 측정되기 어려운 스타의 외부성은 영향력의 정도를 규명하기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스타의 영향력이 비단 문화상품의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부터 일상적인 생활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Ⅲ. 텔레비전과 스타시스템
한류 현상을 불러일으킨 가장 중요한 매체를 들라고 하면 텔레비전 방송과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 현상을 주도하는 스타가 바로 TV 드라마의 탤런트와 음반산업의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청소년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스타 가수들이 TV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텔레비전 방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중화권이 주목하고 있는 스타들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TV 방송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이다.5)
텔레비전은 역사적으로 출현하자마자 스타와 스타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스타의 신화적 이미지가 탈색되었으며 영화산업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전속제 중심의 스타시스템이 탤런트 에이전시 중심의 스타시스템으로 재구조화되었다. 텔레비전은 거의 무료로 집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소비할 수 있는 역사상 가장 경쟁력이 높은 매체였기 때문에 영화가 만들어낸 스타의 전형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스타시스템의 구조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종합매체의 성격을 갖는 텔레비전은 스타시스템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어떤 프로그램이든 시청률이 높으면 프로그램의 유형이나 장르와 무관하게 특정 출연자는 스타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타는 뉴스 캐스터부터 드라마 연기자, 코미디언, 스포츠 선수 등 모든 영역에서 배출될 수 있는 문화산업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중략) 다음으로 텔레비전의 종합매체적 성격은 스타를 생산하는 주 프로그램들과 함께 그들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마치 스타시스템의 전체 체계를 가동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김호석 1999, 392∼393쪽)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스타가 발생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한편 방송사의 편성체계가 스타를 활용, 생산, 관리하는 프로그램들의 집합처럼 기능하며 텔레비전이 마치 스타시스템 전체와 같다는 해석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스타시스템의 중추가 텔레비전이라는 의미이고,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그 체계 안에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편성을 스타시스템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 스타 탄생의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스타가 이미지를 관리하는 프로그램, 예비 스타를 선발하는 프로그램, 스타의 등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제도 프로그램, 그리고 스타를 중심으로 문화산업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등이 체계적으로 편성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6)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들은 장르별로 확연히 구분되어 마치 프로그램의 장르가 스타시스템 전체 체계에서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역할을 하고 있다.
[표 1]에 잘 나타나 있듯이 시청률을 주도하고 있는 드라마와 시트콤,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스타를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스타가 문화상품의 상업적 성공에서 발생한다는 보편적 원리에 입각할 때, 이런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서 경쟁 프로그램을 압도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스타가 탄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별은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 하나로 최고 스타로 성장한 안재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중국에 수출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재욱이 중국에서 최고의 스타로 등극하고 가수로서도 스타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뮤직뱅크]나 [생방송 음악캠프], [SBS 인기가요] 등도 가수 스타를 생산하는 주기능을 담당한다. 이런 가요 장르 프로그램에서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한다면 그 가수가 스타덤에 진입했다고 해석되어도 무방하다.
이러한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스타 생산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2001년 상반기 연예인 인기도 조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표 2]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지난 가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가을동화]의 원빈이 남자 연기자 중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태조 왕건]의 최수종이 그 다음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여자 연기자에서는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최지우와 [가을 동화]의 송혜교가 높은 인기 순위를 기록하였다. 비록 최근 영화의 성공으로 정우성, 장동건, 이영애, 심은하, 고소영 등이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이변7)이 있었지만 이들 또한 TV 드라마의 성공으로 스타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TV 드라마가 스타 생산의 주기능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GOD, 유승준, 조성모, 엄정화, 핑클, SES 등 인기도 상위의 가수 스타들은 바로 TV의 가요 프로그램에서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1위 경쟁을 하는 가수들이다. 중장년층으로부터의 인기로 여전히 여자 가수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는 주현미가 독특해 보이지만 모두 다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로 성장한 가수들이다. 아울러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나 시트콤 [멋진 친구들], 그리고 버라이어티 쇼의 MC를 맡고 있는 개그맨들 또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서 스타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드라마와 코미디, 시트콤, 가요 등 TV의 주요 오락 프로그램이 스타시스템의 측면에서 스타를 생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편 버라이어티 쇼와 토크 쇼 등은, 비록 같은 장르일지라도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이 상당한 차이를 보여, 그 기능이 스타시스템의 측면에서 스타 생산이나 관리 등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스타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성격의 프로그램들이다. 이런 유형의 장르는 스타의 최근 근황과 일상적 삶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버라이어티 쇼 코너에서 스타가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스타의 이미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스타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이런 장르의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GOD의 육아일기’로 GOD의 이미지를 관리한 일은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1년 가까이 인기리에 방송중인 ‘GOD의 육아일기’ 역시 철저한 기획작품이다. ‘HOT가 강한 카리스마로 10대에게 어필했다면 GOD는 친근함으로 가족 모두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아이 기르기는 적합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정해익 사이더스 음반 사업 본부장)(최재희 기자, 《중앙일보》, 2001. 1. 8. 48면)
또한 [연예가 중계]나 [생방송 섹션TV 연예통신], 그리고 [생방송 한밤의 TV 연예] 등 방송 3사의 대표적인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영화 그리고 팝콘], [출발 비디오 여행], [접속 무비월드]와 같은 영화정보 프로그램도 스타를 중심으로 문화상품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정보차원의 스타시스템을 구현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시스템의 출현을 스타 정보를 활용한 시점으로 본 드코르도바의 연구(deCordova 1991)가 잘 적시하듯이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문화상품에 대한 일종의 광고적 정보를 제공하며 스타시스템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 편성은 아니지만 연말이나 주요 시점에 예비스타 선발제도와 상제도 관련 프로그램들이 편성되며 방송되기도 한다. 스타급 연예인을 다수 배출하고 있는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나 신인 탤런트와 모델 선발대회 관련 프로그램이 예비스타 선발제도와 관련이 있다면 대종상과 같은 영화 시상제와 연말에 집중되어 있는 연기대상과 가요대상 프로그램이 상제도와 관련이 있다. 예비스타 선발제도와 상제도가 스타시스템을 유지하는 주요 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텔레비전은 그런 제도들을 프로그램화하며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양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은 스타 탄생부터 스타 이미지 관리, 예비스타 선발제도와 상제도, 그리고 스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문화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스타시스템 전체를 실질적으로 가동시키는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가히 텔레비전은 스타시스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매체라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스타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적어도 편성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주시청시간대만을 본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비중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런 오락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스타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이 기능적인가를 잘 알 수 있다.
Ⅳ. 한국의 스타시스템
중화권 국가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던 올해 7월, 우리 사회는 연예제작자협의회와 방송사가 서로 갈등으로 치닫는 매우 특이한 현상을 경험하였다. 음반 제작사의 매니저들이 자신들과 가수와의 불합리한 계약을 고발한 MBC의 [시사매거진 2580]에 항의하며 MBC의 출연을 거부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연예제작자협의회 소속 연예인들이 MBC의 보도내용에 항의해 오는 7일부터 MBC TV에서 제작하는 모든 프로에 출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연예제작자협의회 소속 매니저들은 3일 오후 6시 17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이 일부 연예 제작자와 연예인 사이의 불평등한 계약을 마치 전체의 일인 양 왜곡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즉각적으로 사과방송을 내보내지 않을 경우 7일부터 MBC TV에서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소속 연예인의 출연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이영미 기자, 《국민일보》, 2001. 7. 4. 30면)
방송사와 가수 매니저 사이에서 촉발된 갈등은, 비록 음반산업의 특수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현상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의 스타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되어 있고, 또 어떤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매년 수천 장의 앨범이 나오지만 극소수의 앨범만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다시 말해 성공 확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음반산업, 그리고 그에 따른 스타와의 계약상의 특수성이 현상에 가미되어 있을지라도 방송사와 가수 매니저의 갈등은 우리 스타시스템의 진화 정도와 제 문제점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한국의 스타시스템을 스타시스템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미국과 비교할 경우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방송사가 스타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자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하는 주요 미디어가 방송이 아니라 영화와 음반, 스포츠 등인 미국과 달리 자국의 스타를 주도적으로 배출하는 미디어가 방송인 우리의 경우 스타시스템의 한복판에 방송, 특히 지상파 TV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령 방송사가 미국의 연예계에 잠복해 있는 사회적 비리를 비판한다고 해서 스타들이 방송사 출연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내보이기 어려운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아주 이례적으로 스타를 관리하는 매니저들과 방송사가 갈등을 빚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하겠다.
영화와 음반, 스포츠, 방송 등 세계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며 스타시스템의 완성도를 가장 높게 실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스타들은, 영화배우이건, 가수이건, 스포츠 선수이건, 시나리오 작가이건, PD이건, 또는 코미디언이건 간에 대부분이 탤런트 에이전시(talent agency)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즉 미국의 스타시스템은 스타가 특정한 에이전시에 소속한 후 에이전트(agent)들이 스타를 대신하여 제작사와의 계약을 대행해주는 체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8) 그리고 대개의 경우 에이전트가 스타의 계약을 대행해주는 대가로 스타는 에이전시에 10%의 공인된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탤런트 에이전시 중심의 스타시스템이 구축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체계가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탤런트 에이전시는 불확실성을 속성으로 내재하고 있는 스타를 가장 합리적으로 관리하며 문화산업의 행위를 촉진시킨다는 의미이다. 에이전시의 경제적 기능을 상세하게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에이전시는 제작사와 스타간의 거래를 대리하고 책임지며 거래비용을 절감시킨다. (중략) 둘째, 스타를 포함한 제작인력의 정보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에이전시는 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원활하게 유통시켜 일종의 거래비용인 정보비용을 절감시키며 효율성을 창출한다. (중략) 셋째, 에이전시는 스타의 캐스팅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스타의 생명주기를 연장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중략) 넷째, 에이전시는 작가, 감독, 조연 배우 등 스타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작인력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관리하는 이유로 캐스팅 결정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패키지 상품을 기획하여 문화상품의 생산을 촉진시키는 기능까지 수행한다.”(김호석 1998, 179∼180쪽)
그러므로 문화산업이 진화하면 할수록 탤런트 에이전시 중심의 스타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주 자명한 일이다. 우리 나라 또한 지속적인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 방송과 음반, 영화, 신문, 출판산업 등 문화산업의 규모가 커졌던 1980년대 후반부터 ‘매니저’라고 지칭되는 에이전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2년 상업방송인 SBS가 출범하자 방송사에 전속되었던 스타들이 자유계약제로 선회하며 매니저,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에이전트가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특히 우리 나라 스타시장을 주도하는 드라마의 연기자들이 에이전트에게 작품 선정부터 계약, 이미지 관리까지 대행시킨 것은 스타시스템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스타시스템은 경제적 조건과 문화산업의 규모가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며 과도기적인 진화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불완전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크게는 문화산업, 좁은 의미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주도할 만한 규모 있는 탤런트 에이전시가 부재하거나 스타시장에 불합리한 계약이 잔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스타시스템에는 스타를 대신하여 계약을 하는 에이전트 기능과 스타를 관리하는 매니저 기능이 확고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에 따라 에이전트 기능과 매니저 기능이 혼재되어 있는 ‘매니저’ 개념으로 스타와 제작사를 연결짓는 거간제도를 지칭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매니저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매니저 개념과는 차이가 있으며 에이전트 개념을 흡수한 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 스타시스템의 경우 에이전트와 매니저는 기능상 차별화되어 있다(정혜경 1996). 에이전트가 스타를 대신하여 일자리를 알선하고 제작사와의 계약 업무를 담당하며 스타의 이미지 조사와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모니터링을 수행한다면, 매니저는 스타의 경력에 대한 모든 분야를 감독하고 에이전트와 변호사 등 스타의 대리인들이 스타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연기 지도나 인기 관리, 배역 결정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에이전트가 10%의 수수료를 받는다면 매니저는 스타 수입의 15% 내지 25%의 수익을 보장받는다(The National Law Journal, 1992. 6. 12. p. 1).
따라서 에이전트와 매니저 기능이 혼재되어 있는 매니저 개념을 사용하는 현실 그 자체가 한국의 스타시스템이 완성도의 면에서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기능주의 이론이 잘 적시하듯이 진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기능은 더 세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스타시스템에는 문화산업을 주도할 만한 대규모의 기업형 에이전시가 부재하다. 현재 우리의 경우, 비록 기업형 에이전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매니저라고 지칭되는 개인형 에이전트 중심으로 거간제도가 형성되어 있어 미국의 CAA(Creative Artists Agency), ICM(International Creative Management), 그리고 WMA(William Moris Agency)처럼 스타의 계약을 대행하는 기능을 넘어 문화산업 전반의 정보를 원활하게 공급하며 산업의 발전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능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 못 하다.9)
셋째, 한국의 스타시스템에서는 에이전시가 관리할 수 있는 스타의 직종이 탤런트와 가수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형 에이전시들이 탤런트와 가수뿐 아니라 감독, 카메라맨, 작가, 스포츠 선수, 심지어 정치인 등 문화산업 전반의 제작진 모두를 총망라하여 관리하며 문화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킨다면 우리의 경우에는 에이전시가 관리할 직종이 너무 제약되어 있어 초대형 기업형 에이전시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독립제작사 중심의 제작체계가 아니라 KBS, MBC, SBS 등 주요 방송사 중심의 제작체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PD와 카메라맨 등 주요 제작진들이 여전히 방송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현실이 기업형 에이전시를 출현시키기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10)
넷째, 한국의 스타시스템에는 불합리한 계약의 문제가 상존한다는 점이다. 특히 음반상품의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은 음반산업에서 가수와 기획사 사이에 불합리한 계약의 문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즉 특정 가수가 스타로 성장한 후 무명가수 시절에 한 계약의 문제로 스타가 시장가치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한국의 스타시스템이 합리성의 측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의 스타시스템에 커다란 변화의 기운이 보이고 있다. 비록 배우와 가수, 개그맨에 국한되어 스타를 관리할지라도 기업형 에이전시가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대형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연예인 한두 명을 관리하던 개인 사업자가 줄어드는 대신 수십 명에 이르는 연예인을 거느린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업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기업형 매니지먼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연예계의 불문율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급격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최재희, 《중앙일보》, 2001. 7. 9. 48면)
현재 에이전시의 대형화를 선도하고 있는 탤런트 에이전시는 에이스스타와 사이더스, GM 기획, 윌 스타 등이다. 이들 에이전시들은 수십 명의 스타를 관리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인데 스타와의 계약에서 합리성을 갖춘다면, 달리 말해 스타의 시장가치를 인정하며 수익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스타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키워나간다면 할리우드의 초대형 탤런트 에이전시처럼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요 탤런트 에이전시들이 관리하고 있는 스타들은 다음과 같다.
탤런트 에이전시가 대형화 추세를 이어가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스타시스템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표 3]에 잘 나타났듯이 탤런트 에이전시들이 배우와 가수라는 유형의 스타에 따라 에이전시의 특성이 구별되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탤런트 에이전시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미완의 상태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다시 말해 인수·합병을 통해 탤런트 에이전시의 규모가 더 커져야 하며 배우와 가수, 개그맨 이외에 작가와 영화감독, PD, 카메라맨 등 여타의 제작진을 소속시켜야 할리우드와 같은 진정한 의미의 초대형 탤런트 에이전시가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Ⅴ. 결 론 : 한류 현상과 스타시스템의 변화
2001년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화권 국가들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문화산업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열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물결’이라는 한류 현상은 90년대 내내 우리 방송 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조금씩 중화권 수용자들의 감성에 영향을 미쳐 2001년에 드디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인기를 받으며 나타난 현상이다. 오직 자국만을 주시장으로 삼았던 우리 대중문화는 이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주도하는 주체는 바로 문화상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이다.
우리의 문화상품이 자국을 넘어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일은 문화산업 전체뿐 아니라 스타와 스타시스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은 곧 시장의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화상품의 수익구조부터 스타의 시장가치, 그리고 스타시스템의 완성도에 이르기까지 질적인 고양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류현상으로 스타시장의 변화는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의 시장가치가 이전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현상인데 우리 문화상품이 자국만을 주시장으로 삼을 경우 스타의 시장가치는 자국의 인기도만이 반영되지만 외국의 시장까지 진출한다면 외국의 인기도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방송사들은 앞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중화권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타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보다 더 경쟁을 할 것이고, 그럴 경우 스타가 공급이 거의 고정되어 있는 경제적 지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스타의 시장가격이 급등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외국 시장의 개척은 스타의 활동 영역과 이미지 관리가 자연스럽게 외국으로까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만큼 에이전트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외의 제작사나 방송사와 계약을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스타는 에이전트 없이 활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동시에 에이전트의 능력과 전문성 또한 훨씬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바로 에이전트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스타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류 현상은 단순히 문화상품의 수익구조가 커졌다는 의미를 넘어 문화산업의 구조와 스타의 영향력, 그리고 스타시스템의 진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 방송사에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PD와 카메라맨 등 주요 제작진들이 스타시장에서 에이전트의 관리를 받으며 제작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미국의 CAA나 ICM, WMA와 같은 기업형 에이전시도 출현하며 문화산업을 촉진시키는 기능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중이다. 스타급 PD들이 안정적인 지위와 보수를 주는 방송사를 떠나 독립제작사로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동화>, <느낌>, <순수> 등으로 한국뿐 아니라 중화권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킨 KBS 스타 연출자 윤석호 PD가 5일 사표를 던졌다. (중략) 윤 PD처럼 각 방송사의 스타 PD들의 탈여의도행 붐이 일고 있다. 올 들어 방송사를 떠나 새로운 자리에 둥지를 튼 PD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연출자 김현철 PD, KBS <푸른 안개>와 <바보 같은 사랑>의 표민수 PD, SBS <쥴리엣의 남자>, <해피 투게더>의 오종록 PD 등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조만간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진 PD도 상당수에 이른다.”(배국남 기자, 《한국일보》, 2001. 9. 6. 36면)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사 중심의 제작구조가 여전히 완고하게 정착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방송사의 외주제작 비율을 증가시키는 문화정책, 그리고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의 출범 등으로 독립제작사 시장도 완만하게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독립제작사 시장이 방송사 중심의 제작구조를 대체한다면 기업형 에이전시가 주도하는 문화산업의 구조 또한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 이론가나 언론 모두 한류 현상을 주목하고 있지만 이 현상이 앞으로 가져올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규명되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한류 현상이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와 방송사의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류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중국을 포함한 화교권이 미국을 제치고 제1의 경제권으로 성장한다면 한류 현상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위해 커다란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반 상품이나 제도의 수출은 문화적 배경 아래 이루어질 때 가장 큰 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둘째, 오직 문화산업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중국 시장은 할리우드와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는 미지의 개척지이므로 우리 대중문화가 중국 등 화교권 시장을 선점하면 세계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국은 무수히 많은 지역시장 중 하나라기보다는 세계 문화산업을 주도할 핵심적인 시장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류 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일은 비단 우리 문화산업의 성장뿐 아니라 국가의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전망된다.
2) 간혹 언론에서 스타와 스타시스템의 개념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스타시스템이란 스타가 활용, 거래, 생산, 관리, 소비되는 전체적인 순환메커니즘을 의미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스타와 동일한 개념처럼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안티 스타시스템 선언한 영화 <박하사탕>’이라는 표제의 어느 신문 기사(《한겨레신문》, 1999. 4. 8. 14면)를 들 수 있다. 스타를 사용하지 않은 일을 마치 스타시스템을 거부한 것처럼 묘사한 대목이 엄밀히 말해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 <박하사탕>이 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을 수 있지만 거대한 제도로서 존재하는 스타시스템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박하사탕>은 스타시스템의 주요 제도인 상제도, 곧 대종상을 여럿 수상하며 주인공인 설경구를 스타로 등극시켰다. 달리 말해 <박하사탕>은 스타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스타시스템의 메커니즘에서 한 치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안티 스타시스템’이란 언어의 유희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스타를 거부한다는 의미의 ‘안티 스타’라는 용어는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다.
3) 최근 발생한 HOT의 해체는 음반기획사가 스타의 영향력에 조응하는 시장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며 나타난 현상이다. 만약 스타에게 인기와 영향력에 걸맞는 액수의 돈을 주었다면 HOT는 계속 존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음반산업이 아직까지 합리적이지 못 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김휴종은 1997년 스타가 영화관객을 동원하는 데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하였는데, 연구결과 스타가 출현할 경우 3만 명 이상의 관객을 추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김휴종 1997). 그러나 이런 결과가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김휴종이 활용한 분석모델은 영화관객들의 입 소문이나 스타에 관한 TV와 신문, 잡지의 기사들이 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성 효과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점유율이 40%대에 이르는 현재에 그 분석모델로 다시 측정한다면 스타의 영향력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스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검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 역설적인 현상은 바로 비평가들이 그토록 비판하였던 드라마와 가요 등 오락프로그램이 한류 현상을 주도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저질의 방송문화를 이끄는 장르로 악평을 받고 있는 오락프로그램이 방송의 세계화를 선도하며 경제적인 이익뿐 아니라 우리 문화전파의 첨병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점은 비평가들이 예외 없이 언제나 비판하고 있는 시청률 경쟁이 상품으로서 프로그램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는 사실이다. 시청률 경쟁이란 본질적으로 다수가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제작하는 현상을 의미하고, 그런 경쟁이 심화될수록 프로그램의 대중적 소구력이 높아지며 외국의 시청자들에게까지 소구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앞으로 시청률 경쟁이 야기하는 순기능적 측면을 독자들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6) 심지어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없는 방송광고마저도 스타를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80년대 광고 하나로 스타가 된 최진실과 심혜진은 이제 전설이 되었고, 최근에는 방송광고를 주도하고 있는 이동통신 광고로 다수의 스타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광고 또한 스타를 주로 생산하는 드라마와 가요 프로그램만큼 스타시스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7) 우리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20%대를 못 미치고 있던 90년대만 하더라도 인기순위 상위의 연기자들은 대부분 TV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1999년 <쉬리>의 기념비적인 관객 동원 이후 8) 미국의 탤런트 에이전시가 활성화된 시기는 바로 1970년대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들어와 비로소 에이전트는 제작자(producer), 작가(writer), 감독(director), 캐스트(cast), 카메라맨(cameraman), 편집자(editor) 등 제작의 6대 요소와 함께 영화산업의 핵심요소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W. Fadiman 1972, p. 26). 그리고 탤런트 에이전시는 스타와 제작사의 계약을 대행하는 기능으로 시작했지만 그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타와 제작인력에 대한 핵심 정보를 독점하면서 그 기능이 거래보다는 정보사업(information business)의 성격을 갖는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9) 상업방송 SBS가 출범하며 스타가 방송사의 전속제로부터 해방되자 스타서치와 제이콤, 한맥 유니온 등과 같은 기업형 에이전시들이 한국에서도 출현하기 시작하였다(정혜경 1996, 59∼69쪽). 이러한 에이전시는 공개 캐스팅으로 신인을 선발하거나, 스타와 에이전시간에 동등한 계약 관계를 구현하고 공식적인 섭외를 선호하는 등 거간제도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기업형 에이전시들의 실험은 실패하였다. 연기자와 같은 일부 제작진에 국한된 계약을 대행하고 에이전트를 무시하려는 한국적 풍토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우리 문화산업의 현실이 기업형 에이전시의 정착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사실상 가수 매니저와 방송사의 갈등은 방송사 중심의 제작체계가 구현된 현실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매니저들이 스타의 시장권력을 활용하며 연예계의 문제점을 파헤친 프로그램을 편성한 방송사에게 압력을 가한 일은 방송사 중심의 제작체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참고문헌
______(1999), “텔레비전과 스타시스템,” 황인성 외, 《텔레비전과 문화연구》, 서울 : 한나래, 375∼3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