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아름답고 악기편성이 풍성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흐르는 물소리바람소리 자연의 소리가 현장감 있게 소리를 들려주며 흐르는듯 , 연주자들의 표정에사도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어느곡은 귀로 들어야 연주실황보다 더 감격적인곡도 있는데 몰다우강의 길이만큼 이어지는 상상의 세계 , 악장 마다 살아 있는 아름다운 소재 이곡을 들으시면서 햇빛이 하얗다거나 꽃이 빨갛다거나 물결이 파랗다거나 농부가 기뻐 한다거나 요정이 행복 했다거나 그런 느낌을 갖으셨을것 같습니다 ^^*
Smetana: Vltava (The Moldau) - Stunning Performance
Gimnazija Kranj Symphony Orchestra
Nejc Bečan, cond
Smetana: The Moldau (Vltava)
Radio Filharmonisch Orkest
Krzysztof Urbański, cond
Bedřich Smetana: Má Vlast (Mein Vaterland): Vltava (Die Moldau)
Chamber Orchestra of Europe Nikolaus Harnoncourt, Dirigent
민족주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통치하에 있던 조국, 체코를 〈나의 조국〉에 담는다.
6곡의 교향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곡은 체코의 강, 성, 전설 등을 모티브로 하였다.
청력 상실이라는 불행 속에서 탄생한 걸작
〈나의 조국〉은 또한 청력 상실이라는 스메타나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 속에서 탄생한
걸작이기도 하다. 1874년 7월, 스메타나의 귀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얼마 못 가 그는 소리를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10월 초에는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20일에는 왼쪽 귀의 청력마저 잃었다.
치료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874년 11월 18일,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암담한 현실 속에 첫 번째 교향시 ‘비셰흐라트’를 완성한다.
고국 체코에 대한 사랑을 담은 연작 교향시
그 와중에 스메타나는 고국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 마음을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에 담는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고,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스메타나는 체코의 독립과 자유를 염원하며 체코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전설을 음악적으로 그려냈는데 〈나의 조국〉은 1874년부터 1879년
까지 작곡된 6개의 교향시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스메타나는 이 곡을 4부작으로 계획
하여 ‘비셰흐라트’, ‘블타바’, ‘샤르카’,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의 4곡의 교향시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이 곡들이 모두 성공을 거두자, 5번째 교향시 ‘타보르’와 6번째
교향시 ‘블라니크’를 이어 작곡했다.
오늘날 〈나의 조국〉은 여섯 악장 구성의 한 곡으로 간주되지만, 여섯 개의 교향시
모두 개별적으로 작곡되었고, 초연도 1875년에서 1880년 사이 한 작품씩 개별적
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2년 후인 1882년 11월 5일 프라하에서는 아돌프 체흐의
지휘로 6개의 교향시 전체가 청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 초연되었다.
전체 곡은 프라하 시에 헌정되었다.
2악장 ‘블타바’(Vltava)
블타바는 프라하 시내로 흐르는 강 이름으로, 독일어로는 몰다우(Moldau)이다.
조성은 e단조이다. 스메타나는 보헤미아의 가장 큰 강 중 하나인
몰다우의 흐름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스메타나는 ‘블타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남겼다.
“이 곡은 블타바의 흐름을 묘사한다. 블타바는 두 개의 샘에서 발원하여,
하나의 시내로 합쳐져, 숲과 목초지를 지나 유유하게 흘러간다.
농부의 혼례가 이루어지고, 밤의 달빛 아래서는 물의 정령들이 둥글게 모여
춤을 춘다. 바위 위로는 위풍당당한 성과 궁전과 폐허가 어렴풋이 보인다.
성 요한의 급류에 이르러서는 소용돌이 치고, 이어 넓어져서 프라하 주위를
흐른다. 비셰흐라트를 지나, 저 멀리 라베강으로 사라진다.”
이 곡은 1874년 11월 20일에서 12월 8일 사이에 작곡되었고,
초연은 아돌프 체흐의 지휘로 1875년 4월 4일에 이루어졌다.
스메타나가 작곡한 가장 유명한 선율을 포함하고 있다.
스메타나 / ' 나의 조국' 중에서 2번 ‘몰다우’
Bedrich Smetana / "The Moldau" (from Ma Vlast)
* Czech Philharmonic(2014)
* Jiri Belohlavec : cond.
1989년은 동구권의 공산 정권들이 연이어 붕괴한 대격변의 해였다. 이 해에 폴란드에서 시작한 민주화 운동은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동유럽 각국으로 퍼져갔고, 이 물결에 재빨리 올라탄 체코는 몇 달간의 숨가쁜 정치적 공방 끝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시민 포럼’의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이 마침내 12월 29일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대전환의 한가운데에 음악이 있었다. 12월 14일에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에서 하벨이 참석한 가운데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체코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자신들도 적극 지지했던 혁명이 성공한 것을 축하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을 펼쳤다.
그리고 그 이듬해, 1990년 5월 12일에 같은 장소에서 스메나타의 <나의 조국>이 연주되었다. 그 해 ‘프라하 5월 음악제’(‘프라하의 봄 음악제’라고도 한다)의 첫 무대였던 이 공연의 지휘를 맡은 인물은 라파엘 쿠벨릭이었다. 그는 당시 76세로, 건강 악화로 인해 객원 지휘만 간간이 하던 상태였으나 이 자리에는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하벨이 초청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1948년에 소련의 사주를 받은 사회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체코의 민주화가 좌절되자 택했던 망명의 세월이 40여 년 이어진 끝에 마침내 다시 돌아온 조국의 무대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 음악제는 바로 쿠벨릭 자신이, 체코 필하모닉 창단 50주년이었던 1946년 당시 상임지휘자로서 창설한 음악제였던 만큼 그 감회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흥분과 감격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힘차게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휘자와 이를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하벨 대통령의 모습(이 공연 실황을 담은 DVD에서 확인할 수 있다)은 누가 보더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연주된 작품이 <나의 조국>이 아닌 다른 곡이었다 해도 그런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곡의 무엇이 지휘자와 연주자, 청중을 하나로 묶은 뜨거운 공감대를 이끌어냈던 것일까?
민족과 자신의 불행을 뜨거운 조국애로 승화시킨 걸작
<나의 조국>(Má Vlast)은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연작 교향시로, 1873~1880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당시 그는 1866년에 작곡한 오페라 <팔려간 신부>의 대성공 이래 명실 공히 체코의 국민 작곡가 반열에 올라 있었지만, 이 무렵부터 청력이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어지럼증도 생겼다(결국 그는 1874년 10월경에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훗날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야 했는데, 이는 매독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가운데)
이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 그는 절망에 빠지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시선을 밖으로 돌려 체코 민족 전체의 고난에 주목했다. 당시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으며, 제국 정부가 특별히 압정을 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제국을 구성하는 여러 민족 사이의 알력에서 비교적 소외된 위치에 있었던 체코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특히 강했다. 스메타나는 독일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열렬한 민족주의자가 되었으며, 민족주의적 소재에 기초한 음악(민족주의 음악*)을 다수 작곡했다. 그리고 <나의 조국>은 스메타나의 민족주의적 작품 활동을 총결산하는 작품이자 작곡가의 최고 걸작이다. 그는 이 방대한 연작 교향시에서 체코의 자연과 역사를 능란하고도 애정 어린 필치로 그려냈다. 전곡의 초연은 1882년 11월에 프라하에서 이루어졌으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각 곡의 초연은 그 이전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각 곡의 제목과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비셰흐라트 Vyšehrad
프라하로 흐르는 블타바 강변에 우뚝 선 체코의 옛 성 이름을 따 지은 곡이다. 두 대의 하프가 네 개의 음으로 된 특징적인 음형을 연주하면서 시작하는데, 이 음형은 비셰흐라트를 상징하며 이후 전곡에 걸쳐 여러 형태로 되풀이된다. 이 주제는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이 오페라가 국민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예언했던 체코의 왕녀 리부셰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는 점과 그녀가 거처하던 성이 바로 비셰흐라트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비셰흐라트의 주제는 성 자체뿐만 아니라 체코 민족, 그리고 조국의 자유와 영광에 대한 작곡가의 염원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곡가 자신은 이 곡에 대해 ‘조국의 영광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면, 시인은 조국의 여름에 보이는 찬란한 광경, 전쟁, 마지막으로 조국의 몰락을 노래한다’고 말했다고 하며, 이 말은 곡의 광대하면서도 신비로운 시작과 영웅적인 클라이맥스, 차분한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에 그대로 들어맞고 있다. 1874년 9~11월에 작곡되어 1875년 3월에 초연되었으며, 처음부터 반응이 좋아 자주 연주되었다.
2. 블타바Vltava (Die Moldau)
블타바는 프라하 시내로 흘러드는 강 이름으로, 독일어로는 ‘몰다우’로 부른다. 오스트리아 치하의 체코에서 이 곡을 작곡했던 스메타나에게는 몰다우는 불쾌한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곡은 전체 여섯 곡 가운데서도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시 전통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블타바는 남부 보헤미아의 작은 샘에서 발원해(곡 첫머리의 플루트 악구) 다른 냇물(클라리넷)과 합치면서 어엿한 강으로 불어나 도도하게 흘러간다(이를 묘사하는 현의 유려한 선율은 그 자체로 몰다우 전체를 상징한다). 이 강은 사냥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숲(사냥 나팔을 묘사한 호른 악구)과 혼례가 벌어지고 있는 시골 들판(폴카 리듬을 지닌 흥겨운 악구)을 지나 흘러가며, 밤이 되면 체코 전설에 나오는 물의 요정들이 강변에서 달빛을 받으며 춤을 춘다. 이 대목은 현과 하프를 중심으로 한 신비로운 악구로 묘사된다. 악상은 이윽고 성 요한의 급류에 도달해 격하게 휘몰아치고, ‘블타바의 주제’가 다시 의기양양하게 연주된 다음 비셰흐라트의 주제가 장엄하게 울리는 가운데 힘차게 끝을 맺는다. 1874년 11~12월에 작곡되어 1880년 4월에 초연된 이 곡은, 처음에는 ‘비셰흐라트’만큼 반응이 좋지는 않았으나 곧 인기를 끌기 시작해 이제는 전곡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단독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프라하 시내를 흐르는 블타바 강 풍경
3. 샤르카Šárka
이제 이야기는 전설의 세계로 옮아간다. 연인에게서 버림받았기에 세상의 모든 남성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하고 다른 여전사들과 함께 숲에 숨어든 샤르카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격렬한 첫머리에 이어 남자 전사들의 도착을 알리는 악구로 넘어간다. 나무에 묶인 샤르카를 발견한 남자들은 이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그녀를 풀어준다. 샤르카와 다른 여인들에게서 감사를 받으며 대접을 받은 남자들은 술에 섞인 약 때문에 곧 곯아떨어지고, 샤르카가 나팔을 불자 여인들은 남자들을 무참하게 베어버리고 만다. 이 곡은 1877년 5월에 초연되었다.
4.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Z český luhů a hájů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살육의 이야기는 보헤미아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의해 정화된다. 큰 스케일로 굽이치는 첫머리 악구는 드넓게 펼쳐진 체코의 숲과 평원을 바라볼 때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어 새의 노래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나무가 멀리서 울리는, 자연 자체를 상징하는 호른의 고적하고도 풍부한 음향과 뒤섞인다. 폴카 리듬의 민속적인 악구를 거친 다음 모든 주제가 한데 어우러져 밝고 명랑하게 마무리된다. 초연은 1876년 2월에 이루어졌다.
5. 타보르Tábor
이 곡과 다음 곡은 음악적인 면에서나 주제 면에서나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타보르(‘야영지’라는 뜻을 지녔다)는 보헤미아 남부의 도시로, 후스 교파(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 가톨릭 교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얀 후스의 추종자들)가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 곡의 주축을 이루는 악상은 후스 교파의 성가 ‘너희 주님의 전사들아’에서 따온 것으로, 이 굳세고 힘찬 선율은 여러 체코 작곡가의 작품에서 조국의 정체성의 상징으로, 그리고 정치적․사상적 압박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음악은 전쟁 전의 긴장감에서 시작해 전투와 승리, 흥망성쇠를 그려내는 가운데 후스 교파의 신앙심과 위엄도 함께 묘사하고 있다. 곡 말미에 성가 주제가 완전한 형태로 당당하게 제시되기는 하지만, 결말 자체는 불확실하게 열린 형태로 남는다.
6. 블라니크Blaník
‘타보르’의 마지막 대목이 제기하는 모호한 의문은 ‘블라니크’의 힘찬 첫머리에서 해소된다. 후스 교파의 전사들은 결정적인 패배를 겪은 뒤 블라니크의 산중에 숨어들어, 보헤미아에 다시 영광을 가져오기 위해 부름을 받을 마지막 날까지 잠든 채 누워 있다. ‘타보르’에 등장했던 성가 주제가 여기서 다시 되풀이되면서 전사들의 질주를 묘사한 뒤 감동적인 간주 악구로 이어진다. 세월이 흘러 양치기가 피리를 불 때 산중에 누운 전사들의 탄식이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이윽고 악상은 다시 힘을 얻어 비셰흐라트의 주제와 후스 교파의 성가 주제가 어우러지면서 힘차게 끝을 맺는다. 이 곡은 1880년 1월에 초연되었다.
‘프라하의 봄’과 압제에 대한 저항정신의 상징
‘프라하의 봄’ 음악제는 매년 스메타나의 기일인 5월 12일에 열리며, 개막곡은 언제나 <나의 조국>으로 정해져 있다. 이 음악제는, 창설자가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등진 뒤에도 변함없이 남아 체코 현대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함께했다. 아마도 쿠벨릭은 처음 음악제의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이름이 자신이 의도했던 차원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이 대개는 음악제보다도 소련이 투입한 바르샤바 동맹군의 20만 병력에 무참히 짓밟힌 1968년의 민주화 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니 말이다. 그리고 쿠벨릭은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마침내 실현된, 그리고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프라하의 봄’을 맞이한 조국에 되돌아와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던 <나의 조국>을 지휘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그 음악이 지니는 메시지는 명백한 것이었으리라. ‘우리는 뼛속까지 체코 사람이며, 조국의 영광과 빛나는 미래를 위해 함께 싸워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자각. 아마도 체코 사람들은 해마다 5월이 오면 프라하를 뒤덮은 아름다운 신록 속에서 <나의 조국>을 들으면서 이와 같은 자각을 새삼 되새겨갈 것이다.▲1968년 5월 12일 ‘프라하의 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체코 청년들
*민족주의 음악국민주의 음악, 국민악파라고 한다. 민속적 색채와 소재를 반영해 민족 자부심과 전통을 표현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민족주의 작곡가들은 이탈리아, 독일 음악의 지배적 흐름에서 벗어나 각 나라만의 고유한 어법으로 음악을 창조하려 했으며, 이를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시키려 했다. 19세기 민족주의 운동이 발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러시아 5인조,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체코의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노르웨이의 그리그 등이 있다.
스메타나는 리스트의 영감이 넘치는 피아노 연주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첫 공연이 있었던 독일 시민 극장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르 관람했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열아홉 살이 된 그는 단호한 결심을 한다. 연주에 있어서는 리스트, 작곡에 있어서는 모차르트 같은 인물이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1847년까지 백작의 집에서 개인교수로 일하고 프로크슈의 제자로 3년 반을 보내게 된다. 이 기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스메타나의 부탁을 친절하게 도와준 리스트와의 인연과 호의를 스메타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고마움과 존경심으로 간직하게 된다.
몰다우 강
1855년에 스메타나는 지휘자로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1866년, 그는 첫 번째 오페라 '체코의 브란덴부르크 사람들'을 체코 극장에서 1월 5일 초연하였다. 이것은 체코 음악에 있어서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언어와 주제 등, 스메타나 이전의 이류 작곡가들의 수준을 훨씬 넘는 차원에 이른, 음악적인 특성에 있어서 체코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첫 오페라였다. 프라하 청중의 갈채는 틀림없이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애국정신 때문이었다.
스메타나는 불후의 걸작 오페라이자 두 번째 그의 오페라 작품인 '팔려간 신부'를 1866년 5월 30일에 초연하였다. 스메타나는 이 작품의 100회 공연을 죽기 전에 보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국제적인 성공은 스메타나가 사망한지 8년 후, 프라하 국립 연극단이 1892년 국제 연극 경연 대회에 참가해서, 그때까지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오페라를 가지고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때에야 시작되었다.
몰다우 강위의 카를교와 언덕위에 보이는 프라하 성
여섯 곡의 교향시로 이루어진 '나의 조국'은 스메타나의 대표작으로 유명하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제2곡 "몰다우"는 매우 인기가 있다. 스메타나가 이 연작을 착수했을 무렵의 체코는 함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오스트리아 제국의 속령이었다. 그러나 유럽 각지의 민족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보헤미아의 민족주의 운동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최고조로 향하고 있었다. 청년기부터 민족 자립의 열망을 가지고 국민 음악에 힘을 쏟았던 스메타나는 이미 1866년에 민족주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완성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다시 조국애에 불타서 이 연작 교향시를 완성했던 것이다.
몰다우강 위의 유람선
맨 처음에는 "비시에라드", "몰다우", "샤르카"의 3부작으로 완결시킬 작정이었다가, 작곡에 대한 열의가 점점 높아져서 결국 전 6부작으로 된 연작 교향시로 완성된 것이다. 6곡엔 모두 스메타나 자신이 붙인 제명과 주석이 더해져 있지만, 일관된 이야기적인 줄거리는 아니다. 각 곡에 붙여진 주석이라도 묘사적인 "몰다우"을 제외하곤 내용의 해석이 듣는 사람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
작품의 성격은 보헤미아의 빛나는 역사를 전통적으로 회고하는 것과 보헤미아 풍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를 교차시키면서 스메타나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초록의 몰다우강
"이 강은 두 개의 수원에서 시작되어, 바위에 부딪치고는 상쾌한 소리를 내고,
햇빛을 받고는 찬란히 빛나 점점 강 폭을 넓히고, 기슭에는 사냥의 나팔과 시골의
춤곡이 울려 메아리치고 있다. 달빛, 요정의 춤, 이윽고 강물은 성 요한의 급류에 이르러, 물결은 바위에 부딪치고는 물방울을 퉁기며 사방에 흩어진다. 이 강은 천천히 프라하 시로 흘러 들어가고, 여기서 이 강은 오랜 비세흐라드의 거룩한
'몰다우'는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스메타나의 가장 인기 있는 관현악 작품이다.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스메타나가 그 고뇌와 좌절감에 빠진 시기에 이토록 상상력이 신선하고 기악 편곡이 화려한 작품을 구상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몰다우’는 체코의 남쪽고원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체코사람들에겐 너무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중요한 강인데, 2갈래의 작은 강이 합쳐져서 몰다우강이 되고, 프라하를 지나서는 다시 엘베강과 합쳐져서 독일로 흘러가는 강이다.
몰다우는 allegro comodo non agitato e-minor 6/8 박자로, 처음에는 몰다우강의 수원이 묘사되고 그 뒤를 이어 아름다운 주제가 나타나는데 숲 속 사냥의 광경, 마을에서 벌어지는 농민의 결혼식, 즐거운 춤 등이 묘사된다. 밝은 달빛 아래 벌어지는 물의 요정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이렇게 몰다우는 결이 흐르는 강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체코사람들은 이 악곡을 자기네 고국정신을 반영하는 국민적인 교향시로 생각하고 있다.
첫댓글프라하로 흐르는 블타바 강변에 우뚝 선 체코의 옛 성 이름을 따 지은 곡이다. 두 대의 하프가 네 개의 음으로 된 특징적인 음형을 연주하면서 시작하는데, 이 음형은 비셰흐라트를 상징하며 이후 전곡에 걸쳐 여러 형태로 되풀이된다. 아~~~~~~~~~~~~~~~~``` 알흠다와라~~~~~~~~~~~~~~~~~~~~~~~
첫댓글 프라하로 흐르는 블타바 강변에 우뚝 선 체코의 옛 성 이름을 따 지은 곡이다.
두 대의 하프가 네 개의 음으로 된 특징적인 음형을 연주하면서 시작하는데,
이 음형은 비셰흐라트를 상징하며 이후 전곡에 걸쳐 여러 형태로 되풀이된다.
아~~~~~~~~~~~~~~~~``` 알흠다와라~~~~~~~~~~~~~~~~~~~~~~~
체코 여행 중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풍경은 성도, 성당도, 다리도 아닌 블타바 강이였다면 누가 믿어줄까..
@고싱(63년생,영동,여) 빈손이가 믿어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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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와요 빈손님 스메타나 선생 반가워!
스메타나는 체코라는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불멸의 사랑을 받겠군요 예술의 힘이 음악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거에요 빈손님 감동의 감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