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속살까지 온전히 끓어 넘치는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나라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 물풍선이 터지듯 화염을 드러내고
용광로의 그것처럼 쇳물의 혓바닥을 토해낼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지뢰밭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지질학적으로 이른바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화산 분화의 70% 가량이 여기서 발생한다.
인도네시아는...
무려 500여개의 핵폭탄급 화산을 보유한 화산대국으로
대부분 이 곳 자바섬과 인근 수마트라 섬에 집중해 있으며,
그 중에서 130 여개는 현재도 화염을 토하는 진행형 활화산이다.
그 활화산 중의 하나,
땅꾸반 쁘라후 화산 (Gunung Tangkuban Perahu).
해발고도 2.084m에 달하는 반둥 최고의 활화산.
그 불타는 산으로 간다.
열대림에서 아열대림으로, 다시 온대림으로 풍경을 끊임없이 바꾸면서
자연은 단 일각의 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지금 등산중이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다행히도
화산의 분화구까지 차량 진입이 되는 까닭에.
땅꾸반 파라우 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려 30 여분의 등정 과정을 거쳐
안락하게 앉아서 화산의 입구까지 오르면 분화구 입구에 안착.
땅꾸반(Tanguban)은 순다어로 '뒤집어지다'라는 뜻이며
쁘라후(Perahu)는 '배'라는 의미로
이 산을 멀리서 보면 '뒤집어진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산의 들머리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니...
외국인 관광객은 내국인 관광객의 10배의 입장료를 받는 것!
체류 허가증을 갖고 있는 우리 인도네시아 지인분은
우리돈 2,000원의 입장료를,
큰 돈 들여 바다 건너 멀리서 날아온 객들은
무려 20,000원의 입장료를!!
핸들을 잡고 있는 현지인은 공짜!
이 산에 도로를 내고 안전 펜스를 설치할 때
외국인인 너희들은 아무 것도 안 했으니
그 댓가로 외화라도 왕창 쓰고 구경하라는 논리.
인도네시아의 일반 물가를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바싼요금이다.
30개 달린 한줄기에 500원 했던 람부탄을 1200개 먹을 수 있는 금액이며,
한그릇에 2000원 가량 했던 일반 나시고렝을 10그릇 먹을 수 있는 금액이라니...
외국인에 대한 횡포가 도가 지나치다 싶다.
한마디로 외국인을 봉으로 아는 것!
그렇게 비싼 요금을 내고 들어와 발품 약간 팔아 오른 라뚜 화산의 분화구.
표지석에 나타난 해발고도는 분화구를 조망하는 곳의 높이일 뿐,
정상의 높이는 아니다. (정상의 높이는 2.084m)
굳이 정상을 도모하려면 등산 장비를 완비하고
별도의 가이드를 대동하고 일정한 등산로를 타야만 갈 수 있다고.
분화구의 이름은 까와 라뚜 (Kawah Ratu).
'여왕의 분화구' 혹은 '달의 분화구'라는 의미란다.
가운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연기는
이 화산이 튼실히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 땅꾸반 쁘라후 화산은
이렇게 분화구를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운이란다.
산의 곳곳에 설치된 화산 폭발 감지 센서에 약간의 이상 징후만 나타나도
산의 입구에서부터 출입자체가 안된다.
금년만 해도 이상징후로 인해
벌써 수차례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고.
우리의 인도네시아 지인님께서
유심히 집중해서 기억하고 알뜰히 사진에 담아두란다.
언제 어느 순간 이 화산이 폭발해서
칼데라 자체가 순식간에 없어질지도 모르고
행여 대폭발이라도 일어나면 2,000m가 넘는 이 곳이 평지가 될 수도 있다고.
지인님을 존경하지만
소설이 너무 지나친 건 아닌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면 대~박!!
아직 설렘 가득한 연인인듯한 커플이 먼저 인증샷을 남긴다.
히잡 안의 얼굴엔 수줍음이 가득이다.
좋을 때다.
화산에도 오랑깜풍 (촌놈) 천지다.
스위스 문양의 옷을 입은 아빠는 언뜻 한국사람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을 보면 중국인이 분명해보이는 가족도 인증샷을 남겼다.
이 아이들은 중동에서 온 듯한...
칼데라에서 올라오는 유황냄새가 적응이 안 되는지 일제히 마스크를 썼다.
천지도 분간 못하는 하룻강아지인 막내만 빼고.
그러고보니 인도네시아에 와서 관광지를 갔을 때
한국인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동남아에서 이처럼 한국인 보기가 힘든 경우도 드문데.
인도네시아는 자바의 동쪽 끝에 있는 발리와 롬복을 제외하고는
단체 여행 코스가 없는 까닭이다.
화산 분화구 주변에 줄지어 있는 집들!
저 집들의 정체는 기념품 샵들!
분화구 주변을 따라 칼데라를 한바퀴 돌아보려면
넉넉히 한 시간 반은 투자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지,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사실 화산 주변의 가게들을 돌아보는 것도
마치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듯한 유별난 재미가 있다.
하늘은 언제 쏟아부을지 모르는 스콜성 구름을 이고 있지만
가온은 너무나 쾌적하고 상쾌해 고산 특유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질좋은 나무가 많이 나는 나라인만큼 목공예품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인도네시아인들의 섬세한 목공예품들은 이미 세계적 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짐을 늘리지 않는다는 여행의 불문율을 성실히 실천중.
할아버지 한분이 나무 껍질을 그냥 슥슥 깎고 있어 뭐하시나 지켜봤더니...
나무가 정말 특이하다.
자연 그대로의 나무에 저런 문양이...
겉껍질을 깎아내기만 하면 자연산 문양이 저절로~
나무로 만든 여러가지 소품들은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듯 하다.
인도네시아는 남녀 구분 없이 모두들 반지를 좋아하는데...
대부분 알이 큼직한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들.
호박, 사파이어, 코발트, 에매랄드...
품질은 가늠이 안되지만 다채롭고 아름답다.
이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
크기도 가격도 다양하다.
재미있는 건 열대지방에서도 털모자와 털목도리를 팔고 있는 것.
낯선 이방인은 이곳에 와서 긴팔 입을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두툼한 모자와 목도리는 도대체 어떤 용도로 쓰는지...
먹거리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튀김용 기름 때깔을 보니, 별로 안 땡김.
그래도 명색이 2,000m급 산을 올랐는데
소진된 자양분은 어떤 식으로든 보충을 해야겠는데...
미끈하고 길다란 튀김이 있기에 뭔지 물어봤더니,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이름.
바.나.나.
인도네시아에 와서 바보 다 됐다.
세상에~ 바나나를 다 물어보고. ㅋ
튀김 파는 곳의 풍경이 마치 어느 집 제사상을 보는 듯.
술 따르고 절만 하면 어느 조상님도 서운해하지 않을 듯.
하지만 이슬람 국가라 술을 팔지 않는 관계로
조상님 배알은 다음 기회로~
이 잘 생긴 총각은 입구에서부터 나를 쫓아다니고 있음.
휴대가 간편한 천으로 된 제품이
자기가 쓰고 있는 것 같은 모자도 되고
펼치면 가방으로도 변신한다고 계속 옆에서 시범을 보인다.
10개를 60만루피아에 팔고 있으니 도매로 다 사가란다.
너무 착해 보여서 모질게 내치지는 못했는데,
내가 돈이 많아 보였나?
차림새는 딱 오랑깜풍처럼 하고 다녔는뎅...
게다가 저런 걸 10개나 사서 뭐에 씀.
웬만하면 하나라도 사줄까 했는데, 도저히 내 스타일이 아님.
미안~ 다른 사람한테 가서 팔아~ 했는데도
이 남자 한번 마음에 담은 여자는 고이 보내주지 않는다.
이래서 미인은 내놓고 여행을 못한다니까~
부르카로 가리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ㅋ
이곳에 파는 것 중에 제일 탐났던 건 이것.
화산에서 나는 돌로 만든 팔찌인데,
아주 튼튼해서 시멘트 바닥에 긁어도 시멘트가 긁히지 절대 팔찌에 기스가 나진 않는다는....
이 귀한 것을 인도네시아 지인분께서 기념으로 하나 사주셨다.
반둥 화산을 떠나서야 이 돌이 효능에 대해 들었는데,
치매 예방과 숙면에 효험이 있다고...
그 효능을 듣고는 좀 더 많이 사 올 걸 하는 아쉬움이...
어렵게 알아낸 이 돌의 이름은,
히메타이트(Hematite)의 일종이라고.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들 분주하다.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이 아저씨는 멀리서 보고 동상인 줄~
화산 분화구 주변에서 말 타봤어?
안 타봤으면 말을 하지마~
하는 표정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카우보이 모자 쓴 마부들.
그런데 정작 손님은 꼬맹이들.
이곳 아이들은 사진 찍을 때 저런 포즈를 취하는구나.
다들 장사하는 분들인 것 같은데
한 쪽에선 체스판이 펼쳐졌다.
약간의 돈들이 오가고...
이슬람 율법에 도박은 엄벌인데~
엄마 따라와서 목 마른 아기는
야자수를 꿀꺽꿀꺽 흡입중이다.
저 아이를 보니, 멀쩡하던 목이 갑자기 마르기 시작.
"우리도 야자수 먹고 가요~!!"
다리도 좀 아프고 하니 잠시 쉬었다 갈 곳도 필요한데...
저 아래 다 쓰러져가는 집이 보이는데,
혹시 저기도 가게?
겉은 허름하지만 전망 하나는 끝내주겠음!
그래서 갔더니 정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듯한 식당이다.
그야말로 하늘만 가린...
어디서 매콤한 냄새가 나나 했더니,
한쪽에선 생강차가 끓고 있는 중.
코코넛을 주문하자 엄청 큰 야자열매 두통을 들고 오시는데...
족히 내 머리 세 배는 될 듯!!
야자수 열매를 어떻게 개봉하는지 전과정을 지켜본 건 처음...
저렇게 야자수 뚜껑이 열리는거구나.
날더러 직접 뚜껑을 열어서 먹으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내 머리의 뚜껑만 열릴 듯.
적당히 익은 거라 이번엔 코코넛의 과육도 두툼하다.
숟가락을 얻어와 누룽지 긁어먹듯 남김없이 박박 긁어 먹었다는...
자궁이다.
인도네시아말로 자궁(Jagung)은 옥수수!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 교포분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곡물 중의 하나.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도네시아 옥수수는 그 맛이 탁월하다.
인도네시아 길거리에서 만일 연기가 난다면
그것은 구이의 일종인 사테를 파는 곳이거나
아니면 구운 옥수수를 파는 곳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도 나는 예외가 없다.
인도네시아산 큰 자궁.
두 개 사서 혼자 깔끔하게 다 먹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학력의 고저에 관계없이 대부분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믿는 귀신은 대체로 두가지 종류.
우리나라 도깨비에 해당하는 것을 '진(Jin)' 이라고 하고
우리의 전통 귀신에 해당하는 것을 '세딴(Setan)'이라고 한다.
내가 식도락을 한없이 좋아하고
낯선 곳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것도
어쩌면 어떤 미지의 존재가 내 곁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를테면 세딴 마칸 (걸신?) 이나
잘란 진 (길도깨비?)에 씌여있다거나...
그래도 좋다.
멋진 곳을 보면 여전히 가슴 떨리고
맛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군침 가득하고
그리고
아직도 두 다리가 떨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여전히 내게 축복인 것을....
첫댓글 선물도 받으시고 좋으셨겠네요 바나나도 튀겨나오군요 먹고싶네요 자궁 잊어버리지 않겠군요^^
네~ 그 팔찌는 돌아와서도 자랑스럽게 잘 차고 다닌답니다. ^^
불같은 산, 불같은 식탐...
언젠가 터지는 산, 곧 터지는 살...ㅎ
해리슨로드님 때문에 못살아~!! ㅋㅋ
불같은 식탐에 이미 터진 살!!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동상아저씨..나두나두 찌찌뽕!!~~~ㅋㅋ
저기 어흥~호랑이 목공예,
내가 너무나도 애정하는 부엉이...아..안되겠당...자루 하나 짊어지고
요 귀염둥이들을 한껏 담으러 떠나볽까부다!!!!!!!????????정말???
급,자궁먹고파!!!
가시거든 화산석 팔찌 10개만 부탁해요!! ㅋㅋㅋ
어린왕자가
화산에 냄비 얹고 라면 끓여먹었다지만......
대책읎이 순진한 김작가님
화산에 튀긴 빠나나가 피부미용에 좋다는 헛소문을 진짜루 믿으셨내뷰.
( 속은 기 아이고, 기냥 타고 난 역마살이 쪼께 험하다고라? )
의심보다는 믿음이,
불신보다는 속아주는게 더 즐겁지 않나요??
맞으면 좋은거고 아니어도 할 수 없는거고요. ㅎㅎㅎ
세상은 넓고 볼것,먹을 것도 많다. 김작가님은 복 많은 분이시네요.
네~ 저도 저에게 이런 여행의 기회가 있었음에 많이 감사하고 있답니다. ^^
아빠까바르
바익바익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