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 습수요(拾穗謠)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7. 2.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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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 - 습수요(拾穗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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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8:00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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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습수요(拾穗謠)
요약 「습수요」는 ‘이삭 줍는 아이들의 노래’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의 문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시문집 『손곡시집(蓀谷詩集)』 제6권에 실린 7언 절구의 한시다.
전반부에서는 종일토록 이삭을 주워도 광주리가 차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말을 인용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원인으로 이삭가지도 남기지 않고 관가의 창고에 바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주 내용은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음)이다.
작가 | 이달 (李達, 1539년 ~ 1618년) |
장르 | 한시, 7언 절구 |
발생 | 16세기 후반(중종 34년)~17세기 초반(광해군 10년) |
작가소개
조선 중기의 문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시문집 『손곡시집(蓀谷詩集)』 제6권에 실린 7언 절구의 한시다. 제목의 뜻은 ‘이삭 줍는 아이들의 노래’이다. 이삭을 줍는 사람은 농사지을 땅이 없는 가난한 백성이다. 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 자신 평생 동안 몸 붙일 곳 없이 가난하게 살아간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관심은 동병상린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이들을 핍박하는 아전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 중 「예맥요(刈麥謠)」 중 ‘농삿집 어린 아녀자가 저녁거리가 없어 / 비속에 보리를 베어 돌아와 / 밥을 짓자니 생나무가 젖어 불을 못 붙이는데 / 문 앞의 아이는 옷자락을 당기며 우네’ 라든가, 「이가원(移家怨)」에서 ‘늙은 노인은 솥을 지고 숲으로 들어가고 / 늙은 지에미는 아이 손을 잡고 따라 나서네. / 만나는 사람에게 이사 가야하는 괴로움을 말하는데 / 예순 살 아들이 부역에 끌려가서 부자간에 이별을 했다네.’ 등을 들 수 있다.
작가 손곡 이달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삼당시인(三唐詩人 : 조선 중기에 송시풍을 배격하고 당시를 주로 하려는 세 사람이 시인) 중의 한 사람이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스승이며, 서얼 출신인 관계로 문재가 뛰어났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하였다는 등이 전부이다. 다만 그의 제자인 허균이 직접 쓴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이 그의 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속에 실려 있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손곡산인전」의 내용을 요약한다.
작가 손곡이달의 본관은 홍주(洪州)이고 자는 익지(益之)이며, 이수함(李秀咸)의 서자이다. 그의 어머니가 천민이어서 세상에 쓰이지 못했다.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기거하였으므로 스스로 호를 삼았다. 이달은 어렸을 적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글을 엮어내는 것이 매우 넉넉하였다. 잠시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었으나 마땅치 않아 그만 두었다.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 등과 시사(詩社: 시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시를 짓고 읊기 위해 결성한 단체)를 결성하여 어울렸으며, 한 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쓰곤 했는데, 모두 곱고 넉넉하여 읊조릴 만했다.
하루는 사암(思菴) 박순(朴淳)의 영향을 받아 송시(宋詩)를 버리고 당시(唐詩)에 일가를 이루어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 등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불렸다. 그의 시는 맑고 우아하며 품격이 높아 문명을 드날렸다. 그러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고 성품도 방탕한 면이 있어 세상의 법도나 예법에 구애받음이 없었다. 글씨 또한 일가를 이루었다. 평생토록 몸 붙인 땅이 없이 유리걸식(遊離乞食: 떠돌아다니며 밥을 빎)하여 천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명시(名詩)들이 남아 시사에 우뚝하다.
「습수요」의 내용을 통해 가을걷이를 할 땅 한 평 없는 가난 속에 유리걸식하며 이삭을 주어 연명해야 하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과,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아전들의 수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전문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현대어 풀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이 말하기를
종일토록 동서로 다녀도 광주리가 안 찬다네.
금년에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도 교묘해져
남은 이삭까지 모두 거두어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작품해설
전문은 4구의 7언 절구로, 『손곡시집』 제6권에 실린 작품이다. 먼저 제1구 기(起)에서 말하고자 하는 시의 내용은 ‘이삭 줍는 아이들의 말’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제3자인 아이들의 말을 통한 간접화법의 묘는 직접화법보다 현장감을 살려 신빙성과 설득력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제2구 승(承)에서는 이삭 줍는 아이들의 행동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삭 줍는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하루 종일 이 밭고랑 저 밭고랑을 뛰어다녀도 광주리를 못 채우는 안타까운 심정이 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3구 전(轉)과 제4구 결(結)에서는 광주리를 채우지 못하는 원인 두 가지를 밝히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가 교묘해져 이삭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차적인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관가에 바쳐야 하는 세금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가을이면 일 년 동안 땀 흘려 키운 곡식을 수확하는 농민들의 마음은 수확의 기쁨으로 뿌듯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농민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기껏 힘들게 키우고 수확을 하더라도 세금 충당하기에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삭 하나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런 농민들의 심정을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의 솜씨도 교묘해졌다.’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풍년가(豊年歌)가 들려오고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농촌의 가을 들녘에서 오히려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관리들의 수탈과 핍박이 얼마나 심한 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은 관가에 바쳐야 하는 가혹한 세금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음)하는 수탈 현장을 이삭 줍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러나 더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표현은 간접적 우회적이며, 주제는 가렴주구하는 관리들의 황포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네이버 지식백과]
습수요(拾穗謠)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양현승,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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