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강연인지 발제인지를 하고 왔습니다. 요지만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독립운동의 주체를 이천만 ‘민중’이라고 한 것, 뒤이어 수립된 임시정부가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결과였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는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한 민중 주체의 ‘민주주의’와 일제가 한국인들의 의식 안에 심어놓은 천황제 군국주의, 전체주의가 공존 대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그래서 이 말에 다른 의미들을 담았습니다.
1970년대에 3.1운동 때의 ‘민중’ 개념이 소생한 이후 한국인들의 민주화 운동, 또는 민주주의 운동은 민중운동과 결합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민중운동이라는 말의 사용빈도가 급속히 줄어들고 대신 시민운동이 부상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시민단체의 신뢰도는 전체 1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민단체의 신뢰도는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중이 정치적 욕구를 표출하고 실현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정치 과잉으로 인해 시민사회가 위축된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나,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회비 내던 사람들이 정당에 가입하여 당비 내는 사람으로 바뀐 현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시민운동 시대에서 '정당운동 시대'로 이행했다고 볼 수 있는 지표입니다.
한국의 정당 가입자 수는 민주 국힘 양당 합쳐 1천만 명에 육박합니다. 민주당만 당원 500만 명, 권리당원 250만 명입니다. 민중운동 때는 ‘반정부 단체’ 구성원, 시민운동 때는 ‘비정부 기구’ 구성원이었던 사람들이 근래 급속히 ‘정당원’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민단체의 위축과 정당의 확대라는 한국의 특이 현상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시민단체 시절에는 회비 잘 내고 집회에 열심히 참가해서 ‘적극 활동가’나 ‘적극 참여자’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정당원이 되어 당비 잘 내고 집회 열심히 참가하니 ‘강성 지지층’ 소리를 듣습니다. ‘적극 참여자’들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윤 언론들이 만든 ‘강성’ 프레임을 민주당 내에서 그대로 써서는 안 됩니다. ‘적극 참여자’를 배척하거나 멸시하는 조직은 시민단체든 정당이든 지속될 수 없습니다. 또 이른바 ‘팬덤 현상’은 현대의 일반적 문화현상으로서 정치현상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장기지속적입니다. 정치인들이 팬덤 현상을 비난한다고 해서 이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에 적응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방도를 정치인들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당이 대중을 동원하던 시대’에서 ‘대중이 정당을 움직이는 시대’로 이행했습니다. 현대의 대중은 ‘기차 표 끊고 자리에 앉아 잠 자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차가 제대로 가는지 두 눈 뜨고 감시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입니다. 오늘날의 대중은 민주당에 과거 민중운동 단체나 시민운동 단체가 수행했던 역할까지 떠맡기려 하며,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하는지 직접 감시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정치적 욕구를 표출하는 방식에서 일어난 이 근본적 변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적응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정당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책무’라고 봅니다.
당선인들이 제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강연 후 한 분이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을 거쳐 정당운동으로 이행한 것이 자기 일생이었다고. 그 분의 인생 행로나 보통사람들의 의식의 변화과정이나,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
노무현을 이겼던 상대의 연설 수준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허태열의 연설중 일부임)
공약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지역감정만 부추기는데도 저게 먹히던 시절.
저딴 연설에도 박수를 치며 웃는 청중들을 보고, 허탈한듯 웃는 노무현.
저런 꼴을 보고도 지지 않고 끝까지 싸우면서 뿌려놓았던,
당선이 유력했던 종로를 마다하고 굳이 부산에 내려가 뿌려놓았던 그 씨앗이
제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때
많은분들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 그렇게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니까 불행하게도 불안한 예측이 맞아서
아무도 저를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라
이렇게 요새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니면 역사는 평가할 것이다 이렇게 위로해줍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에게 한 약속
그리고 이 시대가 저에게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다 할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 것 없이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
그가 떠났다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 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한 아내의 남편
딸 아들의 아버지
아이들의 할아버지
나라의 대통령
그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무현
옛 임금의 궁궐 안뜰에서 열린다
정권과 검권과 언권에 서거 당한 대통령의 영결식
죄없는 죽음을 공모한 자들이 조문을 명분 삼아
거짓 슬픔의 가면을 쓰고 앉아 지켜보는 그 영결식
그래도 나는 거기 가야만 한다
내 마음속의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작별하기 위해서
검정 싱글 정장을 깨끗이 다려두고
넥타이를 고르면서 묻는다
꼭 검은 것이라야 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같은 것을 매고서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였던 사람
스스로 만든 운명을 짊어지고 떠난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넥타이를 고르며 눈을 감고 꿈을 꾼다
5월 29일 서울시청광장 노제에서
노한풍선 백만 개가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을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
사람사는 세상
7년전 우리가 나누었던 그 간절한 소망이
봄풀처럼 다시 솟구쳐 오르는 것을
시대가 준 운명을 받아안고
그 운명이 이끄는대로 삶을 마감했던
그이의 넋이 훨훨 날아가는 것을
백만개의 노란풍선에 실려
운명 따위는 없는 곳
그저 마음가는대로 살아도 되는 세상으로
다시 눈을 뜨고
넥타이를 고른다
옷장 한켠에 오래 같혀있었던
노랑넥타이
넥타이를 고르며 / 유시민 09년 0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