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8일 월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카인은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고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은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시며 깊이 탄식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위대한 업적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하였고, 그래서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주실 때, 표징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표징을 거부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표징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표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느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행위를 불신앙의 표시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하지, 하느님을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역사 안에 들어오셨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는데도, 그것을 표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불신앙에 예수님께서는 깊이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2,000년 전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이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 안에서 빵과 술의 형상으로 당신을 내어 주시는 주님을 믿을 수 없다면, 실제로 그분을 본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성체로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초연히 떠나가는 수도자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제나 수도자들의 소임 이동 시기가 되니, 초보 사제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한 아동 보육 시설에서 그야말로 신명나게 사목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해가 짧을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혈기왕성했기에 의욕이 넘쳐 뭐든 다했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상천국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회 장상께서 갑자기 저를 부르시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 “하던 일 즉시 정리하고, 비자 수속 마무리되는데로, 즉시 유학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 했습니다. 즉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저 아이들은 어떡하지?’ ‘내가 지금 빠지면 잘 운영되고 있던 이 시설, 순식간에 쫄딱 망할텐테’ 하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안된다. 한 일년만 더 있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씨알도 안먹혔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한 몇 년 떠나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없는 시설, 쫄딱 망했겠지?’ 아니면 ‘문닫기 직전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도착해 보니 웬걸! 그 시설은 제가 운영할 때 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원활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 이제 또 다시 또 다른 임지로 정처없이 떠나셔야 하는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내가 떠남으로 인해 한동안 여파도 있을 것이고, 어려움도 겪겠지요. 그러나 일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 사랑과 능력으로 모자람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도 발길 닿는 곳 마다 놀라운 기적과 업적을 드러내시자, 군중들은 집요하게 그분을 따라다니며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 다음에는 즉시 물러나셨습니다. 또 다른 곳을 향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나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코 복음 8장 13절)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훌훌 털고 초연히 떠나가는 수도자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적미적 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서글픈지 모릅니다. 지난 삶의 모든 것은 하느님 자비에 맡겨드리고, 또 다시 펼쳐주실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가야겠습니다. 오늘도 바리사이들은 무례하게도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해도 해도 너무한 무례한 요구에 깊이 탄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코 복음 8장 12절)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황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순식간에 불벼락을 내리는 것, 다양한 하늘의 이상징후를 보이는 것, 예수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십니다. 오히ㅕ 그들의 불신앙을 신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의 불신과 완고함에 큰 슬픔을 느끼시며,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나가십니다. 혹시라도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 특별한 징표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얼토당토 않은 엉뚱한 기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털끝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은채 손을 놓고 있으면서, 하느님 편의 기적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기적은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 안에 다 있습니다. 참된 기적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고백소 안에서 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된 기적은 우리가 얼마나 먼저 변화하고 쇄신되고자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카인 죽이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주연의 ‘다우트(Doubt: 의심)’란 영화는 ‘의심을 왜 하게 되는가’, 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의심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등의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 합니다.
한 학교의 엄한 원장 수녀님이 그 학교에 파견된 신부님이 흑인 아이를 사제관에 불러 들였다는 사실 하나로 끊임없이 의심하여 그 아이와 신부님을 결국 쫓아내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줄거리를 신부님은 강론 하나로 다 설명해 냅니다.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다행히 한 사람만 살아남았습니다. 구조보트에 탄 그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자리를 보고 노를 열심히 저어서 집에 들어와 편안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노를 젓다가 ‘이 방향이 맞나?’라는 의심이 든다면 그는 그 혼란 속에서 바다를 헤매다 죽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의심’이라 부르는데, 여러분 가운데 이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수녀님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수녀님은 신부님의 강론보다는 졸거나 떠드는 아이들을 혼내려 다니는 것에 온 정신을 쏟습니다.
물론 수녀님이 의심하는 것에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부님을 만난 아이는 유일하게 흑인이기 때문에 신부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었고, 신부님의 방에 다녀온 후로 학교에서 조금 이상할 정도의 행동을 보였고, 평상시에 신부님은 만년필 대신 볼펜을 쓰는 개혁적인 사람이어서 아이들에게 ‘꼬마 눈사람’과 같은 교회 밖의 노래를 부르게 했고,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설탕을 세 스푼씩이나 커피에 넣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녀님의 의심을 꺾지 못했고 그래서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수녀님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교님조차도 그럴 신부님이 아니라며 더 큰 성당으로 발령을 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원장 수녀님은 자신의 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근거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그 정도 빗나가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의 마지막 대사는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는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내 안에 의심이 있어요. 내안에 엄청난 의심이 있어요.”
의심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뱀이 주는 것입니다. 뱀은 자아입니다. 뱀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게 합니다. 이 ‘뱀’이 오늘 독서에서는 ‘카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오늘 독서를 통해 뱀을 어떻게 내쫓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뱀을 내쫓은 유일한 방법은 그 뱀이 얼마나 나쁜지를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뱀이 죽인 누군가의 피가 우리 마음에 떨어져야만 합니다. 뱀이 죽인 희생자를 보아야만 뱀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나쁜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카인이 죽인 것은 아벨이었습니다. 아벨의 피는 그 땅 위에서 부르짖습니다. 하느님은 카인을 내어 쫓습니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카인은 죽을 수 없습니다. 카인이 죽으면 인간에게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인이 쫓겨나면 그 자신 안에는 아벨에 대한 사랑만이 남습니다.
위 영화에서 의심으로 사제를 쫓아낸 수녀님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자신의 의심이 너무 강해서 죄도 없는 신부님을 모함하여 쫓아냈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수녀님이 자신의 의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신부님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면 앞으로는 더 겸손해 질 것입니다. 의심을 쫓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일 것입니다.
바로 내가 죄 없는 그리스도를, 또 죄 없는 다른 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내 안의 카인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내 안의 땅이 하느님께 제발 카인을 내쫓아 달라고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이미 우리 땅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내가 상처 입힌 많은 이들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 피의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었음을 마음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겸손한 땅이 되게 됩니다. 다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들을 에덴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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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플라비아노 (Flavian)
신분 : 총대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 +449년
같은이름 : 플라비아누스 플라비안
콘스탄티노플의 사제이며 경리 담당이던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또는 플리비아노)는 447년에 성 프로클루스(Proclus, 10월 24일)를 계승하여 총대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3세의 대관식에 특별 선물을 보내라는 크리사피우스(Chrysaphius) 재상의 제안을 거부해서 큰 공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
또 448년에 그가 소집한 회의에서는 크리사피우스의 대부이던 에우티케스(Eutyches) 원장의 가르침이 이단이라 하여 단죄하고 사제직을 박탈하여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에우티케스는 이에 불복하여 로마(Roma)에 상소했으나 교황 대 레오 1세(Leo I, 11월 10일)는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 성 플라비아누스의 용기를 격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레오의 책"(Tome of Leo)으로 전해오는 유명한 문서이다.
황제 측은 이에 분개하여 에페수스(Ephesus) 공회의를 소집하였지만 교황은 이를 '불법 시노드'로 단정하였다.
황제의 측근들은 성 플라비아누스를 몰아내고 리디아(Lydia)의 히페페(Hypepe) 감옥에 투옥시켰다.
그는 그 후 얼마 뒤에 운명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도 불린다.
왜냐하면 황제 측근 군사들에 의한 심한 고문과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에서 성 플라비아누스는 성인이자 순교자로 선포되었다.
성 콜만노 (Colman)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린디스파른(Lindisfarne)
활동연도 : 605-676년경
같은이름 : 콜만누스 콜만 콜먼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Connaught) 태생인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성 콜룸바(Columba, 6월 9일)의 지도아래 이오나(Iona)에서 수도자가 되었고, 성 피난(Finan, 2월 17일)을 계승하여 린디스파른의 세 번째 주교로 임명되었다.
663년에 개최된 휘트비(Whitby) 시노드에서 그는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와 성 아길베르투스(Agilbertus, 10월 11일)를 반대하여 켈트(Celtic) 교회 전례의 주요 옹호자로 활동하였다.
국왕 오스위(Oswy)가 성 발프리두스와 로마 전례를 주창할 때, 성 콜만누스는 자신의 주교직을 사임하고 아일랜드와 잉글랜드(England)의 수도자들과 함께 린디스파른 섬을 떠나 코노트 해안의 이니쉬보핀(Inishbofin) 섬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곳에서 켈트 전례를 계속하였다.
아일랜드계와 잉글랜드계 수도자들 사이에 알력이 발생하여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마요(Mayo)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고 두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큰 공헌을 하였다.
성 테오토니오 (Theotonius)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코임브라(Coimbra)
활동연도 +1162?/1166년?
같은이름 테오토니우스 테오또니오 테오또니우스 떼오또니오 떼오또니우스 성 테오토니우스(또는 테오토니오)는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의 주교인 크레스코니우스(Cresconius)의 조카로서 어릴 때부터 사제 수업을 받았다.
그는 사제가 된 뒤에는 주로 본당사목을 하였는데, 매우 엄격한 생활과 높은 성덕 때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얼마 후 그는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였고, 포르투갈의 황녀와 백작이 그를 주교로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자신이 항상 이를 거절했다.
두 번째로 성지를 순례한 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가 코임브라에 세운 새 수도원에 입회하여 장상을 역임하였다.
그를 지극히 존경하던 국왕 알폰수스는 성 십자가 수도원에 많은 선물을 희사하였다.
그는 80세까지 30여 년 동안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167년 포르투갈의 주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후에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 1740-1758년 재임)에 의해 승인되었다.
성 시몬(Simon)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107년경
같은이름 : 사이먼, 시메온, 시므온
예수 그리스도의 사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성 시몬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마르 6,3; 마태 13,55) 명단에서 등장한 시몬인 듯하다.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교회사”에서 성 시몬이 “주님의 삼촌인 클레오파(Cleopha)의 아들”이었으며, 주님의 형제 야고보(Jacobus, 5월 3일)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가 노년에 순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 순교록”에서는 “주교이자 순교자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성 시몬은 클레오파의 아들이며, 구세주와 육적으로 가까운 사이로 전해진다. 그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다음에 예루살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트라야누스의 박해 때 많은 고문을 받고 120세의 나이로 용감하고 당당하게 십자가 형벌을 견디어내는 것을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과 재판관 자신까지 놀라워하는 가운데 순교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기초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이모, 클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요한 19,25)는 성 시몬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 시몬은 예수님의 외사촌 형제였을 것이다.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된 것은 성 야고보가 순교한 62년으로 여겨진다.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중요 위치와 역할을 상실하였다. 또 야고보가 순교한 이후 예루살렘에는 반로마 메시아니즘이 등장하였다.
유대 민족주의를 거부한 대부분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요르단 강 서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결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활동한 기간은 많은 박해와 어려움들로 얼룩진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메온(Simeon)으로도 불리는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명인 열성당원 시몬과 동일 인물로도 여겨진다(마태 10,4; 마르 3,18; 루가 6,15; 사도 1,13).
성 안질베르토 (Angilbert)
신분 : 수도원장 시인
활동지역 : 첸툴라(Centula)
활동연도 : +814년
같은이름 : 안질베르투스 안질베르또 안질베르뚜스 안길베르토 안길베르투스 앙길베르트
성 안길베르투스(Angilbertus, 또는 안질베르토)의 별명은 '호머'(Homer)인데, 그의 라틴 시가 매우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샤를대제(Charlemagne)의 궁중에서 자랐고, 알퀴누스(Alcuinus, 5월 19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 안길베르투스는 샤를대제의 딸 베르타(Bertha)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정치적인 의미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덴마크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기를 늘 기도했는데, 폭풍우가 덴마크 군인들을 몰아내자 수도 생활을 꿈꾸고 이를 실행하였다.
그래서 그의 아내인 베르타는 수녀원에 들어갔고, 자신은 첸툴라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그곳의 원장이 되었으며 도서관을 설립하였다. 또한 그는 수도원에서 성가 부르는 것을 도입하여 그의 수하에 있던 300명의 수도자들이 늘 애용토록 하였다.
그는 샤를대제의 절친한 친구로 신임을 받고 있었으므로 궁중 사제, 고문관, 외교관의 직책도 역임하였다.
그 당시 그는 황제에게 진언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