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를’이 비처럼 내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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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이 비처럼 내려◎]
송병숙 시집 / 시와소금시인선 110 / 시와소금(2019.12.2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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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달을 한 입 베어 물다
보름달을 관음송에 피워놓고 마음 비질하는 밤
아비를 베어 문 죄 하늘에 튕겨 참회의 길은 길고 무겁다
단풍 드는 일은 한 업業을 쓸어 담는 일
바람은 연緣을 묻지 않고 예각의 물소리 밤새 시리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욕망을 접는다는 것일까
만개한 보름달은 꺾어 강물에 던지니
달은 흩어져 형체를 지우고 물길을 돌고 돌아 모로 누운 산자락 하나 감싸 안는다
색色을 버린 산은 저물어 자유롭고
멀리 에돌아가는 어라연의 발꿈치는 밤내 눈부셨다
솟대를 걸다
새 한 마리 띄운다
노루삼만하게 부풀어 오른 색동주머니에
볍씨 한 줌 넣어 장대에 높이 매달았다
지상에 풍년이 들고 천상의 신들이 깃털을 흔들고 지나가면
그 오랜 바람의 기별인 듯
쓸쓸한 영혼의 날실과 씨실을 뽑아
고향 마을 어귀에 이방인처럼 섰다가 왔다
순록의 뿔이 떨어질 때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고 믿는
머지않아 지상에서 사라질 저 북극 돌간족의 비원이 향불처럼 피어오르는 밤
죽은 이가 천상세계로 올라갈 때 은하수를 따라간다든지
새의 모습으로 셔먼의 몸에 스민다든지 하는 이야기
사라진다는 게 영영 아득하여서
TV에선 수만 마리 새떼들이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며 천상을 맴돌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새들의 비행이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기러기 떼의 정령 같아서
이미 사라진 것들과
곧 사라질 것들과
막 길을 떠나는 그 날갯짓 소리 듣는다
끊어질 듯 간간이 이어지는 낯선 이방의 노래
창밖에선 궤도를 이탈한 새 한 마리
별꽃잎 한 따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를’이 비처럼 내려
‘를’이 유리창에 비처럼 내려 똔또똔 똔또돈 시계탑 앞에 머무는 동안 목적어가 떠오르질 않네 이 추위는 어디서 오나 양식이 떨어졌나 신용불량자인가 입술을 축이기도 전에 타전해 놓은 활자들이 술렁거리네 알맞은 핑계를 찾지 못한 나는 자주 불안해지고 미워하기 시작하고 블록을 씌워 서성이다가 한참이나 후회의 뒷길로 미끄러지네 엔터를 놓친 자판이 입천장을 자동기술로 훑는 동안 방금 튀어 오른 ‘ㄹ’ 이 혀끝에서 펄럭이고 ‘~’을 좇는데 긴 인생이 다 걸리는 ‘을’이 ‘를를를’ 쏟아져 송곳처럼 박히네 프리다처럼 박히네 나사못 끝에서 쿵쾅 심장이 부서지고 파랑새 한 마리 허공을 찢고 사라지네 붕대를 풀고 ‘을’을 초승달처럼 뒤지면 한 세월을 찾을까 자궁 속 아기는 ‘을/를’을 걷어차고 조각난 시간의 탱목을 헐었다 세웠다 헐거워지네 ‘를’의 방향을 잃고 아흔아홉 얼기설기 일어서는
사이論
사람이 사람에게 넘어져 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잃어버린 사이가 아까워 운다
사이를 상상으로 키운 방동리 봉분 셋
광주리를 인 아낙들과 어린 학생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홍골에서 금산 배터까지 한걸음에 내달리는 사이 아침보다 조금 더 붉은 햇덩이를 안고 소양강을 건너 북한강을 건너 저녁 밥상에 올만졸망 둘러앉는 사이 골 안 맨 윗자리 사이를 목숨과 바꾼 신숭겸과 사이에 황금을 묻은 왕건이 전설로 우뚝 솟아오른 곳
무례한 후대들 그러할 줄 알고 전국의 명당자리 세 곳에 봉분을 세 개씩 쌓아 진실과 사실을 버무려 놓았다는데
도굴꾼이 밤새도록 헛무덤을 파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다는데
방동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사이에 관한 자세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황금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는데
사이의 상처
시작도 사람이고 마무리도 사람이니 돌아갈 곳도 사람이라고
두둑뿌리 지나 담보대 지나 장절공묘에 올라가 보면
사이에 날개를 단 전설 하나 황금빛으로 너울거리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이 그리워 운다
탑
-미륵사지를 지나며
중심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팔을 벌려 품을 키워야 높아져도 외롭지 않음을
오늘의 결말이 모두의 정점은 아니어도 탑은
늘 중심을 우러른다 견딘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흔들린 만큼 균열져
허공이 높을수록 두려움도 컸을
한 사람을 알겠다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을 빈 항아리처럼 엎어 놓고 오래된
바람의 말을 조심스레 쓸어보는 이 곳
한 계단 한 계단 쌓아올린 손길이 마지막 보주를 탑신에 올려놓을 때
번뇌가 몰려와 온몸을 회오리로 휘감을 때 탑은
아랫돌이 윗돌을 견딜 때에만 붙여지는 이름이란 걸
막 삐져나온 모퉁이돌 하나 쏟아지는 허공을 받아 안는다
곁에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 출렁 몸을 던져 그 틈을 메운다
휘영청 솟아오른 탑은
한 팔과 한 팔이 걸리는 곳에서 피어나는 이름이란 걸
알겠다, 오래 지켜온 허방의 힘으로
겉은 흔들려도 중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을
느리게 알겠다
가벼운 십자가
가슴에 동굴 하나 뚫려 있다 막다를 때마다 파 들어간 굴이 산등성이를 관통했다 시커먼 아가리가 명치 끝에 매달려 돌개바람을 일으킨다
굴을 파는 동안 어둠은 익숙해졌다 손톱엔 피가 맺혔고 무릎과 허리엔 습풍이 들이쳤다 막다르지 않았더라면 잃지 않았을 것들이 굴을 파는 동안 떠나갔다
떠날 사람들이 떠났고 올 사람들이 왔다
십자가는 참 가볍다
터널은 늘 마지막에 가서야 다음 말을 이어간다는 걸 가슴에 굴을 파 본 사람들은 안다
굴은 시작과 끝이 달랐지만 낯익었고 낯설었다
끝이 보이자 반달 모양의 햇살이 손을 내밀었다
높지 않으면 막다르지도 않았을 거라고 터널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산의 중턱은 출구만으로 꽉 찼다
손가락 끝에서 노을이 퍼져나갔고 발가락 끝에서 은어 떼가 출렁거렸다
뛰어내리면 닿을 곳에서 완행버스가 구불구불 경적을 울렸다
들꽃들이 그림처럼 일어섰고 계곡물이 경쾌하게 발을 굴렀다
그 길 또한 아름다웠다
선택한 길이 운명이 되었다
기억의 저항
완장을 차고 어둠이 저벅거리네 아침에 뱉어놓은 문장이 엿가락처럼 구불거리네 피고 지는 일은 늙고 병드는 일과 같이 꽃의 일상이어서 맨드라미가 씨방을 털고 가벼워지네 삶이라는 게 묻고 또 묻는 일의 반복이지만 씨앗 하나 터는 일로 까마귀오줌통이 지린내를 풍기고 있네 우우 몰려오는 달 비린내 일렁이는 못물이 머릿단 가득 캄캄하네 노란 완장과 검은 날개와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들을 논둑길에 구불구불 펼쳐놓네 이명의 분절음이 삐, 삐, 마감 시간을 알리고 마른 입술을 자주 버스럭거리네 괘종시계가 뎅뎅 녹아내리고 그동안 알고 지냈던 것들이 하나씩 밑동을 뽑고 떠나가네
흐르는 문패
문패를 달고 싶었다
물길을 돌려 꽃을 피우고 물고기를 키우며 물위를 걷고 싶었다
번지를 갖기 위해서는 흐르는 것을 납치해 바닥을 띄워야 했다
연잎 위를 걷기 위해 발가락이 정강이보다 길게 발달한 카카두의 닌자새처럼
물살이 급할 땐 발톱이 날을 세웠고
입동이 지나자 얇게 감금된 강물이 먼저 얼개를 짜기 시작했다
성글게 길이 생겼고 모든 통로가 읍으로 향했다
살얼음은 듬성듬성 모양을 잡았지만 결의가 부족했다
바닥을 돋우고 뼈대를 세울 땐 이웃의 얼개까지 조여야 했다
군개를 건너 본 사람들은 안다
동면에서 깨어난 물은 길을 지우고 날을 세워 안면을 바꾼다는 것을
물이려니 하면 얼음이었고 바닥이려니 하면 수렁이었다
언 자갈을 밟으면 꿈속까지 미끄러져 오랜 고질병이 되었다
입춘이 되자 강은 얼개를 풀었고 번지를 버렸다
동상으로 부푼 발가락 또한 물집이 터져 진물이 흘렀다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사이
형형炯炯한 것들은 모두 본래대로 돌아갔다
찬밥에 관한 몽타주
조팝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숟가락을 입에 물던 바람이 저녁밥상 여가리를 맴돌다 풀 죽는다 며칠 묵은 반찬과 찬 밥 한 덩이 끓는 물을 붓고 인생의 저변은 늘 이리 쓴 혓바닥 어디쯤이었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밥 앞에서 소심해지는 아버지를 들춰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해요 밥도 짓고 국도 끓이세요 뜨거운 김이 오르지 않아도 수저를 드세요 온기도 찰기도 사라진 약방문이 가부좌를 튼 채 피어나는 밥 사리 그 자리에 상사화가 피지는 않아요 TV를 켜 든 아버지의 숟가락엔 배고파 우는 아이가 헌데딱지를 파리에게 파먹이다가 SNS를 달구는 유명인사의 그림자가 흘린 밥풀처럼 어정거리다가 발뒤꿈치 때를 벗겨 밥상머리에 뿌려놓는 친절한 TV씨 세상의 모든 입맛들이 밥상을 뒤집는 동안 온기를 잃은 조팝나무가 농담이 될지 르포가 될지 오리무중이다.
새의 공격
달의 소재는 캄캄한 허공이다
빌딩도 몸집을 키워 달과 한 통속이 되었다
유리창엔 달도 들이고 별도 들이고 구름도 풀어 놓았다
하늘은 이미 새의 소관이 아니어서
어스름 그늘 속
노랑턱멧새 한 마리 피를 흘리며 가느다란 숨을 내뱉는다
유리창에 함몰된 어둠은 한 올 한 올이 올무였다
돌진하는 새
빼앗긴 권리를 주장하며 빌딩과 맞섰고 깃털을 세워 달의 공격을 시시각각 튕겨냈다
위험에 빠지면 텍사스 도마뱀은 눈에서 핏물을 내뿜고
새는 달려드는 것들을 향해 온 몸을 부풀린다지만
최후의 보루는 언제나 돌아서는 것이었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노랑턱멧새
숨이 빠져나가는 동안 잠시 멈칫거렸던가
바람이 들썩거리자 주검이 대항하는 것 같았다
달의 살점이 새의 턱과 눈썹크기만큼 노랗게 뜯겨 나갔다
어깨에 힘을 주는 일은 소용없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꽃의 함성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꽃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인류의 역사는 유구했지만 여자에겐 비상구가 없었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바람으로 벽을 쌓고 얼음으로 구들을 들인 저 시베리아 벌판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비상구처럼 반짝이던 아픈 여자가 고개를 꺾었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법을 집행하는 자 법을 더럽히고, 정치하는 자 정치를 더럽히고, 행정을 하는 자 행정을 더럽히고, 교육을 하는 자 교육을 더럽히고, 예술을 하는 자 예술을 더럽히고, 사업을 하는 자 노동을 하는 자……
수많은 꽃들의 통곡이, 수많은 을乙의 통곡이 하늘을 찌른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들숨과 날숨 사이 덜컹거리던 꽃잎이 떨어지고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가장 좋은 시간에 모두들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도 고개들지 않았고 아무도 손 뻗지 않았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딸들은 어두웠고 아팠고 수치스러웠고 두려웠고 죽음으로 막다랐다
꽃이 꽃의 이름으로 일어선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단전을 꼿꼿이 세운 꽃, 외친 이름으로 타오르는 꽃, 꽃이 꽃의 이름을 부르는 꽃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꽃을 짓밟은 자, 꽃을 짓밟도록 부추기는 자, 꽃을 짓밟은 자에 동조하는 자, 꽃을 짓밟은 자를 용서하는 자, 꽃을 짓밟는 자를 방조하는 사회를 처단하고 있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이름을 걸고 미투를 외치는 모든 꽃들이 적당했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쏟아지는 악평과 고난과 불이익에 저항하는
꽃들의 분노가 적당했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짓밟힌 꽃도, 짓밟힐 뻔 했던 꽃도, 짓밟히지 않은 꽃도
꽃들의 애인도, 친구도, 식구도, 직장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피를 흘린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꽃을 짓밟는 자
자신의 어미, 자신의 누이, 자신의 딸, 자신의 처, 자기 자신마저 짓밟는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꽃의 몽둥이, 꽃의 채찍, 꽃의 총칼
모든 처단이 마땅하였다 마땅하다 마땅해야 한다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이 지상에 꽃을 짓밟는 자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여자가 사람이 될 때까지, 사람이 사람이 될 때까지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사과 대위법
그녀가 사과,한다
사과다 싶으면 사과에 사과,한다
사과가 강신이라도 할라치면
사롸 꽃을 피우느라 날밤을 새기 일쑤
사과를 씻거나 사과를 펼치다가도
뜨거운 사과 귓전에 스치면
손을 뻗어 다짜고짜 움켜 채보기도 하고
사과를 쪼개고 사과를 깨물어 사과향 물큰거리기도
서툰 사과는 사과상표 하나 매달지 못하고
사과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사과, 하지 못하고 사과 파치로 사들고
어쩌다 접신이라도 하는 날
도공의 사과인 양 밤새 불덩이 같은 사과사과사과 수 십 알 낳기도 하고
사과,하기 위해 살과 뼈와 영혼을 바치는
불타는 사과, 뼛속의 사과
사과는 오늘도 새빨갛게
사과,한다
꽃의 변주
크루베의 손길이 여자의 태엽을 되감는다
지나간 여자가 액자 속에 채집되고
부화를 꿈꾸는 새벽이 겨울 외투를 훌훌 벗어 던진다
곤궁한 자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팔랑개비는 제 몸 반을 구부려 머릿속 단내를 뿜어내고
다섯 시 만큼 깨어난 여자들이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
바람이 부는 동안 액자 밖으로 잘려나간 여자들이
잊혀진 얼굴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꽃을 문 여자가 여자를 문 꽃과 마주 서는 시간에 대하여
일요일의 기도가 월요일의 기도보다 경건한가에 대하여
채집된 역사가 콩꼬투리처럼 껍질을 벗는다
세계의 기원이 액자 밖의 여성을 새롭게 번역하자
기슭에 서 있던 여자들이 세상 문을 열고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시와 박쥐
피를 줘
단말말로 분출하는 초음파의 유영 속
나의 애정행각은 너의 가슴털을 정성스레 고르는 일
음습하고 차가운 바위의 젖무덤에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캄캄한 모가지에 빨판을 꽂아
삼킨 피를 토해 영혼을 불지르는 흡혈박쥐
너를 먹고
나를 먹이는
끈적하고 뜨거운
천형의 결탁
시의 힘줄
산책길을 뒤적뒤적하니 어린 참새들이 덤불 속에서 날갯짓을 한다
사람인 나를 믿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아예 길을 막고 아장거린다
왜 나는 그동안 시를 여왕처럼 모시고 눈치 보며 살았을까
삶이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짱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머리를 조아리며 멋진 장신구만 찾아 조공을 바치려했는지
올배나무 밑에서 배꽃 몇 잎 받는 일이 시를 받는 일이고
뻐꾸기 한 소절이면 모시적삼에 바람이 들고
소낙비 후두둑 뛰어와 안기면
힘줄 퍼런 억새 젊은 애인인 듯 아스라이 쓰러지는 일
댓잎 그림자 하얀 완자창에 묵죽 치는 달밤
가는귀가 환해지도록 마음에 빗장 하나 내리면
싸락눈 내리는 소리에 무딘 붓끝도 사그작 사그작 잘 늙어갈터인데
물개와 백련사
우주가 숨을 참는다
자장율사와 삼존석불이 저녁 명상에 드는 시각
북극에선 물개가 물개를 물어뜯고 절문 밖을 휘도는 여울목은 반석을 깎아 흰 연꽃을 툭 툭 피워 올리고 있다
흐느적이는 목덜미 넓적다리 붉은 살점이 뭉청뭉청 잘려나가는 동안 돌의 정강이도 물에 슬려 앓는 소리를 낸다
우성들의 사투가 비리고 뜨거운 밤
승리한 수컷 물개가 상처를 너덜거리며 8시간째 짝짓기중이다
산목련을 쓸어안고 산문에 떨어지는 계곡물도 빠르게 리듬을 탄다
전장의 그림자는 어디로 갔나
한순간 피었다 사라지는 목숨들이 연꽃담을 중심에 두고 캄캄하게 가라앉는다
산사에도 북극에도 달빛이 교교히 쏟아지고 있었다
이팝나무의 각도
이팝나무를 본다
나무의 정수리를 위에서 내려다 본다
거리는 커다란 밥상, 눈부신 햅쌀 공양
제주 담그는 날이면 바람 잘 드는 채반에 하얀 술밥을 알알이 펴 널며 어른들은 분주했고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모내기철이면 흰 쌀밥을 논두렁에 펼쳐놓고 가난한 이웃들을 부르던 어머니
하오의 햇볕은 이팝나무 모밥을 차려놓고 꼬슬꼬슬하게 유년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올려다 볼 때와 내려다 볼 때의 간격은 크다
사람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금 더 외롭고 조금 더 슬프다
홀로 걸어도 그렇고 함께 걸어도 그렇다
가족도 이웃도 직장상사나 동료도
밥을 비웃는 사람도 밥에 매달리는 사람도
깃발에 담긴 이념도 함성도 뒤집어 보면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외롭다
이팝나무인 양 배추단을 산처럼 이고 새말 모래시장을 가로지르던 어머니
이념은 몰라도 식구들을 먹이느라 평생 똬리를 버리지 못하시던 내 어머니
눈 한 번 부릅뜨면 사남매 오금이 저리던 어머니
새벽 등굣길 살얼음 진 군개 물에 언 발을 담그면서도 서럽지 않았던 건 사철 무거운 짐을 이고 세상의 모든 군개를 첨벙첨벙 건너던 어머니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햇살 좋은 유월
고층 빌딩에 올라 이팝나무 밥상을 앞에 놓고
세상을 보는 위치와 각도에 대해 생각하다
벼꽃
벼꽃이 필 때 나는 지나쳤네
장미 백합 후리지아처럼 빛깔과 이름을 가져야 꽃인 줄 알았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알았네
밥은 벼의 살 벼의 맥박 벼의 영혼
중심을 잊고 까맣게 밥을 먹었네
봄, 여름 지나 텅 빈 줄기 끝에 이삭이 나오는 일
공기나 햇살의 느꺼움을 지나치듯
내 몸 내 자식 내 아픔에만 애가 끓었네
꽃인지 솜털인지 드러내지 않는 자마구
벼꽃이 져야 밥이 된다는 말씀
엄마가 곁에 있을 땐 아무 것도 알지 못했네
복숭아 살구 앵두가 아니어도 당신 살을 모두 내어주던
벼꽃은 피는 게 아니라 자마구에 이삭이 나온다는 말
첫 어미가 돼서야 쌀알만큼 알게 되었네
어느 늦은 날
볏짚 같은 몸을 씻기며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었네
텅 빈 채로 마른 등줄기
웅이 웅이 박힌 벼이삭을 처음 보았네
볏짚 썩은 변을 받아내며 너무 빠른 엄마를 뉘우치고 뉘우쳤네
억겁의 인연으로 만나는 우담바라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캄캄하게 지나쳐 버린 꽃
닁큼닁큼
추석이 늙었다
친정은 유통기간이 지났고 시집도 폐기처분된 지 여러 해 되었다
토란국 좋아하는 큰 애는 비행기 안에서 명절을 베어 먹고
잡채 좋아하는 작은 애는 방콕에서 팟타이를 후르륵 거릴 것이다
당구 치러 나가는 남편 뒤에다
전 좀 부치고 송편이나 빚을까 하니 다 그만두자고 한다
선고先姑의 유언대로
제사도 차례도 미사봉헌으로 바꾸고 나니
발뒤꿈치 아프고 허리 아플 일도 없는데
가랑잎이 하루 종일 양푼 긁는 소리를 낸다
빨래나 할까 자전거나 탈까 어정거리니
거실은 텅텅 울리고
베란다를 기웃거리던 저녁햇살마저 막차처럼 떠나갔다
기름 냄새도 없이
송편 한 접시 카톡방에 디밀었더니
열나흘 구멍을 땜질하던 늙은 명절들이
닁큼닁큼 집어 든다
발가락 따옴표
입관실에서 아버지는
마디마디 꺾인 발가락을 나팔꽃처럼 펼쳐 보였다
날개는 어둠에서 나왔어, 새를 키우는 일은 가슴에 터널을 뚫는 일이야
아버지가 발을 끌며 걷는다 한 걸음 들었다 한 걸음 느리게 내려놓는다
부드럽게 리듬을 타는 발가락은 넝쿨을 닮았다
뻗어 나가기 위해 구부림을 주저하지 않는
생의 마지막까지 웅크렸던 몸을 곧게 펴는 것은 걸어온 발자국마다 따옴표를 찍는 일이어서 행간과 행간 사이 말라버린 눈물 송이들이 바삭바삭 부서진다
넝쿨손이 퇴화된 아버지는 절벽에 부딪힐 때마다 모퉁이가 한 점씩 떨어져 나갔으리라
뼈는 꺾여 중심을 옮기느라 걸음걸음 두려웠으리라
새보다 가벼운 접지의 이 순간
피 묻은 무지외반증의 발가락이
잃어버린 날개인 양 활짝 펄럭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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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자벌레가 기어간다
두려움에 머뭇거리다가
간지러운 겨드랑이를 후벼 파다가
밤하늘의 쓸쓸한 눈빛에 들키곤 한다
종종 움츠러들거나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나가는 것이 숙명인 듯
다시 일어서는 벌레
몸통은 온데간데없고
몸부림만 남은
‘를’의 모습이 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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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숙 詩集 [※‘를’이 비처럼 내려※]
[ 작품해설 ] -
시의 몸과 언어의 살청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가슴에 동굴 하나 뚫려 있다
막다를 때마다 파 들어간 굴이
산등성이를 관통했다
시커먼 아가리가 명치끝에
매달려 돌개바람을 일으킨다
― 「가벼운 십자가」
1.
누군가에게 시는 가슴 속 동굴처럼 깊게 파인 암흑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 동굴은 억압된 시인의 무의식이 자리한 공간이며, 암흑은 언어화되지 못한 기억이 함몰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비의식의 공간으로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지만 시작과 끝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막다른 장소이다. 여기서 시는 깊고 넓은 어둠 속의 표면을 언어로 굴토하는 과정 속에서 억압된 암흑을 관통하며 사유를 견인하면서 미적인 것을 발생시킨다. 또한 그것이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결핍이라는 ‘시커먼 아가리’ 속 동굴의 실체를 보게 되고, 존재의 ‘명치끝에 매달려’ 있는 근원적 공명을 생성하는 사유의 자리를 드러내준다. 그럴수록 시인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십자가’의 멍에가 한없이 가벼워지며 절망으로부터 구원에의 영역으로 가 닿는다.
이번 송병숙 시집 『‘를’이 비처럼 내려』의 배후에는 미증유의 기억을 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환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억은 시인의 체험에서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결핍으로 남은 의식의 여과이다. 체험을 통과한 시는 몸의 감각으로부터 유입된 기억에 저항하며 세계적 모순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소멸해 가는 것을 시적 언어로 현상하고, 미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시인은 이미 사라진 것 속에서 향후 사라질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언어로 고정하면서 스스로가 넘은 한계를 독자와 향유한다. 이때 그녀만의 새로운 언어가 출몰하는데, 도식화된 체계와 질서를 파괴하면서부터다.
기억의 언어는 저마다 감득한 세계의 파편화된 “홍채에 바코드를 찍는 5*02*3-2****** f 9*5 84*3 cH*s*ㅅ?% 7*1 703 s의 실존은 규명 불가”(「질문에 답 하시오」)한 분화된 기록으로써 온전한 언어로 저장될 수 없다. 누구나 실제적인 현상은 공유할 수 있지만 직관적이고 관념적인 것은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지각일 뿐이다. 기억화 된 언어는 자신에게 관계하는 파편화된 몸의 일부이며 완전하게 기호화 할 수 없다는데 있다. 시는 바로 이러한 세계의 시선에 바코드로 저장되어 있는 알 수 없는 “사물들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호’로 읽힐 수 있는 어떤 우연적인 실재의 몇 조각이 이 의미를 인준해야만 한다. 바로 그 기호라는 단어는 임의적인 지표 mark와 반대로 ‘실재의 응답’과 연관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시는 조각된 몸의 기억을 유예하며 실재의 응답을 인준하기 위해 자동적이고, 이기적인 몸의 기억에 저항한다. 그것은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고 감각함으로써 기존의 언어적 억압에서 벗어나 실존을 조망하고자 하는데 있다. 마치 “저장용량을 초과했거나 기억회로 손상 시 발생하며 유효기간 만료” 된 세계의 언어를 새롭게 조직하고 시의 명령을 실행하면서 기억에 저항하는데, 그것은 실체의 귀환이 아니라 상징적 그물망에 걸려 있는 언어로서 변증적인 것이다. 따라서 몸이 기억한다는 언어는 각인된 의식에서 산출되는 생각이며, 그녀가 보여주는 시는 “세상을 보는 위치와 각도에 대해 생각”(「이팝나무의 각도」)하는 것으로서 ‘실존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하여 ‘언어의 각도’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그녀는 몸의 기억 속에서 자아가 완성해가는 환상과 은폐된 의식을 감각적인 시의식으로 완화한다. 몸은 정신을 식민화하는 거대한 공간적 구조를 가지며 적대와 모순을 가지고 있기에 기억 속에서 분산되고 사라지고 만다. 거기에 기억이라는 허공에 솟대를 걸어 놓고 “이미 사라진 것들과/곧 사라질 것들과/막 길을 떠나는 그 날갯짓 소리 듣는다”(「솟대를 걸다」)는 사라져가는 몸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쓸쓸한 영혼의 날실과 씨실을 뽑아” 올리는 모던한 시적 출현을 예고한다.
2.
귀의 첫 삽은 소금 방정식
바닷물이 뱉어놓은 소금의 질량과 해를 풀 말의 사리를 찾아
오체투지하는 귀들이 염전에 엎드려 있다
먼 고대 육지에 갇힌 바닷물이 제 뼈를 발려 태양 아래 널어놓은
소금의 결정은 말의 결정을 닮았다
각을 세운 소리들이 몸 부딪치는 내 안의 보리수
고흐가 잘라버린 귀 한쪽이
못다 읽은 경전의 한 페이지를 구겨 처마 밑에 건다
바람이 입을 벌리고 한 술씩 떠먹이는 말씀이
하루치의 염장炎瘴을 다 쓸고도 남겠다
외이도를 뛰쳐나오는 말발굽이 수 만 평 염전을 달려
톱니 가위로 해안선을 가른다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나의 게송은 부걱거리는 소금의 얼개
가두되 갇히지 않는, 결結도 해解도 함께 피어나는 귀의 염전에서
늙은 염부가 노을을 밟으며 수차를 돌린다
한 계단 한 계단 퍼 올린 말의 정수리가 순백으로 빛난다
햇빛과 바람과 시간을 태워 소금꽃으로 피어나는 바다의 뼛조각들이
예기불안의 기울기를 귀 밖으로 밀어 내는
염전에선 소금이 경전이다.
―「귀의 염전」 전문
소금은 바닷물에서 축출한 면면의 결정체로서 바다의 몸에서 빠져나온 ‘바다의 사리’가 아닐 수 없다. 염전은 그러한 바닷물을 가두어 놓고 햇빛과 바람을 통해 자연의 힘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그녀는 염전의 장소에서 ‘소금 방정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해제하고 나름대로의 방정식을 구성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닷물이 뱉어놓은 소금의 질량과 해를 풀 말의 사리를 찾아”가는 것이며, “소금의 결정은 말의 결정”이라는 것을 발효시키는 장치다. 또한 소금이 되기 위해 각을 세우고 있는 염전에서 ‘몸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내 안의 보리수’를 발견한다. 보리수는 석가가 35세 되던 해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우주의 참된 진리를 깨달아 불타가 되었던 곳인 것처럼 염전 역시 치환된 보리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소금밭은 ‘경전의 한 페이지’가 되어 “바람이 입을 벌리고 한 술씩 떠먹이는 말씀”으로 존재하며 “가두되 갇히지 않는, 결結도 해解도 함께 피어나는” 연기설에 기인한 시의식을 보인다. 이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따라서 저것도 없어지며, 이것이 생겨남에 따라 저것도 생겨나는 것이며, 이것이 없어지면 곧 저것도 없어지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른바 ‘늙은 염부가 노을을 밟으며 수차를’ 돌리는 것은 연기설의 순환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과 저것 주제와 타자는 서로 완전한 존재도 독립적 관계도 아니며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생겨난 존재라는 점이다. 이에 소금은 이러한 인연을 발효시킨 언어로서 “햇빛과 바람과 시간을 태워 소금꽃으로 피어나는 바다의 뼛조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포자의 눈」에서 ‘한 발짝 한 발짝 쌓아올린 빛의 제단’이 되며 ‘시시각각 경계를 허무는 빛의 위강胃腔’으로서 “살과 뼈를 맞바꾼 빛의 파장이 우주의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이테는 돌의 속살로 가득 찼다
달빛 속에서 상수리나무는 옆구리를 훔쳤고 나는 울기를 멈췄고 시간은 더 이상 일기예보를 하지 않았다
훅, 훅, 뿌리 사이로 쇳물이 솟구친다 비벌剕罰을 당한 시간이 땅 속으로 가라앉고 아름드리 주검들이 오미자빛 잿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너는 넘어져도 네가 가라
짐승처럼 헐떡이는 나무
사랑이라는 말조차 차갑게 굳어버린 오늘 한 생이 끝나고 한 쪽 귀가 역류한다
산다는 게 무언가
시간의 반대쪽은 얼굴을 가리고
돋아나는 돌의 내면은 드라큘라처럼 뜨겁다
역사는 총총히 지나가고
태도를 바꾼 화석은 유한한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꽂는다
돌이 돌을 깨며 꽃인 양 타오르는 순간이다
―「규화목」 전문
현존의 얼굴로 실존을 가리고 있는 페르소나는 나무 화석인「규화목」에서도 인식할 수 있다. 규화목은 흙에 파묻힌 나무에 광물질이 스며들어 굳은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식물이 광물질로 변화한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둘러싸고 있는 광물질은 ‘돌의 속살’로 가득 찬 실존의 페르소나로 ‘시간이 땅 속으로 가라앉고 아름드리 주검들’을 나타내는 ‘시간의 반대쪽’에 위치한다. 시간의 반대 방향은 생명의 대척점인 ‘죽음의 얼굴’로서 시간이 돌처럼 굳어버린 공간이다. 이 ‘돌의 내면’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물체가 연속적으로 무생물로 환원하려는 현상이다. 타나토스는 생명에 대한 공격성을 띄면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며, 존재를 사멸하고, 타자를 처벌하는데, 이것은 자기 보존적이고, 삶의 본능인 에로스(Eros)와 교차하며 때로는 대체되는 현존의 응답인 것이다. 에로스의 “사랑이라는 말조차 차갑게 굳어버린 오늘 한 생”은 바로 타나토스의 세계로서 삶에서 죽음으로 ‘태도를 바꾼 화석’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무라는 생명은 돌이라는 죽음의 본능에 이르렀지만 사실상 이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회귀 본능이면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재생하는 삶을 “돌이 돌을 깨며 꽃인 양 타오르는 순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3.
인연설에서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는 것이며, 이것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는 것과 같으며, 그녀의 시에서 삶과 죽음을 자연의 몸과 교감하며 실재하는 것의 일부를 통해 실존의 은폐된 세계를 보여준다. 그녀의 시는 지난 시간의 상흔이면서 현재를 역사하는 기록으로서 “한 잎의 역사가 지고/또 한 잎의 역사가 주춤거릴 때/일기장에선 검은 활자들”을 포착하는 언어다. 그렇게 “말이란 참 비릿한 거네요/해독하지 못한 나비의 행간들이 비에 젖고/파쇄기가 치명적 증거를 찾아다니는”(「나비, 한 잎의 악플」) 것이다. 그 비릿한 미감 속에서 해독하지 못하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다니는 것이 그녀의 고유한 시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들어냈다
구멍을 들춰내는 일이 점화의 단초여서 입꼬리를 팽팽하게 당기고 마른 침을 삼키며 금이 간 개뼈다귀를 한 입 한 입 발려냈다
입 주변의 비릿한 이름은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지만 꺾이고 구부러진 목울대는 질기고 슬퍼 질겅거릴 때마다 고무줄 탄내가 났다
범종소리는 깊을수록 종구가 어두웠다
소리를 얻기 위해 굴종은 적당했지만 파적破寂이 슬펐고 무너지지 않는 구멍의 힘이 슬펐다
내일은 구멍에게 헌사를 바칠 셈이다
부걱거리는 것들이 고장 난 세탁기처럼 덜컹거릴 즈음
더럽고 부끄러운 것을 시원하게 삼켜주는 대아大我의 기질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오물을 쏟아낼 때마다 뜨거운 혀를 내미는 비데의 친절을 존경하기로 했다
모든 구멍은 남모르는 뒷심을 가지고 있었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낸 뒤 울리는 공명은 빈 유리잔끼리 부딪치는 춤사위 같았다
풍향기는 팽팽한 구멍의 힘으로 날개를 펼친다
그러나,
구멍과 점화의 관계는 적당한 수식이 없어
크기와 명성이 늘 비례하는 건 아니었다
―「파적, 구멍에 대하여」 전문
이 시편의 중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구멍’은 파내거나 뚫린 공간을 단순히 형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세계와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구멍’이라는 입자를 통해 실존의 몸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공간은 일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고요함 속에서 사유가 파생되는 생동적인 공간으로서 충만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구멍은 허공의 몸으로 묘사되는 바, 시인은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드러냄으로써 무거운 현상과 생각을 거두고 그 빈 곳에 새로운 표상을 주입시키기도 한다. 그 구멍은 각자의 크기가 나누어 가진 만큼의 ‘허공의 몸’ 일부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지향하는 것은 정신적 공간이다. 허공의 몸이라는 ‘구멍을 들춰내는 일이 점화의 단초여서거기에 현실과 가상, 이성과 감성, 안과 바깥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지우고 사유를 채울 수 있게 된다. 마치 구멍이 깊을수록 멀리 퍼져나가는 ‘범종소리’와 같이 ‘소리를 얻기 위해’ 있는 ‘굴종’의 구멍은 소리와 비례한 에너지가 생기는 곳으로써 ‘구멍의 힘’을 보여준다. ‘모든 구멍은 남모르는 뒷심’을 가지면서 ‘팽팽한 구멍의 힘으로 날개를’ 날고 허공 속으로 울리는 소리를 통해 ‘구멍에게 헌사를 바칠’만큼 새롭게 역사하는 시적 사유체가 되는 것이다.
시인의 언어는 ‘허공의 몸’을 향해 ‘구멍의 힘’을 가지는 범종소리처럼 “보름달을 관음송에 피워놓고 마음 비질하는 밤”(「동강, 달을 한 입 베어 물다」)에도 경계를 허물며 ‘흩어져 형체를 지우고 물길을 돌고 돌아 모로 누운 산자락 하나 감싸 안으면서 자유롭고 멀리’ 날아가며 “길을 잃고 바라본 양폭의 가랑이 사이로 요요하게 쏟아지던 무량의 달빛”(「훔쳐본 죄」)속에서도 “번뇌처럼 몰려오고 흩어지던 천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우주의 비밀’에 그녀만의 시적 방정식으로 도달하고 있다.
4.
중심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팔을 벌려 품을 키워야 높아져도 외롭지 않음을
오늘의 결말이 모두의 정점은 아니어도 탑은
늘 중심을 우러른다 견딘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흔들린 만큼 균열져
허공이 높을수록 흔들림도 컸을
한 사람을 알겠다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을 빈 항아리처럼 엎어 놓고 오래된
바람의 말을 조심스레 쓸어보는 이 곳
한 계단 한 계단 쌓아올린 손길이 마지막 보주를 탑신에 올려놓을 때
번뇌가 몰려와 온몸을 회오리로 휘감을 때 탑은
아랫돌이 윗돌을 견딜 때에만 붙여지는 이름이란 걸
막 삐져나온 모퉁이돌 하나 쏟아지는 허공을 받아 안는다
곁에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 출렁 몸을 던져 그 틈을 메운다
휘영청 솟아오른 탑은
한 팔과 한 팔이 걸리는 곳에서 피어나는 이름이란 걸
알겠다, 오래 지켜온 허방의 힘으로
겉은 흔들려도 중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을
느리게 알겠다
―「탑―미륵사지를 지나며」 전문
이 시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최대 사찰의 불탑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기도 하다. 미륵사지 서원의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은 오랜 세월동안 무너져 절반 정도 남아 있지만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불탑이 아닐 수 없다. 돌을 하나 둘 쌓아 완성하는 석탑은 원래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신앙의 대상물로서 초기 불교에는 탑 중심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심에 배치하였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중심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으로부터 시가 시작되고 있다. 하나의 중심은 전체를 지탱하고 전체는 중심을 향해 있다. 이 중심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 중심은 정신의 몸이 아닐 수 없으며 현존재의 초점이다. 마치 진리와 존재를 분리해서 천착할 수 없듯이 존재와 중심을 떼어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의 중심은 동근원적 관계에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중심은 다름 아닌 ‘진리의 장소’가 머무는 곳이 되는 바, 여기서 진리의 본질과 일치하는 대상이 석탑으로 현현되는 것이다.
이 장소에서 시인은 “알겠다, 팔을 벌려 품을 키워야 높아져도 외롭지 않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근원적 의미에서의 명제(Aussage)로서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의 드러냄(Apophansis)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드러남은 이미 발견되어 있음(Entdeckend-sein)을 통해 진리를 보존한다는 것 또한 존재자를 드러내는 의식인 샘이다. 시인이 진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하나의 사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늘 중심을 우러른다 견딘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흔들린 만큼 균열져”있는 진리는 이미 발견되어 현존재의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바람의 말을 조심스레 쓸어보는 이 곳”이 바로 진리가 개시되는 장소이듯이, 시를 드러내고 있는 시공간이 진리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 석탑이 그렇듯이 한편의 시도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을” 극복해야하며 그것은 “번뇌가 몰려와 온몸을 회오리로 휘감을 때” 시의 행간과 행간 사이에 있는 “아랫돌이 윗돌을 견딜 때에만 붙여지는 이름이란 걸” 그녀는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이에 그녀는 말한다. “알겠다, 오래 지켜온 허방의 힘으로/겉은 흔들려도 중심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며 시인이라는 점이다. 이 중심을 가지기 위해서 시인은 ‘뻗어나가기 위해 구부림을 주저하지 않는’(「발가락 따옴표」) 의지를 통해 ‘행간과 행간 사이 말라버린 눈물송이들’을 새기는 자인 것. 그렇게 모든 사물들이 ‘한순간 피었다 사라지는 목숨’(「물개와 백련사」)이지만 그 중심은 사라지지 않는 ‘우주가 숨’을 쉬는 곳이며, 말하자면 ‘자장율사와 삼존석불이 저녁 명상에 드는’ 사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자작나무가
햇빛화살을 쏘아 올린다
햇살 숲에 흩어지는 난분분한 알갱이들
얼마간은 껍질 속 제 상처를 들여다 볼 테지만
나무는 금세 물올라 아무렇지 않게 세상을
파릇파릇 전진할 것이다
슬픈 연애도 종국에는
물자작나무처럼 상처를 걷어내고
눈물 자국마다 따옴표를 찍을 것이다
우기가 도래한 우포늪처럼
칠산도에 터를 내린 뿔제비갈매기*처럼
소금샘에서 걸러낸 소금기를 눈물로 밀어내며
몇 안 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
바람을 만나면 바람에 기대
적을 만나면 적에 기대 날개를 털며
태연한 뿔로 특별해질 것
창창한 자세로 펄럭일 것
겨울을 건너는 자작나무가
뿔제비갈매기 이름을 눈동자에 새기고 있다
―「뿔제비갈매기 이름으로」 전문
그녀가 시도하는 시작의 중심에는 정신과 본질의 합일되며 그것은 언어를 창조하며 완성하는데 있어서 만물들에게 그 본질의 이름을 부여한다. 그녀는 “뿔제비갈매기 이름을 눈동자에 새기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언어화하는 것이며, 사물과 나라는 시인이 교감하는 사이 새로운 언어를 완수한다. “햇살 숲에 흩어지는 난분분한 알갱이들”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에 이름을 명명하는 것. 그녀의 시작은 “몇 안 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에 대한 ‘특별해질 것’을 가려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이고 싶어요”(「키스」)라는 것은 ‘너라는 사물’과, ‘나라는 시’가 ‘우리’로 교환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때 까치발을 들고 밥상을 차리기도 하겠지요/가끔은 왈츠를 추기도 하겠네요/뜨개바늘이 의자에 앉아 스웨터를 짜네요/목소리를 지우고 가슴을 깎아 울타리를 엮네요/지루한 손가락이 제 목을 당겨 매듭을 짓네요“ 그것은 ‘허공의 꼭지점’이며, ‘시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시는 진리로 교환된 중심을 찾아가는 가공된 언어로서 ‘시의 몸’에 가 닿으며 언어로서 행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목록이며 또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시는 부유하는 사유를 ‘고정’시키는 것이며, 자신의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을 명명하며 소환한다. 마치 연잎 차를 우려내기 전에 살청을 하듯 일상적 언어의 거친 순을 죽이고 감각적 언어로 어루만지는 것, 말하자면 “살청을 위해 연잎은 뜨거운 무쇠솥을 몇 차례 견뎌야한다 물기를 말리고 형질을 바꾸는 일은 한 생을 지우는 일과 같아서 혼신을 다해 말매미가 피울음을 운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 이슬의 결정체, 초록 발톱을 감추고 있다 고되고 향긋한 죽음이 빵꽃처럼 피어 이승의 무른 목숨들을 어루만지는 중이다”(「살청, 보다의 여가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연잎이 지닌 ‘독’과 ‘이슬’ ‘초록’ 등의 기억의 형질을 지우고 본질만 남기는 공정 과정으로서 그녀의 근원적인 시작도 언어의 주변부를 지우고, 사유라는 중심만 남기는 ‘언어의 살청’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송병숙 시인의 시는 ‘시의 몸’을 통해 존재의 중심을 나타내기 위한 ‘언어의 살청’이라는 공정으로서 세계와 사물에 대하여 근원적 사유로 환원시키는 의지가 여기 한권의 시집에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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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누군가에게 시는 가슴 속 동굴처럼 깊게 파인 암흑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 동굴은 억압된 시인의 무의식이 자리한 공간이며, 암흑은 언어화되지 못한 기억이 함몰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비의식의 공간으로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지만 시작과 끝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막다른 장소이다. 여기서 시는 깊고 넓은 어둠 속의 표면을 언어로 굴토하는 과정 속에서 억압된 암흑을 관통하며 사유를 견인하면서 미적인 것을 발생시킨다. 또한 그것이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결핍이라는 ‘시커먼 아가리’ 속 동굴의 실체를 보게 되고, 존재의 ‘명치끝에 매달려’ 있는 근원적 공명을 생성하는 사유의 자리를 드러내준다. 그럴수록 시인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십자가’의 멍에가 한없이 가벼워지며 절망으로부터 구원에의 영역으로 가 닿는다.
이번 송병숙 시집 『‘를’이 비처럼 내려』의 배후에는 미증유의 기억을 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환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억은 시인의 체험에서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결핍으로 남은 의식의 여과이다. 체험을 통과한 시는 몸의 감각으로부터 유입된 기억에 저항하며 세계적 모순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소멸해 가는 것을 시적 언어로 현상하고, 미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시인은 이미 사라진 것 속에서 향후 사라질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언어로 고정하면서 스스로가 넘은 한계를 독자와 향유한다. 이때 그녀만의 새로운 언어가 출몰하는데, 도식화된 체계와 질서를 파괴하면서부터다.
―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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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병숙 시인∥
∙ 강원도 춘천 출생
∙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1982년 《현대문학》 초회 추천부터 작품 활동
∙ 시집으로 『문턱』『‘를’이 비처럼 내려』가 있음
∙ 삼악시, 산까치, A4 동인
∙ 강원문인협회, 강원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시인협회, 춘천문인협회, 춘천여성문인협회 회원
∙ 현)한림성심대학교 강사
∙ 역임) 원통중고등학교장, 강원여성문학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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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누군가에게 시는 가슴 속 동굴처럼 깊게 파인 암흑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 동굴은 억압된 시인의 무의식이 자리한 공간이며 암흑은 언어화되지 못한 기억이 함몰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비의식의 공간으로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지만 시작과 끝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막다른 장소이다. 여기서 시는 깊고 넓은 어둠 속의 표면을 언어로 굴토하는 과정 속에서 억압된 암흑을 관통하며 사유를 견인하면서 미적인 것을 발생시킨다. 또한 그것이 자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결핍이라는 ‘시커먼 아가리’ 속 동굴의 실체를 보게 되고 존재의 ‘명치끝에 매달려’ 있는 근원적 공명을 생성하는 사유의 자리를 드러내준다. 그럴수록 시인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십자가’의 멍에가 한없이 가벼워지며 절망으로부터 구원에의 영역으로 가 닿는다. 이번 송병숙 시집『‘를’이 비처럼 내려』의 배후에는 미증유의 기억을 미적으로 변화시키는 교환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억은 시인의 체험 에서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결핍으로 남은 의식의 여과이다. 체험을 통과한 시는 몸의 감각으로부터 유입된 기억에 저항하며 세계적 모순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소멸해 가는 것을 시적 언어로 현상하고 미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시인은 이미 사라진 것 속에서 향후 사라질 것을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언어로 고정하면서 스스로가 넘은 한계를 독자와 향유한다. 이때 그녀만의 새로운 언어가 출몰하는데 도식화된 체계와 질서를 파괴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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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