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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픈 하우스 / 유럽 그린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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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유의 창고 스크랩 상경계 그랑제꼴 합격한 고은결 양과 어머니 유홍림 씨
마담유 추천 0 조회 59 13.03.14 13: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최근 재불한인 1.5세와 2세들의 그랑제꼴 입학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키워낸 보이지 않은 어머니들의 노력과 노하우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다. 상경계 그랑제꼴인 ESCP 1학년에 재학중인 고은결 양과 그녀의 어머니인 유홍림 씨를 함께 만나 그랑제꼴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와 어머니의 교육철학을 함께 들어본다.   [편집자주]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
고은결 양: 저는 상경계 그랑제꼴인 ESCP(l’Ecole Supérieure de Commerce Paris)의 인터내셔널 부문 1학년에 재학하고 있습니다. 학제가 특이한 편인데, 취리히에서 시작하는 과정이 있어 그 쪽을 선택했어요. 제가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독일어와 영어에 익숙한데, 독일어와 불어, 영어를 하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많은 강점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유홍림 씨 : 저희 부부는 원래 독일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은결이가 중학교 1학년 되던 때, 한국에 들어가서 한 3년 정도 살았는데, 그 후에 남편이 프랑스로 나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은결이에게 물었죠. 한국에서 계속 있고 싶은지, 아니면 새롭게 프랑스에서 시작하고 싶은지요.
물론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럽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나오는 데에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했다는 말씀이군요.
은결 양 : 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녔을 때, 한국에 외국어 경시대회가 한창 생기고 있을 때여서 독어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연세대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마침 프랑스에 나오게 되셨고, 그 때 제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죠.
한국에서 편하게 대학을 다닐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도전할 것인지요. 그 때 뉴스, 신문에서 한참 유럽 연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중학생이었던 저도 EU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독일이 아닌“유럽화”가 된 유럽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에 어머니보다 먼저 아버지를 따라서 고1 때 프랑스에 왔죠.


그랑제꼴을 목표로 하게된 계기는?
은결 양 :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그랑제꼴’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는 막연하지만 그랑제꼴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경제, 경영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상품을 하나 보면 패키지, 마케팅 쪽에 아이디어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경계를 생각했습니다.


어려울 때도 많았을 텐데...
유홍림 씨 : 처음 프랑스에 올 때는 제가 프랑스 학제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일단 자녀들이 독어를 잘 했고, 영어는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불어를 배우면 EU 시대에 맞는 인재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국제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초기에는 우리 아이가 불어를 잘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년 반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서 바깔로레아를 봐야 했어요. 저는 남편보다 조금 나중에 파리에 왔는데, 그 때 와서 집을 보니 집안 구석 구석에 온통 불어 단어들이 적혀 있더군요.
은결 양 : 학교에서 시험을 보거나, 혼자 어려울 때 어머니의 말씀이 많이 떠올랐어요. 부모님에게 떠밀려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투정 부릴 수 없었지요. 그러다 보면 “아, 그래.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부모님의 교육 방법이 궁금한데…
유홍림 씨 : 저희 부부의 철학은 자녀들의 인성 교육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구요. 아이가 공부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아침에 한 시간씩 운동을 같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했어요.
독일에 있을 때부터 저녁 때 항상 저와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에는 아버지가 1시간씩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부부 각자가 아이들을 위해 100% 할애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나머지 시간에는 부모도 자기 일을 하고 아이들도 자유 시간을 갖는 방법을 택했죠. 한국에서 느낀 것은, 부모들이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 같지만 100% 할애하지는 못한다는 거였어요. TV 앞에 몇 시간씩 같이 있는 것과 한 시간이라도 아이들과 1대 1로 대화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은결 양: ESCP에서 면접 볼 때 “아버지는 신학을, 어머니는 미학을 공부했는데 왜 경제, 상업을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저는 부모님의 인문학적인 교육의 바탕에서 교육을 받았고, 항상 지식 보다는 좋은 인간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어요. 그래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경제,경영학을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나라에서 살아 봤는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없었는지?
은결 양: 독일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프랑스로 다시 오면서 저 스스로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아니며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한국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나 ‘한국인이다’라는 자각보다 ‘어느 나라에서나 적응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쉬웠던 점은, 독일 친구들은 독일 정부에서 나오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데,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한국에서 받는 것이 없었습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유럽에서 공부하고 있는 많은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홍림 씨 : 은결이가 중학생이었던 때 한국을 들어가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주위에서는 “중요한 시기에 왜 한국에 들어가느냐”며 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이 조국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경쟁이 심한 서울보다 제 고향을 택해서 아이들이 엄마 품처럼 한국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국어 교육도 철저하게 시켰는데,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로 일기를 쓰도록 했습니다.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커서 한국어 구사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은결 양 : 원래 로레알에 취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취리히의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스타쥬를 하면서, 이 업계에 대해 많이 흥미를 잃게 되었죠. 지금은 맥킨지 같은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서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체험한 후에 진로를 결정하고 싶어요.  

[김희선/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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