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90]‘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시집
지난 2일 밤, 남원 귀정사에서 열린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밤’(정태춘-박은옥 후원 콘서트)에서 불쑥 송경동 시인과 손인사를 나눴습니다. 송 시인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조금 알고 있었으나, 시 한 편 읽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인드라망에 대해서도 처음 제대로 알고 난 후, 정말로 후원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싶어 ‘대책없이’ 월 1만원 CMS 후원계좌에 사인했더니, 선물로 준 것이 송경동 시인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2022년 창비, 204쪽, 11000원) 시집이었습니다.
어제사 처음으로 50여편의 시를 정독하고 심독했습니다. 감상 수준을 훨씬 넘어서기에 놀라고 또 놀랐습니다. 우리 사회에, 우리 노동계에 이런 보석같은 시인이, 이런 보석같은 노동시, 이런 보석같은 사람(예수나 석가같은)이 있는 줄 정말 몰랐거든요. 그동안 겨우 알았던 것은 송, 경, 동, 이라는 이름 석 자뿐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노동문학’이라는 것은 80년대를 온통 휘어잡은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과 잡지 『노동해방문학』이 전부였으며, 백무산이라는 시인이 노동시를 쓴다는 것 정도였거든요. 어쩌면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인 지금도, 그 전 세대보다 훨씬 더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극한 소시민인 저로서는 ‘수확’이었습니다.
전남 벌교산産인 67년생 송 시인은 저보다 열 살이 적더군요. 30여년 동안 말도 못하게 죽어라고 치열하게 싸워온 송시인이 하룬들 편하게 잠을 잤을까요? 이 땅에 노동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평화와 평등이 온 적이 하룬들 없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의 목표는 온전히 ‘(인류의) 평화와 평등’이었습니다. 세상에 이타적인 사람이 많고도 많지만, 예수나 석가, 공자같은 성인聖人이 아니고는 그 길을 걷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민주화운동유가족회 등의 단체야 아들이나 딸 등의 ‘피해 관계자’들이니까 그렇다쳐도, 아무 연고도 없는 시민이 항상 그 길에 적극 동참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백기완, 문익환 선생님같이 말입니다. 나라와 국가를 위한 국량局量과 심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겠지요.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자기의 인생을 걸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울까요? 그런 분들일수록 겸손하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숱한 정치인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생색을 하며 흰 거짓말을 뿌리는 것과 비교해보면 말입니다.
아무튼, 시집을 일독한 후 유튜브에서 지난해 시집 발간이후 오마이뉴스 등에서 한 인터뷰 동영상을 두어 편 보았습니다. 오후내내 ‘송경동 공부’에 나선 것이지요. 보람이 있었다기보다 가슴이 아파 혼났습니다. 불쑥 <테스형> 노랫말 “아 테스형/아프다 마음이/눈물 많은 나에게”가 생각나 어쩌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신문지상을 통해 한번쯤 듣고 흘린 숱한 노동열사들의 이름을 새로이 듣는 기분은, 어쩐지 제가 그들에게 죄를 지은 듯한, 미안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대학시절 전태일 열사 이야기를 듣거나, 조영래변호사가 쓴 전태일 이야기를 읽을 때처럼 말입니다.
고공농성, 고공高空이 무슨 뜻인 줄 아시지요? 여성 최초 용접공이었던 연약한(?) 노동자 김진숙은 무단해고에 항의, 복직시켜달라며 2011년 어느 날 75m 높이의 크레인 위로 올라가 혼자서, 놀라지 마십시오, 물경勿驚 309일 동안 농성을 벌였습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희망버스, 그 이름들 들어보셨지요. 정태춘은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라는 노래를 지었고, 시인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기획하여 수많은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과 매주 부산의 현장을 찾아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응원하며 동참을 했다지요. 한번은 희망버스가 125대였다고 합니다. ‘영원한 재야’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도 여러 번 함께 했다고 합니다. 흘러가는 한 컷 뉴스로만 알고 있던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어쩌면 요즘의 ‘가짜뉴스’로 알고 있었을까요? 그래서 ‘마음의 빚’을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GNP 3만달러가 넘으면서 갓 접어든 ‘선진국’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까요? 행복요? 제가 어림짝도 없는 일이라고 하면, 일상이 ‘행복한 소시민’인 ‘행복이 겨운 모양’이라며 저를 욕하겠지요? 운동권이나 노동운동의 노래가 아니고, 예로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농사꾼과 노동자가 받쳐줘야 경제經濟, 즉 우리의 살림살이가 지탱된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텐데도, 우리는 그들을 너무나 경시輕視하는, 못된 인성(최악의 갑질 등) 내지 습관이 있습니다.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농민노동자든 산업노동자든 정신노동자든 블루칼라든, 모두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할 소중한 대상입니다. 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무시당하는 한, 선진국이 아닙니다.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힘없는 시인이 글로써 대항하고, 온몸으로 부닥치기 30년이었답니다. 그의 시 한 편 한 편을 보면, 저의 이 마음이 감정이입되지 않을까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순국열사에 대한 묵념만 할 게 아니고, 한번쯤 이름없는 노동열사들을 위한 묵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집은 시인이 껀껀이 노동자들과 어깨를 겯고 싸워왔던 투쟁일지이기도 합니다. 수십 차례의 연행, 기소, 구속의 과정에서 듣고 보고 배운 이야기를 진솔하고 거칠게(서정이 무슨 말라빠진 개뼈다귀입니까?) 글로 고백합니다. 시인은 <청소용역노동자의 선언>이라는 시를 ‘제2의 공산당선언’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라는 시를 울면서 썼다하여 ‘울보시인’이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이니까 ‘놀자 놀자 신명나게 놀자’는 게 무슨 잘못이고 죄입니까?
5부로 구성된 시집에서 5부의 <세월호를 인양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등의 시는 압도적입니다. 4부의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며> 등은 또 어떻구요. 시인이 왜 그렇게 수많은 노동집회를 쫓아다녔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시가 바로 <연루와 주동>입니다. 눈으로만 읽는 감상이 아니고, 소리내어 한번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
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
연루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주동이 돼 보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한번쯤은 안간힘으로 매달려 연루되어보고 싶고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이 연루되어보고 싶다
거기 어디에 주동이 따로 있고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겠는가
경험과 체험에서 우러난 ‘거리의 시인’ ‘투사시인’의 절창입니다. 문득 ‘전사戰士 시인’ 김남주도 생각납니다.
시인은 검사의 인정신문에 대해 이렇게 시로 말합니다.
“피고는 미신고 집회를 진행하며 공권력의 해산명령에 불응했지요?”
“아니요. 나는 재벌의 사병이 되어 정의를 해산하려는 부당한 공권력의 참주선동에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피고는 불법 옥외시위를 하고 가두행진을 하며 야간시위 금지 및 일반교통방해죄를 위반했지요?”
“아니요. 나는 야간시위를 한 게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새벽을 꿈꾼 것입니다. 이는 역사에 자주 있는 특수한 길로 ‘일반교통방해’로 좁게 해석하거나 가둬지지 않습니다”
“그럼 경찰집기를 뺏고 부수며 폭행을 가하기도 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는 인정하는 거죠?”
“아니요. 모든 이의 생이 노역과 고역이 되지 않는 사회혁명을 꿈꾸는 일은 인류의 보편적인 요구로, 여기에 맞서 특권층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국가의 어떤 ‘특수공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시인의 약력과 작품은 이렇다.
2009년 용산철거민참사 진상규명국민대책위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김진숙 고공농성 ‘희망버스’ 기획
2014년 세월호 만민공동회
2016-2019년 촛불항쟁 광화문 캠핑촌 촌장,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위 총괄간사
시집 『꿀잠』(2006),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2009),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2016),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