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의 금산, 월아산의 줄기가 호젓이 머문 금호지는 울창한 숲을 끼고 있어서 풍광도 좋지만 저수지 중간의 다리 아래에는 조금 특별한 비석 두 개가 자리하고 있다. 예사롭게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눈여겨 보기 바란다.
1533년 당시 곤양 군수인 관포 어득강의 초청에 32세 퇴계는 안동을 출발해서 예천⸱성주⸱상주⸱창원⸱의령⸱함안을 거쳐 3월 26일에 진주에 도착했다.
인근 청곡사는 퇴계에게 남다른 곳이다. 숙부인 이우가 1506년 진주 목사로 부임하자 이듬해 셋째 형 이의와 넷째 형 이해가 청곡사에서 공부했다. 당시 7세로 어렸던 퇴계가 헤어진 형들을 그리워하자 어머니는 글공부가 자식 된 도리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7년 만에 찾았지만, 글공부하던 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한 해 전에 세상을 버린 셋째 형을 그리워하며 눈물이 절로 난다고 했다.
이때 진주를 방문해서 남긴 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금산길 지나다가 늦게 비를 만났더니
청곡사 앞 쏟아지는 물이 차기도 하다.
세상사는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같아서
생사와 만남과 이별에 눈물이 흐르네."
金山道上晩逢雨(금산도상만봉우)
靑谷寺前寒瀉泉(청곡사전한사천)
爲是雪泥鴻跡處(위시설니홍적처)
存亡離合一潸然(존망이합일산연)
금호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라 때 형성된 못이라고 전해오는데 길게 이어진 둑방길에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금호지의 전체 면적 20만 4937㎡, 평균 수심 5.5m이다.
저수지 주변에는 곳곳에 주차장이 있는데 월아산 방향으로 가다가 저수지가 끝나는 곳에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서 저수지를 끼고 산아래로 계속 들어가면 울창한 숲을 안고 괜찮은 커피숖이 자리한다.
주차장이 넓으니 그냥 주차만하고 눈치가 조금 보이겠지만 저수지의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고 그곳에 무인커피숖이 나온다. 전망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괜찮은데 무엇보다 커피맛도 권할만하다.
그런데 커피솦 아래에 퇴계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기에 놓치면 조금 아쉬울 수 있겠다. 커피솦 아래로 내려가면 저수지 가까이 비석 두 개가 서 있다. 원래 마을에 있던 비석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곳에 서 있는 비석이 바로 퇴계의 시비이니 꼭 둘러보기 바란다.
세월은 무상이 흘러 퇴계는 떠났지만 옛사람의 흔적만 남아서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오늘따라 뭇새들의 울음소리도 맑게 울리고 산책길이 더욱 호젓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