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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스크랩 (...) 여자, 여자, 여자
도도네숲 추천 0 조회 83 08.06.30 23:3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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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길을 묻다  2008/06/30 04:28  개천마리
 
 
Prologue - 그 여자의 일갈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서정시를 쓸 수 없었던 80년대를 향한 영화버전의 만가(輓歌)다. 내겐 그렇게 읽힌다. 그리고 원작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처럼 여성적인 느낌과 감수성이 짙게 느껴지는 영화다.

또 영화는 세상에 맞서 선두에서 싸웠던 건 남자였는지 모르나, 그 시절을 감내하고 지키며 보듬어 품었던 건 여자였다는 걸 얼핏 이야기 하는 듯하다.


현우(지진희)가 떠나던 밤, 갈뫼에는 비가 내렸다. 윤희(염정아)는 붙잡았으나 현우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홀로 처연하게 남겨진 윤희는 멀어져가는 버스를 보며 말한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 줘. 왜 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

“저 실은 사회주의잡니다”라는 현우의 자기소개를, 심드렁하게 “그러세요? 씻기나 하세요. 사회주의자 아저씨”라고 받아치던 윤희다운 이별 독백이었다. 남자 혹은 세상을 향한 윤희의 일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직의 결정으로 생을 건 결단의 순간이 임박한 후배에게 윤희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 길어, 역사는 더 길어. 우리 좀 겸손하자. 너 그거 하지 마. 조직인지 지랄인지.”

이런 말은 책 좀 읽고, 공부 좀 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쿨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흔드는 쿨한 말은 내면의 가장 여린 속살을, 삶의 어느 뜨거운 순간에 과감하게 던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

① ‘원더걸스’와 이연우

이 한 장의 사진.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08년 촛불에서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 가슴이 찡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다. 머리가 띵하기도 하며, 맑아지는 느낌도 든다.

사진의 주인공은 국립국악고등학교 1학년 이연우 학생이다. 이연우 학생은 지난 5월 17일 촛불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성명서를 읽었다. 청계광장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나는 대열 맨 끝에 서서 성명서 낭독을 들었다.

“교과서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치신 대로 실천하고 싶어서 나왔다,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달라”는 이연우 학생의 차분하면서도 강단진 말은 청계광장을 때렸고, 내 가슴을 흔들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집회 무대는 남성들 차지였고, 성명서는 대개 남성의 음성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08년 5월 교복 입은 여학생이 당당하게 집회 무대에 섰다. 그녀는 떨지 않고 세상을 향해, 최고 권력자에게, ‘습니다’를 ‘읍니다’로 표기하는 그 최고 권력자를 향해 바르고 고운 모국어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했다.

이날 이연우 학생의 등장은, 집회의 역사는 이제 다르게 적혀야 한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걸 보증하는 문서가 있다면, 이연우 학생이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까라면 깠고, 구르라면 굴렀던, 비굴한 어른들과 달리, 할 말은 기어코 하는 ‘원더걸스’가 이 땅에 찾아왔다는 걸 5월 17일 무대에 섰던 이연우 학생은 몸소 증명했다.

② 08학번과 배은심

자식을 시대와 역사의 제단에 헌납한 어미의 심정이 어떨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자식이 떠난 날이 다가올 때마다 어미는 무엇을 하며 그 하루를 견뎌내는지 내가 알 길이 없다.

고 이한열의 어미 배은심씨는 지난 6월 10일 아들이 다니던 연세대학교에 섰다. 배씨는 말했다. 87년 그 때처럼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고. 거리에서 빌어먹으며 살아도 좋으니 아들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그리고 연세대학교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시청을 데려다줘서 말이다. 그날 연세대 학생들은 이한열씨의 영정을 들고, 연세대에서 시청까지 행진을 했다.

세상이 밉기도 했을 것이고, 모든 게 꿈이길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이한열이 누군지도 모르는, 그래서 지금 누리는 이 편안한 세상이 누구의 피를 먹고 컸는지도 모르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것들이 얄밉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은심씨는 고맙다고 했다. 세상이 내 맘대로 되겠느냐며, 변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냐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가슴은 21년 동안 변함없이 소금밭이었을 텐데,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새끼’ 이한열과 더불어 ‘어미’ 배은심을 기억해야 한다.

③ 유모차 엄마들, 그리고 화장품과 옷을 사랑하는 그녀들

80년대에는 넥타이 부대가 있었다 한다. 08년 촛불 정국에는 유모차 부대가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촛불집회에 나왔다. 작은 유모차 한 대는 물대포 한 대를 꺼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엄마들은 말했다. 국민들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내 새끼한테 손 대지 말라고.

‘화장빨’은 화장품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다. 그리고 ‘소울드레서’라는 카페는 옷을 좋아하는 여성이 대거 가입돼 있는 카페다. 성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도 있다고 한다. ‘82쿡닷컴’이라는 요리 관련 사이트로 역시 여성들이 많이 이용한다. ‘마이클럽’ 역시 이용자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젊은 여성들이 수백 명씩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힐과 미니스커트, 그리고 화장으로 무장한 그녀들이 지나가면 집회 현장에는 향기가 진동 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안티 조중동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일을 후딱 해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낸 기업 불매운동은 물론이고 항의전화도 화끈하게 했다. 정말 조중동의 광고는 줄었고, 당연히 지면이 줄어들었다. 또 이들은 수천만원 모금을 후딱 해치웠고, <경향>과 <한겨레>에 광고를 냈다.


08년 촛불의 주역은 확실히 여성이다. 여중고생이 불을 당겼고, 엄마들과 젊은 여성들이 그 뒤를 받쳤다. 이건 단순히 여성들의 집회 참여 규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운동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운동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그녀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Epilogue - 그녀들 힘의 근원, 도대체 무엇일까.

‘투쟁’ ‘데모’ ‘항쟁’ 등등은 늘 남성 중심이었다. 남성이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늘 중심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전대협이 그랬고, 한총련이 그랬다. 그리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운동의 열매가 맺히면 남성들이 독차지했다. 386 남성 운동권은 ‘전대협’ 의장 자리를 늘 독식하더니, 훗날 국회의원 자리마저도 독식해버렸다. 민주화의 열매를 논하거나 평가하는 자리 역시 늘 이들의 차지였다.

시대가 다 변해도 끝까지 남아 북한 방송 받아쓰기하던 그 징글징글한 주사파들 역시 대개 남성이었고, 이제 와서 뉴라이트로 변신해 민주화 운동에 똥칠을 하는 새끼들 역시 남성들이다.

나는 늘 궁금했다. 80년대 운동했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날이면 날마다 ‘단결’과 ‘연대’를 외치던 현대자동차 남성 노동자들은 또 어떤 짓을 했나. 98년 비정규직이 처음 도입됐을 때, 그들은 그해 여름에 비정규직 반대를 외치며 파업을 벌였다. 식당 아줌마들은 연일 출근해 파업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줬다. 꼭 이기라고, 꼭 승리하라고.

그런데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은 자기들 살려고, 식당 아줌마들을 정리해고 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성 노동자들의 눈에 식당 아줌마들은 해고해도 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줌마들은 이런 현대자동차 노동자에 맞서, 그리고 회사에 맞서 오래도록 싸웠다. 이들의 눈물겨운 싸움은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노동운동이 개 박살난 원인 중에는 이런 남성우월주의와 권위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 끝까지 싸우고 있는 노동운동 현장을 보자. 기륭전자, 이랜드, 그리고 KTX 등. 모두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다.

촛불소녀 이연우에서부터 <밥꽃양>의 식당아줌마, 그리고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여성들까지. 세상에 맞서는 그녀들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늘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그녀들은 어디서 힘을 얻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지키는 것일까.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오래도록 고민해 봤지만, 주제넘게 책 몇 권 뒤져봤지만 무식한 나는 모르겠다. 이게 남성인 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여성이 이끌고 있는 운동과 수평적 연대의 방식이 세상을 좋은 곳으로 안내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영화 <오래된 정원> 끝부분에는 윤희와 현우의 딸이 나온다. 이런 딸들이 만들어 갈 세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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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7.01 14:52

    첫댓글 잘봤습니다.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군요..

  • 작성자 08.07.01 23:21

    그래도 조금씩 자도록 하세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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